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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사랑이 노력으로 안 된다는 게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노력으로 안되는 게 있다는 게.”


 한때 후배 K의 차에 탈 때면 지겹게 듣던 노래의 가사다. 갓 서른을 넘긴 후배가 느낀 사랑에 대한 철학이었을까. 뜻밖에도 이 노래 가사를 몇 년 만에 다시 떠올린 건 어머니의 탄식과 같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아들도 말하는 게 힘들지? 엄마도 그래, 요즘.”


 군대에서 생활한 2년 6개월 남짓을 제외하고 함께 한 시간이 40여 년이다. 당시 우리 가족만큼 이나 오랜 시간을 지나온 단독 주택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대대적인 공사 중이었다. 인테리어 비용에 보태시겠다며 다시 일을 나선 어머니와 나는 집안 살림까지 나눠가며 서로의 체력을 걱정했다. 그러나 의지와 노력은 항상 본능에 뒤 따라오는 것일까. 나보다 먼저 집에 오신 어머니를 보고 퇴근 후 내가 던진 말들은 참 건조하고 무심했다.

 “나 왔어요. 저녁 먹었어요?”

 그리고 되돌아오는 어머니의 말들을 난 손을 내저으며 갈음하곤 했다. 이렇게 말이다.

 “어서 씻고 쉬세요. 피곤하잖아?”

 공손한 표현인 듯, 어머니를 걱정하는 듯 보이는 나의 말은 더 이상 소통하기엔 피곤하다는 단절의 선언이었다. 그때 돌아온 말이었다.

 “아들도 말하는 게 힘들지? 엄마도 그래, 요즘.”


 사랑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회의 적인 가사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연인뿐 아니라 세상 모든 관계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단지 더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쪽이 있을 뿐, 세상만사는 사람의 일이고 그렇기에 관계로 귀결되며, 그 시작부터 유지와 끝맺음까지도 노력 없인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이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변명은 애초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하는 게 어렵고 힘들다는 투정이었다면 차라리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현실에 동의하지 않겠다.

 노력은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관계의 구조. 연인이 관계의 내리막에 들어서 서로가 정보 회피자가 되는 순간, 다시 남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셈이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생계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과감하게 사표를 던져 갈등을 빚는 상사 혹은 동료와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자식의 천륜은 끊을 수 없기에 잠시 포기할지 몰라도 온전히 내 던질 수 없다. 그러니 노력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다짐한 친구나 연인이라면 그 관계의 지속은 결국 노력에 있는 게 아닐까.


 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배우 차승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제 불혹을 넘기셨는데, 제일 달라진 점은 뭔가요?”

 “어릴 때는 주변에 사람이 참 많았어요. 뭐, 이름 알려지고 유명했으니까(하하). 그게 그때는 참 좋았거든요.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고 어디든 가서 환영받는 게.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다 부질없더라고요. 이제 인간관계의 폭을 줄였어요. 맘 맞는 친구들 그리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노력해요.”

 딱 내 마음이다. 아니 매사에 흔들리는 삶을 살며 불혹은 옛 말이라고 외치는 또래들이 느끼는 공통된 관계의 진리일 것이다.


 40. 내 나이가 아니다. 아버지가 태어나신 해다. 이미 두 번째 틀니를 해 넣으신 아버지는 청력도 점점 희미해져 드라마에서 보듯 귀에 가까이 대고 말하지 않으면 주변인이 고성을 내야 소통이 가능하다. 어머니가 말하기도 힘들다는 불평 아닌 하소연을 짧게 던지신 며칠 후, 1년에 한 번 부모와 여행하기를 실천해야 하는 10번째 날이 찾아왔다. 코로나로 반도에 발이 묶여 우리도 또 한 번 제주를 휴가지로 선택했다.

 잠이 없는 두 분을 감안하고 싼 비행기도 이용할 겸 동트기 전 택시를 타고 공항을 향하던 때였다. 마른기침을 몇 번 하시던 어머니가 택시기사 눈치가 보였는지(코로나가 한창이던 당시엔 기침도 마음대로 못했다.) 아버지를 향해 속삭이셨다.

 “사탕!”

 “뭐?”

 택시 주행 소리에 알아들을 리 만무했고 으레 나오는 퉁명스러운 답변이 오갔다. 잠을 못 자 예민해서일까. 나 역시 곱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고 분위기는 더 어색해졌다.

 “왜요? 금방 도착할 텐데. 모 놓고 내릴라!”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양화대교쯤이었을까. 왼쪽 어깨를 툭 치는 손이 있었다. 5만 원 지폐가 쥐어진 아버지의 손이었다. 무심히 받아 들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ㅎㅎ, 고마워요.”

 분명 타인의 호의였다면 이렇게 살갑게 표현했을 것이다. 가족이라서? 원래 퉁명스러워서? 쑥스러워서? 애써 매년 제주를 오가는 수고를 실천하면서도 평소 살가운 말 한마디에 선뜻 노력하지 못함 왜 일까. 선심 쓰듯 가끔 드린 용돈 중 한 장이었으리라. 5만 원…. 지갑에서 꺼내던 카드를 밀어 넣고 나는 그 화해의 지폐를 택시비로 기꺼이 방출했다.


 그러고 보니 후배 K가 MZ세대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다. K는 아직도 사랑이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을까?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까? 옛 말로, 상투를 틀고 자식을 낳아 진정한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생각이 유효한지 궁금하다. 지금도 세상 곳곳을 돌며 취재에 여념 없을… 아니, 아들의 재롱에 푹 빠져 있거나 마누라의 잔소리에 찌들어 있을지 모를 K에게 묻고 싶다.


 “사랑이 노력으로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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