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도 인간관계처럼

책이야기> 서평 ① :『비밀과 역설』, 이동기, 아카넷, 2020

>>오승호(부산 해강중)


2.bmp 『비밀과 역설』, 이동기, 아카넷, 2020


역사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통일과 평화교육에 대해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하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하며 어떤 맥락 속에서 평화와 통일의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지 또 교수학습방법은 어떤 식으로 구성하면 좋을지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베테랑 선배 교사들에게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이제 겨우 2년차가 되어가는 필자 같은 신규교사에게는 더욱 더 어려운 문제이다.


필자는 작년에도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는 통일교육을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질적으로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저 남북의 관계가 냉전이나 데탕트 등 국제관계 속에서 추이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갔고,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어떤 공동 담화문이나 선언을 발표했는지 등을 살펴보며 각 역사적 사건의 상징적인 통일 구호를 인습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의 수업을 했다. 올해 역시 이런 수업을 하고나서 머릿속에서 공허하게 여러 생각이 들었다. ‘통일 구호를 확인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정말 가치 있는 배움이 형성될까?’, ‘과연 이런 방식의 수업으로 평화의식의 진척이 가능하고, 통일의식의 형성이 가능한가?’ 등의 여러 물음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렇게 헤맨 끝에, 외람되지만 그동안 학교에서 인습적으로 볼 수 있었던 흔한 통일수업은 출발점과 종점, 더 나아가 지향점마저도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약적인 사고방식일지도 모르겠지만 ‘통일의식’의 선행 조건에는 ‘평화의식’이 형성되어야 하고, ‘평화의식’이 형성되려면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국민국가 체제 및 전통적인 안보관의 타파가 절실해보였다. 물론 ‘평화의식’의 형성은 비단 통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겪고 있는 동아시아의 각종 문제,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그 매듭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적인 편협한 사고가 아니라 동아시아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평화를 위한 초국가적인 토론을 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대해볼 수 있는 희망은 ‘평화의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타자와 대화를 하고, 개인과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 연대를 추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본래 통일교육과 평화교육은 맥락이나 종점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평화교육이 곧 통일교육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남북통일을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역사교육이 도구화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조금 더 이상화해 세계 평화를 위해, 역사교육의 출발점과 지향점은 평화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통일교육의 출발점으로서 평화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맞게 교수학습 계획을 세워보아도 남북 사이의 긴장 관계, 동아시아 국가 간의 역학관계, 정치권의 행태 등 암담한 현실을 볼 때마다 괴리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서사 구조를 가지고 아이들과 통일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을까’, ‘평화의식을 진전시키기 위해 혹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갈등을 극복하고 노력했던 주변의 좋은 사례는 없을까’ 등의 막연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물음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러한 찰나에 알게 된 책이 바로 독일통일과 평화에 대해 다룬 이동기 교수의 『비밀과 역설』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함의나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평화를 위한 대전제인 적대와 갈등을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선 방역에서 보듯, 위험이 심각하고 불안이 확산되면 정치공동체는 특별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방법은 열려 있고 선택은 우리의 것이다. 방역과 관련해서는 이미 그동안 실천은커녕 상상조차 쉽지 않았던 여러 정치 대응과 사회 공존 방식이 등장했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코로나 국면이 다시 안 좋게 흘러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가 단합하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면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현재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맞아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보기 힘들만큼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대응으로 이 국면을 헤쳐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러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평화정치, 평화교육에서는 실천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분단과 대결, 상호 불소통과 불신이 한반도 공동체, 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코로나19에 대응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독일의 사례처럼 우리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평화정책을 세워 갈등과 적대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타자와 적극적이면서 비적대적으로 소통하는 사회를 배양할 평화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선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평화로운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시 독일의 평화정치와 통일과정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일’이라는 나라를 생각했을 때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통일에 성공한 나라, 과거사 청산에 열심인 나라. 물론 후자를 두고 자본주의적인 세계 질서 속에서, 부유한 유태인에 대한 태도와 집시 등에 대한 태도가 달라 비판을 하는 혹자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실한 반성과 동서독의 통일은 동아시아 역사 갈등 및 분단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평화정치와 평화교육을 지향한다면 당연히 당시 독일과 우리는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달랐는지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분단 독일과 지금의 우리가 비슷한 점은 냉전이 해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국가들이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차이점은 수두룩하다. 독일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우리의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통일 반대는 주변국가의 반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구시대적인 발상을 포함해 남한의 상당수의 사람조차도 정치적인 목적이나 이유, 경제적인 이유 등을 들어 반대를 하고 있다. 물론 독일 내에서도 국민국가의 재탄생이냐 국가연합이냐 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래도 독일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정치의 실현을 위해 여야뿐만 아니라 좌우, 보수진보 세력이 이에 대해 합의를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독일통일의 주역인 당시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자신이 제안한 국가연합안조차 정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 그것을 폐기하고 흡수통일의 길을 제시하였다. 비록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점은 고정된 하나의 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독이 보여준 탄력적이면서 실용적이고, 도전적이면서 모험적인 대응과 사고방식일 것이다.


물론 혹자는 북한과 동독의 차이를 들먹이며 북한에서는 동독의 체제비판 운동과 같은 갱신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남한 혼자서 노력해봤자 북한의 독재 권력만 강화될 뿐 달라질 현실은 없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비록 북한의 통일담론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가상의 정치 강령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여기서 우리는 서독의 사례가 주는 교훈을 무시해선 안 된다. 실제 동독이 그러했고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어떤 개혁과 변화는 체제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서독은 군사동맹 문제 등 안보 및 외교 문제를 당장의 통일 문제로 끌고 오기보다는 작더라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인도적 사업의 전진을 통해 분단의 고통을 경감하고 ‘해결 가능한’ 문제에 집중하였다. 우리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와 함께 정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동독의 변화를 이끌어낸 서독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동독 인권정책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설령 북한 내부의 변화가 당장 이루어지기 힘든 여건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외부적인 정치 선전과 이데올로기적인 압박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안전과 신뢰, 평등과 복리를 통해 내적인 체제 변화를 유인하고 자극하고 그리고 그것을 도와 북한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즉,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정당과 이념을 넘어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도전을 통해 어려운 현실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결정권을 갖고 끊임없이 적대적 갈등을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독일의 평화정치와 통일과정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나에게 독일이라는 나라는, 마음 속 어딘가에서 신격화되고 환상의 나라로서 존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독일의 통일에 대해 잘 모르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독일의 흡수통일은 장밋빛 미래처럼 여겨졌고, 우리 역시 당연히 그런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 분단되었던 동서독의 차이로 현재 여러 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독일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 및 교육은 ‘진실로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간과정은 애써 도외시하고, 그저 ‘통일’이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통일’만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실례로 상당수의 동독인들은 통일된 ‘독일정체성’이 아닌 ‘동독정체성’을 사유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문화적 정체성으로서의 함유에 그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것이 명백하게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둘 필요가 있다. 이는 오해와 불신을 낳고 갈등과 적대를 조장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동독정체성’을 사유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통일 이후 서독의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정책이 문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형성된 동독 주민들의 경험이나 기억, 취향 등도 서독의 기준에 재단되었고, 그러다보니 동서독 간의 장벽은 허물어졌어도 구조적인 불평등과 소외감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꼭 필요한 중간과정을 도외시한 채 이루어진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교사들은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평화정치와 통일, 그리고 ‘진실로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사실 교실에 있다 보면 정치적인 이유이든 아니든 북한이라면 싫어하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 교육이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적대적 갈등을 조장하고 긴장 분위기를 강화하는 기존의 안보관을 타파하고, 그동안 냉전과 분단 및 적대성을 지속시켜왔던 틀을 허물어 북한을 비롯한 적대관계에 있던 타자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독정체성이 형성되고 그것이 정치화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우리 교육은 맹목적으로 통일과 평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진실로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 안에서 북한을 품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고유함을 포용하고 화합하려는 자세를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한다. 이는 북한 문제만이 아니라 다문화 문제에도 해당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분명히 험난할 것이다. 대화와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역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여느 정치인들의 통일 선전처럼 맹목적인 희망만을 외치기보다는 비적대적으로 타자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현실적인 ‘평화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교육계에서 평화교육을 통해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불신과 갈등, 적대와 대립을 넘어 통일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 한 발짝 더 다가갈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는 마치 인간관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갈등 혹은 적대 관계에 놓인 사람 간의 관계가 적대적인 상태인 채로 가만히 있거나 서로 비방만 한다면 절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풀고 그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관철하고 노력할 때 화해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평화 역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비폭력적이고 비적대적으로 대립을 해소하려는 현실적인 노력을 할 때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역사교육을 도구화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며 급변하고 다원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갈등을 비적대적으로 해결하는 평화적 태도를 기르는 평화교육을 역사교육에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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