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가 집에 오는 금요일, 친구와 미술관에 들렀다가 좀 늦게 온다고 했다. 차로 데리러 갈 필요가 없어진 나는 위니를 반려견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러 갔다. 한 바퀴 돌고 집에 가까이 왔을 때 건물 입구에서 은호와 마주쳤다. 학교가 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의아했다.
“일찍 왔네? 미술관은?”
“친구가 못 간다고 해서 나도 안 갔어.”
이틀 전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입장권 발권이 가능한 미술관을 찾아달라고 한 사람의 대답치고는 싱거웠다. ‘감상문은 어떻게 하고? 다시 갈 거야?’라고 물으려는데, 아들의 얼굴에서 “날 좀 내버려둬.”라는 메시지를 보았다.
아들은 터벅터벅 앞장서서 걷고 나는 뒤따라서 유모차를 밀었다. 밖에서 가족을 만난 위니는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지만, 은호는 평소처럼 안아주지 않았다. 들어가서 제대로 인사하겠지 싶었는데 갑자기 위니가 은호 쪽으로 몸을 틀며 유모차에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엔 잘 걷는 것 같더니 점점 왼쪽 뒷발을 사용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며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은호가 말했다.
“내가 미술관에 갔다 왔으면 안 다쳤을까?”
그 시간에 나도 수많은 ‘만약에’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유모차 안전 고리에 강아지 목줄을 연결했더라면…’,‘은호가 반갑게 인사했더라면…’,‘강아지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몇 가지 시술과 약물치료 한 후에도 회복이 되지 않아 수술을 결정했다. 얼마간은 움직임에 제약이 있고 두 달 정도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위니가 깁스하는 동안 거실에 울타리를 쳐서 입원실을 만들어 주었다. 강아지가 많이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사람이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놀아주었다. 드디어 몇 주 만에 붕대를 풀고 집안을 돌아다니게 된 첫날, 울타리 밖으로 나온 위니는 재빨리 은호 방으로 갔다. 구석구석 아무도 없는 방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며칠 후 은호랑 통화하던 남편이 이렇게 물었다.
“위니가 울타리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뭘 했는지 알아?”
“제 방으로 가던가요?”
아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이야기한대로 두 달이 지나자 위니는 활동적인 강아지로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위니와 몸으로 놀아주던 은호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위니 수술하고 재활하는 동안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네가 그렇게 말해주어서 엄마가 힘들었던 게 싹 사라졌어. 감사할 때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거 정말 좋다.”
“제가 다 알지는 못해도 한 생명이 다시 건강하게 걸어 다니기까지 돌봄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겠어요. 엄마가 있었으니 위니가 낫게 된 거지요.”
은호의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몇 주 동안 염려하고, 반려동물의 약을 챙기고, 운동을 시키고, 병원에 데려가는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강아지가 건강을 되찾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이거면 충분했다.
Photo Credit: https://pixabay.com/photos/poppy-field-meadow-flower-grass-3108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