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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Jul 13. 2016

끼어들기에 대한 고찰

제안과 동의에 관한 암묵적인 약속

* 본 내용은 비즈한국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12292



난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소음과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보다, 차가 조금 막히는 것이 견디기 수월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최근 지하철에서 발생한 상상도 못할 사건들 때문에 무서워서 더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도 차를 갖고 다녀야하는 이유에 한 몫 한다. . 


어쨌든, 여러 나라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운전할 일도 많다. 한국에선 매일같이 직접 운전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끼어들기에 대한 생각이다. 



7월 4일 월요일 아침 출근 길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양재역에 있어서, 출근 동선은 분당-내곡 간 도로를 이용해 양재역 방향으로 간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분당-내곡 간 도로에서 빠져나와 현대자동차 앞쪽의 지하차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내 앞에 있던 남색 BMW 앞으로 흰색 말리부가 끼어드는 것이 보였다. BMW와 그 앞차 간 거리는 거의 없었고, 지하차도를 지나는 중이어서 실질적으로 끼어들기가 금지된 곳이었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1. 지하차도로 들어가는 길은 총 세 개 차선, 실선

2. 난 그중 3차선에 서 있었고, 내 앞엔 BMW 남색이 있었음

3. 출근 시간이라 차들이 빽빽함. 차간 거리 거의 없음

4. 지하차도의 정점을 찍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2차선에 있던 흰색 차가 3차선 쪽으로 붙으며 BMW와의 간격이 좁히더니 우측 깜빡이를 켬. (사실 난 이 부분이 제일 맘에 안 든다. 왜 꼭 끼어들고 나서 깜빡이를 켜는 건가?)

5. BMW는 클랙슨을 누름. 창문을 닫았는데도 클랙슨을 얼마나 꽉 누르고 있었는지 지하차도 안에서 클랙슨 소리가 크게 울려서 귀가 너무 아팠음

6. 흰색 차는 결국 끼어들기 성공.


5번의 ‘클랙슨을 누름’ 행위는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말리부에 대한 불만의 표현일 것이다. 

‘깜빡이만 켜면 다냐? 내가 널 끼워줄 생각이 없는데!’


7월 11일 아침 출근길. 역시 월요일이다. 


보통은 분당-내곡 간 도로를 이용하지만, 월요일엔 집에서 5분만 늦게 나와도 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래서 좀 늦게 나온 날이면 특별히 청계산 뒷길을 이용한다. 산길은 1차선이고 더 길어서 어찌 보면 실제 소요시간은 같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더 잘 움직인다. 운전자들은 서 있는걸 더 못 견뎌 하니깐, 차라리 길고 덜 막히는 게 나은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암튼, 월요일엔 청계산 뒷길로 출근했다. 이 길의 중간 지점은 2차선 도로인데, 이 근처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청계산입구역이 생겼고 그 앞은 2차선 도로가 됐다. 1차선 산길을 빠져나와 두개 차선이 됐을 때, 난 2차선으로 빠져나왔다. 길이 두 갠데 굳이 한쪽에만 길게 서 있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다만 이 길 끝은 합쳐져서 한 개 차선이 되기 때문에 앞에 가서는 끼어들기를 해야 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초록 불이 들어와 출발했다.

내 옆엔 까만 SUV가 있었는데, 신호가 떨어져서 출발할 때 보니 그 차가 앞차와의 간격을 줄이려고 속도를 내는 게 보였다. 끼워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SUV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들어갔다.

1차선으로 이동하기 전 내 앞엔 하얀색 소나타가 있었는데, 내가 이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차도 끼어들려고 좌측 깜빡이를 켜는 게 보였다. 이후 끼어들기를 시도하자 갑자기 클랙슨 소리가 길게 나는 게 아닌가? SUV가 소나타에게 끼지 말라고 계속 클랙슨을 누르면서 속도를 내고 있었다.


'저 SUV는 끼워줄 생각이 없는데….' 하며 그냥 내 앞으로 오라고 차 속도를 줄여줬다.

하지만 소나타는 클랙슨을 울린 SUV에게 기분이 나빴는지 더 바짝 붙어서 신경전을 벌였고, SUV와 소나타가 나란히 서는 구도는 길이 끝나서 1차선으로 합쳐지는 지점 앞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쏘나타 차주가 갑자기 창문을 열었다. 뒤에서 두 차를 지켜보던 나는 '헐! 저 차가 무엇을 하려고! 혹시 손가락이라도 세우려고 하는 건가?’하고 주시하고 있었다.


소나타의 열린 창문 틈으론 팔뚝이 나왔고, 손가락 끝엔 담배가 걸려있었다.

결국, 차선이 합쳐져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나타는 결국 SUV 뒤로 들어왔지만, 가는 중간중간 오른쪽에 틈이 좀 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빠져 SUV 옆으로 붙으려고 시도했다.

'아.. 저 사람들은 월요일 아침부터 피곤하게 왜 저러지.....'



지난 5월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GitHub에 방문하기로 해서 내가 운전을 하고 가는데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가 종종 나왔다. 네 방향 모두에서 차가 오고 있었고 횡단보도 없이 사람도 오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미국 형이 말했다. 

"이때는 일단 섰다가 가장 먼저 온 차가 먼저 가는 거야. 뒤에서도 오고 있으니깐 너무 오래 서 있지 말고 빨리 빠져줘야 해."


GitHub 방문을 마치고 몇 블록 떨어진 데모 데이 장소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좌회전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거리를 잘 못 보고 맨 좌측으로 이동하질 못했다. 잽싸게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서 있다가 앞차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 뒤에 오는 차와의 간격이 좀 나는 것을 확인하곤 빠르게 좌측으로 끼어들었다. "헤헤, 미안~" 하고 소리 내서 말하면서 비상등을 몇 번 깜빡여줬다.


미국형 : "비상등을 왜 킨 거야?"

나 : "네 앞에 끼어들어서 미안하다는 뜻에서?"

미국형 : "여기선 아무도 못 알아들을걸?"

나 : "그래? 여긴 비상등 안 켜?"

미국형 : "응, 비상등은 정말 무슨 일 있을 때나 키거든. 아마 너 보고 뒤 차가 '쟤 무슨 일 있나?' 했을지도 몰라ㅋㅋ"

나 :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땐 그 정도 얘기만 하고 끝났지만, 저녁때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내 곧 미국형이 이전의 그 상황에 대해서 "사실은 아까 아슬아슬했어…."라는 얘길 했다. 말인즉슨, 끼어들고 싶다면 깜빡이를 켜고 잠시 기다리고 뒤 차가 속도를 낮춰 간격을 떨어뜨려 주면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끼어들어도 된다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즉, 깜빡이를 켠다는 건 “나 껴도 되니?”라는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는 제안의 신호, 그걸 본 뒤 차가 속도를 줄인다는 건 "끼어들게나 친구"와 같은 동의로 볼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도 한국에서 운전하면서 왜 끼어들고 나서 깜빡이를 켜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던게 떠올랐다. 


다른 나라에서 겪은 이런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대체로 이런 반응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그런 문화가 정착해야 하는데 말이야..." 


물론 끼어들기 하나 가지고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큰 사고로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서로 암묵적인 약속을 잘 지켜야 하는 운전 습관에서조차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인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아 출근길이 조금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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