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 <기념의 미래>(최호근)

7. 책이야기 - 서평2 - 김영주(광주 성덕고) 선생님

콕 집어서,

그러나 누구보다

따뜻한 감성으로 말해주는 책

- 『기념의 미래』 (최호근, 고려대 출판문화원)


4월 학교 학생회에서 전체 학급 대상으로 세월호 추모 기념품에 새길 문구를 공모했다. 학급별로 회의를 거쳐 문구를 공모하면, 컴퓨터용 수성싸인펜에 새겨 전교생에게 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반에서 결정된 문구는 이거였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종종 역사적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위안부 수업을 할 때도, 세월호 추모 행사 때도, 5・18수업 때도 학생들에게서 들었던 얘기였다. 어느 날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학생들은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걸까? 어떻게 잊지 않겠다고 생각할까? 딴지는 아니었지만, 꽤 공격적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당황하던 학생들은 ‘그분들의 희생, 그분들의 노력으로 현재가 있다’는 답을 한다. 맞는 말이지만 모호하고, 공감이 가지만 묘하게 메시지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최호근 교수님의 <기념의 미래>는 이 질문을,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건넨다. 광주에서 겨울 자주연수를 준비할 때 최호근 교수님(이후 저자로 지칭)의 책에서 5・18국립묘지가 현충원의 규격을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묘지의 모습이 들어와 충격이었다. 이처럼 기념 문화, 기념물과 기념식 등은 ‘사건에 대한 평가 종결’ 이후로만 여겨져서 그저 누군가 나서서 제안하면 있는 그대로 수긍하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그 누군가가 알아서 잘 할 것이고, 형식은 국가적으로 기준이 정해져 있을 것이고, 내가 가져야 할 태도는 경건함이다.


나의 일상생활에서는 행사 때가 아니면 가까이하지 않는다. 기껏 할 수 있는 건 기록된 활자들의 오류를 따지거나, 마음속 취향에 ‘맞네, 안 맞네’ 정도만 생각할 뿐. 이 책은 용어 하나하나가 잘 정제되어 저자의 생각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알려주며, 잘 몰랐던 기념관들의 건립과정을 보고, 그 공간을 같이 둘러보도록 도와준다. 매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웠는데, 사용된 구절, 어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사유할 거리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정치’라는 게 인상 깊었다, 그동안 학계의 기억 연구는 기억정치와 역사 교과서 분석에 편중되어 있고, 전시와 기념공간과 기념물 연구는 의도 분석에만 집중되어 ‘의도 환원주의’로 빠지기 쉬웠다는 지적은 와 닿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억 연구가 기억투쟁의 대립적 관점 이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시기로 보인다. ‘기억정치가 아닌 기억문화’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억문화 방식에 대해서까지 ‘확장’ 말이다. “기억 연구는 언어와 기록의 지대에서 소외되어 온 소수자, 약자, 억압받는 자, 변경에 서 있는 자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역사의 다원성과 다면성을 심층에서부터 파악하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그래서 정치나 정책이 아니라 기억의 모반인 문화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 p.13 ‘기념문화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에서” 부분을 새기며 읽다 보니 괜히 두근두근하다.


기념관이나 기념식은 왜 고루한 것처럼 느껴질까? 답사나 학생인솔체험학습(부모라면 자녀와의 나들이)이 아니라면, 기념관이나 기념식은 평소 방문하고 싶은 곳은 아니다. 누군가의 노고로 새로운 것들이나 문화·예술적 장치를 발견하면 ‘오-’ 하고 감탄하지만, 딱 그 정도뿐 큰 기대가 없다. 기념관과 기념식은 아무래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거대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리는 것’이기에, ‘감히’ 내용과 구성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을 위한 것,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에 감사하고 사건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 학생들의 대답을 보면 지금도 유효한 ‘안전한’ 생각이다.

저자의 말처럼 ‘정의구현에서 진실규명으로, 진실규명에서 화해로 뒷걸음질 치던 ‘위원회의 시대’는 가버리고, 그 빈자리를 다양한 이름의 기념재단, 기념공원, 기념관, 기념물이 채우는 ‘기념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민주화의 시대로 정의가 실현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고, 그걸 상징하듯 공간적으로 시각적으로 기념물들이 세워진다. 하지만 기념의 시대는 ‘기념의 제도화’를 의미하고, 제도화된 기념은 저항적 성격을 잃고 사람들은 차츰 종결된 사항으로 생각하게 된다. 국가에 의한 희생과 관련한 국가 공인에는 대가가 요구되었다. 국가 질서의 위광과 중후한 무게감, 그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 입은 대부분의 유가족들에게 국가의 공인은 무엇보다 소중한 위로였을 것이다. 그 이후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그 과정에 있어서 충분한 소통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해서였을까?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쉬운 점들, 각 입장들에 관해 직접 참여하셨던 혹은 오랜 기간 관심 있게 지켜 봐오셨던 저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을에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일정을 앞두고 광주의 5・18 관련한 상황과 연결 지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기념공간은 ‘개념화’를 통해 만드는 기획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사람들의 오감도 깨어있어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설명하는 공간에 대해 나는 가보고도 미처 그렇게 보지 못했던 점들이 많았다. 그게 관람자의 소양 차이인가 싶으면서 글을 읽으니 다른 공간들도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혹여 공간과 주체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저자가 스스로 지적했던 ‘의도 환원주의’로 빠지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의심이 드는 대목도 있었다. 5・18기록관 부분이 그랬는데, 나름 호의적인 저자의 평가에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구 부분에서 노근리 평화공원 기념관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그대로 이어졌었다. ‘희생자들의 재현’에 염두를 둔 것인지, 예술적 기법을 통한 충격 요법으로 어두운 공간에서 총소리와 조명을 이용해 관람객을 놀라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기념관이 전체 연령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때 희생의 고통을 강조하는 스토리가 마음에 걸린다. 전시관 내부 기둥의 총탄 자국 재현은 나한테는 아쉽게도 주변의 깔끔한 전시들 사이에서 눈에 잘 띄지도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고, 시민군을 설명하는 입구에 있는 큰 사진의 ‘김군’은 영화 <김군>을 보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없는 과거의 용감한 희생자일 뿐이었다. 영화 <김군>을 보다 보면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살아나고, 사진을 자세하게 보게 되었는데, 익숙한 이미지를 그냥 익숙하게 흘려보내게 한 전시가 그제야 아쉬웠다. 물론 기록관을 비롯하여 노근리 평화공원, 4・3 평화공원의 기념관들은 너무 잘 만들어진 ‘스토리’로 갖춰진 훌륭한 교육공간이다. 저 딴지 아닌 딴지는 저자의 글이 설득력이 높아 나도 모르는 사이, 쭉 따라가며 수용만 하게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나름 비판해보려는 독자로의 발버둥일 뿐이다.


책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 국내의 의미 있는 기억공간의 구성과정-국외의 사례-그리고, 제안’ 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은 마지막의 제안 부분을 결론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매 편이 매 장소가 큰 흐름은 일관되면서도 각각이 조금씩 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독자가 본인 경험 속 다녀온 공간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다녀왔던 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다녀왔지만 내가 놓쳤던 것,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꼭 가보고 싶은 곳 등의 장소감과 함께 각 공간마다 제시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공감각적으로 책을 사유할 수 있다. 복잡한 이론이 아닌 촉각적으로 만져지고 보이는 ‘역사’에 대해, 또 언젠가 한 번은 해봤을 기념관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가 저자의 진지하고 정당한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을 시원함도 느낄 수 있었다.


기억은 저자의 말처럼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의 기억은 ‘죽은 자를 위한 제단’이어서는 안 되고, 그래서 종교의식처럼 혹은 종교의식만큼의 위상을 가진 국가 의례로만 맡겨서는 안 된다. 혹자는 사람들이 유행만 좇아서 역사 사건의 기본 사료 연구를 도외시하고 너무 ‘해석’에만 매달려 있다고 한다. 역사적 사건의 ‘기념’문제는 둘 다가 다 포함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따져보자면, 역사가 기초 연구 따로 해석 따로 분리가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기초자료의 수집, 사실관계 확인이 되지 않은 기념은 공허하고 건축과 문화가 자본이 들어가는 이상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특정 의도가 반영된 교화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료의 구성만 가지고는 의미 있는 의도에도 전달이 되지 않은 유물과 쇼윈도로만 구성된 죽은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유물과 쇼윈도가 아니라면, 지도와 설명으로 가득한 학습 패널이 아니라면, 그 엄청난 회한의 기억들을 무엇으로 재현해야 할까?’ 특정 전문가들만의 결정으로는 갈등을 초래한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것만으로는 의미를 박제화시킬 수 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어떻게’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문화적 역량이다. 목적 실현을 위한 투철한 의지는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투사의 시대는 가고, 충분한 역량을 갖춘 전문가의 시대가 도래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도 초민족적인 집단 기억을 만들어가기 위한, 전 지구적인 관점이 힘을 얻어간다. 기억의 내용과 기억하는 방식의 변화는 당연히 기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이전과 다른 기념 방식을 고민하는 건, 지역의 관광지 개발, 교육공간 개발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건의 기념관, 기념 문화를 기획할 때 기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을 사항을 5・18과 관련된 부분에서 저자가 제시했던 항목으로 찾아보았다.


-어떤 종류의 죽음인가?
-누구를 향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정치의 과잉, 문화의 결핍이 되지 않도록,


집단의 정서와 행동을 규율하는 삶의 문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문화는 토양이다. 그 토양 속에서 사람들은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정서를 학습하며, 서로 소통하는 법을 훈련한다.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접근으로 피로해지지 않게, 논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역사적 경험이 될 것이다. ‘와!’ 하며 책을 덮는데, 5・18 전남 구 도청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복원’을 할 예정이라고 하고, 동문회나 지역에서는 과거에 여기를 기반으로 한 출신자 중 훌륭한 인물을 기리는 활동을 추진하려고 한다. 집단의 주관적 기억이 ‘우리’라는 테두리에 가둬지지 않도록, 이름만 남게 되는 기념이 되지 않도록 이 기회에 담론이 활발해지면 좋겠다는 아쉬움에 책을 다시 펴게 된다. 저자의 오랜 고민과 지속적인 활동에 감사드리고, 기반으로 독자인 나도 고민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살을 하나씩 붙여가게 되었다. 분명 학생들에게 역사 수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경험 기획자로서의 교사에게도, 지역사회를 고민하는 시민에게도, 시민으로의 집단적 기억 형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도 좋은 책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추천한다. 오, 누가 해외 기념관 투어 프로그램 만들어주면 좋겠다. 기념관 기반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같이 해보면 재밌겠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는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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