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남북관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이야기 – 정욱식의 피스메이커③

>>정욱식(평화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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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경제난 때문?


2020년 6월 북한이 보여준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6월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로 시작된 내담 강경책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의 폭파로 절정에 달했다. 내남 삐라 살포 준비를 마쳤다고 공개하는 한편, 대남 확성기 재설치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이로써 북한이 공언했던 “연속적인 보복조치들”이 하나둘씩 행동에 옮겨지면서 남북한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적 행동을 보류하겠다고 결정하면서 남북관계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6월 24일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회의 예비회의에서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성된 최근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회의에 제기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6월 17일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발표했던 대남 전단 살포, 금강산 관광 지역과 개성공단 내 군부대 전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 초소(GP) 복구, 포병부대들의 전투직일근무 및 접경지역에서의 군사 훈련 등이 당분간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위기로 치닫던 남북관계는 ‘냉각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철회가 아니라 보류이기 때문에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위기 상황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언행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만큼,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한 분석도 대개 억측에 머물렀다. 북한의 경제난에서 그 이유를 찾았던 시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경제 사정을 잘 모른다. 미국 주도의 강력한 경제 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만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에 불과해 북중교역이 크게 위축되어도 경제에 미칠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제재에 맞서 국산화의 비중을 비약적으로 높여왔다. 아울러 강요된 ‘폐쇄 경제’가 코로나19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진단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대남 강경책의 원인을 경제난에서 찾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노선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제재 해결 기대감이 싸늘하게 식자 “자력갱생”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전부터 자력갱생을 강조하긴 했지만, 이를 전면화시킨 것은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였다. 그런데 불과 6개월도 안 되었는데 경제가 너무 어려워져 남한에 분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이는 자력갱생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게 민심 수습책이 될 수 있다고? 난 어색하다고 본다. 물론 늘 그랬듯이 북한 경제는 어려울 것이고 최근에 더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 경제난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남한의 약속 불이행으로 보고 대남 강경책을 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그래서 이보다는 더 분명한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2. 하노이 노딜과 9.19 군사 합의의 역설


북한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19년 2월 말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할 테니 대북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중재안에 기초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에 크게 실망한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돼줄 것으로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에 의해 ‘최고 존엄’이 모욕당했다고 여긴 일이 벌어졌다. 스텔스 전투기 F35 도입이 연이어 이뤄지고 한-미 연합훈련도 실시될 것으로 보이자, 김 위원장은 2019년 7월25일 ‘권언’을 내놨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 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자가 사태 발전 전망의 위험성을 제때에 깨닫고 최신 무기 반입이나 군사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 시위 사격 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했다. 이후 상황은 김 위원장의 ‘권언’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8월 11일 시작된 한미 군사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까지 포함되었다. 이는 사실상 북한 점령 훈련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약속을 뒤집고 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한 것도 문제였지만, 이 훈련에 이들 내용까지 포함한 것은 더욱 큰 문제였다. 사흘 후에는 국방부가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을 공개하면서 5년간 무려 290조5000억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다음날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이 평화경제론을 실현해 일본을 따라잡자는 취지로 연설했다. 그러자 북한의 정부기관들과 매체들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경쟁적으로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삶은 소대가리가 양천대소할 일”이라며 “남조선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가운데 지켜진 것이 무엇이냐고 문재인 정부를 몰아붙여왔다. 그런데 '부분적으로나마' 지켜진 것이 있었다. 9.19 군사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의 이행이 신속하고도 순조롭게 이뤄졌다며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부여는 북한의 대남 불신과 배신감을 키워줬을 공산이 크다. 군사합의를 두고 김여정 제1부부장이 "있으나마나" 하다면서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9.19 군사 합의에 대한 남북한의 상반된 인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남한은 군축에 앞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부터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반면 북한은 군축을 우선시했다. 특히 군축은 김정은의 전략 노선에 따라 더욱 중요해졌다. "상용무력", 즉 재래식 군사력 부담을 줄여야만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내적 자원 동원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있어서도 군축은 매우 중요하다. 비핵화 이후 북한이 한미연합전력과 비교할 때 군사력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경우 비핵화 자체를 결단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판문점 및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군 수뇌부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거수경례를 시키면서까지 "단계적 군축" 추진에 합의하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군비통제를 둘러싼 남북한의 입장 차이는 4.27 판문점회담과 9월 평양회담에서 조율됐다.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구축에 따라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구축" 수준에서 멈췄고 오히려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에 나섰다.

대규모 군비증강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2019년 7월 25일 김정은의 "권언"도, 북한 기관과 매체들의 비난도 소용없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던 남한의 국방비는 올해 들어 50조 원을 돌파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받던 군사력은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반면 2018년과 2019년 세계 18위로 평가됐던 북한의 군사력은 25위로 떨어졌다.



3. 북한 군부의 불만과 김정은의 ‘군부관리와 위기관리의 변주곡’


‘권언’까지 내면서 대규모 군비증강 및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던 김정은으로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자 난감한 처지가 됐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던 북한군 수뇌부들은 그 이후 상황에 대해 김정은에게 보고했을 내용을 추정해보면 이러한 분석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이 중단을 약속했던 한미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여기에 '수복지역에 대한 안정화 작전', 즉 유사시 북한 점령 훈련까지 포함됐다는 보고가, “단계적 군축” 추진에 합의했던 문재인 정부가 F-35를 비롯한 최첨단 무기 도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보고가, 그리고 접경 지역에 있는 북한 군인과 주민들이 남쪽에서 날아온 삐라를 줍느라 불만이 크다는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위신과 체면이 깎인 김정은 정권의 대남 불신과 증오는 커져갔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6월 17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북남관계를 책임진 주인의 자세와 입장으로 돌아오라는 우리의 권언과 충고에 귀머거리, 벙어리 흉내를 내며 신의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반문한 것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대남관계를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고 군사태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군부 달래기’의 성격이 짙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 고조 및 충돌 위험은 김정은에게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군사적 위기 도래시 커질 수밖에 없는 군부의 영향력은 국정 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보류’ 지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추후 상황 전개의 공을 남측에 넘기면서 위기관리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는 일방의 자제와 선의적인 행동의 결과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으며 호상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쌍방의 노력과 인내에 의해서만 비로소 지켜지고 담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김영철의 담화로도 뒷받침된다. 즉, 김정은 정권이 6월 4일 김여정의 담화부터 6월말까지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군부 관리와 위기 관리의 변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김정은 정권의 '군부관리'와 '위기관리'가 길항관계(trade-off)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즉, 김정은의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군부 통제가 가능해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위'와 '현실'의 구분이다. 가령 남북경협 재개는 미국 주도의 제재가 촘촘하게 짜여있어 당장은 어렵다. 이에 따라 제재와 같은 구조적 제약과 무관한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있을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부와 여당이 천명한 대북전단 살포 규제다. 이는 북한의 대남 강경책의 방아쇠를 제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냉각기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나머지 둘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국방비 감축을 통한 "단계적 군축" 의지 표현이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사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세 가지 조치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마도 향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를 뽑으라면 하반기에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실시 여부일 것이다. 만약 훈련이 강행된다면 북한의 군사적 선택은 강경한 방향으로 흐를 공산이 대단히 크다. 존 볼턴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에도 나온 것처럼, 김정은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북한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들의 불만이 크다며 중단을 요청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오늘날 갖는 의미는 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김정은의 군부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훈련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왔고 대선을 앞두고 북한 변수를 관리할 필요를 느끼고 있을 트럼프로서도 훈련 중단을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미정상간의 전화통화를 통해 조속한 발표가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발표를 가능케 하는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국방비 감축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를 구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민생을 구제하는 데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올해 50조 원을 넘긴 국방비 가운데 5조 원을 줄이고 내년부터 4년 간 국방비를 45조 원 규모로 동결하면, 국방부의 중기계획과 비교할 때 약 65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0년 동안 45조원으로 동결하면 약 150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 재정지출과 재정적자의 엇박자를 줄이면서 민생과 우리 사회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재원의 일부가 국방비 조절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보를 무시한 철없는 발상'이라고 반문할 수 있다. 결코 그렇지가 않다. '군사 안보'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인간 안보'를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비'를 얘기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군비에는 '군비(軍費)'와 '군비(軍備)'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군비(軍費)는 "군사상의 목적에 사용되는 모든 경비", 즉 군사비나 국방비를 의미한다. '군비(軍備)'는 "육·해·공군의 병력, 무기, 장비, 시설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군사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까닭은 국방비를 소폭 줄여도 군사력은 오히려 증강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또 하나는 군사력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일시적인 국방비의 증감보다는 '국방비 누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국방비 지출을 비교해보자. 대개 무기체계의 수명을 30년 정도로 보는 것을 감안해 1990~2019년 30년 동안을 비교해 보면, 한국의 국방비 총액은 약 684조 원에 달하고 북한은 70조 원 안팎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하듯 미국의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는 2020년 군사력 순위로 한국을 세계 6위, 북한을 25위로 평가했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국방비를 45조 원 정도로 동결해도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은 계속 보유할 수 있다. 국방비에서 비중이 작은 사병 급여를 지속적으로 높여도 군사력 건설과 직결되는 방위력개선비와 전력유지비를 합쳐 매년 30조 원 가까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도 상당한 수준의 군비증강이다. 국방비 조절을 통해 확고한 대북 억제와 적절한 주변국 억제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군사 안보와 인간 안보의 균형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상기한 세 가지 조치는 진즉부터 했어야 했다. 연합훈련 중단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두 차례나 약속한 바였다. 대북 전단 살포 중지와 "단계적 군축" 추진도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차례나 합의한 것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 오늘날의 남북관계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낸 주된 요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불편하더라도 이 진실을 직시할 수 있을 때 슬기롭게 냉각기를 거쳐 반전을 준비할 수 있다.



5. 공감 형성이 필요할 때


남북관계 파국의 원인과 해법을 군사 문제 중심으로 살펴본 이유가 있다. 북한의 대남 증오심의 중대한 원인이 돼 왔는데, 정작 이를 거론하는 전문가나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상 징후가 작년 하반기부터 확연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역지사지의 태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9.19 군사 합의는 제재와 같은 국제적 제약과 무관한, 그래서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었던 분야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를 구할 수 있는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군사 문제는 제재와 무관하기에 문재인 정부가 결심만 하면 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사구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상대방의 언행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공감'에 있다고 말한다. 협상 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한 바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북한은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평화의 악수"를 나눌 때와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가 끝난 다음에 보여준 태도가 너무나도 다르다고 간주해왔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해왔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최고치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이 정상회담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고 느낄 때, 공감이 있어야 할 자리엔 증오가 똬리를 틀기 마련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기한 세 가지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이는 북한이 남한에 품은 독기를 빼내는데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 군부를 제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들이다. 늘 그렇듯이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앞날에 대한 예측이 넘쳐나지만, 최고의 예측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북한 역시 트럼프의 '최대의 압박'을 모욕으로 간주해온 것처럼 남한을 향한 막말과 파행적 행동을 멈춰야 한다. 자존심과 존엄은 북한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최근 행태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이유를 북한은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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