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맛을 찾아서

자연주의와 자본주의

by 가현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마음 편하게 칼질하기도 어려운 비좁은 부엌에서도 뭐든지 먹고 싶은 건 뚝딱 해냈다. 한식, 양식, 중식 할 것 없이 섭렵해나가고 할 줄 아는 요리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맛과 식감을 탐험하곤 했다. 한 번은 올리브 타프나드라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페이스트가 궁금해졌다. 그거 하나 먹겠다고 당근마켓에서 가정용 큰 믹서기까지 샀다. (그 믹서기는 1년 동안 타프나드와 시금치 페이스트 만들 때 단 두 번 쓰고는 무료 나눔의 결말을 맞게 된다.) 보기에도 좋은 떡을 참 좋아하는 터라, 신기하게 생긴 파스타 면이나 치즈에도 손을 대고 데코레이션을 위해 붉은 레디쉬까지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시간들 속에 나는 퇴근 후 혼자 요리를 해 먹는 게 삶의 큰 낙이였다.


형형색색 찬란했던 지난날의 음식들


그러고 포르투에 와서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으면서 쓸 수 있는 재료의 가짓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두세 달간은 파스타도 오일베이스에서 카레가루나 라면수프를 더하는 정도만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변주였다. 한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국 식자재가 워낙 비싼 터라 고추장, 된장, 간장을 사는 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고 그중 하나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며 아껴 쓰며 지냈다. 처음엔 당연시 있어야 할 재료들이 없어서 맛이 많이 심심할 거라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채에서 나오는 단맛이나 고기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이 혀끝에 더 잘 느껴졌다. 소스맛이 걷어지고 나니 오히려 숨어있던 맛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자연주의에 가까운 음식을 먹다 보니 더욱 자극적인 음식이 덜 당기고 속도 편했다. 뭐든 때로는 화려한 것들을 걷어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는 게 음식에도 적용되는구나 싶었다. 다만, 충분히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심을 갖고 중불에서 스근하게 우러나올 때까지의 적당한 인내심은 녹진한 감칠맛을 낸다. 평소처럼 성미 급하게 끝냈다가는 늘 맛의 어딘가 비어있기 마련이다. 살다 보니 늘 하던, 그래도 자신 있던 요리에서도 이렇게 새로이 인생을 배운다.


소박한 비주얼과 그렇지않은 맛


p.s) 이후 우리는 각종 소스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을 알아냈고, 그 뒤로는 자연주의와 자본주의를 적당히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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