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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험한 관계의 다리가 되어

 사람들 사이에 놓인 벽을 낮추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때론 예기치 않은 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나운서로 20여 년을 살며 수많은 결혼식의 사회를 부탁받았다. 그런데 가장 최근 결혼식은 내가 더 이상 사회를 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직장 동료였던 신랑 K군은 평소 성격이 다소 투박하고 무뚝뚝하지만 후배들을 잘 챙겼다. 본 예식을 시작하기 전 하객들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스몰토크로 ‘츤데레’라는 표현을 그의 수식어로 사용했다. K를 아는 하객들의 공감을 의식한 애드리브였다. 그러나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신랑이 던진 말은 나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했다.


 혼주인 신랑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츤데레’라 표현해 기분이 썩 좋지 않아 하셨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츤데레라는 표현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그저 어감이 좋지 않아 칭찬이 아닌 것으로 느끼셨다는 것이다. 츤데레tsundere는 일본어에서 기인한 신조어로 ‘겉으론 무심한 듯 행동하지만 은근히 챙겨주는 사람을 칭하는 말’로 쓰인다. 신랑을 사이에 두고 처음 접하는 하객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벽을 낮추기 위해 선택한 즉흥적 표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청중인 혼주와의 교감에 실패한 실수가 되고 말았다.


 토크쇼의 전설 래리 킹Larry King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교감인'이라 칭했다. 그러면서 말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진정한 공감을 언급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교감은 나눔이다. 상대의 아픔에 맘 아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성공과 행복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진정한 친구의 기준을 여기에 두라고 인생 선배들은 조언한다. 당신이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기뻐해 줄 것이라 믿는 친구에게 먼저 알렸다고 생각해 보자.


 “나 새 직장에 취직했어!”


 친구 C가 말한다.


 “그래? 뭐하는 회산데?”


 그리고 J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너무 잘됐다. 그간 내색 안 했지만 힘들었지?”


 말 한마디에 진정성을 논하는 것이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구에게 맘이 가는가?


 심리학자 피아제Piaget는 아동들의 ‘자기중심성’에 주목했다. 자기중심성은 아동이 이기적이기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여기에서 ‘아동이 지니는 특성’이라는 말 대신 ‘모든 인간의 특성’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이해의 폭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에 비례해 자연스레 쌓여가는 것이 아니다. 피아제는 통상 8살을 전후해 자기중심성은 해소된다 했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학습의 결과일 뿐 인간의 본성엔 자기중심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동의 자기중심성은 청년이 되며 ‘상상 속의 청중’으로 옮아간다. 청소년들은 매사에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한다. 이에 따라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행동한다. 이 역시 성인이 되어서도 남아있다. 자기노출을 통한 인상관리가 바로 그 방증이다. 스스로를 잘 보이고자 하는 일련의 과정은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본능에 기인한다.

 나는 불과 동네 편의점에 갈 때조차 머리를 감지 않고는 집을 나서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와 당신을 주목하지 않는다. 하물며 당신이 머리를 감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눈치 채기는커녕 아예 관심 없다. 온종일 당신만 이에 신경 쓰며 하루를 망치는 셈이다. 그래서 ‘조명효과’라 부르는 것이리라. 연극무대에서 조명은 늘 주인공을 비춘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선 주인공이지만, 무대 위의 배우는 아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마치 누군가가 관객들처럼 우리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 속에 하루를 보낸다.


 행동경제학자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 교수는 재밌는 실험으로 이를 입증했다. <Can't smile without you>, <When October goes> 등의 노래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 베리 메닐로우Barry Manilow의 모습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한 학생에게 입게 했다. 그리고 오가며 만난 학생들이 얼마나 그 가수가 프린트된 티셔츠인지 알아봤는지를 예상하게 했다. 그리고 이 학생이 만난 학생들에겐 지나친 후 베리 메닐로우가 프린트된 옷인지 알아봤냐고 물었다. 결과는 정확히 두 배 차이로 알아봤을 거라는 학생의 예측이 높았다. 8)


 앞선 사례들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공감과 교감에 대한 고민의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신의 청중 역시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스스로가 무대의 배우라고 느끼며 생각보다 많은 타인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다면 그 바람을 이루어주면 어떨까? 청중에 대한 집중과 몰입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조카가 셋 있다. 막내 조카는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늦둥이다. 아영이가 3살 때쯤이었던 거 같다. 혼자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이 꼬맹이가 자꾸 텔레비전의 화면을 맨손으로 닦고 있는 게 아닌가. 집에 먼지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생후 35개월짜리 벌써 청소를 알다니 기특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문지르는 행동에 패턴이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렇다. 아영이는 자기 몸채만 한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기호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인간의 몸과 매체를 동일하게 바라봤다. 더 정확히는 인간의 몸을 확장한 것이 매체라는 뜻이다.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에 대한 열광과 중독 증상은 그것을 매일 문지르는 우리의 행동 때문이다. 여자 친구나 엄마보다 더 자주 더 긴 시간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존재 아닌가. 퐁티의 예언대로 어느 순간 인간과 매체는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매체와 매체 간의 상호성과 비교할 수 있다.


 매체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소통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매체로 양분해 분류되기도 하며,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르게 보여지는 것으로 극명하게 다른 해석과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발음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친구를 만날 장소가 ‘신천’인지 ‘신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듯, 당신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의도와 해석 간의 벽을 빈번히 느끼게 된다. 당신 자신이 하나의 매체라면 당신의 말은 메시지가 되고 이는 다른 매체, 즉 타인의 반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중에게 집중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다.


 이는 결코 등락을 가르는 면접이나 회사의 명운이 달린 투자자를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과 같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반복하는 가족과의 식사자리 혹은 연인과의 데이트 순간이나 친구들과의 수다,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의 대화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노아의 방주 이후 하느님에 대항해 쌓아 올린 ‘바벨탑’은 인간이 뿔뿔이 흩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바벨babel의 뜻은 ‘그가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다’이다. 사람 사이의 벽은 결국 그들의 언어에서 비롯한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 국제 원조를 천명하는 와칸다의 티찰라(故 채드윅 보스만 분) 왕이 UN에서 이런 연설을 한다.


 “In times of crisis, the wise build bridges while the foolish build barriers.(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현명한 자는 다리를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벽은 세운다.)"


 현명한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관계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면 일상의 말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 쌓아 올린 이미지 장벽을 낮추고 상대에게 몰입하고 교감을 나누는데 초점을 맞춰라. 그것이 당신에게 사람과 세상으로 통하는 새로운 다리를 놓아줄 것이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참고 : 피아제의 심리학 용어와 포머스 길포비치의 조명효과와 관련한 내용은 네이버 나무위키의 내용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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