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책이야기 - 만나書 : <무명의말들> '만나' 후지이 다케시를 읽다'
만나書 1 – 『무명의 말들』의 저자 ‘후지이 다케시’
- 만난 책 : 『무명의 말들』 (후지이 다케시, 포도밭출판사)
- 읽은 저자 : 후지이 다케시
후지이 다케시의 <무명의 말들>. 참 무서운 책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책이다. 저자가 한국사회에 대해 내어놓은 한 문장, 한 문장은 곧 자기고백이면서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시간을 보내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는다. 후지이 다케시, 저자가 던진 질문에 나 자신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내가 알아왔던 시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후지이 다케시라는 분을 잘 모른다. 다만 내 마음 한 구석에 닮고 싶은 ‘선생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버린 자신을 가해자로 놓는 자기비판에서 비롯된 생각들, 현재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옆에 서는 따뜻함,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시하는 민주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통찰. 어느새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당사자’인가? 그리고 ‘어떤 당사자’가 될 것인가? 저자가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2014년부터 당사자가 되지 않았던 나의 무수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보다 나의 침묵이 가해임을 알고 있었으나 한 동안 외면하고 자기합리화 했던 마음 깊숙한 곳의 나 자신을 발견한다.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글의 저자,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을 만나러 오사카에 다녀왔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A. 서류 스캔을 하는 단순한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여태까지 참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반 회사를 다니면 퇴근하고 편하게 쉬면서 생활하게 되는데, 이전까지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누군가를 보면 내 자신을 항상 쉬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하하)
Q. 책 <무명의 말들>은 2014년부터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엮은 책이었다. 일본 출신의 역사학자가 제3자적 시선에서 한국사회를 고민했다는 점에 독자들도 많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칼럼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
A. 실은 한겨레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한겨레에서 창간 30주년을 맞이해 신문사를 돌아보는 행사를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덩달아 칼럼을 기고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특히 2014년부터 무거운 일들이 참 많았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서 써야만 하는 일들이 계속 터졌다. 신문에 실리는 글은 시의성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그 소재를 미리 준비할 수 없다. 그래서 마감 직전까지 기다리곤 했다. ‘무슨 문제없나?’라며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뭘 써야하지?’라는 생각도 실은 많이 했다. 칼럼은 월요일자에 실리는 것이라 일요일이 마감이었다. 한 번은 일요일 점심때에도 뭐를 써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내에게 “신문사에 내가 쓰러졌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하기도.(하하)
Q. 대학 때부터 재일조선인 문제와 관련된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다. 소수자들의 문제, 미처 시선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감각적으로 이야기한 부분들이 참 좋았다.
A. 나는 사실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접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그 당시는 우토로 마을 문제가 터진 직후였다. 내가 90년에 학교에 들어갔는데, 소송이 89년에 시작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우토로 마을에 가보았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때 한국이름을 일본 발음으로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시야에 들어왔는데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당시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우연이라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고등학교 때부터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1970년대 큐슈 쪽의 한 고등학교 교사들이 자신들이 만든 부교재로 교육을 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 문제로 소송이 발생했는데, 교사들의 완전한 패소로 끝난 것이 1989년이었다. 그것을 보고 매우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Q. 역사학자로서 역사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주어 감사하다. 박근혜 정부 시기의 국정 교과서 사태에 대한 이야기도 칼럼으로 쓰셨는데?
A. 역사 연구만 하는 것은 의미가 덜하다고 본다. 결국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들과 교육을 한다면, 해보면 좋은 것,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앉아 있는 의자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처럼 내 주위의 일상을 둘러보는 일이다. 이 하나를 분석하는 것은 어렵고, 이를 위해 여러 어려움이 닥치게 될 테지만, (이를 통해) 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책상을 만든 회사가 어디에 있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책상을 구성하는 나무는 어디서 왔는지, 책상의 원자재와 완성품과 관련된 국가·사람·이해관계는 어떤 것들인지를 알아보는 거다. 이러한 역사공부는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주위를 상대화시켜서 바라보게 하는 힘을 만드는 것 같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면 자기 주위의 산물들이 노동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이를 상상하면서 살지 않는다.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 노동의 소중함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Q. 최근 한국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이슈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학생들과 공부하다보면, 학생들이 인권에 대한 부족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뉴라이트류의 역사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종종 느끼게 된다. 교사들은 ‘이것이 곧 차별과 혐오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A. 노무현 정부 때는 ‘10대들이 안보 최대의 위협 국가는 미국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뉴라이트의 인식은 ‘민족주의를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주의로 바꿀까?’라는 고민이었는데,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많이 성공한 것 같다. 이제 한국은 모두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은 역사를 보면, 옛 말에는 모두 한국이었는데 대부분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 현대사 연구자들이 2002 월드컵에서 나온 ‘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2002년에 처음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족주의가 등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2002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와 그 윗세대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는 인식은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의 감각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광화문 집회에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변증법과 같이 교차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를 보이는 현상을 염두에 둔다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나라는 자랑스러운데, 나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 것 같다. 경제상황을 보면 386세대는 제일 좋은 시대에 살았다. 그 때는 경기가 좋아서 대학을 나오면, 아무리 운동을 해도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운동을 조금 하면 임금도 올라가던 시대였으니, 희망찬 시선으로 세상을 살았을 거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해 안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를 보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음모론’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이 이렇게 힘든 것도 누군가 나쁜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다는 음모론, 이러한 생각이 위험하다. 결국 줄을 잘 서지 않거나, 줄이 닿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에는 희망이 없다는 냉소적인 생각으로 빠진다. 이러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회와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이 없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다는 음모론’,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어떤 문제적 현상이 나오고, 그걸 알고 있는 특별한 소수에 의해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지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현실이 벌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이 그 대안으로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해보면 좋겠다.
Q. ‘내가 가해자였다.’는 생각, ‘가해자의 위치에 서야하는 당위’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누구나 다른 이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A. 가해자가 되려는 각오가 필요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확실히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지속하다보면 선택지는 자살밖에 없다. 이것도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에 대한 가해자가 된다. 가해는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이것을 어느 정도 조절해가면서 살아가야할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칼럼 ‘집에서 폐를 끼치며 살기’도 가해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쓴 것이다. 가해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 않나? 다만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어떤 관계 속에서는 치고 박고 싸우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 이런 고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의 안내로 통국사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은 2018년 제주 4.3 위령비가 세워졌다.
이쿠노구 골목길도 답사했다. 현재는 ‘코리아 타운’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이곳에는 제주 4.3 당시 오사카로 건너온 제주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 맹수용(경기 의정부고)
※ 만나書는 ‘책을 만나고 사람을 읽자’는 기획의도를 바탕으로 신설된 <책 이야기>의 새 코너입니다. 역사교사들의 마음에 머리에 와닿는 좋은 책을 선정하고 해당 책의 저자와 역사교사가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편집부가 주선합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공고된 안내문을 읽고 저자와의 만남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신청해주세요. (참! 인터뷰 원고 정리가 부담스러우시다고요? 그건 편집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