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생과 2025년 생 은호

by 반고

얼마 전 아들과 전화로 나눈 대화를 옮겨본다.

“엄마, 부장 쌤이 작년에 결혼하셨잖아. 얼마 전에 아빠가 되셨거든. 근데 아기 이름이 은호래.”

“그래? 신기하다. 은호가 멋진 이름이긴 하지.”

“나 때문에 그렇게 지으신 거래. 다른 선생님이 알려주신 거야. 부장 쌤이 2세 이름을 은호 너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고.”

“야, 대단한 얘긴데. 나 방금 소름 돋았어...”

“나도 너무 엄청난 이야기라서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지.”

나는 감동과 흥분이 섞인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고 아들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그냥 좋다 이런 게 아니라 부담감도 좀 생기고. 앞으로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서양에서는 조상님 이름을 따라서 무슨 무슨 주니어라고 부르거나 친한 지인의 이름을 가운데 이름으로 넣기도 하거든. 근데 이렇게 동시대를 사는 청소년, 아니 제자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것은 거의 보지 못한 거 같아. 참, 축하 인사는 드렸어? 선생님이 너 만나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다.”

“아직. 학교를 며칠 안 오시나 봐. 만나면 말씀드려야지. 쌤이 저번부터 “나도 나중에 은호 같은 자식 있으면 좋겠다. 학교생활 잘하고, 인성 바르고, 할 일 열심히 하고 딱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야.” 그런 말을 했거든. 근데 그냥 칭찬이라고 생각했지, 진짜로 아기 이름으로 부를 줄은 몰랐지.”

“나한테 이야기해 주어서 고마워. 2025년생 은호에게 2007년생 은호가 본이 되어야겠네.”


주말에 아들이 집에 왔을 때 부장 쌤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선생님 만났어?”

“어, 선생님이 얘기하시더라고. 아들 이름이 은호라고. 선생님이 얘기 중에, 은호가 이랬다, 저랬다며 설명하는데 재미있었어.”

“후훗, 웃기다. 신생아 돌보느라고 한창 바쁘시겠다.”

“엄마, 선생님이 나중에 은호를 우리 학교에 보낸대.”

“그렇게 먼 미래까지 설계하셨대? 너무 김칫국 아니야? 본인이 가고 싶어야 가는 거지...”

“내가 선생님 아들 멘토링 해줘야 하나?”

33일 된 아기의 진로를 이야기하는 선생님이나, 먼 훗날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동명이인 아기를 이끌어주겠다는 제자나 내 눈에는 풋풋하고 예뻐 보였다.

“그날,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어. 선생님 보시기에 은호가 얼마나 멋지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사람 이름 정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인데. 앞으로 아기 키우면서 네 생각이 나실 거고, 은호가 훗날 성공하면 네 이야기를 아들한테 하실 거고. 그런 상상하니까 약간 먹먹해지더라고. 아무튼 은호는 좋은 이름이야. 요즘에 약간 유행인 것 같기도 해.”


나는 최근 방영을 마친 TV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와 <한양 체크인>의 주인공이 은호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대화를 마쳤다. 흐뭇함에 젖어있는 우리 집 은호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Photo Credit: https://pixabay.com/photos/mountains-thunderstorm-mountain-28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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