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 대한민국 갈등의
기원을 생각하다

책 이야기 > 만나書 ⑥ 길윤형(한겨례신문) 기자

>> 편집부 정리(담당 에디터 : 정겨울)


- 책 : 『26일 동안의 광복』 (길윤형, 서해문집)

- 만난 저자 : 길윤형(한겨례신문 기자)


캡처.JPG 『26일 동안의 광복』 (길윤형, 서해문집)

해방 후 3년 동안의 신탁통치 시기를 학생들에게 수업하는 일은 매우 버거웠다. 당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좌와 우로 나뉘어 싸우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고, 여기서 이어진 갈등이 현재 대한민국 갈등의 기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호에서 선정한 책, 『26일 동안의 광복』은 한국 현대사의 첫날인 1945년 8월 15일의 24시간과 그 직후 3주간-정확히는 조선총독부 청사에 성조기가 게양되는 9월 9일까지 26일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가 쟁취할 수 있었지만, 끝끝내 좌초하고 말았던 역사적 가능성에 대한 가슴 아픈 회고다. 1945년 8-9월의 시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진 건국 프로젝트의 여정을 고스란히 재현해낸,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이번 호에서 소개한다. - 편집부 -






※지은이 소개※

1977년 서울 출생.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2001년 11월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ㆍ국제부 등을 거치고, 2013년 9월부터 3년 반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했다. 귀국 후 《한겨레21》 편집장과 《한겨레》 국제뉴스팀장을 맡았다. 2020년 6월부터는 통일외교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베 정권 이후 본격화된 반동의 흐름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미일동맹 강화를 비롯한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 등에 관한 여러 기사를 썼다. 근래에는 한일관계의 맥락 속에서 한국 현대사의 기원을 탐구하며 1945년 8월 해방 정국을 공부하고 있다. 이 책 《26일 동안의 광복》은 그 연구와 궁리의 소산이다. 지은 책으로는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아베는 누구인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 《아베 삼대》가 있다. 삼성언론상(2003), 임종국상(2007), 관훈언론상(2015) 등을 받았다. 차기작에서는 지난 몇 년간 전개된 한일 대립의 과정을 알기 쉽게 정리해볼 생각이다. -책에서 발췌-



Q1. 언론인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그동안 한일관계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저서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번엔 그 시선을 한국 현대사, 특히 해방 전후의 공간으로 옮기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첫 질문부터 매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가장 처음 쓴 책은 30대 중반에 나온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2012)라는 책입니다. 2010년이 한국이 일본이 강제로 병합된 지 100년이 되는 국치 100년이었잖아요. 그에 맞춰 제가 다니는 <한겨레>에서 ‘국치100년특별취재팀’이란 것을 만들어 여러 특집 기사를 쓰게 됩니다. 그 팀에서 일하면서 조선인 가미카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선 ‘천황(일왕)을 위해 죽은 매국노’라 알려진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사연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꼭 그런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한 사정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려 해도 우리 말로 된 책이 없더라고요. 갑갑함을 느끼던 차에 그럴 바에는 내가 한번 써보자는 욕심이 들어서 그때까지 취재 내용에 나름 공부한 내용을 묶어 책을 집필하게 됐습니다.


이후 한동안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2017년에 두 번째 책 <아베는 누구인가>(2017)를 내게 됐습니다. 이 책은 2013년 9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도쿄 특파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쓴 일종의 특파원 ‘졸업 논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책이 조선의 하늘을 비행기를 타고 가장 처음 날았던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의 사연을 모은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2019)입니다. 이 책은 어찌 보면, 첫 책인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데요, 1940년대에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서 항공 열병을 앓았던 소년들의 기억 속에 안창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작품이었습니다.

질문 주신대로 이번 책의 주제는 해방 전후의 공간인데요. 책 서장에도 짧게 소개하고 있지만, 이 책을 쓴 직접적 이유는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뤄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였습니다. 만약 그 회담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민족이 염원해왔던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남북은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서 활발히 교류하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겁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도 재개되고요. 그러나 이 회담이 실패로 끝나면서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되게 됩니다. 이 참담한 결과를 보고,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가 허탈감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런 번민의 시간을 보내다 자연스럽게 현재 우리 민족을 억누르고 있는 이 질곡 같은 분단의 운명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죠. ‘분단 모순’이라는 이 형벌과 같은 고통이 시작된 첫 시점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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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해방(광복)직후부터 미군 진주까지 26일 간의 상황을 두고 책을 쓰셨습니다. 특별히 그 시점을 잡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흔히 말하는 해방 전후 3년사, 해방 전후 5년사 같은 단위들이 있지 않습니까? 궁금합니다.


네.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해방 이후 ‘26일’이냐는 거지요? 사실 원래 목표는 해방 당일, 그러니까 1945년 8월15일 딱 하루만 집중해서 들여다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제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읽었던 책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이 역시 책 서장에 짧게 소개하고 있는데요, 당시 일본 작가 한도 가즈도시半藤一利가 1965년에 쓴 <일본의 가장 긴 날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이라는 책을 매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이 항복을 최종적으로 결단하는 1945년 8월14일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자세히 들여다 본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그렇다면 나는 한반도가 해방을 맞는 1945년 8월15일의 풍경을 들여다보자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8월 15일을 들여다보려면, 이 하루 동안에 발생했던 일을 토대로 현재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최대의 모순인 ‘분단이 왜 발생했는가’, 또 분단을 고착화시킨 ‘한국전쟁은 왜 발생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단순히, 8월15일 이런 일이 있었다, 저런 일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열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해방부터 대한민국이 건국 될 때까지 3년사, 또는 한국 전쟁이 발생할 때까지 5년사, 혹은 한국전쟁이 마무리 될 까까지 8년사를 써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기왕이 나온 책들이 많고, 전문 연구자가 아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애초에 제가 목표했던 해방 이후 극히 짧은 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관찰하며, 현재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이 불행한 역사의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과도 맞지 않았고요. 그래서 여러 자료를 들여가 보고, 고민을 하면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던 1945년 8월15일부터 미군이 경성을 점령한 뒤 당시 조선총독부로 쓰이던 중앙청에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하게 되는 9월9일까지 26일 동안의 역사를 들여다보기로 선 긋기를 한 것이죠. 이 26일 동안의 일만 잘 구성하면 제가 목표로 한 이 분단의 원인을 나름 재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들었고요.



Q3. 1부는 해방 직전 24시간에 대한 인물들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나 잘 짜여진 르뽀 기사를 보는 듯 생생한데요. 하나의 역사 서술의 양식으로 볼 수 있다면 참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서술을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해야 하나요? <매일신보>, <미국외교기밀문서(FRUS)>, <한반도 분단의 기원> 등 자료들도 많이 보셨다고 들었는데...


책을 읽어주신 여러 분들께서 무협지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게 잘 읽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생생하게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려면 작가가 당대인들의 생활상이나 정서 등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딱딱한 공식 자료 외에 당대인들의 목소리가 날 것 그대로 살아 있는 ‘회고록’과 ‘신문’ 같은 자료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 살았던 인물들이 직접 남긴 회고록 혹은 대담집 등을 많이 읽고 또 인용했습니다. 한 예로, 몽양 여운형을 따랐던 이임수李林洙라는 인물의 아들 이란李欄이란 인물이 1989년 12월11일과 14일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님과 나눈 회고담이 <여운형, 시대와 사상을 초월한 융화주의자>(2008)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회고담 속에 여운형이 해방 전날과 당일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생생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딱딱한 역사서나 공개 기록물에는 나와 있지 않는 이런 회고담이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책 1장 마지막 부분에 이란이 나가사키 유조長崎祐三 경성사상범보호관찰소장에게 “내일 아버지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여운형의 집을 찾아가잖아요. 그랬더니 여운형이 이발을 말끔하게 하고 신이 나서 이란에게 “아, 틀림없어. 내일 일본이 항복해. 나가서 결사대를 조직하라”고 답합니다. 이런 생생한 상황 묘사가 가능했던 것은 이란의 증언을 이정식 교수님이 기록해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것은 신문기사인데요, 당대 우리말 신문은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유일했고, 그나마 해방 직후의 혼란스런 상황 때문인지, 기사량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도움을 받긴 힘들었습니다.


Q4. ‘분단과 전쟁’이라는 주제는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흔히 외세의 개입(미-소 대립, 냉전)을 큰 요소로 두고 해방전후 8년사를 보곤 했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한반도 내 내부 요인을 깊게 보는 것도 큰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관점의 근거를 하나씩 차곡차곡 쌓는 느낌인데요.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이 책은 한반도 내부 요인, 특히 해방 직후 좌파가 중심이 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당시 국내에 남아 있던 우파 세력의 핵심이었던 김성수-송진우 세력 간의 좌우 합작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안재홍이 여운형을 설득해 가며 밀고 나간 건준을 토대로 한 좌우합작 노력이 실패하고, 결국 건준은 박헌영의 강한 영향을 받아 1945년 9월6일에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하며 폭주합니다.

그 과정을 그린 것이 이 책의 중심 테마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분단에 이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역시 미-소 대립, 즉 냉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7월 중순 핵무기가 개발되고, 미국이 8월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이를 사용합니다. 그러자 소련은 일본이 서둘러 항복할까 우려해 8월9일 급하게 참전을 결정합니다. 일본은 ‘원폭 투하’와 ‘소련 참전’이라는 두개의 큰 충격에 못 이겨 처음엔 8월10일 1차 그리고 8월14일 최종적으로 항복 의사를 밝히게 되는데요. 아마 일본의 항복이 조금만 늦었다면, 한반도는 단일성을 유지하는 대신 공산화되고 분단되는 것은 일본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좀 더 얘기를 하면, 원래 초고에는 1945년 8월15일이라는 ‘해방의 그날’을 맞기까지 미국, 소련, 일본이 각각 어떤 일들을 겪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썼습니다. 원래는 이런 외부 요인을 자세히 설명한 뒤, 한반도로 시점을 옮겨, 해방 이후 26일을 다룬 것인데요. 편집자가 그렇게 되면 책이 너무 방대해지고, 이야기 흐름이 번잡스럽게 된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원고지 400매 정도를 쳐냈습니다. 그래서 애초 제 의도와는 조금은 다르게 국내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 책이 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 짓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역시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외부적인 큰 제약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특히 좌.우가 하나로 힘을 합쳤다면 좀 다른 역사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가능성을 모색한 책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Q5. 흔히 ‘좌우합작’이라고 하면 1946년의 여운형과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님께서 강조하신 1945년의 좌우합작 시도(송진우-여운형)의 결렬도 큰 의미로 짚어보게 됩니다. 당시 좌우 합작의 틀을 갖추고 미군 진주를 맞았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그 당시 좌우파 양 진영의 실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이 책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꿰뚫는 물음이네요. 당시 경성에 진주한 미국은 조선의 정세에 대해 그야말로 깜깜했습니다. 잘 몰랐던 것이죠. 그래서 진주 초기부터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합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도 소개가 되지만, 이들에게 절실하게 원했던 것은 영어가 가능한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또, 소련과 냉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반공적 사상까지 겸비했다면 금상첨화였겠죠. 그런 의미에서 영미에서 대학 등 고등 교육을 받은 한민당 계열의 우파 인사들이 미군정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 풀이었다고 보면 틀림 없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후적인 설명이고, 미군이 진주하는 1945년 9월9일 시점에 조선인들의 민의를 두루 잘 반영하는 하나의 단일한 정치 결사체가 구성돼 있었다면, 미국은 이들을 당연히 자신들의 조선 통치의 파트너로 삼았을 것입니다. 해방 직후 미 군정이 가장 힘을 기울여 추진했던 것이 조선 내 다양한 정치 세력의 단일화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단합된 좌우가 하나된 ‘정치적 결사체’가 만들어 질 수 있었겠느냐 생각한다면 그것은 좀 무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좌파 공산주의자들과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쉽게 말해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사상적 차이를 아우를만한 그러니까 베트남의 호치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선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캡처.JPG 몽양 여운형(좌)와 고하 송진우(우), 1945년 좌우합작 시도의 주역이었다

좌파들은 우파 민족주의자들을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라 생각했고, 나아가 마침내 도래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로 여겼습니다. 우익 인사들은 ‘친일’이라는 원죄가 있었으니 좌파 인사들을 상대로 한 말도 안 되는 흑색 선전에 나섭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여운형에게 친일의 혐의를 뒤집어 씌운 것인데요, 이는 말 그대도 ‘똥 묻는 개가 겨 묻는 개’를 나무라는 꼴이었습니다. 그래서, 답변은 조선인들이 좌우합작의 틀을 갖추고 미국을 맞았더라면 미 군정이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 여러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좌우합작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네요. 또, 남한 내에서 좌우합작에 성공했다 해도, 소련이 점령한 북한 지역과 어떻게 다시 남북합작을 이뤄야 하나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국이 분단을 피할 수 있었겠냐’라고 묻는다면, 이 책에서 다룬 해방 직후의 1차 좌우합작 노력이 성공한 뒤, 이렇게 하나된 좌우가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5년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이고, 또 같은 모스크바 회의에서 합의된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 계획에 따라 무사히 통일 정부를 수립했다면 분단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이중삼중의 전제를 달 수밖에 없습니다.



Q6.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작가님으로서 기자님으로서 ‘길윤형’님은 한일 관계와 동북아 역사/안보 문제에 깊이 있게 천착해오신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역사학자보다도 더 전문적이고 깊이있게 사안을 보고 정리해나가시는 모습에서 역사교사들이 큰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더 좋았던 점을 한일 관계를 단순히 민족 문제로 좁게 보기 보다 인류 보편의 문제로 접근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3년 반에 걸친 일본 특파원 생활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저는 한-일 갈등도 한-일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는 해방 후 지금까지 세 단계를 거쳐 왔습니다. 1단계는 냉전이죠. 이 시기에 한-일은 1965년 체제를 통해 역사 갈등을 봉합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돈과 기술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 경제가 발전합니다. 이 시기를 그런 의미에서 ‘강요된 화해’의 시기라 할 수 있겠네요. 2단계는 탈냉전입니다. 한국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뤄내고, 일본은 평화헌법을 유지하고 고노 담화(1993), 무라야마 담화(1995) 같은 반성적인 역사 인식을 밝힙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냐. 냉전 체제가 해체돼 외부의 적이 없어진 것이죠. 그래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으로 양국 관계의 새 시대가 열리고 일본에서 한류 붐이 일었습니다.

현재는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신냉전의 시기입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대북관, 대중관은 다르죠. 우리에게 북한은 언젠가 함께해야 할 동포이죠. 일본에겐 핵 개발을 통해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 봉쇄하고 억제해야 할 귀찮은 나라일 뿐입니다. 또 중국의 성장을 바라보는 한-일의 자세도 조금씩은 다릅니다. 동아시아 미래에 대한 이런 양국의 ‘전략적 시각차’가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 구체적인 역사 현안을 매개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것이 지난해 발생한 한-일 갈등의 정체라 봅니다.

도쿄에서 생활하는 동인 한국인이 염원하는 역사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이, 실제 현실 외교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일본에 있으면 일본 여론의 흐름을 알게 되고, 그래서 ‘한국의 요구가 일본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쉽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국에 한국의 여론이 있다면 일본에도 일본의 여론이 있습니다. 양국이 이렇게 치열하게 대립할 때 우린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계속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는데, 이 중대한 변화가 향후 한-일 관계에도 여러 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이런 고민을 계속 하면서 앞으로도 여러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Q7. 역사에 큰 애착과 전문성을 가지신 작가님께 여쭙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아울러 역사교사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오늘과 같은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에 있을 때 ‘한국의 역사 교육이 너무 민족주의적이다’는 얘기를 이따금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혹한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 입장에선 민족주의를 어느 정도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의 그런 태도를 일본인들이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도 있죠.

다만, 한-일 관계를 다룰 때는 너무 양국 관계에만 매이지 않고 좀 더 넓은 관점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한반도는 앞으로 미-중 갈등이라는 거대한 신냉전의 시대로 돌입합니다. 이 갈등이 앞으로 언제 끝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거대한 변동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두 나라의 운명도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았던 조선 사람들은 이런 세계적인 정세에 너무 어두웠습니다. 만약 세계 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면, 우리 선조들도 각자의 입장을 강조하며 비 타협적으로 갈등하는 대신 좀 더 현명하고 타협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민세 안재홍의 한탄을 소개할까 합니다. 안재홍은 해방 직후 좌우합작을 위해 노심초사하다 실패한 뒤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70여년 후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자극이 되는 지적입니다.



“우리들이 건준 본부에 주야 없이 진최하고 있는 동안 미소 양군이 38선으로 남북을 분단점령하게 된 소식을 듣고 나는 하염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그러나 1945년 이른 봄, 그럴 듯한 국제 풍문은 들은 일이 있었으나 바로 동년 2월11일 크리미아 반도인 얄타에서 스탈린·루스벨트·처칠 사이에 1904년 제정 러시아 당시 러국의 기득권익을 승인하는 쪽의 얄타협정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건준을 통하여 민공협동으로 분열대립을 미연에 방지하려 하였으나, 이는 의미 없는 노력이었다. 민공 쌍방 너무 국제정세에 우원愚遠한 편이었고, 또 사대주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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