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희생양 메커니즘

코로나 시대의 내 삶에 대한 성찰 수업


이 글은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회보 역사교육 130호(2020년 가을호)에 게재된 김용천 선생님의 글, 수업이야기 >> 수업 사례 ① - 세계시민을 위한 역사교육 재구성 사례 <야, 너도 세계인이야! 세계사 수업과 나의 삶 성찰하기>에 보론에 해당하는 글임을 밝힙니다. 풍성한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오신 김용천 선생님께서 세계사 수업에서 나누었던 멋진 사례를 기꺼이 나누어주셨답니다. / 편집자주


1. 전염병과 역사 교육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우리 세대가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전염병은 사회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불편한 일상이 지속하였고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이 제한되었습니다. 신앙 활동 역시 자유롭지 못했으며, 요식업을 비롯한 수많은 업종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 역시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익숙지 않은, 행동반경이 제한되는 삶이 지속하다 보니 갈등이 피어나는 건 당연했습니다. 마스크 물량 부족과 가격 폭등으로 인한 갈등, 특정 집단의 이동을 제한하자는 목소리, ‘경각심이 없는’ 행락객, 클러버에 대한 비난, 교회에 대한 분노,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계층 간 갈등, 그리고 재난 상황을 지휘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지속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역사 수업의 모토는 삶과 맞닿아 있는 역사 수업입니다. 그리고 세계사 교과에서는 세계의 갈등에 귀 기울이는 것과 평화·공존의 가치관 확립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갈등은 역사 교육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혐오가 싹트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일이기 때문입니다. 관련 사례를 탐구하여 재난과 혐오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코로나 시대 우리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수업을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와 쉽게 연관할 수 있는 소재로 흑사병이 떠올랐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대형 전염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잘 보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 여러 교양 프로그램, 개인 방송 등에서 흑사병을 다뤄왔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친숙한 소재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소재만 낙점해둔 채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중세 유럽에 대한 수업으로 접어들게 되어 더는 미루지 못하고 수업을 준비해보았습니다.



2. 수업 준비 과정


14세기 흑사병에 대해 다루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흑사병을 만난 유럽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인의 반응을 다룬 자료를 찾다가 개인 방송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 방송은 단행본·논문에 비해 원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하기에 좋아서 영감을 얻기 위해 종종 활용하고 있습니다(물론 전문 자료를 탐색하여 정확성을 검증하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최근에 출처 표기가 명확하고 전문성이 높은 세계사 채널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 탑재된 흑사병 관련 콘텐츠 중 영감을 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14세기 흑사병 당시 유대인을 학살한 유럽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절망과 분노에 찬 이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희생양은 바로 당시 사회적 소수자였던 유대인이었는데요. 1348년, 프랑스 툴롱 지역에서 처음으로 마을 시민들이 유대인 거주지를 찾아가 약 40명의 유대인을 죽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이어서 아비뇽과 카탈루니아 지역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런 공격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게다가 사부아 지역에서 이 소문 때문에 고문을 받던 유대인이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억지로 자백을 하면서 이 소문은 기정사실처럼 스위스와 독일 지역으로 퍼져나갔죠. 스트라스부르 지역에서는 1800여 명의 유대인 중 900여 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흑사병을 만난 유럽인들은 왜 유대인을 학살했을까요? 그 행위의 이유를 설명하고 현대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탐색한 결과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이론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인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1923년 ~ 2015년)가 주목한 이론입니다. 이는 폭력적 성향의 집단적 전이 현상으로서, 공동체가 갈등으로 인하여 와해할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힘없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게 쏟아부어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불만을 해결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이론을 알게 되며 수업에 필요한 소스가 얼추 완비되었습니다. ① 흑사병 당시 유럽인의 유대인 학살 사례 학습 – ② 유럽인이 학살을 벌인 이유를 ‘희생양 메커니즘’ 이론으로 접근 – ③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단 내의 분노가 타자나 소수 집단에 쏟아진 사례 탐구 순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해당 단원은 고등학교 세계사 기준으로 ‘중세 유럽의 성장과 변화’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해당 단원을 2차시에 걸쳐 다음과 같이 조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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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업 전개 과정


(1) 1차시 수업

1차시 수업에서는 우선 해당 단원의 교과서적 내용 요소를 학습한 후 흑사병과 관련한 학습 활동을 제시했습니다. 학습 활동이 제시된 실제 학습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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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질문에 대해 학생들은 아주 손쉽게 답을 써 내려갔습니다. ‘흑사병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라는 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름 읽기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답변이겠지만, 유럽인들의 학살에 ‘때문에’를 갖다 붙여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 질문의 의도는 첫째, 대혼란 속에서 ‘학살’이라는 극단으로 치닫기까지 인간의 이성이 무너지는 과정에 대해 고민하는 것. 둘째, 위기 상황 속에 창궐하는 혐오를 경계하는 것이었습니다. 발문이 미비하여 소통이 안 된 것 같아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다소 무리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너희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니?”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학살의 역사가 ‘중세 유럽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임을 고려한다면, 학생들도 자신이 학살자가 될 수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런 일은 상상해본 적도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맞습니다. 살인이라든지 학살이라든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일은 분명히 아닌 거죠. 그러나 어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학살자로 돌변한 것은 늘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14세기의 유럽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며, 인간이 인간을 죽인 이야기를 단순한 텍스트로 소비하는 태도를 경계하자고 이야기한 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2)번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주어진 자료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유대인이 당시 사회적 소수자였으며 기독교 중심의 유럽 사회에서 천시받는 존재였다는 점을 잘 지적하였습니다.

학생들은 (1), (2)번 질문에 답하면서 2차시의 핵심 주제인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해 거의 다 알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재난 상황 속에서 공동체에서 배제하기 쉬운 집단에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2차시 수업

2차시 수업에서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내용과 역사적 사례에 대해 학습한 후 코로나 시대의 ‘희생양’에 대해 탐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실제 사용한 학습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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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시 수업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집단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한 존재가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 둘째, 내가 소속한 집단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때, 내가 소속한 집단이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 동질한지 진단해보는 것입니다.

‘2. 코로나-19로 내가 속한 집단이 타 집단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유사했습니다. ‘동양인’이라는 집단 전체가 코로나의 원흉으로 취급받아 서구 사회의 조롱거리가 된 사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던 것은 ‘1. 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속한 집단이 타 집단을, 혹은 내가 속한 집단 내의 특정 그룹을 희생양으로 삼은 사건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입니다. 아래는 수업 당시 학생들이 언급한 사례를 칠판에 옮겨 적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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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당시 학생들이 언급한 사례를 옮겨 적은 내용 중국인, 문재인, 정부, 파업하는 의사들, 교사, 중국의 식문화, 이태원이라는 공간, 게이, 교회 전체, 신천지, 사랑제일 교회, 전광훈, 마스크 잘 안 쓰는 노인, 놀러 다니는 젊은 애들, 확진 경험자, 우한 교민, 월급쟁이, 공무원... 생각보다 너무 다양한 사례가 나와서 흥미로웠습니다. 사례를 모아놓고 보니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이 한 번쯤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고까지 느껴졌습니다.



여러 답변 중 중국의 ‘식문화’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참신한 답변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초기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어서 바이러스가 발병하였다는 견해로 중국의 ‘쇼킹한 식문화’가 집중포화를 받은 사례를 꼬집은 것입니다. 초유의 전염병 앞에서 문화 상대주의라는 상식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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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식당에 내걸렸던 ‘박쥐 시진핑’ 풍자화. 중국의 박쥐 취식을 비난하는 동시에 욱일기 패턴을 차용하여 아시아인에 대한 전반적인 혐오를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출처는 김인오, “日욱일기에 그려진 박쥐 시진핑`…코로나 풍자화 스웨덴서 인종차별 논란”, 매일경제, 2020.10.13



신천지, 사랑제일교회 등의 사례는 대단히 논쟁적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모둠에서 같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선생님. 실제로 코로나 확산에 책임이 있는 집단도 희생양으로 볼 수 있는 건가요?“


사실은 저도 고민되는 질문이었습니다. 해당 집단이 코로나 확산의 한 기점을 마련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코로나 확산에 영향을 준 게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만 고민해보자. 우리가 그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의 분노를 쏟아낼 쓰레기통으로 그들을 소비하고 있는 건지 따져 물어보는 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재잘대는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학생이 평소 특정 계층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발견하기도 합니다.


“나 매일 헬스 가잖아. 마스크 안 쓰는 사람들 완전 짜증나. 특히 아줌마들이 꼭 안 쓰더라?”


학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 교사 : “정말 마스크 안 쓰는 사람 중 ‘아줌마’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 학생 : “어...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 교사 : “그런데 왜 특히 아줌마들이 문제라고 얘기했어?”
· 학생 : “그냥 아줌마들이 평소에도 조심성 없고 많이 시끄럽게 떠들고 그러는 것 같아서...”
· 교사 : “본인이 평소 ‘아줌마’라는 집단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돌아본 후 다시 접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혐오의 대상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지적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신천지 때문에 교회 다닌다고 하면 다 이상하게 보는 것도 좀 있어.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다 싸잡아서 욕하는 것 같아. 대면 예배가 가능한 시점인데도 예배드리고 왔다고 그러면 죄인 취급하는 것도 좀 그래.”

“댓글 보면 종교 자체를 욕하기도 해. 그딴 거 왜 믿냐고 한심하다고 그러던데.”


1번, 2번 질문은 학생들의 생각을 수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기에 사례를 풍부하게 수집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3번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내 집단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때, 내 집단이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 동질한지 진단하여 내 감정이 합리적인지 돌아보는 것이 3번 질문의 목표입니다.


응답 유형은 크게 3가지 정도였습니다. 유형과 대표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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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업을 마치며


장황하게 묘사했습니다만, ‘이 수업의 결론은 이렇습니다!’라고 드릴 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신천지, 사랑 제일 교회도 희생양으로 볼 수 있는가?’와 같은 민감한 논제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이 난 것도 아니고, 내 집단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은 경험- 내 집단이 희생양이 된 경험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 수업이 우리 학생들의 시민의식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키리라 생각지도 않습니다. 학생들은 교실 수업보다 훨씬 다양한 경로로 사회 인식을 구축하고 있으며, 수업보다 파급력 있는 콘텐츠도 유튜브에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날것의 인식을 드러낸다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역사를 복기하며 얼마나 많은 집단이 혐오 대상으로 소비되었는지 살펴보았고, 자신이 타 집단에 드러낸 분노가 합당한 비판인지 혐오 감정인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집단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같은 원리로 나 자신이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학생들이 이 수업을 떠올려주길 바라봅니다. 전염병만이 재난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목숨이 걸린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은 이미 입시라는 생존 경쟁에 내몰려 있고, 앞으로도 구직, 주거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할 겁니다. 그때마다 내부의 갈등을 ‘희생양’을 통해 해소하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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