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문 12답,
역사부정과 역사교사가 할 일

특집 – 교실 속 역사부정(2/2) : ① 특별 기고

>>김육훈(서울공고)


prologue : 역사부정의 원년이 된 2019년


1년을 경과한 뒤 돌아보면, 한국에서 2019년은 역사부정의 원년이라 할 만했다.

이해 연초부터 국회란 공간을 활용하여 공공연하게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 주장하고, 5.18 유공자를 세금을 축내는 괴물 집단으로 폄훼하는 일이 있었다. 일부 우파 매체는 유튜브 등을 이용해 이같은 주장을 거듭 증폭시켰다. 또한 많은 우파 집회에서 이같은 주장을 반복했고, 급기야 5.18 역사의 현장으로 해마다 5.18 전야제가 열리는 금남로에서 5.18 폭동설을 유포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019년 3월에는 야당 원내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해방 직후 반민 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발언도 했다. 많은 우파 단체들은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을 한국 정부에만 추궁했고, 심지어 우파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친일이 왜 문제?’라고 반문하면서 ‘반일하는 종북 세력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2018년에 재발견된 ‘토착 왜구’란 배제적 언어가 널리 유포되고, ‘토착 왜구’와 ‘좌파 독재’란 대치선이 시민 사회를 가로질렀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은 더욱 노골화됐다. 교묘한 언사로 위안부 피해를 부정했고, 명백히 부정할 수 없는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서는 한일 협정 과정에서 다 끝난 일이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한민국이란 식의 가해와 피해 전도를 도모하는 일이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본 정부, 심지어 극단적인 일본 우익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듯한 활동이 국내 일부 인사들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반일종족주의란 책의 출간과 그 책이 빚은 여파를 가리킨다.

책 저자들은 자신들의 오랜 연구를 갈무리한 학술서라고 강변하지만, 이 책은 어느 모로 보나 학술서의 외양을 띤 극단적인 정치선전물이라 할 만하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학술서라하기에는 사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맥락을 고려하여 해석하는 기초적인 문제서부터 수준 이하이다. 한국의 역사학계 전체를 거짓말쟁이라 주장하고, 그들이 쓴 책으로 공부했다 하여 대법원까지도 거짓말에 물들었다거나, 심지어 한국인 전체를 샤머니즘적 사유 체계에 함몰된 채 거지맛을 일삼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학술적 토론은 늘 환영한다고 밝혀놓고, 그들의 사료 취급이나 논증 방식을 비판한 글들은 싸잡아 ‘반일종족주의’로 매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는 이같은 역사부정의 주장이 공론장이나 온라인에 머무는데 그치지 않고, 학교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내용을 구실로 하여 ‘반일사상독재교육’이 이루어어진다면서 정치편향 교육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제기되어 일파만파 확산된 적이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평화비(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연이어 진행되고, 위안부 피해를 주장하는 활동, 소녀상을 훼손하는 활동이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왜곡을 처벌해야 한다는 ‘역사부정 처벌 입법’ 논의도 활발해졌다. 여러 유형의 처벌 입법이 발의됐고, 몇 차례의 토론을 거치면서 결국 5.18 역사왜곡을 처벌한다는 법률이 제정된 일도 있었다.(2020. 12.) 이 모든 일이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났다. 대체 역사부정이란 무엇이고,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01. ’역사부정‘이란 말이 뭔가요?


◦ 역사부정은 서양에서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활발하게 사용된다. 영어로 denial, negation을 번역한 말인데, 번역하는 이에 따라서는 부인 혹은 부정으로 번역한다. 부인과 부정을 사전에서 찾으면 큰 차이가 없어 혼용된다. 이 글에서는 부인 대신 부정으로 표기했는데, 부인이 사실(fact)의 있었는지의 여부란 뉘앙스가 강하고, 부정이 역사적 진실의 부정이란 맥락이 강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 역사 부정의 전형이라 할 홀로코스트 부정은 대개 다음과 같다. 1)

① 제노사이드는 발생하지 않았고, 가스실도 존재하지 않았다.
② 유대인들은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 동부 지역에서 추방당했다.
③ 학살된 유대인들의 수는 주장되어온 것보다 훨씬 적다. 총 사망자는 20만명에 불과하고 그 중 상당수는 연합국의 폭격의 결과였다.
④ 2차세계대전에 대한 주된 책임은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있다
⑤ 1930년대와 1940년대 동안 인간성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는 독일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독일은 단지 볼셰비즘-공산주의 위협에 대항해 자력 바아어를 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은 공산주의자라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⑥ 연합국 프로파간다는 시온주의 계획의 일부로 제노사이드를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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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idal Naquet가 정리한 내용을 허버트 허시가 자기 책에서 간추림.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강성현 번역), 63쪽에서 옮김.


◦ 역사부정의 또 다른 전형을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위안부 피해 부정이나 난징 대학살 부정과 같은 사례다.


① 난징대학살은 없었다. 성 노예제(sexual slavery)로서의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없었다.
② ‘종군위안부’란 성 노예가 아니라 ‘단순한 상행위’, ‘매춘부’에 불과하다.
③ 난징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 수는 중국 측이 말하는 30만도,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채용하는 십 수만에서 20만도 아니며, ‘최대한 만 명’으로, 일반 시민 사상자는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보고가 ‘전부 옳다고 해도 47명’에 불과하다.
④ 조선의 식민지화와 중일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는 없다. 책임은 오히려 러시아와 구미의 위협에 위기의식을 갖지 못해 근대화가 늦은 조선과 중국 측에 있다.
⑤ 일본의 아시아 진출 시기에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진정한 위협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소련) 및 구미 열강이었다.
⑥ 난징대학살 ‘종군위안부’ 문제는 ‘국내외의 반일 세력’의 선전 활동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 최근에는 홀로코스트 부인이나 일본 우익의 역사인식을 가리키는 말 이외에도, 터키인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부인을 비롯하여 제노사이드, 전시 성폭력, 심각한 국가/정치폭력의 부인 등과 관련하여 denial, negation 등의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가짜 역사[fake history]나 역사 조작[manipulation], 역사의 악용과 오용[abuse of history/misuse of history]이 여러 곳에서 문제시되고, 역사교육의 현상을 이해하고 대안을 탐색하는데서 갖는 중요성이 재인식되는 중이다. 역사부정도 넓은 의미의 역사 조작에 해당하겠지만, 심각한 폭력과 인권 침해 사실의 시인-조직적 부인과 관련된 단어로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02. 그런데,.. 역사부정과 역사수정주의는 구별해야 하지 않나요?

◦ 서구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일본의 난징대학살-위안부 피해 부정론자들은 스스로 새로운 연구에 기초한 수정주의적 역사해석임을 강조하거나, 자신을 역사수정주의[Historical revisionism]로 칭한다. 수정주의적 역사 해석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여 사건의 속성을 다르게 파악하려는 노력은 역사학의 본질이다. 그러나 자칭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이와 다른 차원이다.


◦ 역사부정이 횡행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어떤 이들은 ‘역사부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한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주인공이기도 한 데보라 립스태트조차도 그렇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거대 서사의 폐기, 상대주의-해석의 다양성 등을 거듭하여 강조한 결과 역사부정론자들이 발언권을 갖는데 – 성립가능한 하나의 역사해석으로 존립할 수 있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정작 역사부정론자들은 ‘다른 해석이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실증주의-객관적 역사가를 자처한다는 뜻이니,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그것이 비판하고자 하는 모던인 셈이다. [그들의 이런 실증주의를 부정의 실증주의라 부름] -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합리적인 역사 탐구’인 양 외관을 갖추려고 나름대로 애쓴다. 사료를 중시하고, 증거에 입각한 논문형태의 글을 쓰며, 여러 학술지와 연구 기관을 갖기도 하고, 학술회의를 진행한다는 뜻이다. 아 참, 일베가 가장 강조했던 말은 fact였다는 점도 기억해볼 수 있겠다.


◦ 그러나 실상은 이들이 사료를 사실로 확정하거나, 사료들에 담긴 의미를 추출하여 역사상을 구축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노정함. 그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이를 무시하기 등 → 그래서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제시하는 사료를 보는 법, 역사학의 본질 등에 대한 탐구 결과를 통해 얻은 문제 의식과 방법론 등을 수용하여 “부정의 실증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 역사부정은 역사가 아니다. 덜 객관적이거나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이 아니라, 합리적 역사가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나 방법론을 포함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란 뜻이다. [그가 제시하는 증거나 하는 말이 모두 거짓이란 말은 아니다] 홀로코스트 부인을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소재가 된 어빙 재판을 생각해보자. 재판 전략의 핵심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등장시켜 피해를 입증하는 방식이었다기보다. 부정론자인 어빙이 역사가가 아니고, 반유대주의-파시스트란 점을 입증하여 역사가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작업 방식을 무시하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나치를 정당화했다는 방향을 취했다.


◦ 이 대목에서 교사 자신도 자신의 역사 수업을 돌아봐야 할 것임 : 사료를 선택적을 발췌하거나, 사건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본질을 흔드는 방식으로 사례를 활용한 것은 아닌지. 증언이 증거가 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물의 한측면이 아니라 사실의 본질적 속성을 보여주려 해야. 교과서에 선택된 사료나 사진의 대표성, 그것의 생산 맥락과 발화-사진작가의 시선을 고려하고 있는지. 증언[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폭력 피해자의 증언일 경우 더욱]을 활용하는 경우 더욱 그러함.



03. 그런데 누가 왜 역사를 부정하는거죠?


◦ 반인도적 범죄, 국가 폭력의 가해자들은 그 행위를 하던 때부터 실은 부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끊임 없이 마음 속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고, 행위와 관련된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며, 그 행위가 끝나고 난 뒤에는 남아 있는 흔적을 애써 지우려 했으니, 역사부정의 시작은 가해자 자신이었다 할 만하다.


◦ 역사 부정은 전범 재판[뉘른베르크, 동경 재판, 유고 전범 재판, 르완다 전범 재판], 광주 청문회 같은 과거 청산 과정을 거치며 구체화됐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책임을 부인하기 위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증거를 누락 왜곡하거나, 자신의 행위를 사소화, 정당화하는 등 다양한 부인 논리를 구사했으며, 수동적 방관의 책임이 있는 이들이 이를 방조하고 조장했다. 역사부정은 이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했다.


◦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피해자-목격자들이 줄어들거나 고립되고,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사회적 기억이 전반적으로 왜곡되는 양상이 일어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도 희생자’라거나, ‘어려웠던 시기에 불가피하게 일어났던 일이니 이제는 묻어야 할 이야기’라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역사를 조작하는 이들이 활동하고, 특히 기억 정치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집단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심하게 악화되는 일도 일어난다. [아베의 일본 처럼, ‘언제까지 사과할 것인가’ 라면서 ‘자신들이 전쟁 책임이 있는 시대나 인물과 연루됐음’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책임 있는 자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그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대변.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민족-국가 서사를 앞세우면서 역사부정-부인문화를 조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갈등 극복이 아니라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 기술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 역사교육 담당자들은 자신이 수업에서 다루는 역사교재와 공공 기억이 현상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칫 자신의 행위가 사회나 다음 세대에게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음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 “역사부정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가해자의 시선으로 가해 행위를 정당화하는 행위”다. 역사부정의 논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해 행위를 주도한 이들의 생각을 알아야 하며, 그럴 때 불행했던 폭력이 재연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



04. 어떻게 그런 주장을 믿을 수 있는거죠?/그걸 믿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 부정주의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사실 중 일부에 갸웃하면서도 사실들로 구성된 주장 전반을 신뢰하거나, 주장 전반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관점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역사부정론에 공감하는 형태가 다층적이기 때문에 역사부정론을 이해하고 대안을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역사부정/부인이란 단어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명징한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만 뜻하는 용어는 아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처벌하는 홀로코스트 부정 행위는 세 가지로 유형화한다. 부정(negation), 집단 살해의 정당화(justification), 집단 살해의 사소화(trivialization)가 그것이다. 독일에서는 나치의 폭력적 지배를 시인하고 정당화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역사부정 행위와 부정이 아닌 행위가 칼로 무 베듯 선명하게 구획되지 않으며, 부인이 여러 유형을 띠고, 상황에 따라 강도가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 스탠리코언은 부인의 여러 층위를 논의하고, 부인을 넘어서려는 활동을 다층적으로 모색했다. 인권침해를 부인하는 현상을 문자적 부인, 해석적 부인, 함축적 부인으로 나누고, 개인의 인지‧정서 차원/사회문화적 차원/제도나 정책(국제사회를 포함) 차원에서 조명했다. 이를 통해 인권침해를 부인하는 현상의 기원, 그것이 부인 행동으로 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인지)심리학의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도 특정한 조건 속에서 사고가 점차 극단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으며, 개인의 그러한 행위는 사회문화-제도 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 당연히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지적했다.


◦ 사람들이 역사부정론에 공감하게 되는 과정[dynamics]은 역사교육자들이 특별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정주의자들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자칫 잘못된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길목을 잘 지키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십수년 동안 극단화-극단주의 연구나 탈진실 논의 중에서 참조할 만한 이야기가 많다. 확증 편향과 같은 말은 이제 유행이 됐다 할 정도고 집단동조/사고의 극단화와 관련된 논의가 다양하게 논의됐기 때문이다.


◦ 리 매킨타이어가 쓴 《포스트트루스》(김재경 번역, 2019. pp59-89)에서는, 인지 편향 이론들을 소개. 인지부조화이론(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과 다음을 확인한 뒤에도 정당화), 집단동조이론(경험하여 확인한 결과가 주변의 다수와 다를 경우 다수에 맞추려는 경향), 확증편향이론(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에 맞추어 사물을 인식하려는 경향)을 소개하고, 의도적 합리화와 관련한 현대적 이론을 소개하면서, 역화 효과[열성적 지지자들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에 맞닥뜨리자, 잘못된 신념을 더욱 강화라려는 현상], 터닝크루거효과[자기 신념에 애착을 강하게 느낀 나머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인지 인정하지 않고, ‘본능적 직감'에 의존하기]을 소개했음. 미치코 카쿠타니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김영선 옮김, 2019. pp10-11)에서, 사람들이 편파적 저장탑과 필터 버블에 갇혀서 공통의 현실 감각을, 사회와 종파의 경계를 가로질러 소통하는 능력을 잃고 있다며 ‘진실의 쇠퇴’ 를 우려 – 탈진실 시대를 분석.


◦ 극단주의에 대한 연구는 이보다 이른 시기에 진행됐는데, 선스타인이 쓴 《우리는 왜 극단에 이끌리는가》[이정인 역, 프리뷰, 2011], 김태형이 쓴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을유문화사, 2019] 역사부정과 같은 극단주의적 사고가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동학을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적절히 정리했다. 린 데이비스[《극단주의에 맞서는 평화교육》, 강순원 역, 한울, 2014]는 극단주의로 빠져드는 과정을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한 교육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참조할 만한 가치가 매우 크다. 영국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중시하는 다문화주의적 교육이 가져온 부정적 효과로서 극단화 과정을 다루면서, 다문화주의와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시민교육의 긴장 속에서 교육적 대안을 모색하려 했다.


◦ 역사부정주의자들은 전쟁 직후부터 두루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특별히 논리를 쇄신하지 않고도 점차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 과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확산되는 이유, 앞으로 더 확산되고 문제시될지 등을 판단하는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회주의권의 해체 - 탈냉전 직후, 동아시아에서도 냉전의 해체와 탈식민이 본격화되는 과정,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 확산과 민족 문제의 전면화, 문화 전쟁 등은 역사부정이 확산된 중요한 계기였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 부정주의자들의 국제 연대 등으로 인해 부정론이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부정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가 더 유능함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는 사유,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의 중요성이 떠오른다.



05. 한국에서 역사부정이라 할 만한 일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 오늘날 우려하는 역사 부정의 여러 양상들. 곧 5.18 부정, 오늘날 반일종족주의론 제창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약 20년 전쯤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다. 이 시기에 지만원 등이 5.18은 북한군 개입에 의한 폭동이란 주장을 공개리에 제기했고, 가짜 위안부설 등을 주장했다. 역사부정론의 확산과 관련하여 2004년에 등장한 뉴라이트 ‘시민 단체’,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을 대변하면서 탄생한 교과서 포럼(2005년 1월 창립)의 등장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 뉴라이트(New Right)의 어떤 측면이 새로운지 논란은 처음부터 있었다. 보수가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를 앞세우면서, 달라진 보수의 실체로 내세웠던 단체들과 그 활동 내용을 보면, 당시 중앙이나 한겨레가 “조선과 동아의 뉴라이트 사업”이라 불렀던 상황이 이해할 만하다. 뉴라이트란 단어는 동아일보 정치부에서 만든 용어이고, 동아-조선이 가장 앞세웠던 자유주의 연대는 ‘전향 우익’ 인사와 조선일보 주필을 지낸 류근일 등이 중심이었고, 실제 뉴라이트가 내놓은 주장은 그들이 스스로 단절하고자 했다던 Old Right 단체의 주장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8)


◦ 뉴라이트가 등장한 시점은 2004년으로, 이 해는 민주당 계열의 연속 집권 속에서 남북 화해, 친일-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악법 철폐 움직임이 본격화되던 시점이다. 이 시기에 올드라이트의 한 정형이라 할 인사들이 자신을 “運動圈(운동권) 출신 「386」세대를 비롯하여 「親北(친북)·左傾(좌경)·反美(반미) 세력」과 싸워, 대한민국의 건국과 호국, 전후 복구와 근대화,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를 위해 싸웠던 애국 세력으로 호명하려 한 일이 있다. 5명의 전직 국회의장과 7명의 전직 국무총리, 10명의 전직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540명의 예비역 장성들이 참가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9.9 선언문”의 일부인데, 이 선언문에 나온 올드라이트의 주장과 이후 뉴라이트가 마치 새로운 양 제기한 주장들과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


◦ 교과서 포럼 등 뉴라이트의 담론을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일본 우익 논리의 연장선에서 파악하기도 하지만, 2004년 시점의 여러 ‘반좌파(반노무현) 담론’이란 점을 비중 있게 생각해야 한다. Old Right의 여러 반좌파(민주당) 담론[친북좌파 담론, 친일 불가피론, 건국-호국론, 산업화가 민주화의 전제란 주장]과 소통했으며, 여러 우파 담론들이 서로 교섭, 삼투하고 대선-총선 시기의 정치 운동으로 수렴하면서 뉴라이트의 역사 담론도 점차 거칠게 변모했다는 점에 유의하자. 역사학-역사인식 내부의 문제로 국한하지 말고 다른 반좌파 담론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에게 미친 영향을 함께 살피자는 뜻이다. 여기에는 이 역사담론이 다른 우파 담론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정동)를 조성한 측면도 당연히 포함된다.9)


◦ 2008년 이명박 정부 성립 이후 교과서 논쟁의 폭발 속에서 역사 부정이 확산됐고, 교과서 논쟁은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에서 점차 극단적 국가 정체성 논란-비국민 배제 방식-으로 치달았다. 양 측면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자유민주주의 체제 논쟁, 일베의 역사부정이 횡행했다. 역사부정 논란이 폭발하는 때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2015년으로 5.18 부정이 다양한 형태로 횡행하고 위안부 피해 부정 등도 점차 확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2015년에는 급기야 99.9%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가 편향됐다면서, 0.1%도 채택하지 않은 교과서의 역사 인식을 올바르다고 자기들끼리 결론짓고, 그 역사 인식을 담아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모든 학생이 쓰도록 하겠다는 큰 소동을 일으켰다.


◦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국제 사회가 우려할 만한 심각한 역사 조작의 사례다. 역사교육이 국가간, 국내 사회 세력들 간 갈등을 조장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 유럽 평의회는 199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국가 권력에 의한 역사 조작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유럽 각국의 정부와 교육 단체에 인권에 기반한 평화 지향 역사교육의 방향을 제안했다. 2013년에는 그 취지를 계승하면서 학습자의 문화적 권리 차원에서 역사 교육을 접근한 뒤, 조작되지 않은 역사를 배울 학습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여 권고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그 자체로 역사 부정이라 하긴 어려우나, 국정화는 소수의 역사 인식을 유일하게 올바른 것으로 학생들에게 강요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권력의 역사 조작에 해당한다. 나아가 당시 권력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관철하려던 역사 인식의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부정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과거 청산을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그런점에서 명백히 역사부정이라 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10)


8) 이윤희, 대응사회운동(Countermovement)의 사회적 역할-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담론201 8(1), 2005 -

김정인, 전향우익 분석. 문화과학, 91, 2017.

9) 초기만 해도 뉴라이트 역사 담론은 탈민족주의-탈근대 담론이란 학술담론의 범위 안에 있었고, 그들의 논의 역시 학술적 범위 안에서 진행. 뉴라이트 역사 담론의 정치화 과정에서 학술적 논의의 범위를 점차 벗어남. 이철우, 〈자기 부정의 역사 서술? 반일 종족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말놀이〉,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2020.

10)박근혜 정부가 국정화를 내부적으로 결정했던 2015년 9월15일 교육부에 전달한 집필기준 수정의견은 단적인 사례다.이 문서엔 과거청산 관련 5개 특별법[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및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에 관한 특별법,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특별법,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관련 내용 전면 삭제 등 21개항으로 이루어졌다.




06. 그럼, 《반일종족주의》는 역사부정 서적인가요? 뉴라이트-반일종족주의를 제창한 이들을 모두 역사부정론자라 불러도 좋을까?


◦ 《반일종족주의》는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 역사 담론의 연장선에 서 있는 학술적 성격의 도서가 맞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참가하여 이 책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한 책은 ‘누구를 위한 위한 역사인가-뉴라이트 역사학의 반일종족주의론 비판’로 제목을 달았다. 《반일종족주의》가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역사 연구 결과란 점을 일단 승인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논평서 곳곳에서 그 책은 역사가 아니라는 의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저자인 강성현은 이 책을 역사부정으로 규정했으며, 그 책은 본질적으로 정치선전물에 가깝다고 인식한 저자들도 다수다. 이 책에 실린 첫 글 저자인 이철우는 ‘자기 연구를 부정하는 행위들, 정치적 레토릭’ 등으로 규정했다. 책의 서문에서는 위안부 파트는 역사부정이라 규정하면서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학술적 저작의 의미를 인정하고 실증적 비판을 가했음도 눈길을 끈다.


◦ 학술적 외양을 띤 부분이 적지 않아서, 이에 대한 실증 차원의 검토와 반박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런데 《반일종족주의》를 꼼꼼히 보면, 곳곳에서 그 책 출간(2019)을 전후한 시점의 여러 반좌파 담론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2004-2005년 이래의 뉴라이트[올드 라이트를 포함하여] 역사 인식의 연장선에 서 있으면서도, 새롭게 등장한 반페미니즘 담론, 관제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란, 반북론의 후퇴와 혐한 혐중론의 투영이 이런 경우다. 심지어 그 책의 어떤 곳은 2019년에 나온 어떤 신문의 사설과 문장조차 매우 비슷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역사 담론(연구)으로서 계보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대 반좌파 담론 지형 속에서 이 담론의 위치, 각 담론의 상호 교섭과 침투, 극단화 동학dynamics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책을 여러 차례 살펴본, 그리고 2019-2020년 즈음의 정치 사회적 논쟁으로 부상했던 사안과 담론들들을 정리해본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 책이 반좌파 정치선전물[혐오 유발, 증오 선동]이란 점을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본문이고, 본문에 해당하는 3개 장은 실상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부분이라는 뜻이다. 그 책 저자들이 본문에서 주장한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반론을 학계에서 제공 – 학술적 차원에서 그들의 실증이 틀렸음이 입증된다고 해서, 그 책 저자들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담긴 문제의식을 수정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핵심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2019-2020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거나 여러 층위에서 반좌파적 성향을 보인 이들이 하고 싶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두루 담고 있다는 뜻이다. 11)


◦ 실증적 검토, 논증 방식에 대한 검토 등을 통해서, 《반일종족주의》에 담긴 주장이 학술/역사학의 범위 밖에 있음을 입증함과 동시에 그들이 그같은 주장을 펼치는 (발화의 위치와) 맥락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이들의 주장이 다른 반좌파 담론들과 맺는 교섭과 상호침투, 극단화 과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반좌파 (정치 투쟁, 사회 운동 - 민주당 계열 정권과 민주화 운동 자체, 남북 화해 협력, 식민 청산 시도, 여성주의…) 담론, 혐오-증오 선동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것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 부정이란 도구를 갖고 이 책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1)우연한 기회에 지만원씨가 2014년에 쓴 칼럼[친일 굿판, 위안부 굿판은 대남공작! 2014. 6. 6] 을 읽었는데, 이 짧은 글에서 다룬 내용과 논증 방식이 그 책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다. 누가 주장의 원조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 상호 침투하면서 극단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뜻이다.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8580





07. 역사부정,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까? 정말 우려해야 하나?


◦ 지배층 중심 역사교육을 넘어서야 한다는 논의와 실천이 오래 이어졌고, 일본의 역사 왜곡이란 말로 표현됐던 역사수정주의를 접한지는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홀로코스트 부정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역사 부정은 오래 동안 우리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제법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역사 부정 세력이 활동해도,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었다. 그런데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쟁-교과서 논쟁이 십수년을 이어간 끝에 다가온 2019년에는 한국에서도 여러 유형의 역사 부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이제는 이전보다는 훨씬 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 현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미국에서도 홀로코스트가 있었던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고,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로 형상화되지는 않지만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혐오 선동이 곳곳에서 진행된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인종주의-인종 혐오를 공공연하게 제창하는 극우 세력이 큰 세력을 얻는 중이다. 그럴 만한 정세가 조성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미국에서 비백인 인구 비율의 꾸준한 상승, 유럽에서 다양한 곳에서 오는 난민들의 문제, 이슬람 인구의 증가], 인권과 민주주의-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뒷전에 물리면서 국가/집단 이익을 앞세운 정체성 정치-혐오 선동이 구미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다. 역사부정이 우익 포퓰리즘이나 국수주의적 정치인들이 동원하는 혐오 선동의 일부란 점을 감안하면, 서양에서 역사부정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 과정에서 공감을 받았던 “반일이 아니라 반아베”라는 구호도 사실은 절반의 진실일지 모른다. 일본에서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죽거나 활동하지 못하고 전쟁 기억이 희석화되는 가운데, 청산되지 않은 전쟁 정당화론자들이 일본인들의 희생자 민족주의12)를 자극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 등 국제적 반일 세력의 역사 공세에 맞서자면서, 피해와 가해를 전도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의 극단적 진영 대립,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인 미디어 환경,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나쁜 정치인, 진영 간 대립을 부추겨 이익을 얻으려는 언론 산업-재벌 언론들의 존재를 감안하면, 한국 상황도 우려스럽다. 혐한과 반일이 충돌하고, 좌파 독재와 토착 왜구 프레임이 충돌하는 양상 속에서 역사 부정이 격화되고 혐오선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12) 일본도 2차대전의 피해자란 인식. 전쟁 범죄에 대한 불충분한 청산, 가해 사실을 소거하고 원폭을 비롯한 피해 사실에 대한 선택적 기억이 이어지면서, 이런 인식은 일본 사회 내부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여기에 일본의 좌파와 한국-중국 같은 국제적 반일 세력이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공격한다는 식의 우파의 주장이 겹쳐지면, 이런 인식은 쉽게 증폭된다. 폴란드의 경우도 유의할 만한데, 폴란드가 나치의 희생자란 주류적 서사를 반대하는[폴란드인이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한다거나] 활동 전반을 금지하는 일이 좋은 사례다. https://amnesty.or.kr/24714/




08. 역사부정, 혐오선동이 방치될 경우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 2015년 즈음 영국과 미국에서 그 다음 해에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 이루어질 것이라 예측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시의 경우 역사 부정-혐오 선동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특정한 상황이 조성될 경우 내용적으로 극단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집권이 이루어지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집권 이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예측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폭력사-제노사이드/혐오 관련 연구 내용을 접해보면, 역사부정-국가폭력의 역사를 부정하는 활동이나 암묵적인 부인 문화를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하겠다는 점을 깨닫는다. 다음은 혐오 표현을 처벌할 것인지를 다룬 연구에 등장하는 혐오 피라미드다.

[혐오의 피라미드 - 《Hate Crimes-Understanding and Defining Hate Crimes》 (Praeger, 2009), p.5. 이승현, 〈혐오표현(Hate Speech)에 대한 헌법적 고찰〉, 연세대 법학박사논문(2015), 34쪽에서 재인용]



◦ 한국에서 국가 형성 시기 국가 폭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한 역사학자가 도구로 삼았던 스탠턴의 제노사이드 8단계론도 무서울 정도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제노사이드가 실재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면서 폭력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8단계의 문화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지속되고 있는 중인데, 그래서 어느 위험한 시점에 돌출할 우려가 늘 있는데, 역사/수업에서 폭력의 역사를 성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험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스탠톤의 8단계는 분류, 상징화, 비인간화, 조직화, 양극화, 준비, 절멸, 부정으로 나뉜다. 우선 ‘분류(classification)’는 제노사이드의 첫 번째 단계로서, 사회집단을 “우리와 그들(us versus them)”로 구분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즉, 우리와 상이한 존재로서의 ‘타자’를 설정하는 것이 제노사이드의 첫 단계라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인 ‘상징화(symbolization)’는 분류된 개별 집단들이 상징화되는 과정을 뜻한다. 각각의 집단들은 노란별과 같은 차별적 표상이나 신분증, 특정한 이름 등을 전통과 법률에 따라 강요당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제노사이드라는 죽음의 수용돌이가 시작되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희생자들은 동물의 명칭으로 불리거나, 질병에 비유된다. 네 번째 단계인 ‘조직화(organization)’는 학살자 집단의 조직화를 뜻하고, 다섯 번째 단계인 ‘양극화(polarization)’는 온건주의자들이 표적으로 설정되어 학살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섯 번째 단계인 ‘준비(preparation)’는 제노사이드의 구체적 계획이 수립되고, 시험적 학살이 진행되는 단계이다. 일곱 번째 단계인 ‘절멸(extermination)’은 법적으로 제노사이드로 규정되는 집단학살 과정을 뜻하며, 마지막 단계인 ‘부정(denial)’은 학살 이후에 가해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출처. 김태우, 〈제노사이드의 단계적 메커니즘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동북아연구》 제30권 1호(2015). p178]


09. 역사 부정이 위험한 일이라면,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요?


◦ 역사부정 논란이 거세질 때마다 역사 왜곡 처벌법 논란이 주기적으로 제기됐다. 2005년 한승조씨13) 발언 파문 당시 처음으로 친일 옹호 처벌 법안이 거론된 바 있고, 2007년 합천에 전두환 기념 공원을 만든다 할 때 올바른 기억 확립을 위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 적도 있다. 2013년-20014년에 5.18 부정, 위안부 피해 희화화, 교학사 교과서 논란과 문창극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여러 유형의 역사 부정 처벌법이 거론된 바 있었으며, 2019년에 5.18 부정 논란, 《반일종족주의》 논란 등을 계기로 다시 부상했다. 2020년 새 국회가 구성되면서 여러 개의 역사 왜곡 처벌법이 발의됐는데, 이 가운데서 5.18 역사부정을 처벌하는 법안이 제정됐다. 14)


◦ 역사 왜곡 처벌법 논의는 대개 유럽의 홀로코스트부인 처벌 조항들을 전거로 삼는다. 유럽은 이 조항을 혐오발언, 증오 선동에 대한 처벌 차원에서 접근하고, 인종주의를 제어하는 수단으로도 삼는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는 유사한 법률이 없다. 국내에서도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찬반 의견이 두루 있고,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토론 자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 역사 부정을 법으로 처벌할 것인지와 별개로 제노사이드를 비롯한 폭력의 피해를 부인하지 않고,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자는 제안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적지 않은 합의와 실천도 있었다. 특히 최악의 제노사이드를 경험한 유럽에서는 역사 부정을 처벌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조직함과 아울러 이같은 노력을 공공 기억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제연합 차원의 활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유엔 차원의 노력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2차 대전 직후에 만들어진 유엔 헌장이나 제노사이드 협약을 들 수 있다. 탈냉전 이후 전쟁 폭력과 인권 침해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기억할 의무를 천명한 규범들이 국제 사회의 공감을 받았다. 그 단초가 유엔특별보고관 주아네 보고서(1997, '불처벌과 투쟁을 통한 인권 보호와 신장을 위한 일련의 원칙’ )로, 진실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기억할 의무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 역사부정을 배격하려 했다. 이후에도 유엔에서는 역사 부정을 배격하고, 기억의 보존을 위한 노력을 칭찬하면서, 인종 또는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개인이나 공동체를 공격하는 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여러 차례 채택한 바 있다.


◦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진척되고 과거 청산 노력이 진행되면서,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활동의 법적 근거가 확보됐다. 과거 청산 과정에서 확인된 국가 폭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및 교육에 대한 권고도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다. 불충분한 과거 청산과 보수 정부의 연이은 등장을 거치면서, 과거 청산 관련 부인-역사 부정이 두루 진행되는 것도 현실이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말하는 행위 자체를 불온시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인권과 민주주의-평화를 지향하는 교육은 헌법-교육기본법 - 민주화운동 관련 법령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은 교사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법적 의무이기도 한 셈이다.


◦ 역사 왜곡을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찬반으로 논의가 국한된 나머지, 역사 부정이 나타나는 불행했던 역사-과거를 청산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터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공공 기억/기념과 교육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권이나 평화 감수성이 높아지고 역사 연구가 문제의식이나 실증 차원에서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걸 생각하면, 현재 제도화된 기념 영역이나 공공의 기억 문화란 차원에서는 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높다.15) 명백한 역사부정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와 별개로, 기억할 의무를 둘러싼 논의/존재하는 기념 문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3) 당시 고대 교수였으며, 2000년 11월에 자유시민연대란 우파 단체를 창립하여 2005년까지 대표를 지냈다. 2005년에 일본 우익 잡지에, 〈공산주의·좌파 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는 글을 기고했는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런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는 내용이 담겼다.

14)역사왜곡처벌법이 여럿 발의됐는데, 5.18 특별법을 개정하는 형식을 취했다.

제8조(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의 정보통신망의 이용

2.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게시 또는 상영

3. 기타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등에서의 발언

②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기타 이와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15) 서울의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의 전시 서사를 전두환 시기 국정교과서의 한국전쟁 서사와 비교하여 읽은 적이 있다. 그 양상이 너무 닮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이 그 기념관의 서사 밖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10. 역사교사들이 역사부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 교과서 논쟁을 이십여년 동안 경유하면서, 일상화된 진영 대립과 역사의 정치적 동원 흐름 속에서, 그리고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학생들이 교과서적 지식과 다른 이야기를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중에는 학교 교육이나 교과서에 대한 불신을 담은 내용일 가능성도 높다. 학생들이 직접 문제 제기하지 않더라도, 시험을 보기 위한 교과서 지식과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 인식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우도 나올 가능성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교사의 수업에 대한 항의가 일어날 수도 있다. 유감스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학내에서 교사와 학생‧학부모, 관리자와 수업 당당자 사이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교사들이 이같은 변화된 양상에 대한 이해나 대처하는 준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는 미지수다.


◦ 교사들은 교실에서 다루어지는 역사 지식-역사 교육의 내용이 역사 연구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공공 기억의 한 형태란 점. 바로 그 때문에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거듭된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시민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공공 기억의 구성과 재구성 문제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감하고 논쟁적 주제일수록 우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이해관계와 관련 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탈냉전 이후 특히 동유럽에서 민족 갈등이 고조되고 제노사이드로 치닫기도 하는 상황에서, 역사 고쳐 쓰기-역사 조작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일찍부터 역사교육이 갈등을 조장하는 위험을 방지하고, 평화-시민교육에 기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 공동 노력을 진행했다. 1993년 빈(Wien)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정상 회의에서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반유대주의, 불관용’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럽의 역사와 역사교육에 관한 권고안>(1996) 채택했으며, ‘20세기 유럽사에 대한 교수학습 프로젝트(1997~2001)’를 진행하고 역사교육의 방향 전반을 검토한 <21세기 유럽의 역사교육에 관한 권고안>(2001) 채택했다. 이 권고들에는 역사교육이 이데올로기 조작이나 정치 선전의 수단, 불관용‧극단적 민족주의‧외국인 혐오‧인종주의‧반유대주의의 조장에 악용되는 경우를 우려하면서, 역사교육의 역할 중 하나로 반인륜 범죄 예방을 들고, 역사 조작에 대한 저항, 역사의 오용에 대한 비판적 학습을 담도록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 유럽평의회가 2018년에 채택한 <원칙과 지침 : 21세기 양질의 역사교육>에서 제시한 “민주적이고 다양한 그리고 포용적인 역사 교육과정과 교수법을 위한 8가지 원칙.”은 오늘 우리의 문제의식과 매우 많이 닮았다. 8개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데,


1. 문화 다양성을 수용한 유연한 교육과정과 상호 소통하는 교수법의 개발

2. 민주주의 역사에 관한 복합적인 교수·학습

3. 평범한 개인과집단의 활동이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방식으로 사고하기

4. 서로 다른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오랜 동안 사회에 자리 잡았음을 인식하기

5. 타자와 우리 양자 모두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

6. 사료를 평가하고 조작된 정치 선전에 맞서기 위한 도구를 제시하기

7. 민감하고 논쟁적 주제 제시하기

8. 역사의 교수·학습에서 인지적, 정서적, 윤리적 차원의 균형 찾기


◦ 그 중 6은 혐오 선동의 현재적 상황과 역사 부정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음은 이 원칙에 따른 지침 중 일부다.

“(…) 소문과 위조된 내용의 역사적 영향은 잘 기록되어 있지만 (…) 우리는 새로운 것을 목격하고 있다. 글로벌 스케일의 정보의 오염; 이러한 '오염된' 메시지를 생성, 배포 및 소비하기 위한 복합적 웹; 컨텐츠를 증폭시키기 위한 수많은 컨텐츠 유형 및 기술; 이 컨텐츠를 호스팅하고 재생하는 수많은 플랫폼; 신뢰할 수 있는 동료 간의 통신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 시각 자료는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어 오보와 허위정보를 나르는 훨씬 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작과 설득을 위한 이미지의 힘을 사람들에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가 시각을 이해하는 방식이 텍스트에 대한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1.역사는 비판적 사고를 신장시켜 조작이 작동하는 구조를 분석할 도구를 제공한다.
1.3. 다양하고 서로 대조되는 출처의 자료를 사용하면 역사적 해석이 단정적이지 않고 잠정적이며 이로 인해 재평가가 가능하며 역사의 오용에 대한 필수 보호 수단이 된다.

2. 전자 매체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제고
2.1. 교육자들은 자신들의 방식과는 매우 다르게 청소년이 소셜 미디어 및 시각 자료를 이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고, 학생들이 e-미디어의 이점과 잠재적 위험을 모두 관찰할 수 있도록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11. 그런데 잔혹한 폭력의 역사를 애써 찾아내고, 굳이 가르쳐야 할까?

거창사건 추모공원 내 조형물 : 묘지를 향해 사과하는 군인상

◦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를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으나, 근현대 수업을 하다보면, 특히 근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학생들로부터 너무 우울해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한일 우익이 쓰는 자학사관이란 말도 이런 정서를 일부 반영한 것이다. 특히 무자비한 전쟁 폭력과 반인도적 범죄 행위들, 학살과 저항에 얽힌 역사는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으며, 이런 걸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할까 싶을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승자의 이야기, 국가적 영광의 서사에서 누락되고 배제된, 그것 때문에 오히려 희생됐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기 몫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희생자들이 해원으로 가는 출발점이자, 역사 화해를 바탕으로 불행했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출발점이다. 어떤 역사도 역사는 승자들의 영광으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그런 역사는 수많은 역사 주체들의 이야기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는 반역사일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잔혹한 폭력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폭력을 가르쳐야 하는지 여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 선의로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 심지어 범죄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만난다. 어떤 사건에 내장된 폭력적 질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악하거나 선한지의 명제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누구나 조건이 되면 악한 존재가 된다는 건 역사가 입증한다. 5.18 당시 학살에 가담한 군인들도 징병된 평범한 국민의 아들이었을텐데, 국민보도연맹 사건 때는 또 어땠을까. 다른 나라의 제노사이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악의 기원을 찾다보면 그것이 결코 멀지 않다는 데 소스라칠 수밖에 없음. 폭력사, 정치적 학살을 포함한 제노사이드, 전쟁 폭력 등에 대한 성찰은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 나아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 폴란드에 주둔했던 독일 예비경찰부대의 유태인 학살을 연구한 사례를 생각해보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보통사람들이 인류 역사의 가장 극단적인 학살을 자행했는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보통의 시민들이 나치 정권에 저지른 여러 과정의 조작-조종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 예를 들자면 거듭된 세뇌 교육, 동료들의 압력, 처벌에 대한 공포, 전시에 펼쳐진 나치의 선전 등등을 거치면서 갈수록 상황이 악화됐음을 지적한다. 다른 이는 이같은 상황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보통의 사람들이 실상은 반유대주의란 뿌리 깊은 증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아이히만처럼 자신이 하는 일이 대학살의 한 과정을 책임지는 일이란 점을 생각하지 않은 채 관료 시스템 속에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악의 평범성/진부함[Banality of evil] 을 말하기도 한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 어처구니 없는 정치 폭력의 실행자가 된 이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 그런데 4.3이나 보도연맹 사건에 관한 보고를 보면, 동일한 상황이라 하여 모든 사람이 같이 행동한 것은 아니다. 홀로코스트에서, 독일인이나 폴란드인이 모두 가해 행위에 가담하거나 수동적으로 방관한 것도 아니다. 5,18도 마찬가지다. 무사유를 강요하는 관료적인 체계, 제노사이드의 단계론과 같은 누적적인 과격화 구조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 속의 행위자들의 결단들이다. 폭력의 잔혹함, 폭력에 가담한 이들의 악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폭력의 체계과 역동성 속에서도 의로움-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던 이들의 이야기가 갖는 교육적 가치는 대단히 높다. 역사교실에서 역사부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가해에 맞서려던 작은 노력들, 폭력과 인권침해의 정당화와 부인이 아니라 시인과 바로잡는 행동에 나섰던 이야기를 다시 살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강상우 감독의 다큐영화 <김군>, 권윤덕 작가의 <식스팀>

◦폭력의 잔혹함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노출할 것인지는 논쟁적이다. 상징적인 사진, 충격적인 에피소드, 영화 등등이 사건의 진상, 사안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사실지만, 그것은 또한 장면 주인공의 피해자됨 만 부각되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접하는 학습자들에게 트라우마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교육 현장에서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의 실상과 그 본질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형태로 논의됐고[어린이들에게 아우슈비츠를 말할 수 있을까?],

김군으로만 남은 한 시민군을 찾아나선 영화, 위안부 피해나 5.18을 소재로 한 평화그림책을 그린 권윤덕 작가의 작품처럼 교사가 수업에서 참고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한 좋은 사례는 적지 않다.16)


16) 어린이들에게 아우슈비츠의 역사를 가르칠 수 있을까?

http://www.yes24.com/Product/Goods/3475276?OzSrank=3

5월교육의 원칙 http://edu.518.org/sub.php?PID=0302&page=&category=&searchText=&searchType=&action=Read&idx=2




12. 수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겠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 역사 교육에서 역사 수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역사 수업은 역사교육을 둘러싼 제도 정책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점을 늘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역사교육을 변화시키려는 노력 역시 다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사람의 교사로서 자신의 수업을 변화시킴과 아울러서, 더 좋은 역사교과서와 교육과정, 평가 혁신을 비롯한 제도 정책적 문제 해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 역사교육은 잘못된 경우 대단히 개인과 사회를 함께 위험하게 할 수도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바로 이 때문에 역사교육 전반을 재구조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안이 다양하게 모색됐고, 이는 역사부정을 넘는 역사교육의 대안 수립에 기준점이 될 수도 있다. 유럽 평의회의 여러 권고안들이 참조할 만하고, 특히 2013년 9월9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파리다 샤히드의 보고 :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역사교과서)에 관한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 보고관의 보고서에 담긴 권고사항 등은 특별히 기억할 만하다. 2018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를 마무리하면서, 진상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도 참조할 만하다.


◦ 다음은 “2015교육과정 이후 역사교육을 위한 상상력-평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역사교육의 가능성[역사교육논집74. 2020. 6]”이란 주제로 내가 쓴 글 중 일부로, 2020년 현재 한국 역사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고, 역사교육정책과 교육과정 개정 방향에 대한 시무십조 형태의 제안서를 담았다.17) 새로운 역사교육과정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 많은 선생님들이 역사교육의 주체로서 다양한 대안을 제출하는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학교역사교육의 현주소


첫째, 많은 사람들이 학교 역사교육을 정체성 형성과 관련지어 정의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둘째, 학생들은 교실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역사 인식을 형성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셋째, 역사전쟁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서, 역사부정 현상이 횡행하게 됐다.

넷째,교과서가 민주화의 성과, 역사연구와 수업실천의 괄목할 변화를 담지못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섯째, ‘조작되지 않은 역사를 배울 권리’를 제창하는 학부모, 학생 활동이 활발해졌다



역사교육 정책과 교육과정 개정 방향에 대한 제안


제안1> 평화-민주주의 관점으로 역사/교육정책 수립과 추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제안2> 역사교육과정 개정을 서두르되, 교실 수업을 혁신할 수 있는 ‘정책들의 패키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제안3> 전문성과 대표성을 겸비한 연구진을 구성하고 집단지성을 조직하는 활동을 포함하여 변화를 향한 정책을 세운다.

제안4> 학생들의 역사 학습 실태 조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교육과정개정을 비롯한 역사교육 정책에 활용해야 한다.

제안5> 한국사와 세계사, 초중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상상해보자.

제안6> 단일한 국가 서사를 통한 국민 통합이란 관념을 넘어서자.

제안7> 위기의 세계사 교육, 입시 개혁과 통합 역사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제안8>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현대사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

제안9> 교실 수업 혹은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하나의 플랫폼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제안10> 교실 수업의 변화를 가로막는 평가 제도의 대혁신이 이루어져야한다



17) 다음 제안의 상세한 내용이 필요하신분은 https://blog.naver.com/kyh2u/222158767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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