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_베트남 전쟁을 성찰하고 수업으로 연대하기

수업이야기 - #역사탐구반 #한베평화재단 #시민평화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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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을 성찰하고

수업으로 연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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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서울 금호고)



김민정 선생님께서 특별히 수업 자료를 공유해주셨습니다^^

본 수업사례문에 등장하는 역사탐구반의 활동에 필요한 활동지들입니다.

<역사교육>은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수업이야기' 실천 사례문과 관련한

수업 사례를 역사교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베트남이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선정되어 더 ‘핫’ 해진 이 시점에 역사 수업은 베트남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나름대로 지난 2년 동안 고민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한 것들을 선생님들께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고민의 과정을 함께 공감하며 살펴봐주시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몇몇 활동은 시도해보시면 좋겠다.


1. 죄는 없지만, 책임이 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못 배웠다. 베트남 전쟁이라면 관련 단행본을 읽어본 적도 없고 책에서 한 꼭지로 보는 정도였다. 그러다 교사가 된 후 베트남 전쟁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처음엔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제시장’을 보여주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알려주는 정도였다.

2017년 1월, 한일역사교육 간담회 자리에서 ‘일본 중학생들’을 상대로 ‘위안부’ 수업을 하신 ‘일본인 선생님(히라이 아쓰코)’의 이야기를 들었다. 극우 단체의 항의와 협박을 받아도 꿋꿋하게 수업을 해내셨다는 선생님 말씀 중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째 ‘위안부’는 여성의 인권도 침해했지만, 성적 욕구를 해소할 상대만 제공해주면 언제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존재로 치부 당한 남성들의 인권도 무시당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학생의 소감문 내용이었다. “위안부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난 우리에게 죄는 없지만,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책임을 완수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멸과 차별을 없애고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남은 인생을 보장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감을 듣던 한국 역사교사 30여 명은 “아…”하며 탄성을 터뜨렸다. ‘이런 일본 학생이 있다니! 이런 일본 교사가 있다니!’ 그럼 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반성하였다. 우리에게 죄는 없지만, 책임이 있는 문제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였다.


2. 시행착오와 도전의 연속, 신설 혁신고의 역사동아리


#1 역사 동아리는 처음이라서

교사 새내기 시절 2년 동안 내가 맡은 동아리는 한 청소년 단체였다. 고민하지 않고 정해진 것만 따라가면 되었다. 그러다 신설 혁신고등학교의 개설요원으로 갔다. 혁신학교이고, 역사를 가르치다보니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역사동아리를 맡아 역동적으로 운영하길 기대하시는 것 같았다. ‘중학생들과 역사 영화를 보거나 박물관을 다니는 방과후 수업은 했지만 본격적으로 역사 관련 동아리를 운영한 경험은 없는데...’ 정말 막막했다. 동료들을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학교의 다른 역사 선생님은 민주시민성장반, 사회 선생님은 사회탐구반, 나는 역사탐구반 이렇게 세 개의 동아리를 인문사회동아리(약칭 인.사.동)으로 엮고 따로 운영하다가 필요할 때 합치는 형식으로 하자고 이야기 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든든했다.


#2 빛 좋은 개살구

인.사.동 단위로 성동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참여. 2017 모의 대통령 선거, 노근리 평화여행, 경제독서캠프 등을 운영하고, 축제 때는 각각 다른 주제-평화, 노동, 공정무역을-로 동아리 부스를 만들어 진행했다. 첫해 역사탐구반의 주제는 ‘평화’였다. 한국전쟁, ‘위안부’ 문제, 베트남 전쟁 등을 학습하고 평화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려주고 생각해보게 하고 싶었다.

노근리 평화여행 후 영화 상영을 하고 팝콘과 콜라를 판매한 금액을 한-베 평화재단에 기부하면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축제는 풍족한 예산을 바탕으로 베트남에 대한 퀴즈 풀기. 베트남 의상 열쇠고리 만들기, 베트남 쌀국수와 공정무역 음료 시식하기, 베트남 역사 바로 알기 등의 내용으로 계획했지만, 결과는 쌀국수로 시작해서 쌀국수로 끝난 베트남 부스였다.

우리가 아니 내가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은 ‘베트남 역사 바로 알기’였지만 동아리 학생들. 참여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전교생 150명 중 15명이 있는 최대 동아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축제부스를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개설 첫해라 교사가 전적으로 주도하여 동아리를 끌어갔던 상황이었고, 학생들과 내용적으로 공감하며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어느새 이벤트성 행사에 학생들을 도구화시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베트남을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나라라고 인식시켰다는 생각에 동아리 1년을 마친 후 참 우울하고 공허했고 잘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교사 생활 중 자존감이 가장 낮아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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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의 주제, 다양한 접근 방식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2018학년도 동아리 모집 때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공부를 1년 내내 할 것이고 아주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겁을 줬다. 그 결과 공부할 각오가 되어있는 적극적인 친구들만 왔고 소수정예(1학년 6명, 2학년 5명) 동아리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묻고, 관련 자료를 찾게 한 다음 동아리 운영 연간 계획을 짰다. 1년에 하나씩 활동 주제를 선정하여 역사 동아리를 운영하신 모임의 정희연 선생님 사례가 큰 도움이 되었다.

동아리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여 다른 부서의 예산을 지원 받았다. 연간계획을 세우고 내부기안을 해놓으니 예산을 사용할 때 매우 편리했다. 연간 계획은 처음부터 완성형은 아니었고, 대략의 줄기만 세운 뒤에 학생들의 상황과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춰 수정해나갔다.


2018 금호고 역사탐구반 연간 활동 계획

우리 학교 학생들만 그런지 요즘 학생들 전체가 그런지 몰라도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베트남 전쟁에 관한 심도 있는 책을 읽으면 못 견뎌낼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자료를 애타게 찾고 있던 중 ‘아시아 인권 평화 디딤돌(아디)’라는 단체를 통해 영화 ‘미친 시간’을 보게 되었다. 영화는 전쟁이 누구에게나 모두 같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시작된다. 베트남 현지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 가족과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의 증언을 교차적으로 보여주어 동아리 첫 시간에 보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고, 활동지를 만들어서 학생들의 감상을 쓰게 했다. 1965년 전쟁이 한창이던 사이공에 로빈 윌리엄스가 공군 라디오 방송의 DJ로 영화 ‘굿모닝 베트남’도 학생들이 재미있게 보면서도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 선정하였다.

2017년 활동에서 학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라고 말한 것은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현장학습이었다. 같은 서울이지만 가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려 헐레벌떡 가서 제대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니, 현장 답사를 꼭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리 담당 학생들과 사전답사를 해서 어떻게 친구들과 함께 볼 것인가를 고민하고 활동지도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쟁기념관의 해외파병실의 전시를 둘러보고 팀별로 인증 사진을 찍고 어떤 관점으로 구성되었다고 느끼는지, 개선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제안하는 활동을 했다.

다닐 땐 대충 다니는 것 같아 살짝 걱정되기도 했는데 활동지를 보면 너무 진지하게 잘 생각한 게 드러난다. 학생들을 전적으로 믿을 필요도 있다. 역사교사의 기준에서 학생들의 관람 태도를 판단하면 안 될 것 같다. 진지한 활동만 할 수 없어서 전쟁기념관 4D전시실 체험을 하였고, 학생들은 매우 신기해했다. 어쩔 수 없이 학급 테마 여행 코스에 서바이벌 게임을 넣은 것처럼 교사에게 내적갈등을 불러 오는 순간이다.

6월에는 <다낭에서 호이안 사이>라는 고경일 작가의 그림 전시회를 갔다. 한겨레 ‘고경일의 풍경내비’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를 연재하신 분이다. 사전 예약 없이 하는 것만 알고 갔는데 운 좋게도 작가님이 현장에 계셔서 맞춤 가이드를 해주셨고, 학생들은 무척 좋아했다.

#4 사회단체와 함께 – 한-베 평화재단과의 인연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정대협(現 정의기억연대)이 있는데 베트남관련 단체는 없을까라는 호기심에 검색을 했다. ‘한-베 평화재단’이 나왔는데 학교 바로 옆 동네였다. 운명 같았다고 할까! 우리 마을 재단으로 소개하면서 연계한 교육 활동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고, 재단에서도 매우 반가워하셨다. 그동안 대안학교 쪽과는 함께 답사를 가거나 활동을 많이 했는데 공립학교 쪽에서 연락 오는 일은 드물다고 하다. 이후에 학생들과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활동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지속적으로 재단의 여러 활동에 참가하면서 좋은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생각보다 사회단체•평화 단체는 학교를 원하고 있다.


#5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4.20.-4.22.)

시민평화법정은 퐁니퐁넛마을과 하미마을에서 베트남전 당시 있었던 민간인학살로 상해를 입으신 분 및 사망한 분의 유족 응우옌티탄 아주머니 두 분이 원고가 되고,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는 국가배상소송의 형태의 모의법정이다.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재판관이 재판장이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소속 변호사들이 원고측과 피고측의 소송대리인으로 나서면서 베트남 전쟁 학살 문제에 대한 시민 사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금호고-한베평화재단 연계 활동

처음엔 학생들이 준비위원회로서 홍보 UCC 영상만 제작해서 드리는 정도로 참여할 생각이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 직접 가는 게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와 한베 평화 재단 관계자분들이 청소년 부스를 제안하시며 법정에 에너지를 불어 넣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가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동아리 구성원 모두가 갈 수는 없었지만 각자 자기가 법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참여했다.

부스 운영을 계획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학생들이 피해자분들에게 쓴 편지를 장미꽃으로 접어 드리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진짜 열심히 여러 학급을 돌면서 편지를 받아왔다. 이 장미꽃이 정말 접기 힘들었다. 접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투브 방송을 찾아서 1개를 따라 접는데 10분이 걸렸다. 나는 워낙 꽝 손이라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고 내심 가능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 그런데 누구는 장미를 쉽게 접는 법을 배워오고, 누구는 수업을 들으며 손톱이 빨개지도록 야금야금 접더니 어느 순간 책상 위에 뭉텅이로 꽃을 날랐다. 2~3일 밖에 걸리지 않은 짧은 기간에 한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일이라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장미꽃을 보며 어떻게 드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꿈이 플로리스트인 제자에게 꽃다발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시니컬한 친구여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갑자기요?’, ‘할께요!’ 라고 쿨~하게 말해주어서 놀랍고 고마웠다. 이렇게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그 순간 꽃은 어찌나 예쁘고 아이들이 또 왜 그렇게 자랑스럽던지... 법정 첫째 날 응우옌티탄 두 아주머니들을 만나 꽃다발을 직접 전달했던 경험은 아이들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법정 시작 전과 휴정시간에 학생들은 참관자들에게 아주머니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연꽃무늬 포스트잇에 받아 응원 보드 판에 붙였다. 법정 참여 인스타그램 인증사진 찍기도 함께 진행했다. 학생들의 활동을 궁금해 하며 오신 분들 한 명 한 명 다 소중한 메시지를 써주셨는데 한 친구가 문제를 발견했다. “한글로 쓴 메시지를 아주머니들이 과연 읽으실 수 있을까?” 그러더니 바로 휴대전화의 번역기 앱을 켜더니 베트남어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인사말과 메시지를 예시로 적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말이다. 이 친구는 외국인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부스 참여를 요청하고, 현장에 있는 중학교 부스. 제주도에서 온 부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부스를 돌아다니며 참여를 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등 연대의 현장을 경험하였다. 미래의 시민단체 간사가 될 재목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간식을 사들고 행사에 오셔서 제자들의 활동을 봐주시고, 학생들 맛있는 거 사주라고 사비를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정말 눈물이 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주변 분들의 지지와 학교 밖 외부행사의 경험이 학생들을 성장시켰다. 학기 초 4월에 있었던 이 행사경험 덕분에 1년 동안의 동아리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시민평화법정이 주요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은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자신들이 역할을 했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고, 연대의 힘을 바탕으로 서로를 신뢰하는 동지애가 끈끈해졌다.


월요일 아침 뉴스에서 ‘시민평화법정’이 나왔고 내가 보았던 두 분이 그대로 TV에 나오셨다. 나는 그날 봤던 법정같이 생생해서 준비하다 말고 TV만 봤다. 그만큼 역사적인 장소가 될 그곳에 내가 다녀왔고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 금호고 2학년 이○○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둘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포스트잇에 베트남어를 적어 나에게 줄 때 이 일이 정말 보람 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의견에 동참해주고 우리가 요청하는 활동에 참여해주는 걸 보고 우리 모두에게 뭔가 특별한 연대가 형성되는 거 같아 너무 기뻤다. 시민평화법정은 그저 시작이다. 앞으로 더 긴 세월, 가려진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금호고 2학년 김○○

부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먼저 와서 탄 아주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적고 싶다며 온 남학생이다. 응원 메시지를 적는 포스트잇 2장을 빼곡하게 채워서 아주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다. 이렇듯 많은 분들이 탄 아주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사죄를 했다. 비록 한국어라 못 읽으시겠지만 한국에 아주머니들을 응원하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법정의 장면은 원고 측에서 참전군인의 증언영상을 보여준 것이다. 나였더라면 그런 일에 가담했다는 것에 살기가 싫고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증언을 해주신 것에 우리나라 참전 군인들이 반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래전일이지만 충격이 커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고 생각됐다. 영상에 나오신 분은 중대장의 이름부터 학살한 경로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 금호고 2학년 구○○


법정을 직접 참관한 친구들은 지식적으로도 많이 얻어갔다. 원고 응우옌티탄과 피고 대한민국의 소송대리인 변호사들이 증거를 가지고 팽팽하게 맞서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았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을 통역하시는 티엔 선생님이 통역하는 과정에서 울컥하시는 것을 보고 학생들 마음도 동요하였다. 재판은 원고 측 승소로 끝났다. 가상 재판이었지만 아주머니들의 기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학생들은 법정 이틀 동안 받은 응원의 메시지를 하트모양으로 꼼꼼하게 붙여서 아주머니들께 전달하였다. 바쁘게 시민평화법정을 준비했던 과정, 국제학술대회까지 하면 3일 내내 다리 깁스를 한 친구를 택시 태우고 마포를 정신없이 오갔던 그 모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가슴이 점점 벅차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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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년 공부를 종합하는 축제, 성공적.


작년 축제의 실패를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이번 축제 동아리 부스의 운영 목표는 단 하나였다. 1년 동안의 활동을 학생들 손으로 직접 정리하는 것! 이거로 퀴즈를 하든, 게임을 하든, 선물로 먹을 것을 주든 상관없으니 내가 바라는 것은 학생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진로나 진학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축제 전시 패널을 만들 때는 각자 자기의 진로에 부합하는 주제를 선택하도록 했다. 영상제작자, 영화연출가가 꿈인 친구는 영화 ‘미친 시간’을 본 친구들의 감상문을 모아 정리했다. 역사교사가 꿈인 친구는 현행 교육과정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11종의 베트남 전쟁 내용을 비교, 분석하고 ‘우리가 써보는 베트남 전쟁 교과서 서술’을 써서 제시했다. 박물관과 사회활동에 관심 많은 친구들은 전쟁기념관의 전시내용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제시했다. 이렇게 각각의 진로적성에 최대한 부합하게 축제의 세부주제를 나누었더니 동기부여가 잘 되어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잘 참여할 수 있었다.

향기만큼 진한 쌀국수의 추억이 남아있어 학생들은 절대 먹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템은 베트남 빙수인 ‘쩨’였다. 여러 가지 과일에 견과류, 연유와 코코넛우유를 넣은 음식인데 각종 재료를 사서 여러 가지 레시피를 만들어보며 축제 전시 게시물에 담긴 내용으로 출제한 퀴즈를 잘 맞출 경우에는 빙수를 주는 방식으로 부스를 운영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교생이 게시물에 담긴 베트남 전쟁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퀴즈를 풀며 관련 지식을 알아갔다. 무엇보다 축제를 진행했던 동아리 학생들이 신나했고 뿌듯해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관심 있게 오셔서 참여해주셨는데 한 선생님께서 “저 게시물들 보니까 이 빙수를 못 먹겠어요.”라고 하셨던 말씀이 마음에 굉장히 오래 남았다.


베8.JPG 2018 금호고 뚱딴지제 역사탐구반 부스 ‘평화를 담다’(2018.09.14.)


3. 금호고 시민평화법정


#1 시민평화법정, 우리가 직접 해볼까

4월에 시민평화법정을 끝내고 꿈꿨던 것은 우리가 직접 시민평화법정을 해보는 것이었다. 원래 동아리 안에서 소소하게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법정이라는 형식이 가지는 학습효과가 크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뭔가 더 큰 학교 차원에서 진행해보고 싶었다. 예산은 없었고, 법복은 필요했다. 학교에서 법복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자치법정이었다. 안 그래도 자치법정 선생님께서 똑똑한 학생들만 모아놓고 제대로 활동을 한 게 없는 것 같다고 고민하고 계셨다. 그래서 자치법정학생들과 역사탐구반 학생들이 결합하기로 했다.

법정은 약간 중립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그동안 베트남 전쟁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원고 측 피해자 아주머니들께 마음이 쏠릴 것 같았다. 자치법정 학생들이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법정을 진행해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재판을 보기만 했지 직접 해본 적은 없는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중앙법원으로 현장 견학을 갔다. 견학 최소 인원이 30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해서 추억의 인.사.동 선생님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법원에서 판사님과 대화도 하고, 학교폭력사안을 주제로 1시간 동안 모의재판을 했다. 짜여 져 있는 각본이 있었고, 판결만 학생들이 결정하는 형식으로 했는데 학생들이 재판의 진행과정을 좀 더 몸으로 습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법정에 참여할 친구들을 모았고, 실제 재판도 해보았다. 어렵게 마련한 예산으로 학생들과 직접 동대문 원단시장에 가서 재판테이블에 씌울 검정색 원단도 샀다. 법복은 자치법정 선생님이 마련해주셨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쓰는 재판봉을 빌렸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10시간에 가까운 법정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만 그걸 하나씩 적을 수는 없었다. 재단을 통해 시민평화법정을 진행한 임재성 변호사님의 연락처를 받았고 취지를 설명했다. 임재성 선생님께 얻은 재판 큐시트와 속기록은 법정 시나리오를 구성하는데 정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역사탐구반과 자치법정 학생들까지 총 20명이 참여한 금호고 시민평화법정은 다음과 같이 역할분담을 하였다.


#2 베트남, 선생님이 먼저 다녀와 볼게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시민평화법정을 준비한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마음속에 가장 걸렸던 부분은 내가 베트남 전쟁 당시 학살이 있었던 현장을 직접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였는데 말이다. 10월에 한-베 평화재단에서 진행하는 평화기행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고, 학교에 양해를 잘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평화기행 일정은 빈호아, 퐁니퐁넛, 하미마을 등 주요 학살 장소를 가서 피해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평화기행에 가서 직접 만나게 될 피해자의 사연을 축제 때 알리고 부채에 사죄와 평화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 동아리 학생들은 알아서 간단한 문구들을 베트남어로 바꾸어 적어놓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틀린 말이 꽤 있었다. 외국어는 사전에 검증해보는 작업이 꼭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시인 틴탄오와 소설가 바오닌에게 줄 메시지까지 부채에 받아놓았고, 평화기행에서 직접 전달하였다.

한국에 오셨던 퐁니퐁넛마을 탄 아주머니를 직접 만나 학생들과 같은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와 메시지가 쓰인 부채를 선물로 드리며 학생들이 시민평화법정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 드렸다. 아주머니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셨고, 학생들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부채를 전달하는 사진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법정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나중에 법정에 참가한 한 학생이 쓴 소감문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직접 베트남까지 가서 피해자분을 만나면서 노력해주신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적극적인 자세를 지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금호고 1학년 홍○○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소감을 보고 ‘교사 자체가 곧 교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9월 금호고 축제에서 받은 부채편지를 10월 평화기행에서 전달하는 모습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지속적으로 활동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동아리 학생들이 하나같이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선생님 우리 베트남 언제가요?”라고 묻는다. 평화기행을 떠나기 전날엔 한 학생이 찾아와 조용히 속삭였다. “선생님 잘 다녀오시고, 다음엔 저도 같이 갑니다.” 이제 점점 무서워진다. 나를 조종하는 배후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2020년은 우리 학교에 1회 졸업생이 생기는 해이다.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베트남에 같이 갈 수 있을까? 자꾸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니 계속 말해봐야지!



#3 평화기행에서 만난 참전군인


평화기행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소설가 바오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참가자들이 질문하는 시간이 있었다. 갑자기 뒤편에 앉아있던 참가자 한 분이 손들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우리는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가 간다. 전쟁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적을 죽일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목적도 모르고 위에서 ‘죽여라‘하면 죽여야 했지요. 마을 안에 군인이 있으니 죽이라고 하면 마을을 쓸어버렸습니다. 민간인을 학살하기 위해 그런 일은 저지른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가 이전부터 월남참전용사라고 불렀던 사람, 베트남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베트남전쟁의 가해자였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평화로운 삶이 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모든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해 졌다는 작가 바오닌과 전쟁이 끝난 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헬리콥터 소리에 전쟁의 기억이 되살아나 악몽에 시달리며 살게 된 한국의 참전 군인을 동시에 한자리에서 마주하니 마음 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한국의 참전군인은 ‘미안하다‘하며 악수를 건네고 바오닌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손을 잡으며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여행 내내 그 참전군인 분이 신경 쓰였고, 마지막 날 용기를 내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학살 현장이라고 불렀지만 그분에게는 작전 현장이었고, 평화기행에서는 희생자를 위해 향불을 올렸지만 이 분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전우들을 위해 향불 하나를 못 피우는 게 마음이 안 좋다고 하셨다. 평화기행에서 듣는 활동가의 설명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달라도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셨다. 기행 후 나는 따로 선생님께 연락하여 학생들에게 베트남 전쟁의 경험을 말해주실 수 있냐고 여쭤봤으나 전화 통화를 통해서만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고,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아직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분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고, 시민평화법정을 준비하면서 간과할 뻔 했던 참전군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4월 시민평화법정에는 없던 참전군인의 증언 2분정도 우리 시민평화법정에 넣도록 했다. 참전군인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시민평화법정에서 증거로 제시된 참전군인의 영상과 내가 만난 참전군인 분과 통화한 내용을 참고하여 자신의 대본을 작성하였고 이것은 우리 법정의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4 법정에 임박하여


법정 연습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학기말 고사가 코앞에 다가와 연습 일정이 촉박했고, 한 번도 모든 인원이 다 앉아서 연습한 적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일 힘들었던 것 은 시나리오를 1시간 30분 분량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퐁니-퐁넛마을과 하미마을 학살, 이 2가지를 다루기에 벅찬 시간이었다.

현실적으로 타협하여 상대적으로 증거가 많은 퐁니퐁넛 학살만 다루고 하미 학살은 빼야 하나 고민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살은 증거를 남기지 않아 재판이 어려운 특성이 있기에 그럴수록 하미학살을 꼭 다루어야 한다고 마음을 굳혔다. 연습 때마다 정해진 시간에 맞게 대본 내용이 축소되었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더 중요하게 알리고 싶은 내용을 추릴 수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참관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대본을 읽고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크게 얻어가는 공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학생들은 동아리에서 1년 동안 활동한 것보다 더 많은 전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없을 때 아이들끼리 회의를 하여 전 학급에 들어가 법정 홍보 UCC를 틀어주고 참여를 독려하자고 결정하였다. 참관인들을 대상으로 할 경품이벤트까지 준비했다.


아래가 시민평화법정 홍보 UCC 동영상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면 베트남 전쟁의 학살을 기억하는 조형물은 제주 강정 평화센터에 있는 ‘베트남 피에타상’이다.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모금을 하고 학교에 베트남 피에타상의 미니어처라도 세워볼까? 배지를 만들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배지 디자인을 공모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제대로 하고 싶었다. 피에타상의 미니어쳐도 좋지만 우리 학교에만 있는! 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기념물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회의 끝에 폼보드에 퐁니-퐁넛마을과 하미마을의 희생자의 이름을 태어난 연도와 함께 적어보는 위령비를 만들었다. 두 학살 모두 1968년에 일어났는데 희생자가 태어난 연도 역시 1968년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 의미는 막 태어나거나 나이가 어린 희생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겉모양은 퐁니마을 위령비 모습을 참고했다. 퐁니퐁넛 마을 74명, 하미 마을 135명으로 총 209명이지만 위령비 번호는 210번까지 있다. 그 이유는 평화기행에서 하미마을에 갔을 때 구수정 박사께서 미처 희생자로 등록하지 못한 유가족이 136번이라는 숫자만 돌에 새기고 갔다고 설명해주신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주어 반영된 결과였다.



#5 두근두근 법정 당일


걱정 했던 대로 법정을 참관한 인원은 많지 않았다. 법정을 준비했던 학생들과 친한 친구들, 그리고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이 자리를 지켜줬다. 그리고 평화기행에서 만난 분과 모임의 김지연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참관기를 써주시겠다며 먼 거리를 달려오셨다.

연습했던 시나리오대로 잘 진행되었고, 중간에 한 친구가 방송 사고에 가까운 NG를 낼 뻔했지만 뛰어난 연기력으로 승화하여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법정을 준비하고 재판을 진행한 학생들이 느끼는 성취감이 컸다. 법정을 참관한 학생과 준비한 학생 모두에게 소감문을 받았는데 생각해볼 내용이 많다.


[법정 '참관' 소감]
실제 있었던 시민평화법정을 가지 못했는데 그때의 재판을 요약해 재연해주어서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힘들었던 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또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학생으로서 이 부끄러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해준 시간이었다. 또 그냥 수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이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듣게 되었고 더 이해가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 금호고 1학년 김○○

[법정 준비 소감]
나는 금호고 시민평화법정을 진행하기 전에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한국군이 참전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는 것을 들었을 때 굉장히 많이 놀랐다. 나는 항상 대한민국이 다른 국가에게 피해를 당했던 사건들만 배워 와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은 충격적이고 새롭게 다가왔다. 피해자들의 피해 정도가 굉장히 심각한데 대한민국이 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당황스러웠다. 어서 빨리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 금호고 2학년 송○○

나처럼 아픈 역사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때도 몰랐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내가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게기가 되어 이러한 역사들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활동은 꼭 필요하다. - 금호고 2학년 안○○

대중적으로 “역사를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이 있겠지만 나는 같은 시대에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의 아픔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아픔을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국제 사회에 ‘위안부’문제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금호고 2학년 박○○

미디어세대인 요즘 학생들은 다양한 콘텐츠로 역사를 쉽게 배운다. 그래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말하자면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의식적 측면에서 훨씬 높아졌고 여기에는 ‘위안부’ 문제도 기여 했다. 사실 베트남 문제를 말할 때 마지막 학생 같은 생각이 다수이다. 나도 예전에는 수업에서 베트남 이야기를 할 때 일본이 사과해야 하고 이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은연중에 했었다. 그렇게 말하면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본 사과의 전제조건으로 베트남에 사과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절대 연결시키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저렇게 이해하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아 어떻게 잘 설명해야할지 고민했고 선배교사께 조언을 구했다. 사과와 반성을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저렇게 좁은 단위에서 사과를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어느 정도 해법의 방향을 잡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일본군에 방점을 두지 않고 독일군, 대만군, 미군 ‘위안부’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시 인권유린의 문제로 설명한다면 조금 더 학생들이 평화에 대한 생각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전쟁 중 민간인 학살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의 확장이 가능해 보인다.




4. 현재 우리 삶의 평화


#1 평택 대추리 마을 평화답사

2018년 9월에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 국제평화교육 워크숍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많은 평화단체를 만날 수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분들께 꼭 학생들과 함께 가서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만해도 그 말을 바로 실현할 줄은 몰랐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았다면 현재 우리 삶에서 인권과 평화를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연결시켜 생각해보기 위해 고민하다가 워크숍에서 만난 평택평화센터가 떠올랐다. 그래서 연락을 했고, 예산을 구했고, 학생들을 모집했고, 독서록을 받았고, 이것과 저것을 준비했다가... 떠났다.

금호고 시민평화법정 바로 다음날이자 첫눈이 내린 2018년 11월 24일, 20여명의 학생들과 4명의 교사가 평택 대추리 마을과 미군 기지를 둘러보며 역사와 연결된 지역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고 공동체와 평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 안에 담긴 에피소드가 너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에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내가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은 일이다. ‘담임 반 학생들과 헤어질 때도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왜 자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지….’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은연중에 계속 ‘그냥 혼자 조용히 있어도 되는데… 괜히 내가 한다고 나서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피해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했던 이 모든 일들이 다 여러 사람의 손과 마음이 보태져 가능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어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겨우 울음을 그치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이야기는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 그 마음 하나로 진행한 거야.” 이다. 본의 아니게 또 교재 역할을 한 것 같지만... 진심이 통했을 거라 믿는다.


#2 성찰과 연대의 힘을 믿으며!

2019년은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법정을 하기 전에 참전 군인에 관한 세미나를 들으러 부산에 내려갔고 강화정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오래도록 해결이 안 될지 몰랐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법정을 진행하는 게 맞을까요?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죠?”라고 안절부절 걱정하니까 강화정(부산역사교사모임, 역사교사) 선생님께서 해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학생들을 믿으라고 하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여기까지 왔다.

지난 1년 동안 베트남 전쟁에 대해 공부한 걸 바탕으로 2019년은 조금 더 범위를 확장하여 전시 여성 인권 문제를 학생들과 집중적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다. 2018년에 학생들과 책 한 권 같이 읽기는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올해는 ≪그녀에게 전쟁≫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같은 책을 주 텍스트로 삼아 천천히 범위를 나눠서 읽을 생각이다. 파주 평화를 품은 집, 천안 망향의 동산, 군산과 동두천의 기지 등을 학생들과 직접 가서 배우고 싶다.

얼마 전에 “다른 사람 같으면 1년에 한 번 할 일을 샘은 왜 월 단위, 주단 위로 하냐고... 샘 몸에 미안할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거 오래해야지!”라는 감사한 충고를 들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학생들과 공부해보고 싶은 게 많고… 여러 사회단체와 연대 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기쁨이 컸는데.. 어느 순간 나의 에너지를 적정하게 아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절대 내가 무엇을 많이 했다고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민하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봐주시라! 누구든 힘을 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으니까! Solidarity forever!



※ 수업 사례를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호부터 수업이야기 수업 사례에 ‘수업자 이력’을 기록하여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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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 금호고 시민평화법정 참관기


역사에 대한 성찰, 평화의 실마리를 참관하다


//김지연(서울 국립국악중)


김지연 선생님이 금호고 시민평화법정을 참관한 경험기를 글로 정리해 보내왔다. 김지연 선생님은 수업 사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성찰하고 연대하기’의 주인공 김민정 선생님과 같은 수업연구 모임(논쟁적 역사수업 연구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시민평화법정의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참관기여서 보론으로 함께 게재해 소개 한다 / 편집부


갓 지은 듯한 높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금호고 역시 새것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 붙여놓은 학생들의 작품은 이곳이 수업 시간이나 수업 외 시간 모두 학생들의 참여로 만들어 가는 공간임을 보여 주었다.

언젠가 ‘티비’에서 본 학생들의 재판 장면 때문인지, 체육관 같은 곳 단상에서 법정의 모습이 재연되고 청중들은 무대 아래쪽에서 관람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정문을 들어섰다. 뒤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들어가 앉으려 했건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교실 하나 정도의 크기의 다목적실에서는 열 명 남짓의 출연 학생들과 약 2-30명 정도의 관객들이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재판은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에서 베트남전 당시 있었던 민간인 학살로 상해 혹은 사망한 이의 유족(응우옌티탄)을 원고로,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하는 국가배상 소송이었다. 이 소송에 대해 사실 관계에 대한 증거를 조사하고 원고, 피고를 심문하여 판결을 내리는 방식으로 재판은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지난 4월 마포에서 이틀에 걸쳐 열린 시민평화법정의 재판내용을 대본으로 삼아 자신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고 정리하며 이 재판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각자 재판관과 원고, 증인, 변호사의 역할을 맡아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였다. 이들이 소화해야 할 대본은 30여 장에 달했지만 집중력 있게 한 시간 반 가량의 극을 끌어갔고 ‘루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 판사나 변호사 같은 학생도 있었고 원고(응우옌티탄 아주머니) 역할을 맡은 한 학생은 발언 중 정말로 울컥하여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원래 감정이 풍부한 학생인지, 정말 감정 이입된 메소드 연기인 건지? 그 학생에게 끝나고 묻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아쉽다.

참전군인 역할을 맡은 남학생은 정말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가족을 위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베트남에 갔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왜 군인들에게 책임을 묻는가를 따지며 자신들을 악마가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학생의 진지한 연기가, 베트남에서의 학살 범죄를 단죄하기 바라며 이 자리에 왔을 관객들에게 한 번쯤은 더 참전 군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참전 한국군도 알리바이가 있고, ‘살해된 마을 주민들은 베트콩(재판에서 이렇게 불렀다- 원래 명칭은 남베트남해방전선)’이라는 주장과 ‘한국군이 아니라 베트콩이 주민들을 살해한 것’이라는 완전 모순되는 주장을 우리 군대와 정부가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법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단순히 ‘우리가 학살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양측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쟁점들을 알려 주고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세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까지가 역사 교사로서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이는 다른 역사 논쟁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 배상금 지급과 학살 공식 인정, 진상 조사, 공공시설과 공공구역에 학살 사실 전시를 요구했다. 이 판결 내용은 우리가 매주 수요 집회를 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요구하는 것들과 똑같은 것이다. 피해자로서 요구했던 것들을 가해자가 되어 요구받는 난감한 순간. 그동안 (역사시간 등을 통해) 일본의 무책임함과 부족한 역사의식을 비판해 왔을 재판에 참석한 학생들이 어떻게 이 순간을 받아들였을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에 본 영상에서는 지난 4월 학생들이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해 응우옌 티탄 아주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어쩌면 평생 관심 없이 모른 채 살았을 수도 있을 베트남의 슬픈 이야기를 말과 글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를 눈앞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인 현재, 그 학생들은 법정에서 그 아주머니를 직접 연기 혹은 변호하고 있다. 먼 타국에서 일어난, 나와는 다른 시공간의 사건이 내 주변 사람의 일, 그리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학생이 전국에 몇 명이나 될까. 이 법정에 참여한 학생들은 앞으로도 베트남, 민간인 학살, 유족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쉽게 흘려 듣지 못할 것 같다.

법정을 위한 팜플렛을 만들고 책상을 옮기는 것부터 마이크에서 나오는 잡음을 없애는 일까지... (고등학생들이니 알아서 할 거라고 하지만) 교사의 손을 세심하게 거쳐 가지 않고는 이렇게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고생하신 두 역사 선생님들께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리를 지켜 끝까지 함께 해 주시는 (타 교과라 예상되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감동이었다. 처음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재판관 자리에 앉은 예쁘게 머리 염색한 학생을 보며 잠시 이곳이 고등학교임을 잊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중학교 교사로서 고등학생들의 말과 행동을 잠시이긴 하지만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무려 ‘경품 추첨’까지 있는 완결성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당첨되어 예쁜 베트남 책갈피까지 받고 뿌듯하게 다목적실을 나오는데, 처음 들어갈 땐 보지 못했던 퐁니 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 학살 희생자 위령비를 보았다. 학생들이 폼보드를 이용해 직접 만든 것인데, 법정에 온 참석자들이 직접 희생자 분들의 이름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희생자가 퐁니 퐁넛 마을 74명, 하미 마을 135명으로 총 209명이라 하는데, 위령비 번호가 210번까지 있는 것은 앞으로 진상 규명을 통해 밝혀질 미지의 1명까지 기억하자는 의미인지,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커다란 폼보드로 만든 위령비에 빼곡히 채워 써야 다 쓸 수 있는 210명의 안타까운 죽음. 그 죽음을 더 제대로 알고 싶고 제대로 미안하고 싶어 유튜브에 올라온 4월의 시민 평화 법정을 정주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학교 정문을 빠져 나왔다. 어느새 밖은 어둑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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