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열여섯 명의 손주를 두었다. 그중 한 명인 나는 1/16만큼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다. 할머니와 나는 오십 년 차이인데, 줄곧 그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외할머니랑 내가 엄청 친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정리수납전문가였다. 외삼촌 가족과 사는 할머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가장 중요한 행사는 옷장 정리였다. 며칠 동안 이불 홑청을 빨고, 서랍장 속 내용물을 꺼내 손질했다. 철 지난 옷은 보자기에 싸고, 원래는 희었으나 누렇게 된 옷은 삶고, 구멍 난 옷은 기웠다. 할머니는 여름마다 삼베 이불에 풀을 먹였는데, 천이 마르는 동안 누룽지와 갱지를 섞은 것 같은 비릿한 냄새가 났다. 친해지기 어려운 향이었음에도 이 과정이 끝나면 깔깔한 더위 탈출 장비가 만들어진다는 기대감에 빳빳하게 변하는 이불을 만져보았다.
할머니의 여름 향이 풀 쑤는 뭉근함이었다면, 겨울 향은 나프탈렌의 날카로움이었다. 옷 정리를 시작하면 장롱 한편에서 조약돌 만한 구겨진 달력 뭉치가 나왔다. 종이 안에는 나프탈렌이 있었다. 샀을 때는 동그랑땡만 한 크기였는데(나프탈렌 심부름을 다녀온 사람도 나였다) 버릴 때는 콩알이 된 것을 의아하게 여기자, 할머니는 고체가 액체를 건너뛰고 기체가 되기도 한다고 일러주었다. 무학이었던 그녀가 이 현상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무학이나 다름없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음은 분명하다. 훗날 과학 시간에 승화의 예시를 말해볼 사람? 했을 때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지금은 방향제, 탈취제, 습기 제거제, 방충제가 용도별로 있으니 예전만큼 나프탈렌을 쓰지 않지만, 가끔 그 냄새를 맡으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어른이 되어 할머니에게 방향제를 선물한 적이 있다. 소형 옷걸이처럼 생긴 방향제였는데, 옷장에 걸어두면 좋은 향기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용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옷을 걸 수 없는 옷걸이의 쓸모가 무엇이냐고 하였다. 옥신각신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꽃냄새가 나는 나프탈렌이에요. 옷장에 넣어두시면 돼요.” 그때는 웬 거짓말이냐 했겠지만, 요즘은 진짜 꽃향기가 나는 나프탈렌이 있다.
우리 집, 아니 막내딸 집에 와서 철마다 의복 교통정리하던 외할머니는 어쩌다 하는 일에도 빈틈이 없었다. 저번에 있던 옷이 어디 갔는지 꼼꼼히 챙기는 기억력과 한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 집안 곳곳을 개선하는 바지런함은 최고였다. 어머니가 할 일을 왜 할머니가 했을까? 어렸을 땐 그게 궁금했다. 내가 살림을 해보니 빨래하고 개고 집어넣는 일상을 유지하기도 벅찬 게 집안일임을 알기에 할머니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은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가 네 명의 어린 자녀들과 분주하게 지내는 동안, 할머니는 오늘 하지 않아도 큰 탈 없지만 언젠가 해야 하는 밀린 일을 처리했다. 나는 주로 삼일절, 현충일, 개천절 같은 환절기 휴일에 옷장 정리를 하는데, 외할머니의 비법을 본받아서 옷장 속 물건을 전부 빼내고 하나씩 다시 넣으면서 정리한다.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게 했던, 그러면서도 정리를 완벽하게 했던, 할머니의 방침과 다르게 나의 옷장 청소는 의류 수거함에 넣을 물품을 한 보따리 찾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외할머니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성(性)을 주제로 한다. 할머니가 질퍽한 농담을 즐기거나 입이 걸걸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춘기가 되자 할머니는 번번이 나에게 물었다. “경도를 하니야?” 경도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할머니는 멘스, 달거리 등 대체어를 구사했다. 생리를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질문이 멈추었다. 어머니를 통해서 들은 걸까? 어머니의 어머니는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걸까? 여성성 확보는 모계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기에 손녀의 변화는 곧 외할머니의 관심사였다고 추측해 본다.
내가 성인이 된 후 할머니가 성을 화두로 꺼낸 적이 두 번 있다. 이즈음 할머니는 기력이 약해져 우리 집에 오면 TV를 보거나 휴식을 취했다. 할머니 동네에서는 정기적으로 경로당에 가는데, 딸 집에서는 외출할 곳이 없으니 하루가 더디게 가고 심심했을 것이다. 짧게 머물 때는 식사를 함께하고 커피를 준비하였지만, 몇 주 동안 방문한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는 일은 나의 능력 밖이라 여겼던 시절이 부끄럽다. 하루는 할머니가 뜬금없이 홍합이 여성의 성기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타인과 성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고 할머니와는 더더욱 그런 관계가 아니었기에 당황했다. 맞게 들었는지 확인할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아무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는 부연 설명을 하거나 내 의견을 묻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말하고 점잖게 넘어갔다. 내 생각에 우리가 홍합을 주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6시 내 고향>에서 들었는데 홍합에는 무슨 무슨 영양성분이 풍부해서 여자들이 많이 먹으면 좋다더라.” 하는 정도의 수위였기에, 두 가지의 직접 형태 비교는 뜻밖이었다.
홍합 이야기를 잊고 있다가 수업 중에 외할머니를 떠올린 일이 있었다. 대학 초년생일 때는 형편없는 학점과 반항적인 인생이 낭만인 줄 알고 살다가 3학년이 되어 현실 감각을 찾았다. 학점 세탁을 위해 재수강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필수 교양 과목인 <예술과 사상>이었다. 날씨는 푹푹 찌고 사람은 꽉 들어찬 어느 여름날, 교수님이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화면에 띄웠다. 강의실이 술렁였다. 여성의 몸에 대한 주권,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라는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수업 자료를 보고 처음 한 생각은 ‘이런 작품을 보여주다니 충격적인데...’였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한 생각은 ‘할머니 말이 맞았구나.’였다. 이 글을 쓰면서 여성의 신체를 홍합에 빗댄 표현이 할머니의 독창적인 발상인지 궁금해졌다. 한창훈의 소설 『홍합』에 답이 있었다. 홍합 공장을 배경으로 팍팍한 여인들의 삶을 그린 책에는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특효약으로 육담을 달고 사는 인부들이 등장한다. 그네들을 통해 홍합과 여성의 비교는 지역을 막론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가는 성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전달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했지만, 외할머니는 응당 알아야 할 사실을 언급한 것뿐이라는 듯이 두 가지의 외형적 닮음을 자연스럽게 짚고 넘어가는 화법을 택했다.
홍합은 숱한 패류 중에서 요물 중의 요물로 통한다. 생긴 것부터가, 옛말에도 금슬 좋은 서방이 아내와 헤어지는 게 워낙 섭섭해 과거 길을 못 떠나고 있자 아내가 말린 홍합을 하나 주며 내가 보고 싶으면 이걸 꺼내 보시오, 했다고 하듯이 털 있고 감씨 있고 뭐 있고 또 뭐도 빠짐없이 있고 하여 사람들 입에 흐흐흥 오르내리지만 이게 또 워낙 바람을 타는 버릇이 있었다. (111쪽)
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거실에서 화초 잎을 정리하고 있다가 부엌으로 가는 나를 보고 손짓으로 불러 세웠다. 좀 앉아보라며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할머니와 나 단둘이었다. 할머니는 “신혼여행 가서 첫날밤 신랑이 하자는 대로 잘 따라야 한다. 신랑 말을 잘 들으면 된다.”라고 하였다. 수년 전 이차성징이 왔는지부터 첫날밤 대비까지 할머니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성교육을 한 셈이다. 모든 손녀딸과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에게 생리를 시작했는지 묻던 사람도, 신혼여행 조언을 하던 사람도 유일하게 외할머니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1/16의 관심을 받았다고, 그녀와 내가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향(香)과 성(性)이라는 강력한 키워드로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