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함과 겸손함은 서로 밀어내지 않는다

by 반고

뜻밖의 만남


수잔Susan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녀의 남편 존John을 빼놓을 수 없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학술 자료를 검색하던 중 존의 논문을 발견했고, 궁금한 점이 있어 이메일로 질문을 보냈다. 뜻밖에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학교나 기관에 속한 주소가 아니어서 은퇴했을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 지를 고려하면, 이메일 문의사항을 논하기 위해 집으로 오라는 이야기는 농담에 가깝다. 운이 좋았던지 워싱턴 디시에서 근무했던 존은 은퇴 후 수도권에 살았고, 나와 같은 카운티(구) 주민이었다.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 집으로 찾아갔다.


존은 국가 데이터를 다루는 연방정부 소속 심리학자로 재직하다 내가 만난 당시에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신진 연구자를 육성하고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70대 전문가였다. 그의 집에서 수잔을 처음 만났다. 수잔과 나는 현관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는데, 존과 내가 서재에서 토론을 할 동안 수잔은 옆에 있지 않았다. 헤어질 때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논문을 쓰는 동안 종종 존을 방문했다. 존에게 논문 일부를 이메일로 보내면 그는 피드백을 주었다. 존은 자신이 평생 몸담아온 분야에 이제 막 발을 들이는 나를 지도하는데 열심이었고, 나 말고도 보스턴과 엘에이에 있는 학생에게 멘토가 돼 주었다. 나는 가까이에 살았고 존과 수잔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이런 만남이 가능했다. 회의 장소가 집이라 자연스럽게 수잔과도 가까워졌다. 하루는 마당에 있는 파라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수잔이 동석했다. 그녀 자신도 70대 노인이니 내가 진행 중인 고령자 연구에 대해 한두 마디 추임새를 넣을 만도 한데, 수잔은 내가 의견을 묻기 전에는 토의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녀가 오랜 직장 생활 동안 관리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지의 눈빛을 보내면서도 나서지 않는 절제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네가 정말 잘했네


미팅을 마치고 일어나는데 수잔이 이제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두 살배기 아들을 화제로 삼았다. 며칠 전 아이 반에 새로 온 친구가 있었는데, 보호자가 그 친구를 데려다주고 떠나자 문가에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이를 본 아들이 잠시 하던 놀이를 멈추고 신입생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었다는 것이다. “It’s okay. It’s okay.”라고 말하면서. 선생님은 알림장에 쓰려다가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며 나에게 그날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수잔은 기도하듯 두 손을 턱 앞에 모으고는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성품은 어린이집에서 가르쳐 준 거라고 할 수 없지. 아이 자체가 그런 거지. 네가 정말 잘했네.”라고 말하였다.


이런 게 자식 자랑일 수도 있고, 내가 없어도 잘 지내고 있으니 어린이집에 보내는 걸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나는 말할 사람도 딱히 없었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내 또래 부모에게는 육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로서 자존감이 낮아서인지 아들의 따뜻한 행동이 아니라, 분리불안에 우는 신입생의 딱한 처지에 동조하는 대화로 끝날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그런데 수잔에게는 말해도 좋을 것 같았다. 어디 가는 길이냐는 간단한 질문이 도화선이었다. 그녀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점, 지적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과정을 다 겪었을 거라는 점이 나를 안심시켰다. 뭘 해도 피곤한 초보 엄마의 삶에 공감해주고 이토록 우아한 표현으로 아이를 칭찬하는 데 눈물이 핑 돌았다. 수잔이 정말 잘했다는 말 You did good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요즘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금쪽 처방 오은영 박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저출산을 해결하자는 공익광고인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세요.”라는 내용이다. 이 방송을 듣고 수잔 생각이 났다. ‘잘하고 있어’, ‘정말 잘했네’와 같은 수잔의 한 마디가 나에겐 오은영 박사의 공익광고 같았다.


세심한 파티 준비


어느 여름날 수잔의 집에서 열리는 바비큐 파티에 갔다. 가족 모두가 초대받은 자리여서, 조심스러웠다. 한 해 전, 지인의 집에서 놀다가 얼굴이 하얘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러 가정이 모인 연말 파티였는데, 돌이 지난 아들이 호스트 가정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움켜쥐어 산산조각 냈다. 아기 악력으로 부서질 만큼 크리스마스트리 볼이 약한 물건인지 그날 알았다. 유리 파편이 얼굴에 튄 것은 물론이고 카펫 구석구석에 조각이 박혀 당황했다. 이번엔 여름이라 트리 장식은 없겠지만 새로운 집에는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물건이 얼마든지 있다. 나는 바비큐는 포기하고 아이를 밀착 마크할 각오로 나섰다. 식사 초대인데, 심지어 밥을 먹고 떠났다. 음식, 분위기, 친목을 다 가질 수 없다면 하나는 해결하고 간다는 생각이었다. 존과 수잔의 집에 도착해서 그날 아기와 내가 어디를 근거지로 활동할지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거실에 있던 각종 소품이 말끔히 치워있었다. 아이가 다칠 수 있는 물건, 아이가 만지면 파손될 수 있는 물건, 아이가 건드려 쓰러질만한 것은 높은 선반 위로 옮겨두었다. 수잔의 손길이었다. 이날 아이는 유리로 만든 배 모형처럼 신기한 물건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어른들 품에 안겨 둥둥 떠다니며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똑똑하고 겸손하게


이날 화제는 나의 취직이었다. 졸업하던 해에 노년학자들이 모이는 학회에 참석했다가 존의 소개로 한 연구자를 만났다. 그는 내가 논문에서 사용한 연방정부 데이터를 구축한 연구용역회사의 간부였다.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의 마지막에 나에게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며칠 후 이메일로 방문 날짜를 조율하다가, 그는 연구소에서 채용 공고가 진행 중이니 관심 있으면 지원하고 면접을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 제안에 부응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다. 미국에서는 입사지원자를 고를 때 평판 조회를 하는데, 존이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논문 심사위원이었던 존의 도움으로 네트워킹 기회를 얻었고, 이때 만난 사람이 내 상사가 되었다. 존과 수잔이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수잔이 나에게 회사 생활이 어떤지,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힘들다기보다 희한한 점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회의하다 보면 그 업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아는 체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요. 똑똑하면 잘난 체를 하기 마련일까요? 별로 잘 아는 것 같지 않은데 어쩜 그렇게 발언을 많이 하는지 말이죠. 제가 겸손함을 미덕으로 아는 문화에서 와서 저한테만 이런 현상이 확대되어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요.” 수잔은 내 이야기를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똑똑하지 못하면서 잘난 척하는 건 별로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똑똑하고 잘난 척하는 건 중간 정도 가지. 잘난 척이 좀 거슬려도 똑똑한 사람은 직장에서 쓸모가 있거든. 그런데 제일 좋은 거는 말이지. 똑똑하면서 겸손한 거야. 주희, 너는 똑똑하면서 겸손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에도 없거든. There is nothing wrong with being smart and humble.”


나는 수잔의 이런 면이 좋았다. 그녀는 솔직하고 내공 있는 조언을 했다. 수잔을 만나고 똑똑하면서 겸손한 직업인이 되는 것은 내가 지향하는 태도 중 하나가 되었다. 능력은 있는데 잘난 척이 심해서 오만한 사람을 만나면, 딱 중간 정도구나 하며 불쾌감을 눌렀고, 한없이 겸손하기만 한 사람을 만나면 똑똑함을 장착해 더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했다. 어느 날은 똑똑해지려고 고생을 사서 하고, 어느 날은 겸손해지려고 애를 쓰다가 ‘사회생활을 이만큼 했는데, 이제는 두 성질이 조화롭게 균형을 맞춘 지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자기반성을 했다. 수잔의 말이 나에게 와닿았던 이유는 그녀가 똑똑함과 겸손함을 다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수잔이 옆에 없지만,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지낸 행운을 진짜로 만들어야지. 나도 수잔처럼 말에 힘이 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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