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 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3
/ 장용준 정리
前 전남 함평고등학교
☞ 왜 세 번째 인터뷰이로 ‘김유진’을 선정했는가?
새 봄이다. 화사한 봄날에 ‘어떤 선생님을 인터뷰이로 모실까?’, ‘상큼한 향기 가득한 선생님이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편집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초대한 분이 김유진 선생님이다. 교단에서 좌충우돌하며 1년을 보내고 2년째 접어드는 초짜 교사다. 한참 선배가 된다는 것을 무기삼아 ‘교사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화두 삼아 여러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따북 따북’ 즉답해 주는 젊은 김 선생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인터뷰였다.
1. 새내기 선생님이신데, 무척 반가워요. 우선 본인 소개부터 해주시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서울 은평구 연신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유진이라고 합니다! 2018년에는 2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한국사, 세계사를 전담했어요.
2. 그럼 올해가 교직 2년차겠네요. 어때요, 학교 현장에서 1년을 근무해 본 소감이?
음~~,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 시절에는 선생님들의 주된 업무가 수업인 것 같았고,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교단에 서보니 수업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행정 업무나 담임 업무 비중이 생각보다 컸어요. 그래서 교사란 직업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어요.
3. 학교 다닐 때는 임용시험만 합격하면 뭐든 다 할 것 같지 않았나요?
네... 특히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역사교사라는 꿈을 꾸어 왔어요. 그러다보니, 선생이란 직업이 저에게 정말 잘 맞을 줄 알았어요. 제가 꿈꿔온 수업을 마구 펼치며 학생들의 역사적 사고력을 신장시켜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또 이제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퇴근 후에는 나만의 여유를 만끽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수업은 인스턴트식으로 준비해나가기에도 체력이 딸려서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그 다음날 7시까지 내리 잠만 자는 삶의 연속이 되더라고요.
4. 학교 현장에 발을 내밀어 보니, 이론으로 접한 학교와 실제 몸으로 뛰며 경험하는 학교는 많이 차이가 있지 않던가요? 저는 그게 초임 시절 저 자신을 많이 괴롭혔는데......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저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사’가 되는 것이 학부시절의 목표였어요. 무조건 교사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에 순응하도록 강요하는 교사가 되지 않기로 다짐했었고, 이에 입각해서 학급경영계획서를 레포트로 제출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학년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이 부분을 어필했더니 문제가 터졌어요. 학생들이 다른 수업시간에는 허용되지 않을 것 같은 껌 씹기, 물 마시러 나가기 등등 나름의 ‘일탈’을 그나마 자유로운 제 시간에 마구 남발 하더라고요. 이론을 실제 현장에 무식하고 단순하게 적용시키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어요.
또 임용 전에는 학교에서 교과 융합형 수업 등 교과 및 교사 사이의 협업이 활발하리라 생각했는데, 학교에 있다 보니 눈앞에 바로 있는 업무와 수업준비에 치여서 뭔가 큰 뜻을 품고 수업을 꾸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들어온 수업사례들은 사실 매우 소수의 ‘우수 사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본인만의 소신을 가지고 교육철학을 수업에 적절히 녹여내는 선배 교사들이 한층 대단하게 보였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고요.
5. 학교 현장에 1년여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처음에는 제가 나이가 어리고 여자 선생님인데다가 항상 웃는 상이어서 혹시나 학생들이 저를 지나치게 친근하게만 대할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사실은 화가 나지 않았는데 정황 상 학생들에게 화가 난 척을 하면서 훈계해야 할 때가 있기도 했고, 다른 선생님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엄하게 대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 것인지’를 몰랐던 점도 참 답답했어요. 교직에 들어와서 충격적이었던 것이, 제가 맡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빗자루 질을 제대로 못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애들이 엄살 부리느라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청소하는 법을 모르더라고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또 하나는 학생들에게 진심을 표현하고 다가가는 것도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무의식중에 학생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다보니 학기말에 학생들에게 헤어짐의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도 참 쑥스럽고 어렵더라고요.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밀고 당기기가 있는데 저는 아직 그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6. 아니 왜 아이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나요? 교사라면, 학생들과 친근해야 더 좋은 교사가 되지 않을까요?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학생들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할지를 잘 몰라서 막연히 가까워지기만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 대한 학생들의 친근함이 혹여나 지나쳐서 만만함이 될까 걱정도 되었고요. 예비교사 시절 저의 가장 큰 고민이 혹시 교단에 섰을 때,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하진 않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또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고민이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을 때 가볍게 비춰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거리를 두려고 했어요. 처음부터 일정 거리를 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워 질 수는 있겠지만, 처음부터 가까워졌다가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되돌리는 것은 어려우리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7. 좋은 교사가 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 모두는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삶을 살아가는 선생들인데. 노력하고 실천하는 길 밖에 없지 않겠어요?
예.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사로서 ‘성공적으로’ 다가서기 위해 일부러 같은 학교 선배 선생님이나 새내기교사 모임의 선생님들께 많이 여쭤보고 있어요. 선배 선생님들이 학기 초에는 학생들 앞에서 ‘나는 규칙 준수를 중요시하는 교사다’라는 것을 강조하라고 말씀하시고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학급 이벤트나 수업, 상담을 계기로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라고 하시더군요. 작년엔 수업진도 나가기에 급급했고, 학급 경영도 미숙하게만 했는데, 올해는 작년 경험을 토대로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가 함께하는 재미난 이벤트들을 많이 만들어 보면서 좀 더 좋은 교사로 성장해나갈 생각입니다.
8. 제가 알기로 현재 선생님은 이성호 선생과 함께 서울에서 교사 공동체모임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현재 활동하는 교사모임 소개 좀 해주시지요?
제가 속해 있는 모임은 새내기교사모임입니다. 작년 4월 말쯤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전역모 초보교사연수에서 함께한 서울지역 신규교사 선생님들과 함께 결성했어요. 2달 간 학교생활을 해 본 초보교사들이 서로의 어려운 점을 토로하다가 모임의 필요성을 느껴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일산 한수중에 계시는 김태정 선생님을 우리 모임 반장으로 섭외하여 전역모 회장이신 백옥진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담임 이성호 선생님과 부담임 안희정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5월 쯤 부터이고, 매달 한 번씩 꾸준히 모였으니, 현재까지 한 5번쯤 모인 것 같네요. 처음에는 수업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두고 고민 하다가, 기본적인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근대와 식민의 서곡’과 같은 책을 읽으며 근대사 공부를 현재 하고 있습니다.
아 참! 김종훈 선생님과 같은 수업 달인을 초청해서 수업에 대한 얘기를 듣기도 했네요. 그런데 이렇게 공부만 하는 모임은 아니고요, 종종 이성호 선생님 놀이방에 모여 회포를 풀기도 하고 모임마다 뒤풀이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9. 새내기 교사들이 당차게 모임 결성을 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네요. 함께 모여 활동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교사가 되기 전부터 다른 학교의 동일 교과 선생님들과 모임을 결성해서 수업을 연구해야겠다는 일종의 꿈이 있었어요! 로망이겠지요.
학부시절 학과 내 학회 활동이 저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교육 현장에 나와 보니, 수업이든 학급 경영이든 행정 업무든 제가 생각한 것보다 학교생활은 훨씬 다양했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어요. 그래서 모임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아마 저와 함께 모임을 하는 다른 새내기 선생님들도 저와 마찬가지 생각일거에요.
아직 모임이 걸음마 단계여서 결실은 많이 이루지 못했지만, 저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여러 선생님들과 어울려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주 큰 힘이 돼요.
10. 기왕에 만든 모임, 모임이 지속적으로 오래 유지되며 참여 선생님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면 좋겠는데, 혹시 올해 모임 활동 계획은 정해져 있나요?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올해부터는 저희가 나눈 고민들을 심화시켜서 실제 제 수업에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저희가 나눈 문제의식들이 수업 내용과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 수업 속에 녹아들 수 있게끔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혹시 모르죠. 저희 모임 선생님들도 모임과 함께 성장해서 나중에는 저희들을 이끌어 주는 선배 선생님들처럼 멋진 교사가 돼서 후배 교사들에게 도움을 줄 날이 있겠지요. 그런 생각 속에 올해도 모임 활동을 열심히 잘할 거에요.
11. 이제 선생님도 새로 교단에 서는 후배 선생님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자주 대하게 되겠군요. 1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단살이를 해본 입장에서 신규 선생님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몇 가지만 조언삼아 들려주세요.
‘상처받지 않았음’ 좋겠어요. 앞서 말씀 드렸듯 저는 중학생 시절부터 역사교사를 꿈꿔왔는데 막상 교사가 되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상처도 더 컸거든요. ‘내가 오랜 시절 꿈꿔왔던 이 직업이 사실 내 적성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학급에 큰 일이 터졌을 때에는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는 자책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모든 일을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는 생각도 들고, 1년을 살아보니, 이제는 교사라는 직업의 ‘가치로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더라도, 모든 일을 능숙하게 잘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으니 상처받지 말고 같이 성장해나가자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12. 1년여를 역사교육에 진력하면서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선생님의 교단살이에 도움을 주었나요?
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죠. 사실 같은 고민을 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큰 배움을 저에게 줄 수 있는 선배 선생님들이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는 그 자체로도 저에겐 큰 도움입니다.
다만 고백하건데, 부끄러운 것은 지금껏 모임 연수에 몇 번 참여하고 토론수업모임에도 참여하고는 있지만, 보고 들은 것들을 제 것으로 만드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부지런히 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13. 그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죠. 이제 교직 1년차니 시행착오도 다양하게 겪고 때에 따라 좌절하기도 하며 성장해야 더 좋은 교사로 굳건히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선생님 생각처럼 올해는 꼭 선생님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빛깔 있는 수업, 학급 운영을 해보세요. 그런데, 혹시 1년 동안 전역모 활동을 하면서 모임에 불만이나 혹은 새내기 교사로서 모임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없나요?
흐음, 도대체 모임에 계신 선생님들은 평소에 공부를 얼마나 하시는 건가요? 저는 학교 출퇴근하는 것도 힘들고 바쁜데 연구와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선생님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떻게 저렇게 하시지?’ 하는 생각에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이 듭니다...
14. 뭐 그런 선배 교사라고 해서 딱히 잘난 것은 없어요.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다보니 세월이 그런 위치에 서있게 해주었을 뿐이지요. 아마 선생님도 지금처럼 모임 활동을 열심히 하며 동료 교사들과 보조를 맞춰 나가면 몇 년 안 있어 후배 교사들을 이끌어 주는 선배 교사로 성장해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기대 되네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교직에 들어서기 전에 공부했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임용시험 경쟁률이 상당했을 터인데, 어떻게 공부해서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단에 서게 되었나요?
사실 저는 정말로 운이 좋은 편이어서, 학부 4학년 1년 동안 공부에 매진한 결과 합격했습니다. 3학년 때부터 조금씩 전공서적을 읽기는 했으나 본격적인 공부는 4학년 때부터 시작했는데, 1년 안에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을 목표로 하다 보니 인터넷 강의에 상당 부분 의존한 것도 사실이었어요. 매번 강의를 듣고 해당 부분의 전공서적을 읽은 다음에 내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의 반복이었죠. 또 시험에 사료를 해석하는 문제도 출제되기 때문에 한자와 한문 공부도 틈틈이 했어요.
1차 시험을 친 이후에는 다음카페에서 스터디를 구해서 1달 반 동안 2차 시험(수업 실연과 면접) 준비를 했어요. 1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수업능력을 보는 실연과 교사로서의 자질을 보는 면접을 완벽하게 준비하기엔 정말 턱없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니 그래도 시험을 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까지 성장하기는 하더라고요.
15. 그런 임고 준비가 선생님의 독특한 공부법이었나요, 아니면 대부분의 임고 준비생이 그런 준비과정을 거쳐 교단에 서게 되나요?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죠. 1차 시험의 대부분은 전공서적과 인터넷 강의를 위주로 내용을 정리하고 달달 암기하는 과정이고, 2차 시험의 대부분은 스터디를 꾸려서 차시별 수업과 면접을 계속 반복하는 과정입니다.
16. 학부 시절 교수님과 함께 했던 학과 공부들이 임용 시험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나요?
사실 저는 ‘역사교육과’를 졸업했음에도 저희 학과는 교수님들 중에 역사교육을 전공하신 분이 계시질 않았어요. 다수의 수업이 역사교육과 관련된 수업이라기보다는, 사학과 전공 수업보다 조금 수준이 낮은 정도의 역사 수업으로 진행이 되었어요. 1차 시험의 경우 전공 지식의 정도를 판별하므로 수업 내용이 임고 배경지식으로서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교육관이나 교사관 등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필요한 지식이나 가치관은 수업에서 얻기에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같은 학과 학우들과의 ‘교육연구반’ 학회 활동에서 더욱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17. 지난 1년간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어떤 느낌으로 내 안에 들어왔나요?
진심으로 학생의 편이 되어주면 학생도 교사의 진심을 알아준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일부 학생들은 끝까지 몰라준 것 같긴 하지만요. 저희 반 가장 힘들었던 남학생이 몸집은 작으면서 자존심은 매우 센 아이였는데, 점차 또래 남학생들과 체격 차이가 벌어지니 여학생들만 골라서 괴롭혔어요. 그래서 이와 관련해 다수의 학생이 연루된 학폭이 열리게 되었는데, 학폭 개최 과정에서 그 학생의 부모님이 매우 엄하시며 학생이 부모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학생이 힘들 때 기댈만한 어른이 전혀 없어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그 학생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교내 봉사 시간에 학생과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따로 전화통화를 하기도 하며 학생이 ‘담임선생님은 나의 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노력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학생은 점차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학생이 담임인 저를 봐서라도 학교생활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올해에 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더욱 잘 성장해 나가길 바라요.
18. 지난 1년 쉼 없이 고민하며 교육활동을 하신 것 같은데, 어때요? 이제 2년차니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나요?
일단은 교사에게 방학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학기 말쯤 소진되었던 체력이 3주 쯤 쉬고 나면 충전되고 있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작년 한 해는 신규다보니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감사하게도 반 학생들도 저를 잘 따라주었고, 동료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무탈히 넘길 수 있었어요. 또 학년 말에 접어들면서는 학급 경영이든 업무든 수업이든 ‘내년에는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라는 최소한의 윤곽이 잡히더라고요. 2년차가 된 올해에도 역시 학생들이 저를 잘 따라줄 것이라 믿으며 작년에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나갈 생각입니다. 작년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작은 것 같지만 큰 소망입니다.
19. 꽤 오래 인터뷰를 진행했네요. 답변하기 애매한 질문도 있었는데, 성심껏 답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자!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교사로서 성장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현재로써는 역사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높이고 싶은 생각이 가장 큽니다. 지난 한 해에 제가 수업을 하면서도 정작 전공인 역사를 잘 모를 뿐 아니라, 활용 가능한 수업 장비들의 활용법도 능숙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스스로도 열심히 노력해야겠지만, 동료 선생님들과 아이디어 공유라든가 조언 얻기를 통해 꾸준히 제 수업 전문성을 높여나갈 생각입니다.
☞ 선배 교사 맹수용(경기 의정부고)이 본 ‘김유진’
김 선생님을 처음 만난 때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신규교사였던 2015년이다. 당시 의정부역사교사모임은 마을의 청소년들과 함께 ‘평화나비학교’를 운영하며,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김유진 선생님은 대학생이셨는데, 김태우 선생님과의 연을 통해 대학생 봉사자로 우리와 함께 했다. 아직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리벙벙했던 나는 학교가 아닌 마을에서 선생님들, 학생들과 함께 교육활동을 하는 일이 마냥(조금은 눈치 없게도) 즐겁기만 했는데, 김 선생님께 도움 받는 일이 많아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대학생 때부터 평화나비학교를 함께하며 고민하는 선생님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대학생활은 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을지언정, 아이들과 만나는 일에 대한 고민은 거의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평화나비학교를 마친 뒤 각자 썼던 소감문에서 김 선생님이 아이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마주하지 못해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생이었던 김유진 선생님의 소감문은 막 신규교사가 되었던 내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반가우면서 고맙게도 김 선생님은 이제 동료 교사가 되었다. 왠지 다시 만날 것 같더라니..... 전국역사교사모임 새내기 연수 뒷풀이에 놀러갔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셨다. 반가운 마음에 작년 연말에 있었던 의정부역사교사모임의 송년회 때 김 선생님을 초대했다.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니 재회의 기쁨이 더했다. 항상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모습이 초심을 살짝 잃은 나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또 자극이다.(ㅠㅠ) 학생들에게, 주변의 선생님들에게 여러모로 힘이 되어줄 것 같다. 앞으로 아이들을 만나며 웃을 일과 함께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을 만나실텐데, 진심으로 응원한다. 선생님 반가워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