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간 준호가 6월이면 전역한다. 계획형 인간인 아들은 작년 말부터 제대한 후 어떻게 지낼지 고민했다. 휴학한 시기는 1학기인데 복학하는 시기는 2학기라 수강 신청에 제약이 있는 눈치였다. 엇학기로 시작하면 전공 연계 과목을 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학업을 재개하며 교양 과목만 이수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은 세계 여행을 갈까, 아르바이트할까 탐색하다가 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도 좋은 생각이라며 응원을 보냈다. 한 학기 동안 해외에서 학생으로 지낼 수 있으니 공부, 여행, 문화 체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을 터였다.
아들의 목표는 근사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고달팠다. 섬에서 근무하는 준호는 종일 국방의 의무를 하고 밤에는 영어 공부를 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여 화상 인터뷰에 응시하게 되자 상사의 허락을 받고 부대에서 휴대전화로 면접을 치렀다. 개인 컴퓨터도 없고, 공부할 여건도 열악하고, 시험 응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아들은 토플 시험을 보고, 서류를 작성하고, 온라인 면접을 통과하여 원하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최대한 원격으로 교환학생 선발 준비를 하던 아들이 얼마 전 집에 다녀갔다. 학교에서 교환학생 선발 대상자를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고 하여 휴가를 나온 것이다. 아들 혼자 외국에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노파심에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준호야, 너 미국 갈 때 도움이 필요하면 엄마도 며칠 같이 갈까?」
「에이~아니야. 저 이제 그런 거 혼자 할 나이 되었어요」
내가 말을 꺼내긴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올해는 은호가 고3이어서 내가 집을 비우기 어렵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내 비행기표 살 돈을 준호에게 주어 아들이 미국 내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게 나을 것이다. 준호가 단번에 거절해서 안도하며, 혼자 부딪히며 정착하는 것도 교환학생 시기에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일 것이라고 여겼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온 아들은 미국에서 요청한 서류를 챙겼다. 그중 하나가 해외에서 입국하는 학생에게 요구하는 건강검진 서류였다. 준호는 온라인으로 자료를 찾아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접종 기록을 순서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하게 해당 양식은 뇌척수막염 접종과 관련해서 날짜뿐만 아니라, 어떤 브랜드의 백신을 맞았는지까지 기록하게 되어있었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찾지 못한 준호는 혹시 집에 그런 자료가 남아있는지 물었다. 나는 ‘준호 은호 학교 관련’이라고 쓰여 있는 서류철을 꺼내 왔다. 역시나 거기에도 백신 이름은 공란이었다.
필요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서류철에 있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준호가 학년별 건강검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학습전략검사 등의 서류를 보고 감탄했다.
「와, 이런 게 다 나오네. 엄마가 이런 거 보관하고 계시는 줄 몰랐어요」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었지. 전학할 때 한번 썼나? 별로 쓸 일은 없었어.」
정보를 받았을 때 살펴보고 다시 꺼내 볼 일은 거의 없었지만, 왠지 모아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자녀들이 군 복무와 학업으로 집 이외에 다른 거처에서 주로 생활한다. 하지만 그곳은 임시거처이므로 무언가를 수집하고 기록할 만하지 않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자녀의 물건을 맡아두고, 그런 자료가 있다고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하는 부모 역할 중에 하나다. 자녀의 아카이빙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셈이다.
서류를 살펴본 후, 우리는 미국 체류비가 어느 정도 들지 계산해 보았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던 아들은 눈앞에 쓰인 숫자를 보더니 이런 목돈을 쓰면서 떠나는 게 맞나 싶다고 하였다. 장병내일준비적금 중 일부를 꺼내 보태겠다고도 했다. 나는 준호에게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하고, 같이 해야 할 것은 같이 하는 게 가족이라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되는 과정은 혼자 힘으로 준비했으니, 해외 체류에 필요한 비용은 아빠 엄마가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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