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호링이는 학교에서 안내문을 가져왔다. 인근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발명 교실에 뽑혔다며, 당분간 일주일에 한 번씩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다. 차로 데려다줄 수 있는지 묻는 아들에게 최대한 일정을 맞추어보겠다고 한 뒤, 이번엔 내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근데 어떻게 뽑힌 거야?」
「하고 싶다는 애들이 많아서 선생님이 가위바위보로 정하래. 거기서 내가 이겼지」
학생의 실력이나 선생님의 추천으로 선발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간다는 말에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었지만, 자유학년제를 보내는 아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진로 탐색 활동을 응원하기로 했다.
발명 교실이 중반쯤 지났을 무렵, 호링이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엄마, 지원하고 싶은 고등학교가 생겼어요」
「그래? 어느 학교야?」
「저, 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여기는 제가 써보고 싶은 장비가 몇 개씩 있고요. 복도에 재학생이 만든 프로젝트를 전시하는데, 고등학생이 아니라 완전 전문가가 한 것 같아요. 가슴이 팡팡 뛰면서 나도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호링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코딩, 과학 상자, 로보틱스 등을 좋아했기에, 아들이 발명 교실에 흥미를 보인 점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로 얻은 기회 덕분에 진학하고 싶은 상급 학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해 조사해 본 후 남편에게 입학 설명회에 가달라고 요청했다. 행사에 다녀온 남편은 이 학교는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는 곳으로, 소프트웨어개발자가 되는 빠른 길을 제시하는 교육기관이라고 했다. 단,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에 올인하는 고등학교라고 덧붙였다.
호링이의 마음을 빼앗은 고등학교가 대학교 입학에 필요한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은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최근까지 돌돌이의 일반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학교 활동의 대부분이 입시라는 결승선에 사람을 줄 세우기 위한 절차라는 게 안타까웠다. 청소년이 십 대 후반의 삼 년을 ‘기-승-전-성적’으로 보내는 대신,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실력을 갖추어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혹은 모두가 대학을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는 마음 대신, 직업인으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더 배우고 싶은 분야를 찾아 천천히 대학에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호링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며 중립적인 견해를 밝혔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해보는 거지, 안 그래?」
이번에는 호링이 스스로 이 학교에 적합한 사람인지,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볼 차례였다. 호링이는 1학년 2학기에 처음 입학 설명회에 갔다. 2학년 때는 모집 요강이 바뀌었다는 소식에 차이를 알아보겠다고 참석했다. 3학년 초에는 생활기록부를 챙겨서 입학 담당 부장 선생님과 1:1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호링이의 자료를 보더니, 지금처럼 성실히 생활한 후 내년에 신입생으로 만나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입학시험을 보기 전 세 번이나 학교를 찾아간 적극성 덕분인지 호링이는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호링이가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한 점은 물론이고, “저 좋아하는 거 있어요! 저 이거 꼭 해보고 싶어요!”라고 번쩍 손 든 용기를 칭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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