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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2. 2021

오늘의 서술, #8 컷

# 컷


 오늘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봤다. 99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 RPG 게임 ‘일랜시아’와 그 이용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원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게임에 대해 써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영화를 보고 만둣국을 먹으러 갔는데,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 쪽 홀에 한 팀이 더 있었고 그쪽은 한창 식사 중이었다. 원래 귀가 밝은 편인 데다 우리는 식사를 기다리는 중이라 마스크를 쓰고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더 잘 들렸다. 아주 집중한 건 아니었고 영화 내용도 복기하면서 띄엄띄엄 듣고 있었는데, 이런 대사가 들렸다 ‘내 또래가 아니었으면 왕따 시키는 건데’...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기분이 좀 안 좋았다. 이 추운 날, 간만에 극장까지 와서 재밌는 영화를 보고 잠시나마 들떴는데, 똥을 밟다니.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누구나 누군가를 싫어할 자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왕따는 좀 아니지 않나. 상사를 왕따 시킬 순 없을 테고, 직급은 자기와 같거나 낮은 나이가 어린 혹은 많은 사람일 테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봤는데 30대 정도로 보였다. 생각만 하는 것(1단)과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2단)과 그리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3단)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싫어해서 상대에게도 이러이러해서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부분에 대해 말하고 다닌다면 결과적으로 왕따가 될 수는 있겠다. 주위 사람들이 납득하고 동조하면. 하지만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왕따는 면할 것이다. 왕따는 다르다. 애초에 목적이 달라 상대를 싫어하도록 교묘하게 꾸며내 말을 옮길 수 있을 거다. 협잡이 더해진다.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노력해 싫어할 필요가 있나. 참으로 암담한 대사였다. 이러이러해서 싫어~ 막 이유를 나열하다 감정이 격앙돼서 나온 말도 아니고 그냥 툭 던진 말이었다. 그런 말을 아주 가벼이 툭 내뱉듯 한다는 것이 암담했다. 이미 해봤거나 자주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춥다. 따뜻한 말과 마음이 필요한 때이다. 오늘의 그 대사는 별로였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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