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잡지에는 편집장이 있다. 편집장은 무엇을 하는가? <편집가가 하는 일>이라는 벽돌책이 있을 정도로 편집가가 하는 일은 많지만, 요약하면 글이 제품이 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마무리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월간 토마토의 기자들이 각자의 글을 교정하여 단체 대화방에 보내면 편집장과 동료들이 읽고 피드백을 한다. 편집장은 구체적으로 고칠 점과 보완할 점을 메모한 후 파일을 공유하고, 기자는 이를 다시 최종 검토한 후 출판사 이메일로 발송한다. 이후 출판사는 디자인을 입혀서 사진과 글이 담긴 PDF 지면을 기자에게 보내주고, 글쓴이는 잡지가 인쇄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살펴보고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다.
잡지에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편집장이 있는 매체에 글을 싣는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편집장이 총괄 책임을 맡아서 매체를 만드니 책이 완성되어 나오는 거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전부였다. 지금도 편집장의 임무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지난 몇 달간 경험을 통해 편집장의 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일은 내 글이 편집장의 손을 거치면, 혼자 글 쓰고 교정하고 퇴고하는 것에 비해 긴장감이 생기고, 맥락이 정확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누군가 내 글에 손을 댄다는 것이 어색해 바뀐 단어를 볼 때마다 움찔했는데, 이제는 ‘흠... 나는 왜 이걸 이렇게 표현하지 못했지?’ 한다.
기사에서 화자는 드러나지 않게
처음으로 취재했던 농약종묘사 방문기 초고는 이렇게 시작했다.
"프리랜서 기자로 첫 번째 임무는 오래된 상점을 취재하는 일이다. 중구, 동구, 서구, 대덕구, 유성구로 이루어진 대전에서 유서 깊은 가게는 주로 원도심에 있다. 접근성과 지역적 안배를 고려해 나는 유성구를 맡았다."
편집장은 기사를 작성할 때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원고에서 화자의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였다. 나는 이 조언을 따라 첫 번째 석 줄을 삭제하고 도입부를 다시 썼다.
“어떤 이는 농약사라 하고, 어떤 이는 종묘사라고 하는 이곳 이름은 대광농약종묘사이다. 구암역 인근 부동산에 들러 삼십 년 넘게 영업한 상점을 찾았더니 일러준 곳이다. 이사를 가서 외관은 새것이지만, 부동산이 그 자리에 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종묘사가 이 동네에 있었다고 한다.” (월간 토마토 vol. 161 직업, 생계, p.29)
글쓰기 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임팩트 있는 첫 문장은 아니지만, ‘나’를 빼는 글쓰기를 했더니 기자의 시각을 제외하고 독자들이 취재 대상지에 시선을 옮기도록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같은 원고에서 편집장이 수정한 표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부사를 추가한 것이었다. 이 문단은 고객이 상점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부품값이 4,000원 나왔다고 하자, “돈 안 가져왔는데, 다음에 드릴게요.” 한다.”
“부품값이 4,000원 나왔다고 하자, “돈 안 가져왔는데, 다음에 드릴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손님이 당당하게 말했던가? 잘 모르겠다. 나는 위의 문장 바로 전에 수줍게 외상을 요청한 사람 한 명과 아무렇지도 않게 외상으로 사겠다고 말한 다른 고객을 묘사했다. 4,000원을 내야 하는 사람은 세 번째로 나오는 인물이었는데, 문맥상 사람들이 점점 대놓고 외상을 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편집장은 현장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당당하게’라는 단어를 넣었을까? 이 단어를 집어넣으니 글에 강약이 생기면서 이 장면이 더 생생하게 전개되었다. 부사 하나가 있어도 없어도 고만인 것 같지만, 한 끗 차이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요
글의 제목은 첫인상과 같은 것이라서 독자들이 계속 읽을 건지 말 건지 결정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제목이 중요하다는 건 아는데, 제목을 잘 쓰는 건 어렵다. 제목을 바꾸고 뒤집고 줄이고 늘렸다가 제일 처음에 적었던 것으로 낸 적이 여러 번이다. 징검다리 취재 기사도 제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원래 부여한 제목은 “대전을 느리게 즐기는 법: 징검다리 걷기”였다. 소재 한 가지를 통해 대전을 소개하는 테마였던 만큼, 독자들이 징검다리를 걸으며 대전을 느리게 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제목이었다. 빨리 가려고 징검다리를 건넌다는 통념과 달리, 징검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여유를 가지고 천변을 거니는 사람만이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그런데 여러 번 원고 수정을 거친 후 잡지에 실린 제목은 “징검다리 위에서 대전을 보다”였다. 나는 천변을 취재한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를 취재한 것이었고, 실제로 징검다리 위에서 촬영하고 관찰하며 머문 시간이 길었다. 내가 원래 작성한 제목과 비슷한 것 같지만, 편집장의 손을 거쳐간 결과물을 보니 징검다리에 강조점이 실리면서도 간결하게 떨어지는 제목이 되었다.
2월 취재지로 다녀온 국립대전숲체원 기사도 편집을 거쳐 감성적인 제목으로 변신한 경우다. 전국에 있는 국립숲체원 중 유일하게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는 도심형 특징을 살리고자 나는 “도시 속 힐링 공간: 국립대전숲체원”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잡지에 최종으로 실린 제목은 “쏟아져 내리는 별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는 곳” 이다. 기사 마지막에 “열정과 자부심이 담긴 그의 안내 덕분에 대전 하늘 아래 쏟아지는 별을 마음껏 관찰 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를 마음껏 돌아보고 누릴 수 있었다.”(월간 토마토, vol. 163, p.55)라고 썼는데 편집장은 여기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나는 이 표현에 적합한 장소가 글의 마지막이라고 여겼는데, 편집장은 글의 맨 처음이라고 생각했다니 이 차이가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편집 방향이었는데, 같은 문장도 문단의 한 요소로 쓰일 때와 제목으로 쓰일 때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편집장의 잔소리
글에 대한 편집자적 개입 외에도 편집장은 모든 기자를 향해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이런 내용을 <편집장의 잔소리>라는 제목으로 따로 적어두는데 기사 글을 쓰는 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존칭을 쓰지 않는다. ‘하셨다고 한다.’ 같은 표현 없애라. 글을 쓰는 기자는 독자를 대표해서 쓰는 거니까 나이도 성별도 없다고 보면 되는데, 이때 존칭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조사 ‘의’와 ‘들’을 남발하지 말라. 의도적으로 빼는 노력을 해라.
-예쁘다, 즐겁다, 감동적이다 등 개인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단어를 자제하라.
-어려운 한자나 영어는 한글로 표기하라. 어려워도 최대한 노력하라.
-수동형 문장보다 능동형 문장을 구사하라.
-‘있다’를 너무 많이 쓰면 좋지 않다.
-문장은 짧게 쓰라. 문장이 길어지면 문법적 실수가 나고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편집장은 위의 사항을 기자 모두에게 알려주며 스스로 교정볼 때 지침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중 몇 가지는 두 번 이상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사실로 유추해 보았을 때 글을 쓰는 이들이 쉽게 고치지 못하는 습관임이 틀림없다.
이 외에도 편집장이 하는 일은 많다. 부족했던 내 원고의 2%를 채우는 신기한 경험 외에도 편집장이 관여하여 큰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경우는 어떤 기사를 쓸지 브레인스토밍할 때다. 여러 취재 대상을 두고 추려야 할 때 그는 시기적 적절성, 다른 글감과의 안배, 토마토의 관심 방향과 맞는 소재를 정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준다. 월간 토마토의 편집장은 특이하게 재봉질도 하는데, 이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