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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호 Oct 24. 2021

그렇고 그런 사이

 나의 애마는 200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내가 고삐를 쥐고 잘 부탁한다며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 이후 벌써 15년을 넘겼다. 수차례 죽을 위기에서 생환해 마지막 찾은 병원에서 아슬아슬 고비를 넘기고 있을 때였다.

 “내 애마도 슬슬 문제가 생기네. 좋은 센터 있으면 소개 좀 해줘.”

 내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출연자로 인연을 맺는 평론가 K의 부탁을 받고 독일 차 수리 전문점을 소개해 줬다. 와이퍼가 원활히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였는데, 처음 수리를 다녀와선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한 주 뒤 다시 만난 K는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 그 아저씨 너무 나이브해서 다시 못 가겠어.”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 바라본다. 이는 마치 안경테 안에 세상을 넣고 보는 것과 같다. 이를 앞서 이미지 장벽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심리학에서는 프레임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으로 정의해 왔다. 인간은 자기 중심성이 강해 자신과 연관된 것이 마음이 편하고, 어떤 것이든 자신과 관련지어 바라볼 때 기억도 잘 된다. 문제는 이러한 본능에 충실할수록 큰 착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세상을 일체의 주관적 재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에 객관적 사실 사이와의 괴리감 없이 누구보다 공평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는 심리학에서는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 하는데, 나의 생각이 맞고 그렇기에 내 선택에 타인도 동의할 것이라는 일종의 착각이다. 최근 들어 주변에 이렇게 스스로 내세우는 이들이 제법 많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난 나이브한 사람이야.”


 미국 호박농장의 ‘엄청나게 큰 호박’은 누가 보는가에 따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난다. 핼러윈을 맞아 ’Pumpkin Patch Outing'이라 하는 호박 농장 방문에서 10살 아이가 본 그것은 내가 본 것과 같지 않다. 호박이라 하면 요리할 때 쓰는 애호박만을 떠올리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샌프란시스코 농장의 ‘엄청나게 큰 호박’을 사다 드린다면 당장 쫓겨날지도 모른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말이 지닌 두 가지의 기능이다. 하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내용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이이며 어떻게 변해가길 원하는지의 관계적 측면이다.

 “준호씨, 이번 주말 신입사원들 면접이 있는데, 별일 없으면 면접관 맡아 주지 않겠어?”

 이 말에는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위계 관계와 더불어 주말에 출근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자기야, 이번 여름휴가 어디로 갈까?”

 이 표현에서 두 사람은 여행을 함께 가는 연인이라는 관계를 내포함과 더불어, 여름휴가 장소를 결정하자는 내용을 수반한다. 대화에 있어 갈등 상황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의 두 기능이 서로 상충할 때 발생한다. 말의 내용은 서로의 관계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호감이 간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여성에게 대뜸 “시간 있으시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라고 한다고 데이트를 시작할 수는 없다. 그 여성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뭐래? 우리가 언제 본 사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피를 마시자는 내용에 앞서 관계를 맺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때 인터넷에 떠돈 속칭 작업 성공기가 있다. 지하철에서 앞에 앉은 여성이 마음에 든 한 청년은 대뜸 그녀의 무릎 위에 법전을 올리고 내려버린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법대생의 학교와 이름 그리고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그 여성은 이후 어찌했을까? 두 사람이 어떤 사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남성이 호감이 있다는 내용과 더불어 여성은 법전을 돌려줘야 하는 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다툼의 원인도 바로 이 커뮤니케이션의 두 가지 기능이 엇박자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구와 다투고 나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여자 친구에게 “너도 잘못한 게 있네!”라고 말했다가 토라진 여자 친구를 달래려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든 경험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직장 상사의 부당함에 열변을 토하는 부인에게 “당신이 일을 잘했으면 그랬겠어?”라고 눈치 없이 내뱉은 말에 저녁을 굶어야 했던 남편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주환 교수는 남성과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가 가져온 갈등이라 말한다. 남자들은 내용에 집중하는 반면, 여성은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때론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시하는 것이 갈등을 피하는 핵심이다. 당신이 세상 공평하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라. 그리고 관계를 먼저 떠올려라. 전후좌우 내용을 분석하는 일 따위는 일단 집어치우라는 뜻이다. 지금 옆에 있는 그녀와 행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내용과 관계는 모든 대화와 설득의 상황에서 상대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때로는 분명히 내 생각이 맞음에도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주제가 공익적이고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문제일수록 이러한 간극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설득은 상대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고, 그 동의라 함은 공감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을 가진 상대와의 대화나 협상을 모두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집을 꺾고 관계를 지켜내야 할까.


 와이퍼 수리를 우여곡절 끝에 마친 후 카센터에서 무슨 대화를 했으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난 평론가 K에게 묻지 않았다. 왜냐면 나와 카센터 사장님 그리고 나와 평론가 K, 나는 그 어느 쪽에도 문제없이 각각의 관계를 잘 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한 시간이 월등히 오래된 K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럴 리 없지만, 법정 다툼이라도 하게 된다면 말이다. 다행히 K 애마의 와이퍼는 이후 별문제 없이 눈물을 잘 훔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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