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형의 무계획여행

Turn off the map

by 가현


나의 구글맵에는 수많은 하트와 별이 수놓아져 있다.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가고 싶은 장소들을 전부 저장해 놓고는 날마다 그날의 구역을 정해두고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으로 이동하곤 했다. 혼자 다닐 때는 그나마 덜한 편인데 누군가와 함께, 그것도 나만 그곳의 유경험자일 땐 답도 없다. 한 손에는 최적경로가 켜진 휴대폰을 쥐고는 가이드가 된 것처럼 바삐 걸음을 움직이곤 했다. 그러다 보니 길을 잘못 들거나 헤매는 경우의 수는 손에 꼽는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무수히 퍼즐을 맞춰놓아도 흐트러지는 게 부지기수임을 알게 되며, 그리고 우연히 불쑥 찾아오는 따뜻한 기억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의도적으로 아는 길도 에둘러 가곤 한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근처 슈퍼에서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적당한 식당에 들러 끼니를 해결한다. 조금씩 빈틈으로 느슨해지는 여행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다음엔 조금 더 많이 헐거운 시간들로 채워나가기로 다짐했다.


계속되는 비소식으로 지쳐갈 때쯤 일기예보에서 오랜만에 쨍쨍한 해를 발견했다. 구름도 없이 오롯이 해만 표기되어 있다는 말은 즉슨, 조금의 흐릴 가능성도 없다는 말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는 근교의 작은 도시 아베이루행 티켓을 끊었다. 포르투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으로 미리 버스를 예매하면 왕복 8유로도 안 되는 가격으로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다녀올 수 있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습관처럼 구글맵 어플을 켰다가도 의식적으로 껐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부터 몸이 조금 이상했다. 살짝 으슬으슬했지만,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날씨도 좋다는데, 기분 탓일 거라 믿었다. 아베이루행 플랫폼을 찾아 도착했는데 눈앞에는 기차레일만 보였다. 뭔가 잘못됐다. 시간을 확인하니 출발 5분 전이였고 급하게 버스 터미널 위치를 검색하고 달렸다. 꽤 진심으로 달렸지만, 1분 사이에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하마터면 자책이 몰려들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한 시간 뒤 출발하는 버스를 다시 예약했다. 벤치에 앉아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평온한 시간도 잠시 출발 시간이 지났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전광판에는 몇 분째 지연으로 플랫폼이 변경될 예정이라는 문구만 깜빡거린다. 아까 놓친 버스는 왜 지연되지 않았던 건지 괜스레 심술이 난다. 결국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는 순간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눈을 붙였다. 도착하니 여전히 하늘은 회색으로 가득했고, 오늘의 날씨예보는 완전히 틀렸다.


버스에 내려서는 앞에 가는 한 커플을 따라 길을 걸었다. 춥고 굶주린 탓에 시야에 들어온 마트에 들어가 작은 치즈빵을 담았다. 계산을 기다리는데 앞에 줄 서 있던 할머니가 내 작은 빵봉지를 보더니 점원에게 포어로 몇 마디 말했다.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눈치상 순서를 바꿔주신 듯했다. 점원도 빵을 보고는 “pequeno(small)”라며 웃었고 난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두어 번의 고마움을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의 중앙은 강이 가로지르고 있었고 문양이 새겨진 형형색색의 보트가 떠다녔다. 대부분 차있는 사람들은 연신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걸 보아 관광객인 듯했다. 날씨가 맑았으면 더 새초롬한 색감이었을 텐데, 비집고 나오는 아쉬움을 누르며 강변과 골목을 오가며 걸었다.


작은 마을 같은 곳이라 강을 기준으로 한쪽 편을 돌아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도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눈두덩이가 뻐근해졌다. 지친 몸을 달래려 로컬향이 진하게 풍기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제 제법 카페를 고르는 눈이 생겼다. 꾸미지 않은 투박한 인테리어, 진열장의 다양한 종류의 빵들, 수더분한 옷차림의 손님들로 채워진 테이블, 그리고 빵을 포장해 가는 사람들. 여긴 진짜다.



진열장에는 익숙한 빵들과 몇몇 눈에 띄는 빵들이 있었다. 아베이루는 계란노른자를 활용한 디저트가 유명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계란 노른자를 슬라임으로 만든 것처럼 작고 동그란 디저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연신 손으로 콕 눌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은 노른자 디저트 하나와 식사대용으로 알맞아 보이는 빵하나를 주문했다. 도넛 식감처럼 생긴 빵의 단면에는 노란색 크림이 발라져 있었고 점원에게 물어보니 이 또한 계란이고 했다. 아베이루의 빵은 계란으로 가득하다.



주문한 차와 빵이 나오고 직원에게 이들의 이름을 물었다. 카페에서 이름 모를 빵을 도전할 때면 꼭 이름을 묻는다. 별거 아닌 듯해도 뜻을 해석하는 게 제법 쏠쏠한 재미다. 동그란 노른자는 ‘Beiginho coco’로 프랑스어 비쥬와 코코넛이 합쳐진 이름이다. 이름마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몸에 당이 부족했는지 순식간에 먹어치우고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몸은 점점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출발까지는 여유시간이 있어서 강의 반대편 쪽을 걷는데 점점 머리는 지끈거리고, 짐은 평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이대로가 다간 포르투행 버스가 아니라 아베이루 응급실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하다 결국 돌아가는 버스를 더 이른 시간으로 바꿨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두통과 오한에 시달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약을 먹고 침대에 누우니, 그나마도 있던 계획조차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빗나간 날씨도, 갑자기 떨어진 면역력도, 놓쳐버린 버스도, 하나를 콕 집어 이유로 댈 수 없었다.


난 그로부터 3일을 끙끙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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