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시간

신동범 작가 개인전 《감각의 시간》

by 반고

평택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트리비움에서 신동범 도예가의 개인전 《감각의 시간》이 진행 중이다. 조경 건축가 및 아로마 테라피 전문가가 운영하는 트리비움은 자연에 둘러싸여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야외 전시 공간에는 완만한 산이 병풍처럼 작품을 둘러싸고, 아래층 전시실에는 창밖에 펼쳐진 숲이 도자기를 품어준다. 티룸 곳곳 놓인 개성 있는 합(盒)은 차 마시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트리비움

오래 바라보고픈 달항아리 가족


아래층 전시실 중앙에는 크기가 다른 다섯 개의 백자가 한데 모여있다. 이들은 바닥에 닿은 단정한 굽, 사선으로 들어간 입술, 매끄러운 질감이 서로 닮았지만, 작가가 부여한 높이와 넓이, 어깨의 각도 차이가 있어 저마다의 고유성을 가진다. 닮은 듯 다른 모습이 엄마, 아빠, 세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같다. 큰 항아리가 날렵한 어깨를 가진 계란형이라면, 중간 크기의 백자는 둥글게 잘 익은 귤 모양이다. 네 개의 달항아리에 둘러싸인 작은 항아리는 귀여운 막내다. 반들반들한 달항아리 표면에 다른 항아리가 반사되어 보이는데 마치 새끼를 품고 있는 포유류 같아서 대견해 보였다. 고즈넉한 전시실에서 차분하게 관람객을 기다리는 항아리를 보니, 바닥에 방석을 놓고 도자기와 눈을 맞추며 오래 앉아있고 싶다.

신동범 도예가 작품


백색의 변주

백자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신동범 도예가는 이번 전시에서 연보라색이 감도는 베이비 블루 계열의 작품도 선보인다. 화가들이 눈(雪)의 차가움이나 빛 반사를 표현하기 위해 연보라 혹은 옅은 파란색을 사용하기 때문인지 그의 파란 도자기는 눈처럼 기품 있다. 흙을 깎아 만든 면이 리본을 세로로 늘어뜨린 것처럼 항아리를 둘러싸고, 면과 면의 경계에 생기는 그림자가 자연스러운 패턴을 만든다. 굽과 입술을 없앤 간결한 디자인이 하단부가 긴 날렵한 모습과 만나 작품 주변으로 은은한 긴장감이 흐른다. 간결함과 부드러움의 상징인 백자에 깎고 생략하는 덜어내기의 미학을 실천하여 현대적인 오브제를 만든 작가의 독창적인 시선이 돋보인다.

신동범 도예가 작품

미(美)의 쓸모

《감각의 시간》에는 우묵한 그릇 위에 뚜껑이 있는 합(盒)이 여러 개 등장한다. 도예가에게 합은 특별히 어려운 작업이다. 가마에서 나왔을 때 아래위가 딱 맞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유격이 없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을 때 창작자가 느끼는 희열은 배가 된다. 신동범의 합은 무엇을 담으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곁에 두고 바라보며 가끔 뚜껑을 여닫아 주면 된다. 트리비움 대표님께 문의한 후 합을 만져보았는데 짧은 순간에도 강렬한 경험을 했다. 먼저 봉긋이 솟아오른 손잡이를 가만히 들어 도자기의 물성을 느낀다. 다시 뚜껑을 원래 위치에 되돌려놓으니, 합은 그릇과 덮개가 함께 있을 때 완결성을 갖는 오브제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날렵하고 가느다란 것부터 뭉툭하고 납작한 것까지, 작품마다 어울리는 손잡이를 만들었는데, 과일 꼭지처럼 솟은 작은 형태가 합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신동범의 합에 집중하며, 군더더기 없는 백자의 철학을 실천하는 작가의 실험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상상해 보았다.

신동범 도예가 작품
신동범 도예가 작품

형태, 선, 색, 그리고 질감

도예 작품을 볼 때 형태, 선, 색을 감상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신동범 작가의 전시 《감각의 시간》을 관람하며 거기에 질감을 추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약 바르는 방식을 달리해서 작품에 변화를 준다. 디핑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은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매끄러운 표면이 매력적이고, 스프레이로 유약을 바른 작품은 균일하게 가슬가슬한 질감이 촉각을 자극한다. 트리비움은 인제책이 없이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작품을 만지고 싶은 욕망을 누르느라 무형의 인제책을 치고 관람했다.

신동범 도예가 작품
신동범 도예가 작품
신동범 도예가 작품

이번 전시는 백자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달항아리부터, 파란색의 현대적인 오브제, 아래위가 절묘하게 만나는 합까지 신동범 작가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관람할 기회다. 올여름이 가기 전에 자연 속 힐링 전시공간 트리비움 방문을 추천한다.


전시 정보

신동범 도예가 개인전 《감각의 시간》

2025.05.13.(화)~2025.07.31.(목)

트리비움 (예약제로 운영)

https://m.booking.naver.com/booking/12/bizes/782218



신동범세라믹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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