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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Jul 13. 2020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의 책을 읽고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by Helen Nearing


20년 전 처음으로 헬렌 니어링의 책 '소박한 밥상'을 읽었다. 이번에 읽은 그녀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홑겹 표지에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힘을 뺀 느낌인데, 내가 처음 발견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그보다 더 심했다. 누런 갱지로 된 책 표지를 만져보고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그 책을 골랐고, 헤질 때까지 보았다.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결혼하여 나만의 주방을 가졌을 때 헬렌의 채식주의 및 자연주의 식사를 따라 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언젠가 일본 식료품점에서 에다마메 (푸른 콩을 껍질 째 쪄서 냉동해 놓은 제품, 물에 삶아서 먹는다)라는 제품을 발견했을 때였다. 이것은 헬렌의 책에 나온 레시피와 일치했는데, 이 한 봉지만 있으면 소박한 밥상에 나오는 설명인 ‘소금을 약간 치고 콩을 삶아 먹으라’는 요리를 만들 수 있기에 기뻐했다. 한동안 좋아했는데 어느 날 집에 온 손님이 “어, 이건 일본식 술집에서 안주로 나오는 콩이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만 먹게 되었다.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놓은 곁들이 안주 사이에 있는 푸른 콩 요리는 헬렌의 가르침과 정반대 되는 느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해 준비했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미국에 살면서 내가 만일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할지 대비했다. 운전면허를 신청할 때 사고로 뇌사에 빠지면 장기기증을 해달라고 서명하였고, 남편과 내가 동시에 사망하면 누가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후견인을 맡을 것인지 명시하여 변호사 사무실에서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는 신문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가 사망하자 주정부가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었는데, 조부모가 그 후견인 자격을 얻기 위해 정부와 소송을 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준비는 비극적인 죽음, 예상하지 못한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계획이다. 이런 준비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나오는 것처럼 스콧과 헬렌 니어링이 경험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의학발전이 가져온 수명연장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대다수 노인이 본인이 가진 자원을 다 소진하고도 생명이 지속되기에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노년을 보내게 된다. 90대 노인을 돌보아 줄 가족들 친구들도 이제는 70대 노인이 되었고, 현대 사회가 정의한 안락한 삶의 질을 유지하기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땅에 의지하여 땅을 파면서 생활했던 니어링 부부는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 삶을 정리하였기에 그릇에 물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를 이룬 것은 아닐까? 책을 읽다 보면 결핍의 상태도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마다 이들은 제일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잘 헤쳐 나갔다.



1948년 남편 스콧이 부인 헬렌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오늘 밤 나는 우리가 농장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거의 벌이라고 할 수 없는 늙은이 일자리를 얻거나 그보다 더 수입이 적은 노인 연금에 의존하거나, 그도 아니면 항상 궁핍하거나 궁핍에 가까운 듯이 느끼면서 친척이나 친구들에 의지해 사는 생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거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소. 이런 것과 견주면 농장은 천국이오.”


고갈되는 국민연금, 부족한 기초노령연금, 형편없는 노인 일자리의 질, 갈 길이 먼 장기요양시설, 발전 속도가 더딘 치매 예방 치료제, 가족 돌봄의 어려움. 우리가 신문에서 매일 마주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 니어링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범위 내에서 해결하고 우아하게 떠나는 방법을 택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배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실천이 그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고, 헬렌에게 스콧은 태양과 같은 존재였는데, 나는 웬일인지 스콧의 저서는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아마 이따금 보이는 스콧의 금욕주의적인 면 때문인가 싶다. 소박한 밥상을 집필하고 있던 헬렌이 어느 날 남편에게 요리책을 쓰는 활동이 재미있다고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을 재미삼아 한다니 찬성할 수 없구려. 인생을 재미로 사는 것은 아니잖소.
좀 더 진지하게 일을 했으면 하오. (p. 205)


소박한 밥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부부처럼 살 수 없더라도 소박한 밥상의 레시피 한두 개는 따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헬렌에게 이런 타박을 했던 스콧이 어쩐지 잔소리꾼처럼 여겨진다. 반면 헬렌은 수맥을 짚고 신지학회와 강신술에 심취하는 등 내가 가깝게 느끼지 않는 문화에 있었던 사람인데도 그녀의 어떤 면이 나를 끌어당긴다.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50년 세월 동안 남편의 모든 기록물을 잘 보관하여 공공의 유산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당시의 여성들에게 요구받던 전형의 틀을 깨고 나온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다. 헬렌 니어링은 오는 사람 막지 않았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수많은 방문객에게 음식을 제공했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스콧을 말리지 않았다. 연평균 방문자 수가 나와 있어서 계산을 해 보았더니 하루 8명의 손님이 그들을 찾아왔고, 어느 날엔가는 26명의 사람에게 식사를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 자체를 교재로 내어준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그 둘은 서로의 다름을 보완하고 배려하며 존경하며 살았다. 


이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독서모임 발제문 중에 배우자와 함께한 세월을 돌이켜 보며 감사했던 부분 나누기라는 항목이 있었다. 나의 배우자는 요즘 안드로메다에 살고 있기에 남편과 함께 하라는 숙제가 부담되었다. 그래도 물어는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이가 대답했다.


“내가 좋았던 시기가 당신은 싫었던 시기일 수도 있으니 우리 둘이 공통으로 감사하고 좋았던 시기를 찾을 수 있을까? 문제가 좀 틀린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말장난을 싫어하고 그는 그럴듯한 지적으로 빠져나간다. 나는 “내가 묻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야. 이 숙제를 위해 당신이 시간을 내줄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고 있는 거라구.”라고 쏘아대고 말 꺼낸 것을 후회했다. 헬렌은 스콧이 그의 스승이었다고 표현하며 마치 그녀보다 그가 더 높은 경지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스콧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헬렌을 꼽았다. 훗날 우리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배우자라고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는 나의 유일한 태양이지만, 나는 헬렌과 스콧이 한 것처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배우고 싶다. 이 책에 내가 놓친 답이 있는지 다시 읽어 볼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한 것 중 하나로 Living Will /Five Wishes라는 도구가 있다. 한국에서 법적 효력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뇌종양전문의인 이승훈 님께서 블로그에 번역해두었길래 여기에 기록해본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좋을 가이드라인이다. 


https://blog.naver.com/kmalsh/221339715686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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