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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영화는 봉준호, 뉴스는 김준호

 앵커라는 이름 아래 주말과 휴가를 제외한 거의 매일 뉴스를 했다. 대체휴일이라는 제도가 크게 달갑지 않은 많은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MZ세대들이 말하는 소위 ‘듣보’ 아나운서다. 굳이 ‘잡’ 자를 붙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수려한 진행 솜씨를 뽐내는 김성주도, 재치와 유머로 무장한 전현무도 아니다.

 그런 내가 한 해 한 명에게 주어지는 한국방송대상 앵커상을 받을 수 있었던 행운은 무려 17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일종의 보상이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절실히 느끼며, 상 따위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수십 년 지키는 평범한 이웃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게 찾아온 행운을 온전히 성실함에 두고 싶은 이유는 지극히 꼰대스러운 믿음 때문이다.


 상은 묘한 환각을 가져온다. 뭔가 인정받고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 말이다. 한동안 그 환각에 취해 구름 위에 떠 있었다. 그 흥분은 달콤했다. 뭐든 하면 될 것 같았고, 어제와 다른 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환각이라 표현한 것은 순간의 착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성공이라는 의미는 있다. 작은 성공들이 쌓여 자신감이 붙고 이는 긍정의 심리적 미장센으로 작용해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상이 주는 환각은 나의 정체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앵커상을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듣보’이고 월급을 받는 조직원일 뿐이었다.

 약발이 떨어지고 넋두리를 늘어놓던 술자리에서 이를 명백하게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10년 가까이 함께 방송하며 나를 지켜봐 온 작가 J였다.


 “네 인생의 서사는 책장에 덩그러니 서 있는 그깟 상패가 말해 주는 게 아냐.”


 작가 J는 술이 깬 후 역시나 자신이 내게 한 조언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이 단서가 돼 나는 잊고 있었던 나의 극적 행동을 다시 떠올렸고 꼰대스러운 믿음을 되찾았다.


 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단칸방을 벗어나지 못했던 가난한 노동자 부모의 아들이었다. 누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맞벌이하는 부모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였다. 꿈이나 장래 희망 등은 둘째치고 돈 걱정에 한숨짓는 부모들을 매 순간 애처롭게 지켜봤다. 그들에게 짐이 될 수 없어 성실히 학교에 갔고, 내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다. 스스로 만든 일종의 가훈이나 급훈과 같은 것이었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주 어린 날부터 나는 다음 세 가지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한숨 쉬지 말자!”

 “욕하지 말자!”

 “침 뱉지 말자!”


 이를 위해 고운 말을 가려 썼으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내려 애썼고, 용모와 주변을 깔끔히 유지하려 노력했다. 부족한 내가 주눅 들지 않고 친구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 방법이라는 본능적 믿음이었다. 단순한 세 가지의 지속된 행동으로 나는 2018년 45회 한국방송대상에서 그 해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앵커상이라는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 옛날 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물론 개천도 없고, 그 개천에서 용이 날 일도 없는 세상이다.

 부끄럽지만 상을 받은 이후 많은 축하를 받았고, 그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놨다. 후배들에게는 꼰대로 비쳤을지 모르고, 친구들에게는 미움을 살지 모를 자랑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상을 받은 이야기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개인의 이야기를 언어로 재현하는 에세이는 대표적 서사일 것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대중에게 서슴없이 풀어내기 시작한 이면에도 현재 전 세계의 생활양식과 다양한 학문적 이론의 배경으로 작용한 모더니즘이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들어 근본 철학인 ‘깊이 있고 새로운 것’은 대량생산으로 인한 끊임없는 모방과 자기 복제로 퇴색했다. 대중 사회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을지는 모르나, 깊이 있는 것과는 애초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이론가 장 리오타르Jean Lyotard는 이러한 표면적이고 깊이 없음을 가리켜 ‘거대 서사의 종언’이라 주장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민족주의나 종교주의 등의 거대 서사에 통제되거나 지배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의 대중문화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개별적이고 단편적이다. MZ세대들은 자신의 사소한 일상이 가장 소중하다 생각한다. 이러한 문화흐름의 이면에는 마치 대량 복제 시대에 단 하나 남은 ‘요강’의 가치가 치솟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개별적 삶의 이야기를 미시서사라 칭한다면, 오히려 가치 있고 희소한 것은 ‘거대서사’가 되는 아이러니다.


 거대서사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할 수 있는 커다란 ‘이야기 틀’을 의미한다. 흡사 하이콘셉트와 같다. 특정 사안의 지엽적인 이야기들이 아닌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 즉 주제의 의미도 갖는다. 나이키의 ‘Just Do It'이나 애플의 ’혁신‘ 그리고 마틴 루터킹의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꿈‘ 등도 거대서사다. 우리가 거대서사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을 모으는 힘을 지니며 충성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리오타르와 같은 역사학자의 관점에선 미시서사일지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서 우리의 개별적 삶은 또 다른 하나의 세계이며 당신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서사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진정성과 지속성을 가진 극적 행동에서 비롯한다. 당신을 향하는 공통된 ‘평판’을 구체적 문장으로 명확히 표현해낼 수 있는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국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주변 영웅들의 거대서사와 나와 당신의 그것이 다를 이유는 없다.


 상이 주는 환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어느 날. 나는 개편을 통해 7년간 1,500여 회를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교체됐다. 방송이 끝나고 받아 든 화분에는 분홍 리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영화는 봉준호, 뉴스는 김준호’

 그랬다.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은 ‘어떤 방송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아나운서’였다. 타인이 정의하는 정체성과 내가 써 가는 서사가 일치할 때, 진정한 소통의 통로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받은 앵커상은 타인의 인정을 대변하지도 그들과의 소통 창구도 되지 못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배우 윤여정 씨가 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은 이를 더 명확히 해준다.


 “열등의식에서 시작됐을 거다.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다가 시작했다. 열심히 대사 외우는 것, 그래서 남한테 피해 안 주자는 게 나의 시작이었다. 편안하게 내가 연기 좋아해서 하는 것보다 난 절실했다. 먹고살라고 연기를 했기 때문에 나한텐 대본이 성경 같았다. 많이 노력한다.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묻는 관련 명언도 있지 않나? ‘practice'라고 답했다는, 연습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듣보’ 아나운서다. 더 이상 누구나 아는 방송인을 꿈꾸지 않는다. 물론 미래의 어느 순간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송대상을 받았을 때처럼 환각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그것도 삶의 과정, 내 서사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메를로 퐁티가 말한 ‘당신 자신이 메시지’라는 기호학적 표현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모든 소통과 관계의 시작은 나 자신이다. 당신의 삶이 바로 하나의 이야기며 그 이야기는 타인이 내린 정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두면 안 된다. 타인의 정의는 당신의 서사를 그들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세상에서 어쩌면 운명은 더 이상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궤도는 매 순간 자신의 작은 말과 행동을 통해 충분히 긍정적 방향으로 수정해 나갈 수 있다.

 내가 정의 내린 언어의 세 축은 목표와 대상 그리고 극적행동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서사는 결국 당신 자신에게서 비롯한다. 당신이 주인공인 단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라. 그것이 당신의 언어이며, 그 언어는 곧 당신의 운명이 된다. 여러분 모두에게 묻겠다.


 “당신의 삶을 이끌 서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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