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두 세계인이야!
세계사 수업과 나의 삶 성찰하기

수업이야기 >> 수업 사례 ① - 세계시민을 위한 역사교육 재구성 사례

≫ 김용천(경기 마석고등학교)


본 원고에 해당하는 수업 자료 다운링크입니다. 김용천 선생님께서 배움과 나눔의 마음을 내어 기꺼이 공유해주셨습니다. 링크 및 배너를 클릭하면 전국역사교사모임 자료실 게시물 링크로 이동합니다. 정회원 자격이 있어야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akht21.org/archive/post/118/32585


편집자주] 이번 가을호 수업이야기에는 김용천 선생님의 세계사 배움책 사례를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4년 전인 2016년 토론수업 사례를 접하며 배움책을 직접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배움책을 제작하면서, 방법론을 넘어 “역사를 왜 배워야할까?”라는 질문으로 옮아가게 되었고 이 질문은 학생의 역사 인식을 구성하는 주류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업 방식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세계사 수업을 담당하게 된 지 3년차인 2020년부터 세계사 배움책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 중 일부를 전국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 수업나눔터(세계사)에 공유하였습니다.

원고의 마지막에는 원고에서 다 못 다룬 김용천 선생님의 발문 사례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가치로 수업 하실지 고민하시는 독자 선생님들께 유의미한 ‘발문’이 되기를,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많은 선생님들께서 기꺼이 ‘역사교육’에 수업 이야기와 고민을 나눠주시기를 기대합니다.


1. 세계사 수업,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


고등학교 세계사를 3년째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저에게 세계사는 낯선 과목입니다. 정말로 역사가 좋아서, 수능을 위한 내용 강의를 원해서, 치열한 내신 경쟁 속에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다른 사탐 과목이 맘에 안 들어서, 친구가 세계사를 신청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사를 선택한 학생들의 욕구를 고려하는 동시에 내가 지향하는 세계사 수업이 어떤 모습인지 고민해야 했으나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지금 써 내려가는 글은 세계사 수업에서 일가를 이룬 성공한 교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고민하고 실패하고 있는 햇병아리의 이야기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세계사 수업을 힘들게 느끼는 이유는 너무 명확합니다. 아는 게 없어서입니다. 역사 교사가 아닌 한국사 교사로서 살아온 5년의 시간은 임용을 위해 쌓아 올린 세계사 지식을 초기화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세계사 공부에 소홀했던 저에게는 세계사의 내용 요소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힘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지식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여 학생에게 전달하는 앵무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한 수업 경험은 저의 자존감을 크게 갉아먹었고, 세계사 수업 시간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세계사 시간이 곤욕스러운 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낯선 인명과 지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고유명사와 조사도 구분하지 못해 학습지를 읽다 멈추길 반복하는 학생들, 도무지 이걸 왜 선택한 건지 후회가 된다는 학생들. 저는 이 학생들에게 세계사 수업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내 수업의 목표를 새로이 정립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을 고민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역사 수업의 원칙은 ‘삶과 맞닿아 있는 수업’입니다. 세계사의 경우에는 이러한 원칙을 지켜가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고, 나열할 지식이 너무 많으며, 학생들이 세계사를 학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세계 시민으로서 평화와 공존을 지향한다? 추상적이고 흐릿한 목표 의식은 있었지만 그것을 제 스스로 납득하고 구체화시키는 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주변에서는 세계사 학습의 당위성을 제고하는 사건들이 많이도 발생하였습니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문제, 코로나 19 사태 이래 지속한 집단 혐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재조명된 인종 차별 문제, 관짝 소년단 코스프레를 비판했다가 한국 사회에서 배제된 샘 오취리. 이는 모두 타인의 생활양식, 사고방식, 그들이 생존해 온 역사·문화적 맥락, 혹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감정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존 듀이의 서술은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줍니다.


민주주의는 정부 형태 이상의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동생활의 양식이고,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관심사에 참여하는 개인의 공간이 확대되는 것은,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타인의 행동에 관련짓게 하며, 자신의 목적이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타인의 행동을 고려하게 한다. 이는 계급, 인종, 영토 등 자기 행동의 온전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벽이 철폐됨을 의미한다. - 존 듀이, 『민주주의와 교육』, 교육과학사, 2019, p.155.


존 듀이가 100여 년 전 쓴 글이 마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지수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들은 계급, 인종, 영토라는 장벽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누구나 민주주의를 보편타당한 가치로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한국인’ 내의 정치적 자유를 의미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세계사 수업 목표를 구체화해보았습니다.


① 내가 세계의 일원임을 이해한다.

② 타문화에 대한 부적절한 오해를 지양한다.

③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한다.


내가 세계의 일원임을 이해하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내면화하는 것은 이상주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적절한지 고민해보고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하는 경험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세계의 여러 갈등을 나의 문제로 여기고,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확립하는 것.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세계사 수업의 목표입니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수업을 어떻게 조직하였는지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 학생들과 어떤 수업을 전개하였나?


(1) 야! 너두 세계의 일부야! - 난민 A의 수기를 읽고 그를 이미지로 묘사하기

매 학년 첫 수업 시간은 학생들이 교과의 가치를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내용 지식 습득과 내신 등급 산출이라는 도구적 목표를 보고 달려온 학생들. 이 학생들과 함께 가치 지향적 수업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가진 문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시간의 목표는 내가 세계의 일원임을 이해하고 세계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침 하안중학교 손석영 선생님께서 중학 역사 오리엔테이션용으로 준비하신 활동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미국인 의사인 ‘벨 훅스’에 대해 제한적인 정보를 제공한 후 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활동이었습니다. 이 활동의 목표는 미국인 의사라는 정보에서 자연스레 ‘백인 남성’을 떠올리는 학생들의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활동을 조금 변형시켜 난민의 구술 자료를 읽고 그를 이미지로 묘사하는 활동을 제작하였습니다. 제가 활용한 구술 자료는 제주 4.3사건 당시 살아남기 위해 밀항을 선택한 몇몇 인물의 구술 자료를 혼합한 것이었습니다.

‘밀항선을 타고 본국을 떠나 난민이 된 A의 수기’

본국에 남으면 어떻게든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 밀항 말고는 살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나를 밀항선에 태웠다. …… 밀항선은 소형 노후선이 대부분이라서 도중에 엔진 고장 등으로 자주 조난 사고가 일어난다고 들었다. 나는 생선 넣는 좁은 공간에 들어갔는데, 내가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다른 남자들이 밀려 들어와 8명 정도인가, 그렇게 좁아터진 곳은 처음이었다. 억, 하며 질식사할 것 같았다.
…… 목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밤중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내리려고 뚜껑을 열었는데 내가 모르던 공간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나왔다. 배는 12톤인데 거기에 탄 사람은 100명. 그러니까 주먹이 1개 들어갈 공간이면 한 사람 들어가도록 해서 넣은 것이다. …… 한때는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제대로 된 등록이 없으니까 어디 가도 어깨를 펴지 못했다. 학교에 못 간 적도 있었다. 일을 해서 많이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 후지나가 다케시, 「재일 제주인과 ‘밀항’-‘재일 제주도 출신자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조사에서」, 『4.3 과 역사』 10, 2010, pp.168~173에서 5인의 수기를 편집, 윤문.


많은 학생들은 제가 제시한 수기를 읽고 ‘중동’, ‘아프리카’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난민A의 정체가 제주 4.3사건 당시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이를 대단한 반전으로 여겼습니다.



· A씨를 전쟁 중인 중동지역 사람으로 묘사했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눈 크고 코크고 수염이 많은 사람이다. 근데 정체를 들은 뒤 되게 놀라웠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나라도 힘들 때 저런 일이 있다는 게 체감이 되지 않았다.


· A씨를 항해로 인해 눈에 힘이 없고, 오랫동안 씻지 못해 초췌한 모습이며, 머리랑 수염이 덥수룩하고, 왜소한 체격을 가진 털이 많고 힘이 없는 남성으로 묘사하였고, A씨의 정체를 듣고 A씨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생각을 못했고, 밀항을 하였다는 이유로 이슬람 문화권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런 생각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 나는 A씨를 시리아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남성을 상상했다. 그러나 A씨의 정체를 듣고 난민이라는 단어 하나로 A씨를 묘사한 나 자신을 성급하고 편견적이라고 생각했다.


· A 씨를 못 사는 나라의 사람이자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생각하여 옷은 많이 헤져있고 머리는 덥수룩하며 얼굴은 먼지와 흙들 때문에 까매져 있는 것처럼 묘사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당연히 다른 나라 일거라 생각했다. 결국 내 생각 속에는 어느 정도의 편견이 존재했던 것이다. 글만으로는 사람 혹은 나라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없고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국적이 한국일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매우 놀랐고 아마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나도 모르게 ‘세계사’니까 하면서 A씨 또한 한국인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난민이라 해서 호리호리하고 가난해보이도록 그림을 그렸다. 어쨌든 이 모든 게 내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했다. 고정관념을 깰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나는 A씨를 전쟁이나 학살을 피해 도망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유대인 대학살이 있었고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묘사를 했다. 그런데 A씨의 정체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인 4.3사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놀랬다. 정작 우리나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체를 듣고 나니 내 상상과는 너무 다르고 다른 나라의 역사도 아닌 우리나라 역사인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고 힘든 상황이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관점의 차이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고 무조건 옳은 것은 없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많은 의견 중에서도 위의 밑줄 친 의견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나도 한국도 세계의 일부임을 망각한 채 세계사는 남의 이야기를 배우는 교과라고 생각한 학생의 반응, 이 반응을 보며 세계사 수업을 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2) 타 문화에 대한 오해를 풀자! - 페르시아와 이슬람에 대한 인식 돌아보기

난민을 상상할 때 많은 학생들이 떠올린 키워드로 ‘중동’, ‘이슬람’ 등을 꼽을 수 있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으로 대표되는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이 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겠지만 해당 지역에 대해 학생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단지 ‘정치적 불안’ 이상의 부정적 단어들로 가득했습니다.

‘중동’, ‘이슬람’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개념이나 감정 등을 자유롭게 발표해보도록 하였는데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다름 아닌 ‘IS’였습니다. 그 외에도 테러, 폭력, 내전 등의 부정적 키워드가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히잡, 쿠란, 돼지고기, 라마단 등 문화적 특징에 대한 언급이 뒤를 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나열한 키워드가 모두 거짓이라고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키워드로 무슬림 전체를 설명하려 든다면 학생들은 공존의 기회를 잃고 차별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서아시아의 역사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 이슬람에 대한 인식을 반성하는 것을 수업 목표로 삼았습니다.


1) 페르시아사 - 미디어에 나타난 오리엔탈리즘 읽어내기

페르시아에 대한 학습에서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300’(2007)을 활용했습니다. 영화서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서구 세계의 중동 인식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 활동은 운산고 문순창 선생님의 활동지에서 대부분의 소스를 얻었습니다. 학생들이 이 활동을 통해 내면화한 오리엔탈리즘을 반성하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갖게 되길 기대하였습니다.

우선 내용 학습 단계에서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과 오리엔탈리즘의 개념 및 사례에 대해 학습하였고, 내용을 숙지한 후에는 실제로 영화를 보며 아래의 활동지를 채워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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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영화에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대립이 서양과 동양, 선과 악, 자유인과 노예, 공화정과 전제정의 대립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서양의 동양에 대한 우월 의식도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영화에 드러난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하면서 대상에 대한 노골적 비하뿐 아니라 대상을 ‘일반화’, ‘정형화’하는 태도 전반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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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슬람사 - 이슬람은 폭력을 일삼는 나쁜 종교라구?

이슬람교에 대한 수업 역시 페르시아 수업과 유사한 방향성을 띠고 전개하였습니다. 수업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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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다룬 내용은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이슬람 문화의 개방성, 관용성에 초점을 두려고 노력했습니다. 1차시 수업에서는 이슬람의 근본 교리가 신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것을 이야기했고 이슬람의 5행 중 자선의 의무를 들어 이슬람의 경제관을 이야기했습니다. 2차시 수업에서는 이교도의 출세길이었던 데브시르메와 예니체리, 종교적 자유의 대가였던 지즈야 등을 설명하며 오스만의 문화적 다양성을 이야기했습니다.

3차시에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관련한 신문 기사를 읽고, 기사에 드러난 차별적 발화에 답해보는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3차시에 활용한 활동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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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제공한 지식이 교과서 지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학생들의 답변도 교과서적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이슬람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만으로도 가치가 없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래는 3차시 발문에 대한 학생들의 답변입니다.



·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가난한 이에게는 자선을 행해야 하는 그런 의무도 있다고요. 나쁜 사람들은 다수 중 일부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로 일반화 시키지 말아주세요.

· 모든 무슬림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것은 아니에요. 일반적인 무슬림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 나빠할 거에요.

· 이슬람교를 생각하면 흔히 테러를 하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원칙상 신 앞에 평등하므로 차별이 없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편등한 모습들은 원칙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슬람 제국은 동서 문화를 융합한 여러 가지 문화가 발전한 국가이다. 이슬람 과학,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교는 강압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이슬람하면 테러 등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식하는 것은 특정한 테러 단체의 이미지를 이슬람 전체에 빗대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슬람 문화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내 생각에는 “이슬람교는 신 앞에 평등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종족과 계급간의 차별이 없는 종교다. 하지만 왕조의 정책에 따라 평등 원칙이 변질되서 비아랍인을 차별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이슬람교는 폭력적인 종교가 아니다.” 라고 말하면 오해를 풀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듣는 사람이 있어야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듣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자신에게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 이슬람교가 여자는 히잡을 써야 하고 예멘 사건 때처럼 난민 자체도 되게 많아서 한국에선 이슬람교가 좋은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슬람교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니 자신의 종교 교리만 잘 지켜나가면 된다.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열심히 ‘중년 여성’을 설득한 학생들의 노력이 가상했습니다. 그 와중에 마지막 두 개의 답변은 시사점이 있어 눈에 띄었던 답변입니다. 혐오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 대상의 본질보다는 대상과 나 사이의 이해관계가 혐오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매우 적절한 답변이긴 하였으나 약간 무력감이 몰려오기도 하더군요.


(3) 발전? 그게 뭔데? - 문명과 야만, 혁명과 반혁명에 대한 재고

중동과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굳게 자리 잡은 데에는 유럽 사회의 발전 과정을 ‘보편’으로 보는 인식 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근대 서구 문명에서 먼저 이룩한 산업화, 민주화, 고도의 과학 문명 등은 학생들의 인식 속에 ‘발전’의 척도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발전’은 역사 교과 전반을 가로지르는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세계사 시간에 학생들은 선사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의 발전, 그리고 이른바 문명의 등장을 거쳐 동아시아-서아시아·인도-유럽에서 일어난 발전에 대해 학습합니다. 그리고 각 지역 세계의 역사가 유럽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를 거쳐 ‘근대’라는 우월한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발전이란 매우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역사적 발전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해보지 않고 세계사의 발전 서사를 학습한다면 그 발전 도식에 맞지 않는 사회를 ‘정체된 것’, ‘야만’, ‘미개함’으로 정의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고착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비단 유럽 중심주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수렵에서 농경 사회로의 ‘발전’, ‘문명’의 등장을 논할 때에도 그와 같은 이분법은 유효하며, 각 지역 세계의 발전을 논할 때에도 ‘중심’과 ‘주변’의 위계가 서술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특정 문화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는 이러한 이분법에 균열을 일으키고 학생들의 역사적 시야를 확장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1) 이른바 ‘4대 문명’의 등장 - 문명의 발생은 인류 발전의 시작일까? 쇠퇴의 시작일까?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문명을 일컬어 ‘4대 문명’이라고 합니다. 4대 문명이라는 말에는 이미 4개의 문명권이 인류 ‘발전’을 선도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때 말하는 발전이란 농경의 발달을 통한 대규모 인구 부양, 치수관개 사업의 발달을 비롯한 지배 조직의 체계화, 문자와 여러 학문의 발달 등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문명의 등장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회 조직의 원형이 만들어지고 기술 문명이 발달하여 인류가 ‘발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문명 발생 이후 인간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이런 상반된 측면을 직시하고 문명의 의의를 재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다음과 같은 수업을 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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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학습과 1차시 학습을 통해 문명 발생의 명암을 접한 학생들은 2차시 학습에서 문명의 발생이 인류사에서 어떤 의의를 갖는지 직접 평가해보았습니다. 학생들이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가 핵전쟁을 벌여 멸망한 후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류의 궤적을 추적한다면 ‘농경 생활의 시작과 문명의 성립’, ‘핵전쟁’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인류사의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하리라는 가정이었습니다.

인류 역사 전체를 조망했을 때 찰나에 불과한 문명 이후의 시간. 외계인은 그 시간을 인류의 발전으로 평가할까요? 아니면 쇠퇴로 평가할까요? 수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학습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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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논제에 대한 학생들의 답변 중 일부입니다.


(A) 문명의 발생은 인류 발전의 시작이다.


· 문명이 발생하면서 인간은 많은 발전을 했다. 지배층은 개인의 갈등을 조정하고 집단을 통솔하여 개인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해냈다. 그래서 대규모 인구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또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문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으로 좋은 결과물들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지배층 때문에 불평등이 일어났다. 개인 간의 계급 차이가 생기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사이에 사회적 힘의 격차도 심해졌다. ……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발전과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계속 반복되었지만 반복하며 해결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 인류들이 서로 같이 살아가면서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문명의 발생은 인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 문명의 발생은 인류의 발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명의 발생 덕으로 현재의 시대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혜가 높아짐으로 자연환경에 크게 치우치지 않고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문명의 시작으로부터 현재까지 빠른 발전으로 인간은 점점 수명이 길어졌고 삶의 질도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B) 문명의 발생은 인류 쇠퇴의 시작이다.


· 나는 쇠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소극적 평화를 공부할 때 전쟁이 없는 상태라도 그것은 평화라고 볼 수 없다고 배웠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은 없을지라도 빈곤, 억압, 인권 침해 등이 존재하는 이상 평화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 또한 비록 농경, 기술 등이 발전하여 삶이 편리하더라도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계급 차이 또는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적 지위, 환경문제를 포함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에 인류의 쇠퇴라고 생각한다.

· 나는 문명의 발생이 인류 쇠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입장에선 편리함과 자유를 얻게 된 계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구 멸망 끝에 다다른 인류, 즉 미래인들의 입장에선 빈부격차의 심화, 물질만능주의의 출현과 자연환경 파괴 등을 불러일으킨 문명의 발생을 원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멸망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이므로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지 말아야겠다.


(A)측 학생들은 대체로 현재 우리의 삶의 모습, 편리성 등을 논거로 삼았고, 문명 발생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수긍하면서도 그것을 해소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인류사의 발전이라는 적극적 해석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B)측 학생들은 환경 문제,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 전쟁의 위협 등을 논거로 삼았습니다. 현재의 편리함마저 상실한 디스토피아에 살아갈 미래인들의 입장에서 문명의 발생을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문명 발생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수용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답변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A)와 (B) 중 무리해서 한 가지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학생들이 갖고 있던 통념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사 수업의 초반부에서 ‘발전’에 대해 평가한 경험이 이후 배우게 될 모든 종류의 발전을 재평가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2) 시민 혁명 - 프랑스 교과서에서 공포 정치는 어떻게 서술되어야 하는가?

세계사 서술에서 인류 발전사의 클라이맥스를 꼽으라면 시민 혁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혁명은 신분제와 봉건제, 절대주의를 타파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프랑스국민을 형성한 사건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은 국민적 정체성의 형성, 애국심과 시민정신의 함양이라는 역사교육의 목표에 가장 적절하게 부응하는 주제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공포정치는 프랑스 혁명의 의의와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왔습니다. 공포정치에 대한 해석은 크게 정통해석과 수정해석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정통해석은 공포정치 시기를 포함한 자코뱅 집권기 전체를 혁명의 정점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자코뱅 독재는 비록 실패하였으나 부르주아 혁명의 한계를 넘어 민중의 정치적·사회적 평등이라는 방향을 제시한 실험이었다고 봅니다. 또한 공포정치는 내외의 전쟁, 반혁명 세력의 준동이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로 평가합니다.

반면 수정해석은 공포정치가 상황의 산물이 아닌 프랑스 혁명(1789년 혁명까지도 포함하는)의 내재적 한계라고 평가합니다. 절대적인 인민의 주권이라는 이념 하에, 혁명에 반하는 모든 의지를 ‘특권층의 음모’로 규정하고 제거해온 것이 프랑스 혁명 전체를 가로지르는 공포정치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수정해석에서 바라보는 공포정치는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인민의 이름으로 만들어낸 상상의 적을 끊임없이 숙청한 사건에 불과합니다.

프랑스 교과서의 공포 정치 서술은 대체로 정통해석에 입각하여, 공포정치가 공화국이 처한 위기의 산물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프랑스는 자유발행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검·인정 과정이 없으나, 국가 교육과정은 존재합니다. 이 때 출판사는 교사들의 반응과 사회적 비판을 인식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술을 피하는 경향이 큽니다. 프랑스 역사 교과서의 공포정치에 대한 서술 기조가 정통 해석에 치우친 것도 그 결과물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이념은 프랑스인의 자부심입니다. 프랑스 대중이 바스티유를 점령한 7월 14일은 현재에도 프랑스 혁명 기념일(Bastille Day)로 지켜지며, 그 날은 대형 퍼레이드, 콘서트, 불꽃놀이 등으로 성대한 축제가 장식됩니다. 프랑스인의 자부심이자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는 집단 기억인 프랑스 혁명.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공포정치가 프랑스인들에게 어떻게 교육되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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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시 발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구는 ‘프랑스 교과서에서’입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기억이 프랑스 국민 정체성의 핵심임을 고려했을 때, 프랑스 역사교육은 얼마나 자유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프랑스 역사교육을 바라보는 나의 시점과 한국 역사교육을 바라보는 나의 시점 사이에 차이점이 있진 않은지 고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수업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정통 해석과 수정 해석, 방데 전쟁의 개요 등을 구두로 설명하였고 다음과 같은 PPT 슬라이드를 인쇄하여 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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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중 저와 함께 1학년 한국사 수업을 진행했던 한 학생은 “선생님. 1학년 때 했던 주제 중 ‘3.1운동은 비폭력 평화시위의 상징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라는 논제의 토론과 방향이 유사한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3.1운동 당시 대중의 폭력 행위와 프랑스 혁명기 자코뱅의 국가폭력은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국민 정체성에 관여하는 강렬한 집단 기억에 파문을 던지는 발문이라는 점에서 3.1운동에 대한 발문과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발문은 분명히 유사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공포정치의 당위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방데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 혐의자법의 모호성, 혁명재판소에서 자행한 사법살인은 오늘날의 학생들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국민 정체성 교육으로서의 역사교육에 대한 평가에 무게가 실리기를 기대했으나, 공포정치를 비판하는 글에 집중한 학생이 많았던 것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토론 후 느낀 점을 적는 과정에서는 눈에 띄는 답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 잘못된 점을 안다고 자국 역사에 열등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역사를 여러 방면에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라의 이미지를 위해서 과거를 순화해서는 안 된다. 공포 정치가 혁명 완수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안에서 벌어진 인명 살상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오히려 혁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 혁명의 결과가 중요한가? 아니면 과정이 중요한가?

· 자국 역사의 추한 모습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세히 서술하여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 쟈코뱅의 몰락은 공포정치가 옳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처형의 공포에 떠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공포 정치를 통한 혁명의 성과를 느낄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나라의 운동과 비교해서 생각했을 때는 판단하기가 어렵다.(3.1운동 관련 탐구를 떠올렸던 학생)

· 역사 서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잘못은 잘못 대로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국민의 입장에서 명예롭게 여기는 프랑스 혁명이기에, 긍정적인 평가에 힘을 싣는 것이 더 나은 일인지 고민이 되었다.

·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수정해석을 잘 받아들일 방법은 없을까?

· 프랑스 혁명 뿐 아니라 다른 혁명들도 고민하게 되었다. 많은 혁명에 억압과 통제, 인명 살상이 수반되었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니 어려웠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사건을 바라볼 때와 공포정치에 집중해서 바라볼 때 너무 다른 생각이 들었다.

·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유사한 사례는 없는지 궁금해졌다.

· 진정한 혁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폭력? 비폭력? 살생? 비살생?


많은 학생이 자국사의 부정적 측면을 직시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혁명에 수반되는 폭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역사적 사건의 결과와 과정 중 어디에 주목해야 할 것인지 등 새로운 쟁점을 제시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국사 서술에 작용하는 국민 정체성 문제를 두고 고심한 흔적을 내보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교사의 의도를 포착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라는 세계사적 대사건의 의의를 재평가하는 경험, 자국사 서술에 작용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들여다본 경험이 앞으로의 역사 학습에 한 발판이 되길 기대하며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4)공동체와 나의 관계,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 다르마에 순응하는삶에 대해 고민하기


앞서 다룬 주제들이 나의 삶을 간접적으로 성찰하는 주제였다면, 세계사를 소재로 내 삶을 직접 성찰할만한 주제들도 있었습니다. 인도사를 소재로 한 ‘다르마에 순응하는 삶’, 중세 보편 논쟁을 소재로 한 ‘보편자와 개별자로서의 나’, 사회 계약설을 소재로 한 ‘일반의지와 나’라는 주제입니다.

역사적 쟁점을 다룸으로써 내 삶을 반추하는 게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내 삶을 직접 성찰하는 주제이다보니 역사 수업이라기보다는 윤리, 정치 수업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와 나의 관계를 정립하는 행위가 역사 이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역사를 소재로 ‘전락’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수업의 문제의식과 결과물이 유사하여 지면상 인도사 수업만 복기해볼까 합니다.

제 경우 세계사에서 가장 수업하기 싫은 단원은 대체로 문화사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문화사 파트에 나열되어 있는 다양한 지식이 당대인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현재 나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도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도 고전 문화의 확립이라는 주제에서 등장하는 『마하바라타』, 『라마야나』같은 책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소개하기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수업을 앞두고 『마하바라타』를 구글링하였는데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몇 시간을 재미있게 서핑한 끝에 마하바라타가 왜 인도 철학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지,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 돌입하여 인도사의 전개에 대해 수업한 후,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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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타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⑨번,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바가바드기타」라는 독립된 편인데 힌두교의 3대 경전으로 꼽힐 정도로 힌두 교리의 정수를 담은 작품이라 평가됩니다. ‘업(카르마)’을 소거하고 윤회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자신의 사회적 의무(다르마)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힌두교의 주요 교리 중 하나입니다(카르마 요가). 바로 이 대목에서 학생들과 나눌 핵심 발문이 제작되었습니다. 수업은 다음과 같이 전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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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정체성에 관여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진단하고 그것의 타당성을 따져 묻기를 기대하였습니다.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탐독한 후 제시한 학습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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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질문에서는 아무래도 학생으로서의 다르마를 이야기하는 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 저 역시 학생들이 이 과제를 통해 학업 스트레스를 한껏 쏟아 내리라 예상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을 받아보니 그 안에서도 고민의 결이 매우 다양했습니다. 진학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는 풍토, ‘바른’ 학업 태도와 용의 복장을 요구하는 사람들, 연장자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 등, 학생들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학생다움’을 요구받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다르마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수의 의견에 순응하라는 압박, 예비 군인에게 요구되는 건강한 몸과 마음, 여성에게 요구되는 꾸밈과 다이어트, ‘한국인’에게 요구되는 겸손함의 미덕 등등. 이 응답으로 학생들이 직면한 사회적 압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3번 응답에서 나타난 당찬 고백과 달리, 4번 응답은 많이 보수적이었습니다. 사회의 안정을 고려하여 ‘(A) 다르마에 순응한다’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을 것은 충분히 예상하였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A)를 선택한 학생이 60%에 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A)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 굳이 저항해봤자 내가 더 힘들다.

· 다르마에 순응해야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다.

· 다르마에 순응하지 않으면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 자신의 다르마에 충실히만 한다면 삶이 평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지금 나의 위치에서 가장 맞는, 확실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득을 많이 볼 거 같다

· 사회는 개인적 자아 따위는 신경쓰지 않기에 순응이라는 편한 길을 택한다.

· 갖춰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위험성이 적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 다르마에 순응하는 것이 개인적 자아에 충실한 것보다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씁쓸한 답변이었으나 저에게는 평가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나아가서는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사회적 요구에 순응하는 게 낫다는 학생들의 답변은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세속적이라 비판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이 자신을 역사 전개의 주체로 자각하고 보다 다양한 자아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 역사교육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요?


4. 수업으로 채워지지 않는 고민들

교사의 자존감은 내 수업의 당위성을 확립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낯설기만 한 세계사 수업 시간이 지옥 같았던 적도 있었으나, 세계사 수업의 목표를 설정하고 가치 지향적인 발문을 삽입해나가면서 세계사 수업 시간이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고민도 많습니다. ‘다르마’에 관한 수업에서 보였던 학생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시피, 생존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은 자아, 공공선 같은 걸 따질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일개 역사 교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상주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 300을 소재로 한 수업에서 한 학생이 보인 반응도 기억에 남습니다. “300은 오락 영화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페르시아를 뚜렷한 악역으로 묘사한 것뿐이다. 영화도 아주 재미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감독이 페르시아를 혐오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영화적 표현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은데 너무 진지하게 비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위와 같은 사례는 학생이 가진 날 것의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긍정적입니다. 정말로 고민되는 것은 학교를 벗어난 학생이 쏟아내는 혐오와 차별입니다. 하루는 모르는 사람에게 격양된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페미니즘 운동가로 보이는 분이었는데, 학생 한 명이 자신의 피드에 원색적인 비방 댓글을 자주 달아서 학생 정보, 페이스북 친구 관계 등을 알아본 끝에 저에게 연락했다는 겁니다. 그 분이 보낸 이미지에는 페미니즘 전체를 ‘과도한 선민의식’으로 치부하고 노골적인 비방과 욕설을 일삼는 학생의 모습이 박제되어 있었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설의 주인공이 저와 함께 하는 수업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해온 학생이었다는 것입니다.

PC(Political Correctness)라는 말이 대중적 관심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PC 피로증’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특히 댓글 등을 통한 익명 비판은 PC를 주장하는 태도나 자세 등을 문제 삼아 감정적 반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더더욱 학생의 삶과 밀착하는 세계사 수업을 설계해야겠다고 반성하게 됩니다. ‘혐오가 넘쳐나는 현실 공간에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나는 뜬구름 위에서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당위적으로 설파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토론형 과제를 제시할 때 양측의 의견이 모두 정당성을 갖도록 설계하기 위해 신경 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 갈등은 그렇게 고결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의견이 항상 우위를 점하지도 않습니다. 현실 속 갈등을 직시하면서도 혐오를 재생산하지 않는 역사 수업, 현실의 갈등 상황에서 학생들이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수업, 언젠간 저도 그런 수업을 할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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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천 선생님께서는 본 원고에 나온 세계사 교육과정 재구성 사례에 포함된 또다른 사례를 소개해주시기 위해 '보론' 원고를 보내주셨습니다. 코로나 19 시대와 세계사 수업을 연계해 아이들과 고민을 나누는 멋진 사례입니다. '전염병과 희생양 메커니즘'도 일독을 권합니다. 아래 링크/배너를 클릭해주세요

https://brunch.co.kr/@bangsoon8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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