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중 나도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네이버라이드NeighborRide 라는 비영리 기관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이동 수단이 필요한 고령자가 이곳에 연락하면 봉사자는 자신의 차로 승객을 데려다준다. 이용자는 소정의 비용을 내는데, 택시비보다 저렴하고 훈련받은 봉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많았다. 나는 논문지도 위원인 존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되었다. 존은 네이버라이드 설립에 관여했고, 자원봉사자로도 활동 중이었다. 나는 고령자 교통 접근성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운전 면허증을 반납한 노인을 만날 기회이자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기회에 흥미를 느꼈다.
이 프로그램의 이용자는 시력 저하, 관절염 등 건강 악화로 더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가 만났던 한 이용자는 자신이 몰던 차를 기부할 정도로 이 단체에 애정을 보였다. 반면 앞마당에 차가 없으면 허전하다며, 쓰지 않는 차를 장식용으로 주차해 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병원 방문, 장보기, 종교행사 참석, 미용실 이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서비스를 신청했다. 특이하게 이용자 중 다수가 외출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봉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수 있는지 확인하고 약속을 정했다. 치과 예약 전에 네이버라이드에 전화해서 교통편을 확보한 뒤에 병원 일정을 잡는 식이다. 운전 봉사를 하며 외출하고 싶을 때 즉흥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차근차근 움직일 방법을 찾는 노인들을 만났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코디네이터는 봉사자와 이용자를 연결하고 이메일로 간단한 이용자 정보를 알려준다. 봉사자는 차에서 내릴 때 부축이 필요한지, 목적지에서 짐을 들어주길 희망하는지 같은 이용자 관련 설명을 전달받는다. 이용자는 어떤 봉사자가 무슨 차를 타고 데리러 올 것인지 안내받는다.
운전 봉사가 있던 어느 날 일정대로 이용자를 데리러 갔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80대 중반 여성 아이리스였다. 그녀는 내가 오는지 창문으로 보고 있다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자 옆 승객 자리로 가서 차 문을 열어주자, 아이리스는 지팡이를 차에 내려놓고, 차체에 기대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하게 접은 마트 비닐봉지였다. 그리고는 비닐을 펼쳐 방석처럼 깔고, 그 위에 앉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십여 분 동안 우리는 뒷좌석에 타고 있는 아기 이야기로 대화가 끊길 새가 없었다. 이 봉사를 신청한 이유에는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아이리스는 오랜만에 아기를 만나서 정말 기쁘다며, 치과에 간다는 사실만 빼면 행운의 날이라고 했다. 이메일에 따르면 아이리스는 혼자 승하차할 수 있는 상태였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사람은 혼자 활동하도록 하는 게 봉사자 수칙이어서, 나는 문을 열어주고 아이리스가 차에서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의자에서 천천히 등을 떼고 차 밖을 향해 90도로 몸을 돌려 오른 다리를 땅에 디뎠다. 왼손으로는 왼 허벅지를 들어서 오른 다리 옆으로 옮겼다. 두 다리를 차 밖으로 내놓은 후,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의자에 있는 비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 시간 후 아이리스를 데리러 갔다. 그녀는 이번에도 비닐을 펼치고 승차했다. ‘혹시, 내 차가 더럽다고 생각하나?’,‘차에 뭐가 묻을까 봐서 그러나?’ 아까부터 궁금했기에 물어보기로 했다. 아이리스의 대답은 이랬다. “다른 사람의 차를 타보니까, 어떤 차는 잘 미끄러져 일어나기가 쉬운데, 어떤 차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매끄러운 재질의 자동차 시트는 괜찮고, 천으로 된 시트는 좀 마찰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옷이랑 시트 사이에 비닐을 깔면 미끈거려서 일어날 때 좋더라고요.” 봉사자의 시트 종류에 따라 하차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 아이리스는, 마찰을 줄여줄 장치를 마련했다. 마트 비닐봉지를 휴대용 깔개로 가지고 다니는 이유였다.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다른 사람의 차를 이용하는 빈도가 늘었지만, 최대한 독립적으로 행동하고자 애쓰는 그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이리스가 비닐봉지를 요긴하게 재사용했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유성구의 이웃 할머니는 차원이 다른 재사용 달인이다. 우리 가족은 그녀를 땅콩 할머니라고 부른다. 몇 해 전 가을 햇빛이 좋은 어느 날 오후, 할머니는 아파트 1층에 방수 천을 깔고 땅콩을 널었다. 갓 수확한 땅콩을 구경해본 적이 없던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쪼그린 자세로 땅콩을 얇게 펼치던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손짓으로 다가오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할머니, 이거 직접 농사지으신 거예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 수확한 땅콩인데 볕 좋을 때 말려야 한다고 하였다. 물로 씻었는지, 껍질은 촉촉하고 흙이 묻어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게 물었다. “생땅콩 먹어 봤어? 삶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아주 별미야.” 땅콩을 다 말린 후에는 볶아 먹어야 하니까, 갓 수확했을 때 먹는 게 제일 맛있다는 할머니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래요옷? 하고 궁금해하는 나에게 땅콩을 좀 가져가라고 했다. 할머니는 내가 들고 있던 스테인리스 바가지를 가리키며 줘보라고 하였다. 나는 당황하여 등 뒤로 그릇을 감추었다. 지금은 비어있지만 방금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두었던 통이었다. 용기가 마땅치 않으니, 한 줌만 손에 담아 가겠다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계속 그릇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음식물 쓰레기로 내버리기 전에는 거기 있던 것도 다 음식이었어. 이 땅콩도 방금까지 흙에 있던 걸 캐서 씻으니까 먹을 만하게 된 거지. 그냥 이 통에 담고 집에 가서 삶기 전에 한 번 씻으면 돼.” 맛만 보겠다는 나의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는 수북하게 생땅콩을 담았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냄비에 물을 채우고 소금 조금 넣고 삶아. 너무 무르면 맛없으니까 적당히 삶아야 해.” 몇 분 정도 가열해야 할지 몰라서, 끓은 다음부터 하나씩 꺼내 맛보았다. 첫 땅콩은 너무 사각거리더니 몇 번 더 건져 먹는 동안 딱 알맞다 싶을 정도가 되었다. 물에 젖은 땅콩 꼬투리는 손으로 비튼 다음 바나나 껍질 벗기듯 제거하고 속껍질 채 먹었다. 할머니 말대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땅콩을 먹으면서 이웃 할머니를 생각했다. 철마다 작물을 심고 때맞추어 수확하는 수고와 정성에 대해. 처음 보는 사람과 땅콩을 나누는 인심에 대해. 음식물 쓰레기통을 본래 역할인 바가지로 보는 유연함에 대해. 음식물 쓰레기도 얼마 전까지는 다 먹거리였다는 유기적 시각에 대해.
그로부터 얼마 후 엘리베이터에서 땅콩 할머니를 만났다. 정말 맛있었다고 인사하자,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할머니에게 농사일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힘들지. 근데 수확하는 재미가 있지. 고구마, 감자, 땅콩 이런 거 캘 때 슬슬 달려 나오면 얼마나 재밌다고.” 땅콩 할머니는 올해 87세인데, 몇 년 전에 농사를 그만두었다. 나를 볼 때마다 이젠 농사를 짓지 않아서 줄 땅콩이 없다고 한다. 몇 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나는 먹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느리게 사는 삶에 관심이 생겼기에, 오래도록 땅을 가까이하던 땅콩 할머니의 부지런함과 한결같음에 존경심이 생긴다. 한 번은 친구에게 삶은 땅콩을 한 번 먹어 보았을 뿐인데 가끔 생각난다고 말했다. 친구는 삶은 땅콩이 괜찮았다면 생땅콩을 넣고 지은 밥도 좋아할 거라며 꼭 먹어 보라고 했다. 올가을에는 생땅콩을 넉넉히 준비해서 친구도 부르고 땅콩 할머니에게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