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과 대처
: 역사부정과 마주한 역사교사들

특집 – 교실 속 역사부정(2/2) : ② 리서치&분석

>> 공부모임 ‘역사부정에 대응하는 역사교육’ 4모둠 (강화정, 맹수용, 문순창, 박상민, 안민영) 1)


1)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육연구소가 함께 꾸린 연구모임으로 최근 역사부정과 관련한 역사교육자의 대응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졌다. 1년 동안 역사부정의 개념과 정의, 한국근현대사 속 역사부정 논란 주제와 쟁점, 교실 속 역사부정 실태 등을 공부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역사교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이쓴 자료집을 제작 및 보급할 예정이다. 해당 자료집은 2021년 2월 중에 보급될 예정이다. 전체 자료집의 집필진 총원은 총 윤세병 외 20명이며 이 글은 자료집 중 ‘4부’에 해당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 집필진 : 강화정(부산교육정책연구소), 박상민(충북 주성고), 안민영(인천 북인천중), 맹수용(경기 의정부고), 문순창(경기 운산고)





Ⅰ. 교실 속 역사 부정/부인의 실태 분석


분명 무엇인가 꿈틀대고 있는 것 같다. ‘역사부정/부인’ 현상 말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역사부정’ 현상을 말하거나 동조하거나 혹은 그런 주장으로 인해 상처받거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체감적으로는 분명해 보인다. 최근래에 와서는 단순한 체감을 넘어 실감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한 교사의 표현을 빌리자면2) ‘역사부정의 원년으로 기록될 2019년’의 사건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역사부정 현상을 내밀하게 실감하는 곳이 바로 교실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 교사는 역사부정 현상의 가장 민감한 ‘대면자’다. 나아가 해당 사안에 적극 대응을 모색하고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실천가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글에서는 ‘교실 속의 역사부정 및 부인’의 현장을 분석하려고 한다. 그 분석 속에서 역사부정에 대한 교육적 대응의 실마리를 역사교사들과 시민들과 더불어 찾아보려고 한다.


2)김육훈, 「오늘 우리가 직면하게 된 역사 부정의 현실」, 자료집 <역사부정을 넘어서는 역사교육의 가능성(2020년 하반기 직무연수)>, 전국역사교사모임, 2020.

이 글에서는 2019년에 발생한 국회의원 김순례 등의 5.18 민주화 운동 폄훼, 인헌고 사태, 각종 유튜브 등에서 각종 역사부정 콘텐츠가 화제가 된 것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 글은 현장 역사교사들이 마주하고 경험한 ‘역사부정’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역사부정의 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 검토하는 과정을 담을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현직 역사교사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을 시행했으며 그것을 꼼꼼히 검토했음을 밝힌다. 해당 설문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 설문 기간 : 2020년 09월 09일 (수)~2020년 09월 18일 (금), 10일 간
◽ 설문대상 : 전국역사교사모임 전체 회원 대상
◽ 응답자 : 총 124명(초 15.%, 중 34.7%, 고 45.2%, 기타 5.6%)
◽ 설문방식 : 구글 설문지 활용, SMS 발송 통해 설문링크 전송
◽ 설문 구성 : 기본 질문(필수), 심화 질문(선택)으로 구성

표 - 역사부정 문제와 관련한 역사교사 대상 설문 요강



1.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의 실태

앞서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역사교사들의 인식, 대응 방안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을 시행하였다는 점을 밝혔다. 설문 문항은 그 성격에 따라 아래의 도표와 같이 정리하여 살펴볼 수 있다(구체적 문항은 뒤 <표 6>참고).


캡처.JPG [표 2] 역사교사 대상 설문의 질문문항(요약)과 성격에 따른 분류


이 중 교사의 인식에 대한 질문(문항2,3), 교사의 경험에 대한 질문(문항1,4,5), 역사부정에 대한 입장(문항 6,7)은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역사부정/부인’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 설문이었다.


(1)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 어느 정도인가?

캡처.JPG 그림1-설문 4.수업 혹은 학교 생활 중에서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과 만나셨던 경험이 있나?


캡처.JPG 그림2 (설문) 1.일제강점기 및 현대사 시대 관련 수업을 하는 중 수업내용과 관련하여 반박을 받아 당황하신 적이 있는가?


위 그래프는 역사교사들이 교실 속에서 역사부정/부인에 과연 어느 정도로 노출되고 경험했는지를 물어보는 문항이었다. <그림1>과 같은 설문 문항이 있음에도 <그림2>의 문항을 추가적으로 물은 것은 혹여나 ‘역사부정/부인’ 개념에 낯선 교사가 있을 것을 대비하여 해당 용어 없이 구체화된 상황을 전제로 묻기 위한 의도였다. <그림1>의 그래프를 보면 알수 있듯 역사부정을 경험했다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역사교사는 45.1%(41.9+3.2%)다. 그러나 <그림2>에서는 근현대사 수업에서 수업 내용과 관련된 반박/항의를 받았냐는 질문에는 27.4%가 ‘있다’고 답했다. <그림1>의 경우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닌 다른 교사와 학교에서의 사례를 알고 있는 것도 포함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림2>의 경우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림2>의 결과에 대해서는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존재한다. 현상적으로 역사 수업 중에 ‘역사부정/부인’의 발화나 관련 사안이 적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역사교사 ‘발행할 여지를 사전에 제거했을’ 가능성이다. 만약 역사 수업에서 논쟁적/민감적 주제를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역사부정/부인을 겪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교과서 속 단순 사실로 나열되거나 수업 때 거의 다루지 않다시피 하면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교사 자신이 해당 문제에 대해 의지나 인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역사 수업이 이러한 상황에 도전받고 있음을 방증(傍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부정/부인은 교실 속 역사교사로 하여금 상처받게 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강한 억압기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뒤의 경험 사례 분석에서 다루겠지만 ‘역사부정’ 현상과 근현대사 교육에서의 시비(편향성 제기, 정치적 시비 등)과 약간의 인식적 혼선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물론 그 두 가지는 다소 다른 지점도 있고 밀접하게 연결된 경우도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더 요구된다.

어쨌든 이 설문 결과는 더 이상 역사부정/부인이 교실 속에서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일탈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 사회의 현상과도 몹시 유사하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흔히 말해 ‘일베스럽다’라는 말로 표상되는 예외적인 일탈이었던 행위들이 2020년 오늘날에는 공공연히 언론 지상과 공적 영역을 넘나들며 표현되고 시도되고 있는 것이 ‘역사부정/부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행위/동조자가 다수를 점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파괴적인 효과와 부정적 위력을 공론장 속에서 발휘한다. 분명 교육 현장 속에서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2)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에 대한 역사교사의 인식

설문에서는 역사부정/부인에 대한 역사교사의 앎의 정도 및 인식, 입장 등에 대해 조사한 문항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항들이다.

캡처.JPG 그림4 - (설문) 2.역사부정이라는 용어 및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캡처.JPG 그림5 - (설문) 최근 '위안부' 피해자,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에 대한 모독,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소위 '역사부정 처벌법'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은?


<그림5>에 의하면 역사교사의 과반을 넘는 60.5%(21.8%+38.7%)가 역사부정/부인의 개념과 용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그림6>에서 보듯 최근 논의되고 있는 ‘역사부정 처벌법’에 대해서도 87.1%(47.6%+39.5%)의 역사교사들이 그 취지에 대체로 찬성하고 논의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 부작용에 대해 염려하고 법적 처벌이 아닌 교육적 대안을 고민하는 맥락에서 ‘유보’를 표한 교사들이 39.5%라는 점도 눈에 띈다. 그만큼 역사교사들은 수업 현장과 아이들을 통해 역사부정/부인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당사자로 스스로를 여기고 있음도 살펴볼 수 있다.


2. 사례와 분류 :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의 구체적 양태

설문을 통해 수합한 가장 중요한 문항은 ‘역사교사들이 실제로 겪은 역사부정 경험 사례’였다. 자유기술된 이 문항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총 3가지 기준을 선정하였다. 그것은 아래와 같다.

캡처.JPG


3가지 기준에 따라 124건의 역사부정 경험사례들은 각각에 기준에 맞게 재분류되고 분석되었다. 이렇게 분석 기준을 나눈 이유는 각각의 기준에 따라 역사부정의 다양한 층위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를 바탕으로 각 기준에 맞게 역사부정 경험의 유형을 분류하여 통계로 정리한 표이다. 각 분류 기준에 맞는 구체적 사례도 1개씩 제시하였다.


1.JPG
2.JPG [표 3]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을 겪은 교사들의 사례 경험 분류 및 답변 통계


(1) ‘발화주체’에 따른 분류의 특징과 의미

우선, 발화주체를 분석의 틀로 선정하고 크게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관리자 포함)를 소분류 기준으로 삼아 사례를 나누어 분석해봤다. 이러한 분류의 이유는 교사들이 역사부정을 마주할 때 당황함과 불쾌함을 넘어 ‘두려움’ 내지는 방어적 위축을 유발하는 경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각 학생, 동료교사(관리자 포함), 학부모 등 각 발화 주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나타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역사교사의 수업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동료교사, 특히 관리자(교장/교감, 교육당국)의 가장 큰 권위적 억압으로서 교사의 자율성을 직접적으로 제약한다. 학부모의 ‘민원’은 보다 세련되고 체계적으로 교사를 압박하며 앞서 말한 ‘관리자’의 통제 혹은 교사 자기검열의 강력한 원인이 된다.

여기서 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학생’이 발화주체일 경우다. 이는 58.6%로 이 기준에 따른 분류결과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업 중에 ‘학생’이 역사부정과 연계된 문제제기를 할때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닌 그 자체로 역사교사에게 당황스러움과 위축감을 들게 만드는 하나의 현상이 된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지점은 두텁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다른 분류기준을 통해 검토하겠지만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모든 경우가 명백한 의미의 역사부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다’라는 것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타당하지 않은가’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접근되어야 한다. 학생이 명백한 역사부정의 논거를 들고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와 사회적 논쟁 중인 현안이나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상황은 역사교사로 하여금 각각 다른 접근을 고민하게 만들며 이는 교육적 차원에서 중요한 모색의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역사부정의 발화주체 중 가장 높은 비율(58.6%)이 학생이라는 결과는 역사교사들에게 ‘논쟁적이고 민감한 역사적 주제를 다룬 수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라는 소중한 질문을 던진다.

(2) ‘역사부정의 내용’에 따른 분류의 특징과 의미

역사교사들의 경험 속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그 내용을 따져보았을 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명백한 역사부정 △해석의 다양성이 바로 그것이다. 분석 결과 명백한 의미의 역사부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가 33.0%의 비중을 차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원하고 돈을 벌기 위해 종군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북한군의 소행이다“와 같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극우 단체의 논거를 따라가는 발화들이 등장하는 경험담이다.

33.0%라는 수치를 두고 통계학적으로 의미있는 경향치를 부여하여 교실 속 역사부정의 양상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수치와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 또한 사안 하나 하나가 가지는 중대성이 깊고 무겁다는 점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오늘날의 실태를 대변한다 하겠다. 1인 미디어의 등장, SNS 등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라진 미디어 환경은 학생들이 역사부정 논리를 보다 쉽게 접하는데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2/3에 근접하는 사례가 ’해석의 다양성‘(67.0%)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교사가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해 내린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나 ’공격‘(교사 입장에서 그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만큼 해당 주제가 가진 논쟁성, 민감성이 크다는 의미로도 생각된다. 교육적 함의의 눈으로 짚어볼 때 이는 거꾸로 이런 주제에 대해 역사교사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가능해진다. 교사의 수업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기고 넘어가기엔 역사란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어려움과 당황스러움에도 그러한 문제제기를 수업의 동력으로 나아가서는 그 현상 자체를 ’역사하기‘의 대상으로 보고 수업으로 구현해야 하는 숙제가 역사 교사들에게 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석의 다양성‘에 분류가 되는 사례 주에서는 별다른 혹은 타당한 근거 없이 교사에게 편향성이라는 비판의 날을 세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교사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밖에 없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울러 근현대사 교육에 있어 교사의 자율권 침해를 시도하는 사례들과 역사부정 시도는 엄밀하게 다르며 그 처방과 대응도 달라야 한다는 점에서 역사교사들에게 또 다른 고민을 남긴다.


3) ‘역사부정의 방식’에 따른 분류의 특징과 의미

역사부정의 논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기준으로도 교사들의 경험담을 분류하고 분석해볼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두 번째 기준이었던 ‘내용’과 비슷하게 분류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식’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역사부정 논리의 전개 양상과 층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방식’에 따라 나눈 사례들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편향성 시비 제기 △역사 부정 주장 △민감한 주제 회피/금지 △기타(혐오표현 등)이 그것이다. 이는 광의의 역사부정 논리의 다양한 양상의 분류이기도 하면서도 각각이 상호적으로 언제든지 연동될 수 있는 역사부정의 층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최근 탈진실(Post-Truth), 역사부정과 부인과 관련된 많은 연구에서 그 양상을 각자의 언어와 이론으로 정리하는데 해당 연구팀은 각 논의들을 종합해 ‘문자적 부인’, ‘해석적 부인’, ‘함축적 부인’으로 정리하였고 3) 그 속성들을 녹여내어 4가지 분류기준안에 담았다.

가장 큰 비중으로 나타난 것은 ‘편향성 시비 제기’(55.4%)였다. 과반 이상으로 나타난 이 유형은 앞서 분류기준 ‘내용’>‘해석의 다양성’의 분류와도 중복되는 속성으로 여길 수 있는 지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항목에 해당하는 사례들은 단지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층적으로 접근하고 다원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북평화정책이 편향적이고 친북적인 정책’이라고 문제제기하거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학살이 불가피한 것인데 왜 그걸 부정적으로 가르치는가’와 같은 항의와 같은 것은 좀 다르게 볼 지점이 있다. 우리 사회가 합의한 의제에 대해 파당적인 공격을 감행한다는지, 전쟁에 대한 평화적 접근을 편향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인권-평화-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부정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볼때도 이러한 도전은 쉬이 그냥 넘기기 어려운 것이며 이러한 논리들이 명백한 역사부정의 주장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볼 때 이는 역사교사의 섬세한 대처를 더욱 필요로 한다.

이 밖에도 극우의 논리를 답습하는 ‘역사부정 주장’이 응답의 1/4이나 해당한다는 것, 주로 관리자와 학부모에게서 나타나는 ‘민감한 주제의 금지/회피’와 같은 시도도 전형적인 역사부정과 부인의 사례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사례들이다.


3)강화정, 「역사교사의 교실 속 역사부정 접근법」, 발표자료집 <역사부정 현상과 역사교육에서의 대응 방안>, 효원사학회, 2020.

강화정은 김보명의 선행 연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역사부정의 유형을 3가지로 정리하였다.

‧ 문자적 부인 – 엄연한 사실을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해석적 부인 –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 함축적 부인 – 어떤 사건에 따라오는 심리적, 정치적, 도덕적 함의를 부정하거나 축소한다



캡처.JPG 표5 - 역사교사 대상 설문지 문항(전문)


Ⅱ. 역사교사가 역사부정/부인에 대처하는 자세


역사교사들은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의 상황에서 실제 어떻게 대처하고자 할까? 설문에서는 가장 마지막 4개의 문항을 선택형/자유기술형으로 물어보면서 이 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였다. 크게 4개의 주제(△일본군 ‘위안부’ △한국전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베트남 전쟁)에 대해 가상 상황을 설정하고(공교롭게도 역사 교사들의 경험담을 묻는 질문에서 유사한 사례가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 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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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들은 흔히 역사교사들이 현장 속에서 겪어나 사전에 우려 하는 경우들이다. 물론 각 상황은 명백한 의미의 역사부정/부인에서부터 함축적/해석적 부인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다양하다. 논쟁적이고 민감한 주제의 역사수업에 있어 각 상황에 맞는 대처와 분석은 필수적으로 요구받을 수 밖에 없다. 이에 공감한 설문에 참여한 역사교사들은 각자의 열의와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하였을지에 대해 꼼꼼히 답을 보내왔다. 이제부터 역사교사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역사부정/부인에 대한 교육적 대응을 함께 모색해 보도록 한다.


1. 일본군 ‘위안부’ 역사부정 발화에 대한 교사의 반응 분석

(1) 질문

1) 질문 분석하기


선생님! 그런데 제가 유튜브에서 봤는데요., 일본군 '위안부'로 간 여성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가기도 했고요. 게다가 식민지 조선들이 '위안부' 여성들을 보내는데 도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처럼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배운 것과 다른 느낌이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질문을 한 학생은 유튜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부정의 핵심 논리를 접했고 사실 여부를 교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핵심논리란 일본군 ‘위안부’가 ① (전쟁터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 ② 자발적으로 갔다 ③ 전쟁터로 동원되는데 식민지 조선인들의 ‘협조’가 있었다 ④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다는 발언이 포함되어 있다.


2) 가상의 질문

-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질문도 가능하다.


○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터로 데려간 사람은 일본군이 아닌 ‘매춘업자’라고 들었어요.(해석적 부인)
○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기생제, 일제강점기 ‘공창제’에서 비롯된 거 아닌가요? (해석적 부인)
○ 일본군‘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고수익, 고노동, 고위험 매춘부였다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해석적 부인)
○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1963년 한일협정에서 보상이 이뤄지고 이미 해결되었는데 왜 자꾸 사과와 보상을 주장하는 거죠? (함축적 부인)
○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방 후 50여년이 지난 1991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함축적 부인)

(2)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대응 유형

1) 역사부정 논리의 인정 여부 (41명 답변 제출)

캡처.JPG 그림 -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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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해석하기>

1. 위 표에서 ‘교사의 수용적 태도’란 학생의 발언에 교사가 즉각적으로 반박하며 거부하지 않고 다른 방식의 접근법을 제안하는 등 온건한 태도를 보이며 학생의 발언(내용이 아닌 학생의 발언 자체)를 포용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2.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은 ‘명백한 역사부정’이란 인식이 강한 탓에 교사들은 ‘수용적 태도’를 보이기 보다 학생 발언을 반박/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 경우가 다른 역사부정 대응 사례보다 훨씬 더 많았다.


3) 응답 교사들의 답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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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보기>

1.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반박의 근거로 삼는 경우, ‘증언’의 불완전성은 부정주의자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교사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


2. 교사의 발언에서 〔증언/증거〕와 〔팩트/사실〕은 다르게 분류・분석하였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교사간 역사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된다. 다만, ‘역사적 사실’ 조차 자료와 증언에 대한 비판과 논쟁을 거쳐 ‘선별적’으로 선택된 결과 역사에 기술된다. ‘팩트/사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교사의 경우, 이 같은 역사화의 과정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사실=진실’로 인식한 듯 보인다.



2. 한국전쟁에 대한 냉전적 기억 발화에 대한 교사의 반응 분석


(1) 질문

1) 질문 분석하기


“선생님, 왜 선생님 수업에서는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서 주로 배우고 글쓰기 활동을 했나요? 맥아더 장군과 우리 국군이 멋지게 성공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이야기라던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학도병들의 이야기라거나, 에티오피아에서 파병되어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강뉴 부대' 이야기 같은 건 강조해서 배우지 않는 거죠? 선생님께서 특정 관점에 편향된 수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 질문을 한 학생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전쟁 이야기를 접하였고, 한국전쟁 수업에서 민간인 학살을 강조하여 다룬 교사의 수업 의도에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학생의 문제 제기는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교사는 수업을 통해 전쟁을 피해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을 성찰하는 관점에서 기억해볼 것을 제안한 반면, 학생은 전쟁 영웅을 찬미하거나 승전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쟁을 ‘냉전적 인식’을 바탕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학생은 교사의 수업을 ‘편향적’이라 표현하며,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외면 내지는 회피하고자 한다. 이 경우 전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의 역사와 피해 사실을 외면하거나 부인할 가능성을 낳는다.


2) 가상의 질문

- 한국전쟁에 대한 냉전적 인식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질문들은 보도연맹 사건, 미군에 의한 폭격, 마을에서 벌어진 좌우익 간의 학살, 국군과 인민군에 의한 학살에서 발생한 민간인의 죽음을 부인하는 논리들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전쟁기 학살당한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문자적 부인)
○ 국군이 군사작전 과정에서 적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죽였다면, ‘학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요? 안타깝게 죽은 것이니 ‘희생’이 중립적인 표현이지 않을까요? (해석적 부인)
○ (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루는 수업에서) 북한 인민군도 민간인을 많이 학살하지 않았나요? 왜 우리 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강조하시는 건가요? (함축적 부인)
○ 결국 북한군이 남침하지 않았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들도 없지 않았을까요? (함축적 부인)


(2)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대응 유형

1) 냉전적 인식 허용 여부 (44명 답변 제출)

캡처.JPG 그림 -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태도

2)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태도와 생각

- 수용적 태도: 4명

- 거부(반박) : 32명

- 답변 유보 : 3명/ - 기타 :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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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해석하기>

1. 위 표에서 ‘허용적 태도’는 두 가지의 대응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학생의 발언에 교사가 동의하며 냉전적 인식에 공감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냉전적 인식을 허용하되, 평화 지향적 접근방식을 제안하는 등 온건한 태도를 보인 경우이다. 이 때 교사는 학생의 발언(내용이 아닌 학생의 발언 자체)를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2. 대부분의 교사는 전쟁사 수업의 의도와 목적을 평화 지향적 가치에 두고 있다. 즉, 대결과 적대를 지향하는 냉전적 인식을 극복하고,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폭력을 성찰하며,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담은 수업을 지향한다. 이러한 교사들이 냉전적 인식을 따르는 학생의 질문을 마주했을 때, ‘어떤 방식의 호소로 학생을 설득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학생에게 응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많은 교사들이 학생의 문제 제기를 ‘전적으로 허용’(3명)하거나 ‘전적으로 거부’(3명)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교사들이 ‘한국전쟁을 어떤 기억으로 만들어갈 것인가’가 여전히 민감하고 논쟁적인 질문임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학생들과 대화를 모색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다수의 답변은 ‘냉전적 인식을 거부하되, 대화의 여지를 두는’(33명) 접근방식이었다.



3) 응답 교사들의 답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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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보기>

1. ‘전쟁사 학습의 내재적 목적 논거’, ‘교육과정 재구성 논거’는 교사의 평화 지향적 수업 목적을 학생들에게 설득하는 데 활용된다. 이때 학생들이 교사의 설명을 듣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러 어려운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학생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누구를,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현재까지도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다. 다만, 현재까지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냉전적 인식을 바탕으로 서사를 구성해왔고, 그 결과 전쟁의 피해자, 민간인들의 죽음은 역사 수업에서 다루기 쉽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며 다각적인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3. 5‧18 민주화운동 역사 부정 발화에 대한 교사의 반응 분석


(1) 질문

1) 질문 분석하기



나와 짝꿍인 역사 교사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쟁점을 균형감 있게 가르치자고 하면서, 역사 부정의 주장을 수업 내용 속에 포함해 가르치자고 한다면(5‧18 '폭동'과 '민주화 운동'이라는 2개의 관점을 균형 있게 가르치자고 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실 것 같나요?


☞ 이 상황은 동료 교사가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 균형 있게 가르치려면 양쪽 견해를 다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면이다. 해당 교사는 학문적 합의가 이루어진 보편적 견해와 역사 부정의 논리에 등가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사례는 다음 두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1) 5‧18 역사 부정에 대해 어떤 논리로 대응할 것인가?, 2) 역사 부정을 다루는 교육적 방식은 무엇인가?


2) 가상의 질문

-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 5‧18은 간첩‧불순분자와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하여 시민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 아닌가요?(함축적 부인)
○ 시민들이 먼저 발포해 계엄군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하던데요? (문자적‧함축적 부인)
○ 헬기 사격은 없었다던데요? (문자적 부인)
○ 5‧18 유공자 5,800명 중에 3,000명이 가짜로 판명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문자적 부인)
○ 5‧18 유공자의 자녀들이 공무원 시험에서 5~10%의 가산점을 받는 금수저라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자적 부인)


(2)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대응 유형

1) 역사 부정 논리의 인정 여부 (44명 답변 제출(중복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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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 발언에 대한 교사의 태도

- 수용적 태도: 5명

- 거부 : 37명

- 기타 :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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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해석하기>

1. 수용적 태도를 보인 답변

∙ ‘수용’ 입장을 보인 응답자 5명 중 4명은 역사 부정 논리를 인정해서라기보다는 ‘수업을 통해 역사 부정의 사례를 보여주고 학생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답하였다.

☞ 토론식 수업을 설계할 경우 역사 부정에 등가성을 부여하는 디베이트식 수업 방식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아래 3)의 ‘교수학습 방법 논거’ 답변 사례 참조)


2. 거부 입장을 보인 답변

∙ 거부 입장을 단호히 전달하겠다는 응답과 거부 의사 전달하면서도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응답으로 나뉜다. 그 중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응답은 1) 자료를 제공하며 대화, 혹은, 함께 공부할 것을 제안, 2) 질문 제기 및 검증・토론, 3) 역사 공부의 자세와 방법 계몽, 4) 역사 부정의 실체를 다룰 수 있는 대안적 수업 방안 협의로 구분할 수 있다.

∙ 한편, 상대 교사가 거부 의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의 대처 방안까지 답변한 경우도 있다.

- "단순히 수업에서 진행이나 발언은 각자 알아서 해도 되는 영역이지만 학습지나 출제는 안 된다고 한다."

- "자료 제시를 통해 토론·검증하되, 합의가 안 되면 각자 수업한다.“


3) 응답 교사들의 답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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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보기>

○ 교육과정 논거 중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기에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논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교사는 교육과정의 범위 안에서 교과서 활용 범위와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주장은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교사 스스로 제한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2. ‘민감한 사안’의 교육적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교실 밖에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견해들을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와 관련지어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4.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4) 발화에 대한 교사의 반응 분석


4)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교과서에 직접 서술된 것은 2007개정 교육과정의 「한국사」 교과서부터다.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는 ‘민간인 학살’이 존재하였음을 서술하였다. 이명박 집권기 검인정 교과서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관련 서술이 없거나(비상교육, 지학사의 「한국사」교과서) ‘민간인 희생’으로 해당 사건을 표현하였다.(동아, 천재, 미래엔 「한국사」교과서) 금성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일부 베트남인에게 피해’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 교과서의 편향성을 공격하며 ‘역사전쟁’의 불씨를 키운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펴낸 <한국 근현대사>도 ‘한국군이 베트남인을 학살’했음을 서술했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2015 교육과정의 「한국사」 교과서 역시 ‘베트남 민간인 희생(문제)’이 더 주된 표현이나 일부 교과서에서는 피해 책임에 대한 언급(해냄에듀의 「한국사」교과서)이 존재하기도 한다. ‘희생’이라는 표현은 가해의 주체와 피해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1) 질문

1) 질문 분석하기


학생 : 선생님.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민간인을 죽였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당시에 참전하신 군인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하는 것은 아닌가요? 베트콩이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공격한 사례도 있다고 들었어요. 참전하신 군인분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안타깝고 불가피한 희생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요?


☞ 학생이 교사에게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이 사안이 실제 발생했다는 것을 전제로, 전쟁 상황 및 베트남전쟁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가치 평가해야 하지 않는가를 묻고 있다. ⓵당시 적과 민간인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베트남전쟁의 특수성), ⓶베트남전 참전군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행위 주체에 대한 고려)가 주된 내용이다.


2) 가상의 질문

-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을 부인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어요. (문자적 부인)
○참전 군인들이 죽인 것은 민간인이 아니라 베트콩이었어요. (해석적 부인)
○전쟁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 아닌가요.(함축적 부인)
○군인이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함축적 부인)
○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나 베트콩의 자국민 학살은 문제 삼지 않는 건가요.(함축적 부인)


(2)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대응 유형

1) 부인론의 인정 여부

(48명 답변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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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생 발언에 대한 교사의 태도와 생각

- 수용적 태도: 3명

- 거부(반박) : 42명

- 답변 유보 : 2명

- 기타 :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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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해석하기>

1. 수용적 태도를 보인 답변

∙ 우선 학생의 문제제기에 대해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긍정 반응을 했다. 그러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토론을 통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때 ‘민간인 학살’의 역사적 근거를 조사하는 방식보다는 전쟁과 평화, 인권 등의 가치를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 소수 의견으로 역사적 사건은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여 등가성을 갖고 토론 주제로 설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2. 거부(반박) 입장을 보인 답변

∙ 다수가 거부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거부 의사를 전달하면서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응답보다는 거부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겠다는 응답률이 다소 높았다.

∙ 1) 자료 제공하면서 대화를 하겠다는 경우, 베트남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겠다는 답변뿐 아니라 우리가 피해자인 경우의 사건(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일제강점기 피해 사실) 등을 소개하겠다는 내용도 나타났다. 2) 인권과 윤리적 측면에서 문답법이나 발문을 통해 학습자 스스로 깨닫게 하겠다는 접근이 있었다. 3) 베트남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보자는 제안이 가장 많았다.

∙ 학생의 질문에 대해 교사들의 단호한 답변이 많았으며 ‘역지사지’의 태도로 접근하라는 반응이 다수를 이루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본고에서 다뤄지는 5·18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달리, 우리가 사건 관련 피해자가 아닌 ‘반대’의 입장에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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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 보기>

1. 교사들의 답변이 민간인 학살의 구체적 사례 제시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관련한 가치와 태도적 측면의 답변이 다수였다. 이는 가상의 질문이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발생했다면”이라는 조건으로 설정된 것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베트남 참전 관련 단체의 경우 “‘민간인 학살’을 하지 않았다” 또는 “전투 투입보다는 구호와 지원 사업을 해서 베트남인들을 도왔다”고 주장하는 바, 교사들이 교실에서도 재현될 이런 주장에 대해,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논리 삼아 대처할 필요도 있다.


2.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베트콩과 민간인의 구분이 힘든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념과 사상이 다른 상대 세력의 생명에 대해서는 경시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논리는 4·3항쟁이나 한국전쟁 시기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베트남 전쟁 참전의 구조적 모순을 먼저 짚는 것이 필요하다.



Ⅲ.맺음말: 용기있는 직면과 교육적 대응을 제안하며


앞서 다룬 설문에 대한 분석 결과를 종합해본다면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은 역사교사들에게 깊은 교육적 함의를 남긴다. 그것은 ‘논쟁적이고 민감한 역사수업의 소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은 해결과 대증적 대처로 풀어내야할 일탈행위만은 아니다. 이 자체를 교육적 소재와 기회로 삼아 역사교육의 눈과 마음으로 풀어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더욱더 엄밀한 역사교사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래 도표와 같은 대응 프로세스가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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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당 도표는 교사 박상민(충북 청주 주성고)이 본 원고를 위한 해당 팀의 공부모임에서 정리한 것이다. 최근 논쟁수업 등에 대한 활발한 국내외의 논의에서 나온 문제제기, 이론을 녹여 본 역사수업 중 발생한 역사부정/부인 현상에 관련한 대처 방안으로 정리해본 것이다.



위 도표에서 논의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논쟁적이고 민감한 소재의 역사수업’의 교육적 대응 방안

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교사 수업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과 인신모독 혹은 이를 위한 구체적 행동(수업의 녹취 및 무단 배포)등은 법적 대응 등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일례로 최근 인헌고 사태(2019)에서 벌어진 참혹한 상황들은 상당 부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수업 내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안들은 그렇게 해결할 수 없으며 바람직한 방법도 아닐 것이다.

일부의 경우, 교사가 학생에게 ‘너 일베니?’라는 말로서 해당 학생을 논의에서 일탈적 행위를 한 자로 배제하려고 하거나 도덕적 잣대로 단적인 규정을 내려버리는 식의 대응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대응은 해당 학생으로 하여금 교사의 수직적 강요를 통한 일종의 억압기제를 만듦으로써 되려 그의 언행에 확신과 방어적인 태도를 가져다주게 될지 모른다. 그 수업 공간에 있던 학생들에게도 이견을 교육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교사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이라는 현상을 교육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역사교사들은 용기와 담대한 태도, 해당 사안의 논리구조를 내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면밀함 등 큰 숙제가 내려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부정/부인에 가까운 논쟁적이고 민감한 사례를 논쟁 수업의 주제로 다룰만한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위 도표에서는 크게 두 가지 구분 기준을 제시했다. 공동체에서 합의된 질문과 문제제기와 논쟁이 더 가능한 열린 질문이냐의 기준이다. 어려운 지점의 이 구분 기준이 구별하기가 마냥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구체적 사례에 적용해 보면서 역사교사들이 명확한 판단 기준을 내리기 위해 깊은 고민과 탐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찌 보면 그 과정을 거치고 그 지점들을 있는 그대로 아이들과 나누는 여정 자체가 교육적 접근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교실 속 역사부정/부인’은 오늘날 전 세계적인 탈진실(Post-Truth),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극우적 역사인식의 확대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일어난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부당한 정치적 공격에서 교사를 보호하고 수업에 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교실이 논쟁성의 무균실이 아니라면 이러한 문제를 당당히 마주할 용기를 바탕으로 교육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교사에게는 교실 속에서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 ‘바로 지금, 오늘의 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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