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부정에 대처하는슬기로운 전략

수업이야기 >> 역사교사를 위한 영화수업 3화

≫ 최은(영화평론가)


편집자주] ‘역사 교사를 위한 영화수업’은 2020년 여름 호부터 신설된 코너 입니다. 영상 매체를 통하여 역사 수업을 꾸릴 여지를 찾아보기 위해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영화평론가 최은 님께서 필자로 참여해주십니다. 당초 이 코너는 전국 각지 선생님들이 보내주신 주제 중 하나를 선정하여, 연재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편집부에서도 이미 심각해진 교실 속 역사부정 문제에 대처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면서 이번 겨울 호에서는 영상매체 속 역사부정 문제를 다뤄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2016)와 <주전장>(2018)은 많은 독자 선생님들께 익숙한 영화일 텐데요, 이 원고에서는 영화 속에서 역사부정을 다루는 ‘방법’ 자체에 주목합니다. 저에게는 이 원고가 역사부정과 싸울 때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지를 묻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비슷한 순간을 마주하였을 때 어떤 자리에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독자 선생님들께서도 이 원고를 읽으시면서 교실 속 역사부정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고심할 기회가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11월 30일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소된 전두환 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광주지법 재판부는 피고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의 최대 쟁점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실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 였지요. 형량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비가 있지만, 헬기 사격 사실을 사법부가 인정했고, 따라서 전두환 씨의 유죄판결이 갖는 함의가 작지 않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가 내란죄로 대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바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공적으로 합의된 역사적 사건을 법정에서 다시 증명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썩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비단 광주의 5.18 헬기사격의 문제뿐일까요. 소위 ‘수정주의 역사관’을 앞세운 이들은 세계 각지 어디에서나 역사의 틈새를 비집고 나타납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집에서부터 난징대학살,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왜곡되고 부정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지요. 공공의 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은 영화는 이처럼 절박하고 어이없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흥미진진한 소재들을 잘 가공해서 공론장에 내어놓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탁월한 전략으로 대중관객들을 설득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자기부정으로 부정을 이기는, <나는 부정한다>


믹 잭슨의 2016년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는 모욕죄에 대한 고소고발 형태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전두환의 사자명예훼손 재판 서사와 닮았습니다. 다만 이 경우 고소되는 것은 역사부정론자가 아니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진실과 기억에 대한 점증하는 공격 Denying the Holocaust: The Growing Assault on Truth and Memory』 (1993)을 출간한 역사학자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증언과 역사연구 기록을 갖고 있는 사건,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 이 일로 재판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영국의 역사작가이면서 히틀러 추종자인 데이비드 어빙은 이것을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홀로코스트 부정이라는 거짓말의 이면”이라는 TED 연설에서 실존인물 데보라 립스타트는 이 일을 겪으면서 세 번 웃었다고 말했어요. 가장 먼저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본인도 유대인이고 방대한 자료를 섭렵한 학자로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죠. 두 번째는 선배 역사학자들이 찾아와 그 주제를 연구할 적합한 인물로 자신을 지목했을 때라고 했어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또는 엘비스가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연구해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들렸고, 연구가치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책이 출간된 후 펭귄출판사로부터 데이비드 어빙이라는 영국작가가 자신과 출판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데이비드 어빙은 데보라가 자신을 ‘나치 옹호자이자 히틀러 추종자이고 사실을 왜곡하고 증거를 조작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라고 써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합니다. 애틀란타 에모리 대학의 유대사학과 교수인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가 강연하는 중에 데이비드 어빙(티모시 스폴)이 객석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천 달러를 줄 테니 누구라도 홀로코스트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소리를 칩니다. 게다가 데보라는 어이없게도 데이비드 어빙이 자신을 고소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죠. 설상가상으로 데보라는 자신의 무죄, 즉 홀로코스트가 실재했고 어빙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피고 신분으로 직접 증명해야 했습니다. 어빙은 데보라를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고소 하였는데, 영국법에는 무죄추정(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함)의 원칙이 없기 때문이었어요.

역사를 증명하다가 그 자신이 역사가 된 데보라 립스타트는 애틀랜타와 런던을 오가며 1994년부터 4년간 32번의 재판 끝에 승소를 얻어냅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변호사였던 냉철한 사무변호사 앤서니 줄리어스(앤드류 스콧)와 노련한 법정변호사 리처드 램프턴(톰 윌킨슨)이 데보라의 변호인단으로 활약했어요.

앞서 립스타트 교수가 세 번 웃었다고 했는데요, 법정드라마로서 <나는 부정한다>는 세 번의 ‘부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세 가지 부정이겠지요. 첫째는 어빙과 같은 수정주의자의 역사부정입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고 사실관계의 오류를 주장하거나 다른 관점을 보일 수는 있지만 어빙의 경우가 유독 난감한 것은 이 엄청난 사건의 발생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희생자들과 생존자들, 유족과 목격자들의 존재를 모두 부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어빙의 역사부정의 주장을 부정하는 데보라와 변호인단의 싸움입니다. 영국 유대인 지도자들이 제안했던 것처럼 적당히 합의를 해서 재판을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데보라는 매번 단호하게 “I don’t accept”라고 말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변호인단이 취한 전략 중 하나도 바로 이 ‘부정’의 수사였어요. 그들이 증명한 것은 가스 살포나 총살의 발생 사실이 아닙니다. 어빙의 주장에 말려드는 대신, 그들은 데이비드 어빙의 저술들이 남긴 오류들에 주목합니다. 소위 ‘실수’들(혹시 정말 실수였다면)이 얼마나, 왜, 편향적으로 반복되고 서로 모순되는지 캐물었어요. 그리고 어빙의 책에서 교묘하게 짜깁기되고 조작된 흔적들을 밝혀내는, 부정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그의 거짓을 증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부정self-denial의 전략입니다. 변호인들인 앤서니와 리처드는 이 재판에서 배심원과 피해자 증언을 배제하기로 결정했어요. 심지어 데보라에게도 증언이나 변론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금하죠.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과 역사적 자료, 그리고 논증 실력을 갖고 있는 데보라로서는 수긍할 수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더욱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연구자이자 동족으로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였고 약속이었어요.

하지만 데보라는 앤서니와 리처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는데요, 결국은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변호인들은 생존자 증언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데다 역사부정을 주장하는 자들의 심각한 막말과 인격모독으로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건드려지고 그들이 깊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혹시 데보라가 논쟁 중에 감정적으로 동요한다면 자칫 일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도 했겠지요. 더욱이 리처드는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기까지, 데이비드 어빙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변호인도 필요 없다며 홀로 전투력을 불태우던 데이비드를 오히려 초조하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한편 ‘각색’하지 않고 생존자와 피고의 증언 없는 재판을 그대로 재현하기로 한 것은 대중영화로서도 자기부인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정서적인 감흥으로 관객들을 가장 쉽게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을 포기한 것일 테니까요.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고발하는 한국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와 <허스토리>(2018)가 강조한 것도 바로 피해자 자신의 목소리였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따라서 이 셋 중 진정한 승리는 ‘자기부정’의 전략에 돌아갔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나는 부정한다>의 원제는 ‘부정Denial’입니다. 부정과 자기부정의 상호작용과 변증법이 결국 이 세기의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영화는 분석하고 해석했습니다.

단, 이와 같은 전략이 성공하기까지는 역사적으로 잘 연구되고 정리된 작업들과 생존자와 목격자, 유족 증언들이 이미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요. 변호사 앤서니는 재판에 승리한 후 데보라에게 잊지 않고 그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미안함과 감사를 표하는 데보라에게 앤서니는 “당신 책에 이미 다 있는 내용이었어요.”라고 답했어요. 부정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대중서사로 가공되거나 재 증명되기 이전에 변방의 역사연구와 사료개발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은근한 당부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최종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주전장>의 명쾌함


일본 우익의 역사부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은 웃음이나 사명감보다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83년생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인데요, 약 5년간 일본에서 영어교사를 했습니다. 일본 내 인종주의에 대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실었다가 극우주의자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는데요, 이와 유사하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쓴 기자가 인신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그렇게까지 감추려고 하는 일본 우익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어요.

‘주전장’은 곧 주된 전쟁터입니다. 원래 일본의 우익들이 쓰는 말인데, 감독은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일종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계속 대조됩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뿐 아니라 기본적인 역사인식과 정치적 관점이 대립되는데요, 예컨대 자민당의 정치인이 하는 말을 곧바로 좌파 지식인이나 활동가들이 반박하는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양쪽의 입장을 팽팽하게 보여주면서, 전쟁터에서 썼을 법한 북소리와 음향을 포함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가볍게 시작하지만 심오한 이슈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 있는 정보들과 쟁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 <주전장>의 우익들은 홀로코스트 자체를 부정하는 <나는 부정한다>와 달리,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보와 해석의 극단적인 차이를 소개하죠. 크게 다음 세 가지 쟁점이 제시됩니다. 1)그들은 정말 ‘성노예’였는가, 2)그들은 강제 징집됐는가, 3)20만 명이었나. <주전장>은 이 문제를 보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비교적 대등하게 보여줍니다. 한국의 운동단체와 연대한 일본의 지식인들이 20만 명이라는 숫자가 부각되는 것이 오히려 일본의 여론을 자극해서 숫자 진실공방으로 귀결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조언하는 부분이 특별히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로는 역사문제와 과거 청산의 문제입니다. 우익들이 주로 역사바로잡기라는 명목으로 ‘수정주의 역사관’ 또는 ‘부정주의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을 지적합니다. 일본은 민간 교과서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노 담화 이후 검열을 통해 국가가 실질적으로 교육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위안부’라는 말을 알고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많지 않죠. 사죄와 배상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셋째, 이것이 일본의 국내정치 또는 군국주의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추적하여 밝힙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일부 범법자들과 ‘매춘부의 문제일 뿐이다’라는 시각으로 일관하지만, 스스로 하찮다고 주장하는 이 문제를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덮어두려고 애쓰는지, <주전장>은 집요하게 파헤치는데요. 결국 이 문제는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열망을 보여줍니다.

넷째, 그래서 이것은 종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천황 시대로 돌아가는, 메이지유신 체제를 동경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그들의 구체적인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곧 신정정치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다섯 째, 미국 국민이기도 한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과 한국의 과거사와 현재 정치 문제에 미국이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우려를 표합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시대에 그랬듯이,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을 잘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일본과 한국이 재차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주전장’은 미국이라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성노예 문제는 여성의 문제를 넘어 인권의 문제이고 인종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있었던 네덜란드의 여성, 즉 백인 여성들에 대한 성 착취를 언급하죠. 일본 우익들은 자신들의 인종차별주의를 인정하지 않지만, 네덜란드와 백인 여성들의 소송에 대한 태도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다른 국가들에 대한 태도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각국의 피해 여성들은 서양인 아시아인을 가리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해 연대하고 함께 대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단지 나라가 힘이 없던 시기에 어쩔 수 없이 당한 비극이 아니고,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국제적인 연대가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일본 내에 이 문제에 대항해 함께 싸우는 여성 단체와 소신 있는 역사가, 헌법학자와 정치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도, 이 영화 <주전장>의 큰 소득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주전장>은 이상의 이슈들에 대해 상반되는 입장을 이어 배치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이 문제의 핵심정보를 파악하고 직접 판단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간 뉴스에서 함성이나 시위 장면 또는 떼를 쓰는 모습 같은 이미지를 통해 우익들을 보아왔다면, <주전장>은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하는지, 진지하게 들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런 영화에서 최종판단에 대한 권리는 법원이 아니라 관객에게 있습니다. 단, 판단을 관객에게 맡긴다는 것이 소위 객관성을 가장하여 모호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남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동안, 혹은 경청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순점이나 푼크툼punctum을 확인하는 순간 관객들은 어느 편에 서게 될지 재빨리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겠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 말미에 등장한 극우 인사의 말입니다. 그는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예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라고 말하며 비열한 웃음을 보입니다. 일본 극우집단에 ‘뇌’를 제공하는 최전방 역사학자가 정작 무뇌 상태라는 점이 폭로되는 순간인데요. 마냥 비웃어줄 수만도 없어서, 영화는 가볍다가 곧 비장해집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권력을 지닌 자들의 무지는 자주 공포니까요.


이 두 영화는 우리에게 싸움과 변론의 품격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부정한다>는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대중을 가장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방식, 즉 상대를 몰아칠만한 정보와 빈틈없는 논리나 감정적인 선동의 방식을 포기하고, 필요하다면 자기를 부정해서라도 차분하게, 약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논증하는 전략을 취한 작품이었어요. <주전장>은 동의할 수 없는 타자의 말이라도 경청하되 때로 모순을 파고들고, ‘전장’을 넓히는 시각을 갖자고 제안하면서 최종판단권을 청자에게 돌립니다. 두 작품은 모두 잘 연구된 자료와 잘 짜인 내러티브와 절제된 감정, 그리고 날카로운 유머가 만들어낸 설득력의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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