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모든 예랑이들에게 보내는 경고 알람‼️
'오빠는 결혼식 어떻게 하고 싶어?'
2022년 9월 1일.
명품백은 없어도 프러포즈만큼은 서프라이즈로 하겠다는 내 인생 최대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했던 날. 감사하게도 눈물 콧물 다 흘려준(?) 와이프의 첫 질문이었다.
'글쎄 뭐 남들이랑 비슷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이제 알아봐야지'
이땐 몰랐다. 당시만 해도 어수룩해 보였던 회사 선배부터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까지 결혼한 사람은 꽤 됐었기에 나에게 결혼식은 '그냥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찾아보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가장 어려운 결정인 신혼집이 어쨌거나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러포즈만 성공하면 결혼식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생각했었다. 게다가 우리 커플은 4년의 연애동안 싸웠다 할만한 사건이 없었을 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심 넘치는 모범 커플이 아니었던가!
나의 이런 자신감은 결혼 준비를 시작한 지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쓰나미를 맞게 되는데.. 결혼 준비하면서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결혼 준비할 때 반드시 피해야 할 망언 3가지'를 생생하게 공유해볼까 한다.
반응: 주인공은 개뿔 나만 결혼하냐?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 가장 쉽게 하는 망언으로 아주 기특하고 배려심 넘치는 마음으로 얘기했다 생각하겠지만 내가 봤을 때 가장 피해야 할 망언 No.1이다.
'와 이렇게나 골라야 되는 게 많다고?'
1시간 남짓한 결혼식을 위해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수 천 가지는 된다.
결혼식 사전 준비로 볼 수 있는 웨딩 스냅, 웨딩 밴드, 청첩장부터 결혼식 당일을 위한 스. 드. 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예식장 선택이 시작이다. 결혼식 자체만 놓고 봐도 생화 장식 여부, 사진작가님, 행진곡, 식순, 혼인서약/성혼선언, 결혼 액자 개수, 웨딩 슈즈, 혼주 메이크업, 식권, 사회자 등 결정을 내려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결혼 준비가 힘들다는 얘기를 주변 친구들로부터 들어만 봤지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던 내가 세상 물정 몰랐구나 싶은 순간이 바로 이때다. 그나마 내가 평소에 잘 알던 것들이라면(ex. 롤 처음 시작하는데 무슨 라인이 좋겠어? 라던지) 괜찮을 수 있겠지만 가방순이가 어떻고 웨딩 스냅 이모님을 따로 구해야 하고 아이폰 사진작가님을 써야 될지 말아야 될지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들에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몇 백만 원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야말로 막막해진다.
바로 이때 누군가 나 대신 이 모든 걸 선택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데, 그때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난 다 괜찮으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얘기하게 된다.(적어도 난 그랬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어려운 이유는 내리는 선택에 따라 결과가 하늘과 땅차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수억을 태우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결혼식 자체를 몇 마디 말로 대체하기도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결혼식을 어떻게 했냐 보다(결과) 왜 그렇게 했는지(과정)이 중요하다. 생화 장식을 하건 조화를 하건, 웨딩 스냅을 파리에서 찍건 유명 작가와 찍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도 관심도 없고 정답도 없는 문제니까.
우리의 우선순위를 통해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
그렇지만 그걸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비용이 중요해서 조화를 하겠다던지 스냅만큼은 멋지게 찍고 싶어서 파리에서 찍겠다던지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고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겨가며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너가 주인공이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니.. 난 잘 모르겠으니 네가 다 골라줘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와이프의 분노의 미간을 보고 알았다. '주인공은 개뿔 나만 결혼하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겠는가. 가장 주의해야 할 멘트 1순위 되겠다.
반응: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보냐고!!!!!
나의 경우 결혼 준비과정 중 가장 두려웠던 순간 Top 3을 꼽아보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웨딩드레스 피팅 때가 아닌가 싶다. 30년을 넘게 오늘 저녁메뉴도 잘 못 고르는 내가 1시간에 수백만 원짜리 그것도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드레스를 골라줘야 하다니.. 두려움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벅차오르는 감정은 느껴지되 너무 지나쳐서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적지근하지도 않은 적당한 리액션은 덤이다.)
이때 흔히 하는 실수가 ‘둘 다 예쁘니 아무거나 해’이다. 당연히 둘 다 예쁘겠지. 이 결정이 어려운 이유 역시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1) 누가 봐도 예쁜 건 비싸고 가격이 괜찮은 건 뭔가 2% 아쉽다. 이왕 한번 하는 결혼식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지만 남편 입술이 살짝 파르르 떨리는 것 같고 나 역시 1시간 웨딩에 이 돈을 쓰는 게 맞나 싶다.(근데 진짜 예뻐서 눈에 밟히는 걸 어쩌지?)
ex2) 실크드레스는 역시 듣던 대로 우아하고 연예인들이 괜히 우아한 실크를 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가도 한 번뿐인 결혼식 너무 무난한 게 아닌가 싶어 비즈 왕창 들어간 신상 드레스도 하고 싶다.
머릿속으로 이미 수만 가지 생각을 하는 그 순간에 기댈 곳이라고는 예랑이 밖에 없는데 ‘난 둘 다 예뻐서 네가 더 마음에 드는 거로 해’라고 말하면 얼마나 절망적인가.. 잘못한 건 없기에 좀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도움도 안 되기에 피해야 할 망언 No.2 되겠다.
웨딩드레스에 대한 지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51% 대 49%라도 좋으니 둘 중 뭐가 예쁜지 결정을 해야 한다.
ex1) 실크드레스도 정말 예쁘지만 우리 결혼식장 분위기가 되게 화려하니 너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신상 드레스가 훨씬 더 잘 어울리고 이쁜 거 같은데? 나라면 그거 할 거 같아. 어떻게 생각해?
ex2)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무조건 실크 드레스가 맞는 것 같아. 진짜 난 무조건 이거야.
정말 힘들고 고민되고 망설여지겠지만 와이프도 똑같다. 그럴 거면 과감하게 지르자. 어떻게 얘기하든 둘 다 예뻐보다는 훨씬 믿음직하다.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을 가능성 99프로 이상이며, 어차피 둘 다 예뻐서 고민 아니었나?
응 안 해줘.
힘들고 바쁘고 정신없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맘속에서 나오는 망언 No.3다.
'오빠 우리 제주 스냅은 어떻게 찍고 싶어?'
'글쎄 가서 촬영 전날 상담하지 않아?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 뭐'
(또다시 등장한 분노의 미간)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절실히 느끼는 점 중 하나는 나에게는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지만 남들에게는 수백 건의 결혼식 중 하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사전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업체, 똑같은 비용을 쓰더라도 돌아오는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있는 혜택 없는 혜택 다 끌어 다 쓰고 작가님 잘 만나 인생사진을 매일 갱신하는 한 편 누구는 돈은 돈대로 결과는 결과대로 꽝이다. 이렇기 때문에 더더욱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라는 발언이 속 터지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
실제로 촬영 전날 사전 미팅에서 작가님의 첫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찍고 싶으세요?'였다.
작가님은 A to Z 이렇게 찍겠습니다라는 방향을 절대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구도로 찍고 싶고, 이런 포즈는 꼭 하고 싶고, 드레스와 머리는 어떤 식으로 준비할 예정인지 소품은 뭘 준비했는지 등을 들어보신 후 날씨와 동선과 소품, 헤어 & 메이크업 모두 고려해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과 전문가의 조언만 있을 뿐이다.
물론 가뜩이나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정신없으니 전문가를 철저하게 레버리지 하는 방법도 훌륭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업체에도 노하우가 있고 실제 따로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디렉팅 해주시는 작가님도 많다. 다만 그렇더라도 나와 와이프의 간의 협의가 우선이다.
준비 과정에 너무 많은 리소스를 낭비하지 말고 전문가에 일임함으로써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라고 원만한 합의를 이루던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준비할지를 둘이서 먼저 정해야 한다.
아무도 알아서 안 해주는 현실이 야속하지만 받아들이고 실언을 주의하자. 그게 예랑이로서 살 길이다.
사실 글의 흥미를 위해 살짝 과장한 것이라 얘기하고 싶지만 슬프게도 결혼 준비는 정말 쉽지 않다.
부부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공식 행사를 난생처음 준비하다 보니 모르는 것도 많고 정신도 없고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3대 망언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서로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3가지 순간들의 예시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좌절하잔 말자.
이렇게 하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나고 보니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앞으로 같이 살아나가야 할 결혼 생활의 축약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수많은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는 '결국 과정이 결과를 대변'한다는 걸 배웠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선택지에 무작정 뭘 골라야 할지 스트레스받는다면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행동은 서로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는 어떤지 각자가 정말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건 뭔지 서로의 눈높이를 먼저 맞추는 대화가 1순위다.
비로소 그때 진정 서로가 같은 방향을 보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운함을 느끼는 순간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사진이 이쁘게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결혼식을 얘기하는데, 나는 잘 몰라서 또는 네가 입을 옷이니까 등의 이유로 남 일 얘기하듯 하는 모습에서 서운함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잘 몰라도, 어설퍼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식이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고 어떤 게 좋을지 같이 선택해 나갈 때 비로소 많은 문제들이 의외로 손쉽게 해결된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앞으로 있을 더 험난할(?) 결혼 생활에 대한 예방 주사라고 생각하자. 때론 부딪히고 서운하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부부로서 성장해 나가는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하기에 이러한 갈등 역시 결혼 준비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한 가지 위로의 말을 덧붙이자면 이 모든 게 결혼식이라는 D-day가 정해져 있다는 점.
게다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는 해방감과 꿀맛 같은 신혼여행이라는 천국의 체험판도 기다리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꼭 결혼을 향한 이 험난한 여정에서 살아남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