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미는 법

by 반고

이사


첫째가 네 살, 둘째가 한 살 때, 메릴랜드주에서 버지니아주로 이사했다. 남편이 그곳에 있는 대학으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9월 개강이니, 8월에는 집 정리를 마쳐야 했다. 그해 여름, 메릴랜드에서 차로 네 시간 거리인 도시로 집을 구하러 다녔다. 이사 갈 동네에서 밥과 메리 루이스를 만났다. 밥은 남편의 직장 동료로, 학과장이자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다. 밥은 우리가 주말마다 하우스 헌팅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하고 여러 군데 둘러보는 게 쉽지 않을 테니, 자신의 집에 아이들을 맡기면 어떻겠냐고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아이를 부탁하기는 어려워 거절했지만, 집 구경도 할 겸 차 마시자는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동안 나는 ‘메리 루이스에게 물어봐’ 시간을 가졌다. 육십 대 중반인 메리 루이스는 배려심이 많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수십 년간 밥의 직장 동네에 살면서 대학과 관련한 모임을 도왔다. 밥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과 일을 맡았다면, 메리 루이스는 자원봉사자로 지역사회 사람들을 챙겼다. 이번에도 동료 가족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뜻에서 우리를 불렀을 것이다.


내가 가장 궁금한 점은 보육 서비스였는데, 육아를 졸업한 지 오래된 그녀가 잘 알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막상 이야기를 꺼내니, 묻길 잘한 거였다. 메리 루이스는 내가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다면, 첫째를 일주일에 세 번 하루 두 시간씩 교회 부설 유치원에 보내길 추천한다고 하였다. 이곳은 3~5세를 위한 유치원인데, 학부모 교류가 왕성하다고 하였다. 나도 친구를 사귈 기회가 될 것 같아 솔깃했지만, 남편과 내가 찾는 곳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재택근무로 전환해서 메릴랜드에 있는 연구소 일을 계속하기로 되어있었다. 집에서 아이들을 살뜰히 돌보면서 회사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첫째와 둘째 모두 돌봄이 필요했다. 내가 종일반 프로그램을 찾는다고 하자 그녀는 밥이 근무하는 대학교 부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추천했다. 선생님과 시설이 훌륭하여 평판이 좋은데, 대기자가 많은 게 흠이라고 하였다. 첫째와 둘째를 같은 곳에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기 신청을 하였는데, 신학기를 앞두고 이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등록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지내고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보육 기관을 만나는 것은 집 찾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데, 메리 루이스 덕분에 큰 숙제를 해결했다.


육아 베테랑 할머니


어린이집을 추천할 때부터 감을 잡긴 했지만, 메리 루이스는 베테랑 할머니였다. 그녀 차 뒷좌석에는 카시트가 두 개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손녀의 하원 시간에 맞추어 유치원으로 데리러 갔다. 그녀가 당번인 날, 딸과 사위는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썼다. 그들은 문화생활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9시쯤 밥과 메리 루이스의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메리 루이스는 주 중 하룻저녁 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특별하다며, 손녀들이 아직 어릴 때라 추억이 더 많이 쌓이는 것 같다고 하였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함이 이런 걸까? 내게는 메리 루이스의 할머니 역할이 희생으로 비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만큼, 딸이 필요한 때에, 도움을 주고받기로 사전에 약속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그녀의 현명함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사하고 얼마 후 메리 루이스와 점심을 먹었다. 이날의 화두는 그녀가 관여하고 있는 갖가지 자원봉사였다. 메리 루이스는 매년 지역에서 열리는 달리기 대회의 주최 측이었다. 예전에는 그녀 자신도 달리기에 참여했지만, 지금은 행사를 준비하는 일만 한다고 하였다. 어려운 코스가 아니고 동네잔치 같은 행사이니 관심 있으면 신청해보라고 하였다. 이사 간 첫해에는 구경만 하고 이듬해에 참가했는데, 참가자들이 대학 인근 주택가를 도는 짧은 코스를 완주하는 동안 동네 주민들이 집 앞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그녀의 봉사활동은 달리기 대회에서 끝이 아니었다. 메리 루이스는 시립도서관의 열혈 봉사자로, 책 읽어주기와 기금 마련 행사에 관여했다. 도서관에서 몇 번 그녀와 마주쳤는데, 다른 봉사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왜 이날 자원봉사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그녀가 나에게 봉사를 권한 적은 없지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방법으로 봉사활동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말을 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공식 환영위원회


그날 우리가 만난 장소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고, 도서관에서도 멀지 않은 델리였다. 그곳은 샌드위치, 샐러드, 수프 같은 점심 메뉴에 볶은 땅콩, 캐러멜 같은 지역 특산물을 파는 곳이었다. 마음에 쏙 들어서 가족들하고 다시 와야겠다고 했더니, 메리 루이스는 내 취향을 알았다며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주민들이 좋아하는 맛집을 몇 군데 더 알려주었다. 커스터드 크림이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 치즈버거가 맛있는 드라이브 스루 햄버거집 같은 그녀의 맛집 리스트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아이들과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라 유용했다. 이야기 주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지로 넘어가니 점심 대화가 더 재미있어졌다. 아이들 생일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선물 사기 적당한 가게, 좋은 물건을 건질 수 있는 벼룩시장, 계절마다 장소가 바뀌는 파머스 마켓 일정 같은 것이었다. 심심하고 별일 아닌 소식을 어찌나 정답게 설명해주는지, 메리 루이스를 통해 듣는 이 동네는 매력이 넘쳤다.


낯선 동네로 이사하면 아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학부모들과 왕래가 생겼지만, 이사 후 반년 동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메리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타인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는데, 상대방이 망설이지 않고 손을 잡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물어보면 십중팔구 그녀는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고 있었고, 본인이 알지 못하면 찾아서 알려주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동네에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얼마 전 조지수의 장편소설 『나스타샤』를 읽다가 웰컴 커미티 Welcome Committee에 대한 설명을 발견했다.



그녀는 ‘Welcome Wagon’이라고 쓰인 카드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카드를 차례로 꺼냈다. 재화와 호사와 기쁨과 감동의 세례였다. 오일 교환권 한 장, 3파운드 그라운드 비프 교환권 한 장, 존슨 앤 존슨 크림 두통, 동네 미용실 사용권 두 장 등등. 그리고 이어서 나온 것은 더욱 감동적인 것이었다. 전화번호부였다. 30페이지쯤 될까. 거기에는 ‘같이 아침 식사할 수 있는 모임’, ‘컬링 클럽 가입신청 전화번호’, ‘같이 커피 마실 수 있는 모임’ 등과 동네의 자세한 지도가 들어 있었다. (111쪽)


메리 루이스는 비공식 환영위원회를 운영하는 셈이었다. 지도를 건네는 대신, 함께 동네를 걸으며 안내자가 돼 주었다. 한 번은 대학 캠퍼스를 가로질러 길 건너편에 있는 공연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학생회관으로 사용 중인 큰 건물을 등지고 서 있었는데, 갑자기 메리 루이스가 몸을 돌리더니 손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건물은 나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만든 거예요.” 메리 루이스는 이 사실을 학교 안내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언급했다. 으스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결혼 후 밥의 성(姓)을 따랐고, 나도 그 이름으로 소개받았지만, 미혼일 때의 성(姓)은 몰랐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그녀는 이 대학 초대 총장이자, 작은 학교를 규모 있는 주립대학교로 키우는데 평생을 바친 리더의 딸이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지역 사회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남편의 일터이니 아껴주어야지 하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부모님 세대부터 가족 전체가 이 대학과 고장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진짜 터줏대감은 밥이 아니라 메리 루이스였고, 그녀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있었다. 메리 루이스는 자신이 성장하고 정착한 동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이웃의 쓸모


결혼 후 이사한 횟수가 여덟 번이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동네에서 메리 루이스를 만나게 된 것인데, 그녀 같은 마당발 이웃은 메리 루이스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나지 못했다. 나도 그녀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누군가 우리 동네로 이사 온다고 하면 도와줄 게 없는지 묻는다. 궁금한 것 있으면 편하게 전화하라고 한다. 사람을 소개해주고 장소를 알려주는 앱이 있어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기 마련이다. 대개 비슷한 것을 묻는데, 기억나는 것을 몇 가지 적어본다. 추천할 만한 치과가 있는지? 블라인드나 커튼은 어디서 했는지? 방문 수업이 가능한 피아노 선생님 아는지? 정육점은 어디가 좋은지? 등이다. 내가 직접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누는 것이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마워한다. 나는 우리 동네가 괜찮다고 칭찬받은 것 같아 기쁘다.


첫 번째 책 『B컷 일지: 잡지사 프리랜서 기자의 글쓰기 비법 노트』가 나온 후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했다. 취재 지역이 대전이라 내가 사는 도시의 공간이 등장했다. 독자들은 대전 곳곳에 놓인 징검다리, 국립대전숲체원, 원도심 도보여행, 화분병원에 관한 글을 읽으며 뜻밖의 장소를 알게 되어 좋았다고 했다. 대전 사람들은 ‘살면서도 이런 데를 몰랐네’ 하는 반응을, 대전 밖 사람들은 ‘대전=노잼 도시’라는 공식은 무효라는 말을 전했다. 책을 읽고 대전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 글 속에 나온 장소에 가봐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뿌듯했다. 메리 루이스가 이웃으로, 자원봉사자로, 성숙한 시민으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한 것처럼, 나도 글을 통해 내가 사는 곳에 대한 흥미로운 소식을 전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비슷하게, 메리 루이스한테 배운 손 내미는 법을 실천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