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야기 >> ‘초협력교실’ - 교사&연구자가 함께 기획한 수업 이야기
①화(봄호) – 기획과 고민 : 4.19 혁명 수업을 고민하다
②화(여름호) - 협력 : 지역, 학생의 눈으로 4.19 혁명 수업을 검토하다
③화(가을호) – 실천 : 지금, 여기의 과제를 떠올리며 4.19 혁명을 성찰하다
≫ 오도화(경남 태봉고등학교)
편집자주] 이번 가을호 <초협력교실>에서는 오도화 선생님(경남 태봉고)의 4・19 혁명 수업 성찰 기록을 담았습니다. 오도화 선생님께서는 홍석률 교수님(성신여대 사학과), 배성호 선생님(서울 송중초) 선생님과 협력하여 수업을 만들어나가며 좋은 배움의 경험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협력뿐만이 아닙니다. 기획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펜더믹 사태를 마주하여, 4・19 혁명 수업을 6월에 진행해야 했던 선생님의 고뇌도 함께 느껴집니다.(여름호에 말씀드렸듯이 오도화 선생님께서는 등교 수업 이후 4・19 혁명 수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오셨기에 수업 일정이 미루어졌습니다.) 등교 수업 이후에도 방역 수칙에 맞추어 기존 모둠 활동을 조정해가며 수업을 진행하신 오도화 선생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COVID-19를 맞아 교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실 독자 선생님들께도 오도화 선생님의 4・19 수업 원고가 공감과 위로로 다가오기를 기원합니다. 다음 겨울호 <초협력교실>에서는 맹수용, 이건주(의경기 의정부고) 선생님께서 『낙인찍힌 몸』의 저자 염운옥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갈 한국사 수업 이야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블랙페이스 논란을 교육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두 분 선생님들의 수업 기획과 성찰을 담으려 합니다. 독자 선생님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상쾌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안에 있는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상쾌함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앗, 마스크를 안 쓰고 나왔네...’
처음에는 금방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생각했다. 개학이 미뤄지고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 이야기가 나올 때도 ‘뭘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하며 설마 온라인 개학이 현실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온라인 개학은 현실이 되었고, 6월이 되어서야 고1 아이들의 얼굴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4·19 혁명 수업도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등교 수업을 하는 6월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4·19 혁명 수업을 6월에 해야 하다니… 그것도 진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오다) 수업이다. 게다가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신입생들이고 심지어 거리두기로 따로따로 앉아있어 교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했다. 교사와 학생들은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해야 하며, 모둠활동은 금지된 상황이다. 총체적 난국. 하지만 누굴 탓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 활동지를 다시 고치고 수업 방식도 모둠활동을 빼고 개별 활동을 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2차시 수업을 진행하였다.
처음 ‘초협력교실’ 수업 제안을 받았을 때, 연구자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감과 부담감이 함께 다가왔다.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좀 더 생생한 자료는 없을까?’, ‘좀 더 재미있게 수업을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하지만 스스로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항상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 연구자와 경력 교사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대감을 주었다. 하지만 부족한 활동지와 수업 디자인을 그분들에게 보여 드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연구자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4·19 혁명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되는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은 전체적인 수업 디자인에 대한 조언과 학생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4·19 혁명에서 학생들의 구체적인 활동 사례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자료였다. 우선 홍석률 교수님의 피드백은 4·19 혁명에 대한 좋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2·28 대구 고등학생 시위와 부산고 학생들의 시위 상황을 정리한 원고를 보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보충설명을 할 때 더욱 생생한 상황을 묘사해 줄 수 있었다. 또한 4·19 혁명이 학생뿐 아니라 도시빈민과 노인들도 인상적인 시위를 벌였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배성호 선생님의 피드백은 활동지와 수업 디자인을 고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수송초 학생들의 시위 사진과 시는 그대로 수업에 활용하였고, ‘지역의 역사를 더욱 발굴하여 풀어가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토대로 활동을 수정하기도 하였다. 추천해 주신 책을 읽어보면서 4·19 혁명을 보다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3. 1차시 수업
<1차시 수업>
① 생각열기-촛불 혁명에 대한 기억 나누기(5분)
② 활동 1. 부정 선거에 저항하는 시위 계획 및 구호 만들기(15분)
③ 3·15 의거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설명(5분)
④ 활동 2. 김주열의 하루를 상상해서 기록하기 및 발표(10분)
⑤ 활동 3. 당시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 및 발표(15분)
*수업 활동지
1차시 수업은 3·15 의거에 초점을 맞추었다. 배성호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산의 상황과 김주열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했고, 홍석률 교수님의 자료를 토대로 대구와 부산 학생들의 시위를 더욱 생생하게 묘사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둠활동을 할 수 없어 모든 활동을 개별 활동으로 바꿨는데 개별 활동을 하더라도 그 내용을 학급 전체가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하였다.
① 촛불 혁명에 대한 기억 나누기
현재의 고1 학생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16년에 촛불 혁명이 시작되었다. 수업의 시작을 이 질문으로 한 것은 60년 전의 4·19 혁명과 자신이 경험한 촛불 혁명을 연결시키기 위함이었다. 촛불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여 생생한 현장을 경험한 학생부터 촛불 혁명이 자신의 장래 희망을 바꿔 놓았다는 이야기까지…(다행히 촛불 혁명을 부정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보다 훨씬 전에 국민들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를 쫓아낸 경험인 4·19 혁명에 대해 알아보자고 하며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였다.
② 부정 선거에 저항하는 시위 계획 및 구호 만들기
원래는 모둠활동으로 계획하였으나 모둠활동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허니컴 보드를 활용한 개별 활동을 하였다. 부정 선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마산에서 시위를 계획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와 시위에 내세울 구호를 각자 정해 보는 것을 과제로 제시하였고, 허니컴 보드에 적어서 칠판에 붙이고 제일 설득력 있는 구호를 선정해 보았다. 시위 계획을 세우는 것은 개별 활동을 하는 한계 때문인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시위 구호는 제법 신선한 문구들이 나왔고 그것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 시위를 왜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이야기할 수 있었다.
③ 희생자들에 대한 설명 및 김주열의 하루
3·15 의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2명이고, 그 대부분이 10대의 학생들이었다. 12명의 희생자 중에서 3명을 소개하고 김주열의 하루를 상상해 보는 활동을 하였다. 당시 김주열은 남원에 살고 있었지만 마산상고에 진학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치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산에 있는 이모할머니 집에서 형과 함께 머무르는 중 3·15 의거가 일어났고, 형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가 실종이 된 것이다. 김주열 실종 당일을 상상하며 기록하는 가상 일기를 통해 학생들이 그날의 시위 현장을 상상하고 김주열이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을 해 보기를 바랐다. 김주열은 준비된 투사라기보다는 정의감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학생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④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
역사적 인물에게 편지를 쓰는 활동은 조금 식상하지만 비교적 쉽게 감성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자료로 부산고등학교 학생들의 호소문 일부와 수송초등학교 학생이 쓴 시를 제시하였고, 그 학생들의 시위 모습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고 편지쓰기를 하였다. 자신들과 같은 고등학생 뿐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시위에 참여하고 희생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분위기가 무거워졌지만 그들을 생각하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활동이 진행되었다.
<2차시 수업>
① 생각열기-뉴스영상(5분)
② 활동 1. 4·19 혁명 순서 나열하기 및 전개 과정 나눔(10분)
③ 활동 2. ‘4·19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에 대한 생각 나눔(5분)
④ 활동 3. 4·19 혁명과 관련한 인물 이야기(10분)
⑤ 활동 4.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중 바꾸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 나누기(15분)
2차시 수업을 구상하면서 고민하였던 것은 ‘역사가 바꾼 개인의 삶’과 ‘실천의 경험’이었다. 4·19 혁명은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꿨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개인의 삶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역사의 변화라는 것은 나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기대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보는 경험을 통해 역사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그것을 자기 삶에서 실천하며 배운 내용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였다.
① KBS 뉴스 ‘김주열 주검 옮긴 차량 운전사 ‘마지막 순례’
4·19 혁명의 상징과 같은 인물은 김주열이다. 특히 마산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기 때문에 1차시 수업의 활동에서 김주열이 실종된 당일의 가상 일기를 썼고, 2차시 시작을 그와 연결하여 김주열이 희생당한 날 그 시신을 운반했던 트럭 운전사의 양심 고백을 담고 있는 뉴스 영상을 보는 것으로 하였다. 영상 속 인물은 김주열의 시신을 바닷속에 버리던 날의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해 주었고, 김주열의 시신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마산에서의 2차 시위와 4·19 혁명의 과정을 알아보는 활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② 4·19 혁명의 과정 및 4·19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가상 상황에 대한 생각 나누기
4·19 혁명의 전개 과정은 사진과 간단한 설명을 나열하고 순서를 찾는 활동을 통해 설명을 하였다. 홍석률 교수님의 조언으로 원래 계획했던 사진들의 숫자를 줄였고, 제목과 내용도 조금 수정하였다. 전개과정을 알아보고 ‘4·19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후 우리 역사와 오늘날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에 대한 물음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는데 대부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독재로 인해 삶이 어려워졌을 것’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뻔한 답변이 나올 질문이지만 다음 활동에서 ‘되돌리기’를 하는 지점이 되기에 이 질문을 넣게 되었다.
③ 4·19 혁명과 관련된 인물 이야기
처음 계획했던 것은 4·19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후 삶을 소개하고 그것을 가지고 활동을 구상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홍석률 교수님께 여러 인물의 사례를 받았는데 생각만큼 인물들의 삶의 변화가 그렇게 강렬하게 와 닿지 않았다. 결국 희생자의 유가족(김찬주 여사), 가해자(박종표 경비주임), 시위 참가자(진영숙 학생)를 한 사람씩 선정하여 간단히 소개를 하고 이 인물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활동으로 수정하였다. 활동지에 세 사람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주고 한 사람을 선택해서 활동을 하도록 했는데 인위적으로 인물을 나누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비율로 한 명씩 선택을 하였다.
인물들의 4·19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실제 삶과 비슷한 예측을 한 학생도 있었고 전혀 다르게 예측한 학생도 있었다. (권찬주 여사는 김주열이 죽고 남편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망하면서 남은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여 하숙집을 여는 등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4·19 유족회 활동 등을 통해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박종표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계속 감형이 되어 군사 정변 이후에 결국 풀려나게 되는데 이후 행적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고 부산에서 식당을 했다는 소문만 있다고 한다. 진영숙은 편지를 쓰고 나간 날 시위대가 탄 버스 안에서 머리를 내밀고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이 쏜 총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만약 4·19 혁명이 없었다면 이 인물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박종표는 여전히 악질 경찰로 나머지 인물들은 편안히 잘 살았을 것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이때 배움의 공동체 용어로 ‘되돌리기’를 하였는데, 직전 활동에서 하였던 ‘4·19 혁명이 없었으면 역사와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로 되돌아가서 물어보았다.
“4·19 혁명이 없었으면 독재가 계속되고 사람들의 삶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대답했었는데, 과연 권찬주 여사나 김주열, 진영숙 학생 등이 편안히 잘 살 수 있었을까? 4·19가 아니었어도 또 다른 시위에 참여해서 희생을 당하거나 독재 정권 아래에서 힘들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이렇게 질문하니 좀 더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그제서야 4·19 혁명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편안히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대답이 나왔고, 어떤 반에서는 그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④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중 바꾸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 나누기
마지막 활동으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중 바꾸고 싶은 것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제시하고 학급 전체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한 가지를 선정하는 것을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선정된 것에 대한 실천을 수행평가 과제로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모둠 활동으로 계획했지만 모둠 활동이 불가능해서 허니컴 보드를 활용한 개별 활동을 하고 각자의 의견을 칠판이 붙이고 그것을 가지고 전체 토론을 했다.
예상대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환경오염, 성차별, 소수자 차별, 빈부격차, 입시위주의 교육,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일본군 ‘위안부’, 집값 내리기 등등. 실제로 토론을 해 보니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선정하는 것이 어려워서 결국 다수의 아이들의 동의하는 2-3가지 주제를 각반에서 선정한 후, 개인이나 모둠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실천을 하는 것을 수행평가로 제시하였다. 각 반에서 선정한 주제는 다음과 같다.
1반: 기후 위기, 성차별, 경쟁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 바꾸기
2반: 기후 위기, 소년범죄 처벌강화
3반: 기후 위기, 성차별, 강력범죄 처벌강화
3개 반이 모두 비슷한 주제를 선정했는데, 특히 환경문제가 공통적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서 기후 위기에 대해 학생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였다. 그 외에 성차별 문제와 범죄에 대한 처벌강화를 선정했는데 요즘 계속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어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과거에 가장 큰 역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며, 역시 촛불 혁명을 겪은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이후에 3주 정도의 시간을 주고 개인 또는 모둠을 구성해서 반별로 선정한 주제에 맞는 실천을 하고 발표 및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 수행평가를 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격주 등교와 외부활동에 제한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천에는 한계가 있었다. 작년에 비슷한 수행평가를 했을 때는 외부에 나가 서명을 받거나 캠페인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실천을 하였지만, 올해는 학교 안에서 포스터나 대자보를 만들어 게시하는 활동이나, 집이나 학교 근처에서 소소한 실천을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뭉쳐 사회를 바꾼 경험을 통해 국민 스스로의 자부심이 커지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자유롭고 당당해진 것 같다.”
‘촛불 혁명 이후 우리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라는 활동지의 질문에 한 학생이 대답한 내용이다. 촛불 혁명 이후 학생들에게 4·19 혁명의 의미를 이해시키기가 훨씬 쉬워졌다. 시민들의 단결된 힘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4·19 혁명이 알려줬고,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촛불 혁명을 통해 그 힘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정도와 깊이도 더 풍부해 진 것 같다. 물론 우리 학교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의 비중이 일반 학교보다 더 높은 대안학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 중 바꾸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 나누기’ 활동을 할 때 남은 시간이 모자라서 다음 수업 1시간을 더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수업을 진행하며 아쉬운 부분은 역시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시기도 맞지 않고 진도에도 맞지 않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4·19 혁명 이후 군사 정변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미완의 혁명으로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현대사를 가르치면서 다시 한번 언급해야겠다.
이번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3·15 의거와 4·19 혁명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산에서 태어났고 마산에서 역사 교사를 하고 있음에도 3·15 의거를 깊이 공부하지도 못했고 수업에 대한 고민도 부족해서 항상 3월이 되면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 불편함이 조금은 해소된 것 같다. 특히 전문 연구자와 경력 교사의 조언과 다양한 자료를 제공 받아 수업을 새롭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경험은 매우 신선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도 다른 수업 주제를 가지고 ‘초협력교실’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