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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식민지 시대 경복궁

사는 이야기 - 2020 하루답사 후기(서울)

>>이경주(경기 별내고) 


인류 역사의 한 장면으로 강렬하게 기억될 2020년에는 역사교사들에게 하루의 답사도 참으로 허락되기 힘겨웠다. 봄부터 기다리던 하루 답사는 여름으로 미뤄지고 다시 가을의 끝자락까지 왔다. 처음에는 날짜를 확정하지 못하고 과연 답사가 가능할까 걱정하다가 8월 31일로  확정을 했는데 광복절 집회 여파로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시작되면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태우던 하루 답사는 드디어 10월 31일에 진행되었고,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린 답사가 주는 선물로 단풍이 곱게 물든 경복궁을 둘러볼 수 있었다.


  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답사 일정은 오전에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특별전을 보고 오후에 경복궁을 식민지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사실 코로나 유행이라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외출을 하지 못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답사보다 그냥 외출이라는 사실에 더 신이 났던 것도 같다. 처음엔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잘 알아보지 못하여 그렇게 머뭇머뭇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방역으로 인해 입장부터 혼란스러웠다. 10월 31일은 그래도 방역 단계가 많이 내려가서 단체입장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박물관이고 국가기관이라 그런지 5명씩 한 모둠으로 모바일 입장권을 발매한 뒤 발열체크를 하고 입장했다.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6‧25전쟁 70주년 특별전 「녹슨 철망을 거두고」, 다른 팀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해설사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먼저 6‧25전쟁 70주년 특별전을 관람했는데, 기존의 전시와 다른 점은 전쟁이 덮친 일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역사교사라고 해서 모든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익숙한 장면이나 역사적 상황마다 떠오르는 이미지, 문구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서는 완전히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특별전의 포스터>

  전쟁이 덮친 일상,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이라고 하는데 냉전과 열전은 가족과 함께 일상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말 그대로 파도처럼 덮쳐버렸다.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겠지만 사실 오후에 경복궁 답사가 기다리고 있어 걸음을 조금 재촉해야 했다. 그래도 몇 가지 인상적인 전시물들을 눈에 담고 왔다. 치과 치료를 받다가 전쟁을 맞이한 사람,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고 가족과 잠시 이별했다가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사람들, 다급해 보이는 피난 행렬들, 이 와중에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 가득한 편지, 전쟁이 할퀸 상처로 벌어진 학살과 보복전들, 정부가 사람들에게 안내한 피난로 지도, 전쟁 속에서도 배우겠다고 세워진 천막 학교와 교과서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민낯을 드러내며 고요하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당시에는 연말쯤 조카들과 함께, 혹은 역사 자율 동아리 학생들과 같이 와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올해 안에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5‧18 민주화 운동 특별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40주년을 맞이한 5‧18은 여전히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지은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지 않는 ‘한 사람’이 있어 여전히 뜨거웠다. (답사를 마친 1달 뒤 ‘그 사람’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이 특별전이 다시 떠올랐다.) 차분하게 진행된 관람이었지만 전시된 모든 것들이 가슴을 뜨겁게, 머리를 차갑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전시 기획을 위해 한 수많은 고민들이 느껴졌다. 5‧18 민주화 운동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언론의 존재는 이 전시에서도 그 존재감이 뚜렷했다. 정부의 보도지침과 만신창이가 된 실제 신문지면들을 보면서 언젠가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진다면, 역시 언론에 대한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언론은 5‧18 민주화 운동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유품, 실탄 조준 사격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흔적들, 당시 실제 시민들의 결의문 등등 사진으로만 접했던 중요한 역사적 사료들을 직접 볼 수 있었기에 전시가 주는 충격은 매우 컸다. 특히 당시 상황을 기록한 다양한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기록물들이 매우 인상 깊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은 다 드러나지 않았고 5‧18 민주화 운동이 끝난 직후 사람들이 받은 고통과 삶과 상처가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가 박물관을 방문한 날이 마지막 전시라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조금 더 빨리 방문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특별전 관람을 본 뒤, 이번에는 옥외정원으로 올라갔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바로 옆 의정부터가 발굴 중이었고, 단풍에 물든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오는, 말 그대로 관람 명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곧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달라진 경복궁을 살펴볼 참이기에 가을의 경복궁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면서도, 한 켠이 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모인 곳은 세종대왕 상 앞이었다. 여전히 산발적 시위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해치의 위치 논쟁으로 유쾌하게 오후 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답사 이후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터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 국권을 강탈당한 이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경복궁이 서울의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 이런저런 수난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오늘 답사 안내를 담당하신 박성기 선생님의 방대한 자료와 열정, 이인석 선생님의 엄청난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오후 답사였다. 박성기 선생님은 미리 배포해 주신 자료를 토대로 과거 경복궁의 모습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재정 확보를 목적으로 전각을 매각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는데 생각해 보니 지난 일본 답사에서 경복궁 전각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답사 안내를 해 주던 일본 선생님께서 그 전각이 눈에 익지 않냐고 우리에게 물었던 기억이 났고, 당시에도 이인석 선생님이 함께 있어서 경복궁 전각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적이 있었다. 박성기 선생님의 설명은 단순히 일제 강점기만이 아니라 부침이 많았던 우리 현대사에서도 계속되었다. 특히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방 이후에도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한동안 남아 있었던 때의 다양한 사진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총독부 건물 폭파를 결정했지만, 지금이라면 그와 다른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을까라는 의견에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엔 마음에 분노가 더 컸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했다면 위치를 이전시킨 후에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보존 자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박 선생님의 열정 넘치는 해설을 오래 서서 듣던 우리는 아픈 다리를 잠시 쉬고 본격적으로 이인석 선생님의 안내와 함께 경복궁을 둘러보았다. 생각해 보니 제대로 경복궁 답사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이인석 선생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꽤 노력했다. 선생님께서는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과 교태전, 자경전 일원을 둘러보며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을 차분차분 되짚어 주셨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각종 석물이나 설치물들이 창고에 방치되거나 이상한 장소에 가 있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자경전 앞 석물을 살펴보라고 하셨다.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상황을 정말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인석 선생님과 3일 정도 날을 잡아 다시 답사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경회루는 역시 꽃 피는 봄에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까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공사 중인 향원정을 지나 건청궁으로 갔다. 가을의 경복궁이 너무 아름답지만 건청궁에 들어서면서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명성황후라는 인물에게 가지는 복잡한 심사와 더불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본의 만행까지 혼자만의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역시 역사의 현장에서 학생들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2020년이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아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전국역사교사 모임과 한일교류모임이 있기에 그래도 나태해지지 않고 버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가 가을날의 하늘처럼 맑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진 뒷풀이에서 한껏 흥에 오른 우리는 다시 한번 일제 강점기와 관련한 서울 답사를 기획했다. 그 답사를 함께하는 날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관계자 코멘터리 – 이은안(집행부 답사부장, 기획 및 추진) 

이번 하루답사는 ‘110년전 그날 이후’라는 제목으로 한일역사교육교류모임(안내강사 : 박성기, 이인석 선생님)에서 준비해주시면서 8월29일에 기획되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부득이하게 미뤄져 10월 31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원래는 시리즈로 8월에 경복궁, 10월경 용산지역 답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변화된 경복궁과 용산의 모습을 살펴보려 하였으나, 올해는 경복궁 답사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경복궁 바로 앞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5.18민주화운동 40년을 맞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과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녹슨 철망을 거두고’라는 좋은 기획전시를 마련하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박물관이 문을 닫는 날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우리 선생님들이 함께 관람하는 것으로 달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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