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게 무서운 거야? 음.. 그것도 맞지만...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에 극한 공감을 하는 게으름뱅이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샛소리 들으며 그저 누워만 있어도 행복한데 왜 밖을 나가는 거지? 집에 햇빛도 들어오고 넷플릭스도 있는데... 근데, 가끔 집이 귀찮아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쯤 분명 나가면 피곤해질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나가고 싶은 그럴 때. 변화가 필요할 때다.
근데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조금 두렵고 귀찮다. 그래서 결국 생각에서 그치고 말아 버리는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 예를 들면 제주에 사니 캠핑을 좀 해보고 싶어 장바구니에는 캠핑용품이 가득 차 있는데, 막상 사려고 하면 '내가 과연 이걸 쓰러 나갈까? 내가?'의 굴레에 갇혀 결국 가득 찬 장바구니엔 어느새 품절 상품만 가득하다.
'이상적으로 완벽한 상태'를 꿈꾸는 게으름뱅이는 상상으론 이미 캠핑 자리에서부터 캠핑 장비들, 어떤 분위기와 어떤 음식을 먹을지까지 다 정해놓고 '아.. 행복하겠다...'까지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캠핑을 위한 제품을 알아보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이상)과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현실)의 갭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것(이상)과 할 수 있는 것(현실)에 차이에 에이 몰라! 하고 결국 포기해버린다.
근데, 최근에 친정엄마와 동생이 놀러 와서 SUV로 차를 바꾼 후 두 달 만에 차크닉을 시도하게 됐다. 원래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상상으로만 품고 있던 로망이었는데 제주에 자주 놀러 와 더 이상 할 게 없어 지루해진 엄마와 동생을 위해 한 번 툭 던져봤더니 흔쾌히 가자 하는 게 아닌가???
차크닉을 가기 전 날 대충 로드뷰로 집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알아보고, 차 트렁크에 돗자리와 침구를 챙겨 엄마와 동생 그리고 우리 집 반려견 박봉식과 함께 집을 나섰다. 해안가에 도착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 문을 열어 세팅하니 계획 없이 단출하게 챙겨 왔는데도 그저 좋은 날씨와 바람으로도 행복함이 가득해졌다. '아, 이거다!'
게으름뱅이인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상태를 버리고 '생각 없이 무작정'이 옳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생각 없이'가 중요하다. 잡생각이 많아지면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다가 결국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처럼 혼자 하는 걸 두려워하는 겁쟁이에게 반려견은 너무나도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친구나 가족도 좋다. 한 번은 누군가와 함께 생각 없이 무작정 시도해보면 그다음부터는 혼자 하는 게 쉬워진다.
이 날은 더군다나 예상치 않게 도착한 곳에 화장실도 있었고, 푸드트럭도 있어 모든 게 완벽한 덕이었는지 결국 차크닉 매력에 빠져버렸다. 어느 날은 우리 집 박봉식과 둘이서, 또 다른 날은 남편과 박봉식과 셋이서 제주 동서남북을 다녀보고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노트북을 챙겨 나와 해안가에서 노래를 들으니 이 여유로움에 밀린 업무들도 술술 풀린다. 업무가 없는 날에는 밀린 드라마를 넷플릭스로 보고,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차 안에 엎드려 파도 멍을 때리기도 한다. 파도소리에 낮잠도 들어보고, 트렁크 문을 닫고 박봉식과 산책도 한다.
그저 위치가 집이 아닐 뿐, 집에서 할 수 있는걸 차에 옮겼다.
풍경 좋은 방이 생긴 기분이다.
이제 '이상적으로 완벽한 상태.'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을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려 다음 단계로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아 졌다. 앞으로도 모든 일을 생각 없이 무작정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