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토마토 프리랜서 기자를 시작한 후 네 편의 기사를 작성했다. 지면에 실린 글이 몇 편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 일은 훨씬 많다고 느끼는 이유는 섭외 요청을 하고 거절당한 경험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거절한 사람은 취재 약속을 잡지 않지만, 때로는 인터뷰 현장에서 특정 내용은 싣지 말아달라며 취재 범위에 대해 선을 긋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협조를 구하고 설득을 하게 되는데, 이 경험을 통해 사람마다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도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절을 당하면 자괴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 과정에서도 배울 점이 있음을 안다.
내 나이는 묻지 마세요
대전의 오래된 상점을 취재한 첫 번째 기사는 약속을 정하고 섭외한 것이 아니라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즉석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는데, 사장님은 열심히 나의 질문에 답변해 주신 후 대화가 끝날 때쯤, 민망하니 본인의 이름은 쓰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 상점 앞에서 상호가 적힌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응해주고, 명함도 주었는데, 이름을 쓰지 말라니? 그 의중이 아리송하다고 생각했지만,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느라고 그러는 것인가 싶었다. 취재를 마치고 편집장에게 원고를 송부했더니, 그는 기사 내용에서 몇 가지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할까 하다가, 얼굴을 보고 물어보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 2차 방문을 했다. 점심시간이어서 사장님은 자리에 안계셨다. 마침 지난번에도 본 직원이 차를 권하면서 반가이 맞아주어 상점에서 사장님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사장님의 연세를 물었다. 그는 몇 년생으로 알고 있긴 한데 확실한 것은 아니니 직접 물어보는게 좋겠다고 하였다.
신문 기사를 읽다 보면 인터뷰이 이름 옆에 나이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이를 직접 묻는다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과 추가 인터뷰를 하고 떠나기 직전에 조심스레 연세를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그게 왜 궁금하냐며 답변을 피하였다. 내가 대략 6학년인지 7학년인지 정도만 알려주시면 어떻겠냐고 하였더니 “6학년이지 뭐.”라고 말하였다.
나는 직원에게 들은 정보를 기사에 써도 되는지 고민해 보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편집장에게 전화해서 추가 인터뷰를 하긴 했는데, 나이는 알지 못했다며 기사에 넣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다. 편집장은 나이 정보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된다며, 사람 이름 옆에 나이를 기재하는 것은 이 사람이 실체가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나의 인터뷰이는 열의를 가지고 취재에 협조해주셨음에도 처음에는 이름을, 그 후에는 나이 공개를 거절하였다. 언론과 인터뷰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은 매체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리는 것에 대해 뿌듯하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쑥스러운 감정을 가지는 듯하다. 인터뷰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콘텐츠를 뽑아내는 게 나의 임무임을 느꼈다.
월간 뭐라고요?
전화 섭외에서 취재 거절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대전 내 30~40년 된 사업체를 찾고 있음을 아는 나의 친구가 2대째 석재를 가공하여 조각과 비석을 만드는 석재회사의 존재를 언급하였다.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편집장에게 전달하니 흥미로운 주제라며 섭외를 해보라고 하였다. 친구는 나를 대신하여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취지의 인터뷰인지 이야기한 후, 자연스럽게 월간 토마토라는 잡지를 소개했다. 나의 친구는 월간 토마토를 구독하는 사람이었기에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석재회사를 하는 그녀의 지인은 처음 들어보기에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내가 직접 설명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매체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정기간행물이 아니기에 친구가 잡지를 소개를 하는 데 꽤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사실 월간 토마토는 대전의 문화예술 잡지라서 이곳에 인터뷰가 실린다고 해서 피부에 와 닿는 사업적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이는 선한 마음으로 시간을 내주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그들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을는지 집어내기 어렵다. 내가 실력 있는 인터뷰어라서 나의 취재에 응하면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고 본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것도 아니었다. 인터뷰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석재회사 사장님은 회사 일정과 상황을 살펴보고 알려준다고 하였는데, 다음 날 진행이 어렵겠다고 알려왔다. 편집장이 취재 갈 때 월간 토마토 과월호를 챙겨가라고 안내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인지도가 잡지 품격의 유일한 척도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낮은 매체에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취재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기 앞에만 서면...
거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인데 지난달 미술 작가 인터뷰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녀는 낯선 사람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어려워서 인물 사진 촬영은 곤란하다고 하였다. 취재를 나서기 전, 전화 통화에서부터 사진 촬영이 어렵다고 하여 과연 기사 완성이 가능할지 염려되었다. 상황설명을 하고 편집장에게 물어보았다. 측면사진, 마스크 쓴 사진도 괜찮다며 꼭 인물이 크게 나온 사진이 아니어도 가능하니까 지면 구성에 필요한 작가 사진을 확보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직접 만나본 작가는 쾌활하고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타인이 자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혹시 이미 가지고 있는 평상시 사진을 나에게 전달해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 방식은 가능하다며 인터뷰 후 이메일로 전송해주었다. 오히려 이날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고 인터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몰입이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작품 앞에 서 있는 인터뷰이의 측면 사진을 받은 후 출처를 작가 제공으로 기재한 후 사용하였다.
크레딧은 필요 없어요.
월간 토마토 2021년 신년 호에 실린 징검다리 취재를 할 때는 대전 하천관리사업소 담당자의 도움이 컸다. 현장에 가기 전에 징검다리 위치를 조사했는데 나와 통화 연결이 된 담당자는 방대한 사진 자료를 공유해주었다. 이 중 하천 범람 시 이용을 금지하는 표시로 붉은 줄을 드리운 장면이 있었다. 내가 취재 할 당시에는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서 이동 통제를 하는 곳이 없었고 자연히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자료를 건네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전하천관리사업소 제공이라는 문구를 넣고 사진을 써도 되는지 문의했다. 그는 그럴 필요 없고, 본인의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라며 크레딧 없이 써도 좋다고 하였다. 요즘처럼 출처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출처를 밝히지 말라는 사람을 만나니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사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뜻일까? 내가 작성하는 기사에 본인의 사진이 들어가는 게 아무 상관 없다는 뜻일까? 나는 편집자에게 출처를 밝히지 말라는 이 내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사진 주인이 그랬다면, 상관없다고 상황정리를 해주었다. 이렇게 정보를 주고도 본인이 관여했음을 밝히지 말라는 희한한 거절의 경험도 있었다.
공간이라는 지면이 필요해
가장 최근에는 대전시에서 운영하는 공용 공간의 위탁 운영담당자를 취재하게 되었다. 나는 해당 인터뷰가 {공간과 사람}이라는 코너에 실리는 것으로 공간 소개가 주를 차지하고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일부 소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공간에 대한 인터뷰는 가능하지만, 인물에 대한 인터뷰는 곤란하다고 하였다. 본인이 사재를 털어 이곳을 세운 사람도 아닌데 위탁운영 담당자로서 정면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당황했지만, 인터뷰이와 관계 형성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의도를 이해했으며,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한도로 포함하겠다고 말을 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나의 인터뷰이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어서 인터뷰 시간은 매우 생산적이었다. 취재하면서 조금 친해졌으니 다시 물어보면 어떤가 싶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간 촬영을 하며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업무 중인 인터뷰이에게 다가가 사진 촬영은 부담스러운지 물었다. 담당자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와서 자료정리를 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난감했다. 종합지 형식으로 나온 월간 토마토 목차를 샅샅이 훑어봐도 이 기사는 <공간과 사람> 코너에 해당이 되지 다른 지면에 실을만하지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기사를 완성하고 편집장에게 연락했다. 이번 기사가 사람에는 초점이 없고 공간 중심이라는 설명을 한 후, 기사를 살릴 방법이 있겠는지 물었다. 편집장은 내가 보지 못했을 뿐, 월간토마토 지면 중에는 <공간>이라는 코너가 별도로 있어서 내가 작성한 기사는 거기에 넣으면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였다니! 나 같은 초보자는 14년 역사를 가진 잡지의 포맷을 다 알지 못하기에 아는 선택지 중에서 짜 맞추려다가 진을 뺀 것이다. 편집장과의 통화로 부담을 덜고 얼른 기사 작성을 마쳤다.
이제 몇 달 프리랜서 기자를 한 것치고는 벌써 크고 작은 거절의 경험이 쌓였다. 편집장은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인터뷰 요청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나는 기자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협조를 구할 수 있을지, 인터뷰이에게는 어떤 점이 편안하고 불편한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거절을 당한 시점에는 가슴이 벌떡벌떡 뛰고 애써 취재한 기사를 버리게 될까 봐 애가 달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경험들이 쌓여 취재 매너? 취재 내공? 취재 배짱? 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쌓이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