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할머니의 육아 조언

by 반고

폴리나 폴리나


오른쪽 이웃집에 다보르카가 살았다면, 좁은 보도블록을 사이에 두고 직각으로 마주한 집에는 폴리나가 살았다. 그녀는 60대 간호사로, 은퇴한 남편과 지냈다. 우리 집 거실 베이 윈도는 폴리나네 주방을 향하고 있어서 전등을 켜면 이웃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폴리나는 데우기만 하면 조리가 끝나는 완제품 음식을 애용했는데, 아침마다 냉동실에서 식료품을 꺼내 작은 아이스박스에 챙긴 후 병원으로 출근했다. 이 모습을 자주 목격한 나는 ‘도시락 싸기가 저렇게 간단할 수도 있다니…’ 하며 감탄했다.


우리 집은 오래된 타운하우스여서 보수할 데가 많았다. 실내는 차차 개선한다 해도, 당장 관리가 시급한 곳은 베이 윈도 아래 무성하게 자란 식물이었다. 전 주인이 심은 허브였다. 한동안 관리하지 않아 화단이라고도 텃밭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미관상 어수선한 것은 둘째 치고, 향이 더 문제였다. 바람이 불면 낯선 냄새가 집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창문을 닫고 살 수는 없으니, 풀을 없애기로 했다.


폴리나를 처음 만난 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허브를 뽑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이웃 할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마당을 갈아엎는 나를 보며 전 주인은 이곳에 요리용 허브를 키웠는데, 나에게는 소용이 닿지 않는 식물이냐고 물었다. 꽃밭을 만들 생각이라 일단 흙으로 되돌려 놓는다고 둘러댔다. 자신을 폴리나라고 소개한 그녀는 화초에서 시작해서 동네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중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내용은 우리 부부에게 집을 판 폴리나의 옛 이웃에 관한 것이었다.


전 주인 이야기


우리가 이 집에 살기 전, 이곳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가족이 살았다. 우리가 이사 오기 1년 전 그 집 남편이 고국에 다녀오더니, 폭탄선언을 했다. 고향에서 둘째 부인을 얻었고, 곧 미국으로 초청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 집에 살던 아내는 이혼을 원했고, 집을 판 돈으로 각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폴리나는 허브를 열심히 가꾼 사람은 아내였다고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부동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잔금 치르는 날, 사무실에서 처음 매도자를 만났다. 부부 공동명의 집이었는데, 아내는 미리 공증인 앞에서 서명했다며 오지 않았다. 미국 부동산 매매 계약서는 수십 장이라 살펴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종이를 넘기면서 다 읽었다는 표시로 여기저기에 머리글자를 쓰고 서명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한참 서류를 작성하다가 펜을 내려놓고 종이를 멀찌감치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 집을 다시 찾겠어. 꼭 다시 찾고 말겠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선언하는 말 같았다. 양쪽 부동산 중개인과 우리 부부는 당황했고 서류 작성은 잠시 중단했다. 얼마간 밖에 나가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온 매도자는 나머지 서명을 마친 후 자리를 떴다.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갔을 때, 내부가 어수선하고 생기가 없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집 관리 상태와 매도자의 울음을 보고 뭔가 힘든 일이 있었구나 추측해 볼 뿐이었다.


폴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전에 이 집에 살던 아내였다. 배우자가 다른 부인을 데려오겠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 속은 어땠겠는가? 집에 길운, 불운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허브 텃밭을 정리하며, 전 주인이 이 과정을 잘 추스르고 새 출발하길, 내가 이 집에 사는 동안 감당할만한 삶이 펼쳐지길 바랐다.


셀프 리모델링은 이런 것


등장부터 대형 소식을 가지고 나타난 폴리나와 바로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주차장이나 집 앞에서 담소를 나누는 정도지, 서로의 집을 왕래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이 관계가 바뀐 계기는 리모델링이라는 공통 관심사 덕이다. 그즈음 폴리나의 집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다. 각종 짐을 집 한편으로 몰고, 바닥 카펫을 마루로 바꾸고,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전등과 주방 캐비닛을 교체했다. 당시에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라 집을 고쳐 높은 가격으로 파는 게 성행했다. 남편과 나는 폴리나가 집을 수리한 후 좋은 가격에 팔고 이사를 할 모양이라고 예상했다. 이웃의 헌 집 고치기 프로젝트를 지켜보며 폴리나 부부와 그녀의 딸 부부, 비전문가 네 명이 모든 일을 직접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리모델링이 끝나가던 어느 날 남편과 나는 길에서 그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폴리나와 그녀의 딸이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곧 태어날 아기방을 꾸미려고 계획하던 차라, 이웃집 공사 과정이 궁금했다. 장비가 어수선하게 널려있을 때는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완성한 모습을 보니 구경하고 싶었다. 폴리나 집은 대문을 열어 놓고, 유리 덧문만 닫은 상태라 집 안에서도 우리가 보였을 것이다. 폴리나의 딸이 현관에 나타나더니 말했다. “잡아먹지 않을 테니 어서 들어와요. 리모델링이 거의 끝났으니 둘러봐도 좋아요.” 그녀는 공사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질문에 답해주었다. 우리가 구상 중인 공사는 페인트칠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페인트 작업은 초보자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응원해주었다. 집을 둘러보고 나서 더 친하게 되었달까? 그전까지 남편은 폴리나와 ‘하이’, ‘바이’만 하던 사이였는데, 이날 이후 조금씩 담소를 나누었다.


응급 상황


한 번은 남편이 급하게 폴리나의 도움을 청한 일이 있다. 나는 샤워 중이었고 남편이 아기를 보고 있었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부담스러웠던 남편은 집안에서도 아기 띠를 사용했다. 남편은 아기를 가슴에 달고 이런저런 일을 했다. 기동력이 없는 아기가 어른 품에 매달려서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상황이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남편은 아기 띠를 매고 면도를 했다. 거울을 보느라 잠시 멈춘 사이, 아기가 손을 뻗어 면도날을 만졌다. 순식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이 층에서 씻고 있던 나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남편은 수건으로 피 나는 손을 감싸고 폴리나의 집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수건으로 지혈하길 정말 잘했다며 피가 완전히 멎으면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주라고 하였다. 병원에 갈 필요는 없으며 아기가 밴드를 빨아먹지 않게 손 싸개를 해주라는 말도 덧붙였다.


잠시 후 욕실에서 나온 나는 면도를 하다 멈춘 남편의 얼굴과 아기 손을 싸고 있는 피 묻은 수건을 보고 놀랐다. 남편은 덤덤하게 폴리나의 말을 전해주었고, 우리는 그대로 실천했다. 아기에게 손 싸개를 씌워놓고 생각해보았다. 아기의 활동 범위를 과소평가하고 육아와 면도를 병행한 행동이나, 아기를 가슴에 메고 폴리나의 집에 간 행동이나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그날 폴리나가 돌보아준 대상은 아기가 아니라 초보 아빠였는지도 모른다. 육아가 서툰 이에게, 아이를 키워본 부모이자 간호사인 이웃 할머니의 한 마디는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엄마도 쉼이 필요해


첫째가 6개월쯤 되었을 무렵이다. 폴리나와 나는 집 앞에서 마주쳤는데, 아기가 밤에 잠을 잘 자느냐고 물어보았다. 두세 시간 시간마다 깬다고 하였더니, 폴리나가 이렇게 말했다.

“아기를 잘 키우려면 부모가 숙면하고 건강해야 해요. 이 기회에 분리 수면 훈련을 고려해봐요. 요즘엔 애착 이론도 많이 나오는데, 글쎄… 분리 수면에 잘 적응하면 아기도 엄마도 괜찮아질 거예요. 주희 너도 쉼이 있어야지.”

그간 ‘아기에게 좋은 것은 이런 거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엄마 자신을 돌보라’는 조언이 가슴에 와닿았다. 곧바로 분리 수면을 시도하진 않았지만, 그때부터 자료를 찾아서 읽어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기가 돌이 되었을 무렵에는 아기는 아기방에서, 어른은 안방에서 잠을 잤다. 분리 수면에 성공하고 폴리나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정말 잘했다며 칭찬해주었다. 엄마가 충분히 휴식해야 육아를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던 이웃 덕분에, 몇 년 뒤 둘째를 키울 때는 더 일찍 분리 수면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족사진


언젠가 폴리나가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여주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수십 명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기념 촬영한 장면이었다. 사진 속 폴리나는 중앙에 서 있었는데, 자신을 붕어빵처럼 닮은 손자를 품에 안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이하게 사진 속 사람들이 모두 흰 티셔츠에 황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 코드를 미리 정한 것이다. 규모로 보나 단합 정도로 보나 대단한 가족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친정아버지 생신 파티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폴리나의 아이디어를 본떠 우리도 의상을 맞춰 입기로 했다. 청바지에 흰 상의였다. 그런데 흰 상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맞춰 입는다는 느낌이 덜했다. 의류회사에 다니는 동생의 협찬으로 어른용, 어린이용으로 구분해 옷을 맞춰 입고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질서 있게 나온 이 사진을 한동안 가방에 가지고 다녔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입이 가볍고 소문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오해했는데, 겪어볼수록 친절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몰랐겠지만 나는 일하는 할머니로서 폴리나를 칭송했다. 전일제 병원 근무로 바빴을 텐데, 한결같이 손톱 관리와 머리 만지기에 공을 들이는 점이 멋있었고, 요리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요리해 놓은 것을 사면 된다며, 마트 표 완제품을 쟁여놓고 조립하듯 도시락을 싸는 모습도 신선했다. 간호사이자 선배 어머니로서 경험을 이야기하며 분리 수면을 권유한 점은 정말 감사했다. 곧 집을 팔 것처럼 수리하던 폴리나는 계속 그곳에 살았고, 몇 년 후 직장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서 우리가 먼저 이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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