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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Jul 13. 2020

수북수북 책이 쌓인다. 경험이 쌓인다.

팩트풀니스로 화상독서모임을 하다 

매주 수요일 한 권의 책을 읽는 북클럽 수북수북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화상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팩트풀니스(Factfulness)였다. 저자들의 테드 강연을 들어본 회원들이 많아서 대부분 이 책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회원들 모두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진행자는 총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나누어 참여자별로 할당해 주었고, 회원들은 맡은 부분을 한쪽으로 요약한 후 해당 분에서 발제문을 한 개씩 만들어야 했다. 주 진행자가 있지만, 어찌 보면 9명의 공동 진행자가 있다고도 할 수 있어 나는 긴장을 하였다. 이런 시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회원들의 참여도는 어떨지, 모임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진행자는 먼저 오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설명해주었다. 두 시간에 걸친 모임 시간은 장별 요약발표(55분), 휴식(5분), 장별 발제문 토론(55분) 광고(5분)로 구성되어 있었다. 요약발표시간은 회원당 3분으로, 이 시간이 지나면 발언 시간 종료를 알려주기로 했다.


타임키퍼를 맡은 나는 3분짜리 모래시계를 준비하여 회원들이 볼 수 있게 화면 앞에 올려놓았다. 모임용 준비물을 사두고 실전 경험은 없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난관을 만났다. 서문을 요약한 회원의 발표가 제한시간보다 훨씬 일찍 끝난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1장을 맡은 사람이 차례를 이어받았는데, 0초부터 시작해서 180초를 세주어야 할 모래시계가 아직도 처음 3분을 표시하느라 열심히 모래를 뿌리고 있었다. 


아날로그 기기인 모래시계는 누를 수 있는 리셋 버튼이 없고 온전히 그 시간이 지나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모든 사람이 시간 초과를 하는 상황을 상상했던 것일까? 결국 1장 요약발표가 진행되고 있을 때 잠시 자리를 비우고 주방에서 요리용 타이머를 가져와 두 가지를 병행해서 사용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하니 이런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 두 장 요약발표까지는 참여자들의 질문이 많지 않았다. 진행자가 “다들 본인 발표 내용 생각하느라고 바쁘죠?”라고 말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2장, 3장을 맡은 내 마음이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직접 모래시계를 돌려놓고 2장 설명을 시작했는데, 바로 앞에서 모래가 떨어지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초조함 때문에 땀이 났다. 이런 식으로 3장부터 11장까지 회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모두 열심히 준비해서 책 내용을 명료하게 설명해주었고, 시간제한 규칙을 잘 지켰으며, 다른 회원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었다. 


챕터별 요약 발표 중간에 책의 전반적인 모양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토론을 하게 되었다. 이과 출신인 한 회원은 책에 나온 단순한 수치 비교방법들을 예시 삼아, 도대체 저자는 어떤 독자를 위해서 이런 책을 썼는지 의문이라며 문과생을 위해서 썼나 싶었다고 하였다. 누구나 다 알만한 내용을 책을 냈다는 취지였다. 또 다른 회원도 비슷한 발언을 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문과 출신인가? 의사라던데 의사가 문과였나?’ 생각했다며 앞사람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발언했다. 팩트풀니스에서는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통계수치를 이용한 사실을 보기보다는 여러 가지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이런 책을 왜 쓴 거냐는 의문을 가진 회원은 책에 나온 (정보를 제대로 보는) 극소수의 아웃라이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회원들도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이 책을 썼어요!”라고 발언하는가 하면, “문과생을 저버리지 않고 문과생도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를 해 주려고 이 책을 쓴 저자들에게 감사해요!”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또 한 명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휴식 후에 발제문 토론을 할 때는 더욱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다. 이는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고 열심히 숙제해 온 회원들 덕분이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들이 발제 질문을 준비한 배경에 대해 쓰고 싶다. 진행자는 종종 왜 이런 질문을 준비했는지 부연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에 대해 두 명의 회원이 “진행자가 발제 질문을 꼭 만들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했어요.”라고 말하였다. 나에게는 이 두 회원의 발제 질문이 가장 와 닿았기에 이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이렇게 좋은 토론 주제를 던져 놓고선 ‘이게 꼭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하라고 해서 하긴 했다’는 지나친 겸손의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만든 발제 질문은 아래와 같다. 



저자는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통계수치 중 1인당 기타 보유 수가 늘어남을 언급합니다. (P. 94)

발전의 궁극적 목표인 문화와 자유는 측정하기 어려운 지표인데저자는 책에서 1인당 기타 보유 수가 문화와 자유라는 추상적 상태를 측정할 좋은 지표라고 하였습니다저자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당신은 1인당 기타 보유 수가 문화 수준과 자유의 정도를 나타내 줄 적절한 지표라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진행자는 나의 발제문이 흥미롭다며 토론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기에 발제문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책을 읽고 발제문을 뽑아놓고선, 이게 적절한지, 우리 모임에서 다루기 좋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잘 모르겠는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수습을 하지라는 불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발제문으로 제안하여 이 고민을 회원들과 나누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몰랐던 생각이 명쾌하게 정리되는 소득이 있었다. 이 경험으로 독서모임은 모두의 시간인 만큼 치열하게 고민하여 내 역할을 준비하되, 참여자들에게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묻고 나눌 수 있는 안전한 성장의 공간이 되어준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두꺼운 책을 읽었기에 할 말이 많았음에도, 두 시간이라는 운영시간에 딱 맞추느라 모두가 노력했다. 나 역시 시간상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타이밍이라고 여겨져서 좋은 발제문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랬더니 모임 끝에 가서는 말을 참을 때 생기는 갈증 같은 것이 쌓였다. 내 경험이 이러했기에,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되어 발제 질문을 준비했으나 미처 토론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회원에게 예의를 갖추어 양해를 구하는 진행자의 태도가 돋보였다. 


팩트풀니스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부분은 소득 수준이 다른 가정의 칫솔을 비교한 사진 4장이었다. 1단계에서는 손가락으로 이를 닦고, 2단계에서는 플라스틱 칫솔 하나로 온 식구가 이를 닦고, 3단계에서는 한 사람당 칫솔이 하나씩 있고, 4단계에는 전동칫솔을 사용하는 사진이다. 지금 60대인 회원 중 한 명은 본인 인생에서 이 단계를 다 거치며 살았다면서 어릴 때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이를 닦았는데, 지금은 워터픽 전동기계를 쓰는 세상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사진 덕분에 책에서 설명하는 국가 간 부의 비교와 시간적 변화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나는 오늘이 지금까지 북클럽 모임 중에 제일 좋았다. 어떤 점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들었을 것인데,  진행자와 통화 중에 “역시 모두가 역할을 맡아서 주인의식을 가졌을 때 훨씬 역동적인 시간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수긍하였다.  사실 나는 독서모임 입문자이다.  평소에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도 나의 책 읽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부분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 왜 그러한지 짚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독서모임에 참여해보니 함께 읽기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임 마지막에 진행자가 완성도 있는 독서토론에 참여한 회원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모임을 훌륭하게 진행한 그녀가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아이들한테 해주는 것처럼) 등에 훌쩍 업어서 한 바퀴 휘리릭 돌려주고 싶었다. 물론 우리는 온라인으로 만났기에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팩트풀니스에서 건져 올린 씨앗 문장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유엔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수치를 무료로 볼 수 있지만,
아무리 공짜여도 노력 없이는 정보를 지식으로 만들 수 없다.

팩트풀니스 (p. 11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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