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떡 아닙니다
9년의 자취 경력은 냄비 밥 앞에 처참히 무너져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밥솥이라는 게 집에 있었다는 게 까마득하니까. 자취 초반엔 밥을 지어먹겠다는 호기로운 열정을 가졌었다. 쿠팡에서 햇반을 시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밥이라고 할 수없게 변질되어 버린 그것들을 두어 번 경험하고 난 후였다. 가끔 갓 지은 밥이 그리 울 때도 있었지만 현대인에게, 특히 야근이 잦은 회사원에게 햇반의 효율성은 강력했다.
포르투에 도착하자마자 에어비엔비에서 약 10일 간 묶으며 1년 동안 살 집을 구했다. 이때부터 우리에게 외식은 사치요, 어떻게 하면 저렴하고 맛있게 끼니를 해결할 건인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주야장천 파스타만 해 먹으니 어쩔 수 없이 고슬고슬한 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마트에서 쌀을 사서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생에 첫 냄비밥을 시도했다. 쌀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여서 많으면 얼릴 심산으로 전부 다 부었다. 첫 단추를 잘못 꽤었다, 아니 너무 큰 단추를.. 꽤었나?
물이 끓어오르고, 단단한 쌀알들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며 그 양은 어마무시하게 거대해졌다. 어디까지 차오르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부디 넘치지만 않기를, 속으로 빌었고 내 기도는 간신히 먹혀들어갔다. 완성하고 보니 그래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마저도 잠시, 주걱 같은 숟가락으로 한술 뜨자마자 직감했다. 질다. 질어도 무지하게 질다. 주먹으로 몇 번 치면 곧 백설기로 변신할 것만 같았다. 분명 물 양도 잘 맞췄는데!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식으면 좀 괜찮아질 성싶어 냄비가 미적지근해질 때까지 인내의 시간을 가졌지만 결국 별반 다르지 않았다. 락앤락도 없어서 우선 지퍼백에 밥을 차곡차곡 소분했다. 무려 3팩이 나왔다.
그래도 일주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소분한 밥을 다 해치웠다. 이후 운이 좋게 작은 밥솥을 얻게 되어, 다행히도 또다시 시도할 건더기조차 남지 않았다. 요즘도 밥을 지을 때 가끔 저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아직도 난 실패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저 쌀을 잘못 선택했을 거라 지레짐작하며 덮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