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역사이야기 - 대담 : 역사교사가 묻고 지성이 답하다 1 - 박명림
대담 : 역사교사가 묻고 지성이 답하다 1 - 박명림 교수
>> 편집부 정리
인터뷰 - 역사교육 편집부 X 객원 에디터 김형호(서울 배재중)
<역사교육>에서는 이번 호부터 특집대담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그동안 ‘역사이야기’에서는 역사연구자들의 연재 기고문을 받아 게재해왔습니다. 하지만 기고문과 연재글 너머 역사 연구자와의 대화를 통해 역사 선생님들께 역사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역사 연구자들의 고민과 삶 그리고 지적여정은 그 자체로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교사가 묻고 지성이 답하다’에서는 역사교사의 시선과 문제의식으로 지성에게 직접 묻고 대화한 기록을 선생님들께 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역사교육 교수님, <역사교육>과의 대담을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국전쟁, 4.3 사건 등 한국현대사에 대한 교수님의 학문적 업적과 사회적 발언과 참여 등 실천적인 부분에서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또한 최근 논의가 활발한 평화교육에 대한 것도 말씀을 정하고 싶네요.
한국전쟁 연구자로서의 선생님의 ‘지적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한국전쟁에 관한 교수님의 업적을 아래와 같이 압축하여 언급한 바 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박명림의 기여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그는 식민지시대 기원론과 6월 24일 기원론을 모두 거부하고 1945년 ‘분단기원론’을 제시했다…(중략)…둘째, 박명림은 역사적 사건에 내재한 구조와 행위의 상호관계를 주목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 김호기·박태균,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메디치, 2019.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박명림 제가 보려고 했던 한국전쟁의 인식이나 이해나, 방법론의 여러 측면 중에 중요한 면을 말씀해주신 거 같군요. 동의합니다. 저는 역사의 필연성 보다는 가능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이 모두 내전을 포함한 전쟁을 경험한 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은 전쟁을 안 치르지요. 그래서 어떤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광복의 시점인 1945년 8월 15일의 넓은 가능성이 왜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으로 귀결됐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해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사이에 분단에서 전쟁으로까지 놓여있던 여러 요소들과 과정들을 밝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 교수님이 첫 번째로 지적한 ‘분단기원론’이라는 명명은 적확하게 봐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지적도 동의합니다. 저는 역사적 사건을 구조결정론도 아니고 행위결정론도 아닌 구조와 행위의 상호관계로 보는 관점을 꽤 오랫동안 견지해왔습니다. 나름대로 구조와 행위를 같이 보려고 했기 때문에, 행위에 초점을 두는 역사학과 구조를 중시하는 사회과학을 결합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요즘은 초기의 역사사회과학을 거쳐 저는 주로 사회인문학, 보편한국학. 정치인간학, 인간평화학 등 이런 융합학문에 대한 문제의식을 좀 더 많이 갖고 있기도 합니다.
역사교육 학자로서 ‘한국전쟁’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도 여쭙고 싶어졌습니다.
박명림 글쎄요…. (잠시 생각 후) 일단 1980년대 시대상황이 제일 중요했고요. 광주항쟁 직후에 대학을 들어간 세대로서 광주의 비극을 알게 된 후 나름대로 역사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던져준 시각을 토대로 우리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한국전쟁을 공부하게 된 건 조금 다른 요인입니다. 석사논문 주제로 제주 4.3 사건을 공부하면서 그 비극 자체에도 충격을 받았지만, 이 비극이 이념적으로만 해석되어왔다는 것에 더욱 놀랐습니다. 당시 4.3 사건에 대해서는 국내의 학문적 연구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4.3 사건에 대해 ‘폭동’이라 규정하고,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나 폭도로 낙인찍는 것은 현대한국의 비극을 이념적으로 다루는 전형적인 사례였지요. 물론 4.3 사건에 대한 진실이 안 알려지고 왜곡되었다는 점만이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학술논문이 하나도 없었는데 서양에는 있었다는 것이었죠. 존 메릴(John Merrill)이라는 학자가 <제주도 반란>(The Cheju-do Rebellion)이라는 아주 수준 높은 논문을 제출한 것이었지요.
그 논문을 보며 제 내면에 갖게 된 문제의식이 바로 ‘자기 역사’ ‘세계 역사’에 대한 ‘자기의 이해’, ‘자기의 인식’이었습니다. 저는 저희들 개인 삶도 그렇고 어떤 인간공동체나 국가도 자기 스스로 발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당시에 은연중 ‘우리 역사인데 왜 우리의 발언은 없나?’라는 문제의식이 생겨났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제주 현지를 답사한 끝에 석사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주 4.3사건을 답사하고, 또 공부한 경험은 제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러 학문 연구 방법에 대한 훈련을 포함하여, 자기 역사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구조, 나라, 전체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개개인이 어떻게 비극으로 떨어지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지 등에 대한 계몽과 성찰이었지요. 제주도에 가서 당시 피해자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정말 많이 통곡하고 크나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1)박명림, 濟州島 4.3 民衆抗爭에 關한 硏究,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1988.
2) 델라웨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정치학자. 미 국무부에서 동북아 정보조사를 책임진 관료(미 정보조사국(INR) 전 동북아국장)이기도 하다. <새롭게 밝혀낸 한국전쟁의 기원과 진실>(2004)의 저자로 소개되곤 하지만, 실은 1980년 하버드 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제주도 반란>(The Cheju-do Rebellion)의 주인공으로 더 알려졌다. <제주도 반란>은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4.3 논문으로 평가 받는다.
역사교육 당시에는 참 그런 ‘아픈 역사’들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진실을 공부하고 말한다는 자체가 두려워야 했던 엄혹한 상황이었으니까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한국전쟁은 어떻게 공부하게 되셨지요?
박명림 한국전쟁은 너무 크고 너무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학위논문으로 쓴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제주 4.3과는 비교도할 수 없는 이념적으로 논쟁적인 주제이고, 남한과 북한의 정당성의 근원이며, 현실 이념갈등과 대결의 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까 자기 역사에 대한 자기 이해를 말씀드렸지만, 당시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 역시 시카고 대학교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의 연구와 이론이 압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국’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남침·북침 논쟁이나 이념공방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수행한 수준 높은 학술연구를 찾기가 어려웠지요. 세계 학회에서는 거의 커밍스의 연구만 언급되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거꾸로 은사님이신 최장집 교수님께서 “한국전쟁이야 말로 학자로서 전부를 걸어볼 수 주제”라고 말씀을 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큰 주제라서 죽도록 공부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시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전쟁은 식민주의, 국제관계, 미소대립, 동아시아 지역정치, 남북관계, 국내정치, 제도, 민주주의, 민족주의, 군대, 법률, 이념, 토지문제.... 등등 워낙 복잡한 영역과 차원들이 얽혀 있는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정말로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가장 복잡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사하고 읽어야 할 자료나 연구도 매우 광범위 했지요. 사실 이 연구는 경험적이며 사실적인 분석은 제가 했지만, 이론적인 훈련은 최장집 선생님으로부터였습니다. 그래서 부족한대로나마 제 연구가 가능했지요. 물론 은사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교육 역사과 교육과정 문서나 역사 교과서 속에서 ‘한국전쟁’의 강조점은 ‘전개과정’에만 맞춰져 있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념비적인 연구자로 평가받고 계시는 데요, 우리 학생들이 ‘한국전쟁’을 통해 정말 알아야 될 것은 무엇일지, 배움이 일어나야 할 지점과 그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박명림 조금 나눠서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우선 전쟁, 혁명, 망국과 같은 현상들은 인간역사의 비극적 측면에 대한 인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즉 과거에 대해 돌아보는 이유는 인간역사의 밝음과 어둠, 희망과 절망을 균형있게 대면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전쟁에 관해서 먼저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일반적인 피해사관과는 크게 다릅니다. 즉 한국전쟁에 관한한 우리는 세계로부터의 피해 민족이 아니고 세계에 대한 가해 민족입니다. 우선 세계사를 보면 식민과 분단과 전쟁 사이에는 필연적 연계고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은 전연 필연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민족단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우리 민족은 애꿎은 숱한 타국의 청년들을 이 땅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세계시민윤리에 비추어 심각한 죄악입니다. 남북이 평화공존을 못하고 북한의 도발로 전쟁을 일으켜 세계시민들을 수없이 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2차 대전 이후에는 최악의 가해민족의 하나입니다. 이제는 피해사관을 벗어나 책임사관이 절실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책임있는 세계시민으로 인식하고 행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의 비극과 관련해서는 ‘객관’과 ‘균형’과 ‘책임’의 문제를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제기이지요. 제가 그동안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질문을 많이 받은 것, 동시에 30년 동안 오래도록 대답을 안 한 것이 있습니다. 저로서는 최근 들어서 이제야 대답하기 시작했는데요. 그것은 한국전쟁의 성격과 본질에 대한 물음입니다. 즉 ‘내전이냐 국제전이냐?’ 저는 숱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양자택일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아왔습니다. 둘 다 틀렸기 때문에요.
저는 한국전쟁을 세계시민전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세계내전입니다, 당시에 한국인들은 세계체제전쟁을 가장 앞서 내부체제전쟁과 중첩되어 수행한 세계시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볼 것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객관적 사실 규명이나 균형적 시각의 확보 이전에 먼저 특정 사건의 성격부터 규정하려고 합니다. 매우 위험한 역사접근 방법이지요. 이건 굉장히 잘못된 방법입니다. 특정 사건의 성격과 본질을 먼저 가르치는 것은 명분과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보수적인 학문방법입니다. 유교의 정명사관(正名史觀)이 전형적이지요. 서양의 정체성 사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국혁명의 경우도 ‘영국혁명’, ‘영국내전’, ‘영국반란’ 다 쓰이고 있어요.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단일하게 명명하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사관이라 생각 합니다.
흔히 ‘남침’과 ‘북침’을 한국전쟁에 대해 논쟁하는 주요 주제로 삼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제는 넘어서야할 때입니다. 민족통일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제가 북한의 남침을 사실적으로 증명하자 흔히 말하는 운동권 측에서 ‘북한에 대해 왜 비판적이냐?’는 문제제기를 자주 받곤 했죠. 그때 저는 ‘허구 위에 구축된 포용과 사랑은 안 된다, 북한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으려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근거해야지 남침을 북침이라고 허위로 날조하면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답변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전쟁에 대해 학생들에게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실과 진실의 중요성입니다. 이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우리는 진실 앞에 겸손해야합니다.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는 것은 ‘인간들의 삶이 얼마나 참혹할 수 있고, 다시는 그러한 인간악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무거운 교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우리는 진실이 규명된 남침一북침 논쟁을 넘어 전쟁의 유산 극복이 더욱 중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더욱 현실적인 교훈이자 과제이지요. 우선 통일은 서두르면 안 됩니다. 또한 설령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수단과 절차가 모두 정당한 건 아닙니다. 역사도 삶도 선택되는 수단에 본질이 드러납니다. 북한이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하는 마땅한 이유이지요. 폭력적 수단으로 옳은 목적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절차에 본질이 숨어있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통일을 서두르는 대신 평화의 소중함을 끝까지 지키면서, 한국전쟁이 남긴 적대와 증오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평화의 가치야말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지요. 평화 공존의 바탕 위에서 서로 용서와 화해를 위한 악수를 게을리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역사교육 전쟁을 통해 평화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이고, 평화의 관점에서 전쟁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과정과 노력이 필요로 한 일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박명림 어렵고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미 존재하는 과거는 함께 극복해야 되는 것이지 청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특히 민주주의와 이성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폭력의 유산은 폭력으로 넘어서려하면 또 다른 큰 피해와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과거에 대한 연구는 과거를 향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과거는 반드시 미래의 관점에서 연구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그 과거의 유산과 영향의 극복에 집중하면서부터 저는 전쟁 연구를 ‘평화 연구’로 바꿀 수 있었고 적대의 연구를 ‘화해의 연구’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또 분단의 대칭이 통일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생각도 했지요. 따라서 전쟁을 통해서 평화를 배운다, 평화의 관점에서 전쟁을 가르친다는 것은, 전쟁을 평화의 관점에서 비판한다는 시각을 넘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전쟁연구’, ‘평화실천으로서의 전쟁연구’라는 제 삶의 실존적 의미와 보편적 인간가치를 함께 갖습니다.
이걸 종합해 본다면 학생들이 한국전쟁을 통해 각자 깨달아야 될 게 무엇일까요? 저는 “생각이나 이념이 다르건 각자 서있는 상황이 다르건 폭력은 안 된다. 인간에 대한 폭력은 절대 안 된다.”라는 근본 원칙이죠. 그래서 저는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와 교육은 개인·학교·나라·공동체·세계 차원 모두에서 평화 가치의 소중함, 그리고 작게는 일상에서의 폭력반대와 폭력 배제를 가장 중심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들 사이에 사랑을 위한 폭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경우, 통일이라는 목표도 좋지만 평화라는 과정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으면 합니다. 민족이 하나 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평화적 공존이이라고 봐요. 다름과 차이를 수용하는 걸 훈련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폭력은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최악의 수단이라는 것을 성찰해야지요. 일상에서의 폭력배제와 상호 인정 및 존중, 그리고 평화와 평안의 추구를 아이들과 나누는 문제를 교육 현장에서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역사교육 한국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수업을 통해서 우리 학생들이 전쟁의 비극, 어두움, 그런 것들을 학생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는 말씀일까요?
박명림 네. 맞습니다. 전쟁을 평화, 화해, 공존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그 대폭력과 대비극, 대참상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오직 인간성(humanity)의 추구와 실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하니까요. 인간성의 관점이라는 것은 이 전쟁에서 피해 받고 죽어간 사람들의 삶 하나 하나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죠. 인간에게 생명에 우선하는 가치는 없습니다. 평화가 촤고의 정의인 이유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시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까 말씀 드린 가해전쟁의 관점에서 깊이 생각해본다면, 한국전쟁은 ‘민족’ 일부의 행위로 볼 수 있겠죠. 그 우리 민족도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우리가 얼마나 세계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와 세계인들의 생명을 함께 지키는 내면 윤리와 행동이 나 자신과 우리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세계시민은 어렵습니다. 제 겸허한 제안은 보편적 폭력과 평화에 눈을 뜨자는 것입니다. 우린 세계시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세계성’을 깨달으면 감히 폭력과 전쟁을 말하기 어려운 겁니다. 왜냐하면 세계의 제국, 이념, 진영이 격돌하는 경계지역, 경계국가 한반도에서 전쟁은 언제나 여기에서의 세계전쟁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대전쟁은 다 세계시민전쟁입니다─ 우리가 세계시민인 걸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전쟁과 폭력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세계의 평화 실현에 가장 앞장서게 되는 거지요.
역사교육 정치학자, 역사학자, 사회인문학자로서 평소 강조하신 “방법으로서 보편과 비교”는 연구에 대한 방법과 태도만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지탱하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그것을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박명림 어렵군요. 인간 영역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의 ‘가난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보편은 일반이나 공통은 아닙니다. 보편은 구체적인 개인이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이성의 범주입니다. 즉 보편은 곧 구체인 것이지요. 이는 곧 우리가 쉬이 빠져드는 양비론과 양자택일을 넘어설 수 있는 범주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흑백논리와 진영대결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거나, 둘 모두를 비판하면 그런 입장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보편적 가치의 실현은 불가능하지요. 게다가 보편은 선천적으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들 사이의 비교는 필수입니다. 정의와 관용이 한 사람의 삶의 태도, 한 공동체 내에서 모두 실현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그게 바로 보편의 놀라운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교육 「전쟁에서 평화로, 다시 생명과 인간으로」(2006, 일조각)에서 보면 학자로서 박명림의 일대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학창시절, 학부시절에는 원서를 정독하고, 주요구절들은 통제로 암기까지 하는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지금까지 다져온 나름의 독서·글쓰기 습관, 공부법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박명림 (말없이 멋쩍게 웃는)
역사교육 저희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느낀 것으로 추론한 것인데, 인터뷰 일정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해주신 문자도 그렇고 주로 새벽에 하시더군요. 주간에 업무를 다 보시고 한 새벽 12시부터 한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하시는 거 같습니다. 왠지 느낌이 그렇네요(웃음)
박명림 잘 보셨어요(일동 웃음). 제게 그때가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인데 저는 대략 새벽 3-4시 사이에 자니까요. 거의 삼십 년째의 버릇입니다. 30년 째 매우 하루 이틀은 아예 연구실에서 지내고 그러는데요. 그 시간이 가장 조용히 생각하며 읽고 쓸 수 있어서 그럴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다음의 세 가지가 지금 보다 좀 더 가까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앎’-‘함’-‘삶’, 즉 제 자신의 앎과 함과 삶 사이의 괴리가 조금 더 좁혀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제가 믿고 아는 만큼 행동하려하고, 또 제 행동들이 쌓여 제 삶으로 귀결되길 바라며 살지요. 그러다 보니 시간도 쓰기보다 읽기를 몇 배씩 더 투입해야 하고, 여러 사회적 현장들도 늘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어떤 약속이 있거나 밖에 회의가 있거나 식사를 해도 끝나면 거의 항상 연구실로 돌아가죠.
역사교육 교육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역사교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명림 저는 한 아이와 한 사회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정치학이나 역사학 못지않게 교육학의 책들도 많이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육과 공동체의 발전은 결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정치철학자들이 모두 위대한 교육학자였던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기회에 한 가지 꼭 강조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과 교사와 학교를 들들볶기에 앞서 제발 나라와 사회를 먼저 개혁하라는 얘기입니다. 정부와 의회에 엄히 주문하고 싶습니다. 먼저 나라를 개혁하십시오. 그러면 교육과 미래는 당연히 좋아집니다. 즉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의 산물입니다. 사회와 가정이 온통 취직, 수입, 점수, 물질 경쟁으로 물들어 있는데 학교에서만 이와 유리된 인간교육, 가치교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학교는 사회와 유리된 무인도가 결코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교육철학들이 상세히 잘 밝혀 놓았습니다.
끝으로, 저는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고 믿습니다. 미래도 없습니다. 공동체 시간의 필수적인 연속성이지요. 그 점에서 역사교육은 곧 미래교육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역사교육과 역사교사의 중요성은 곧 우리 공동체 전체의 미래가 달려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역사에 눈을 뜬 만큼만 미래를 향해 눈을 뜨기 때문입니다. 가장 소중한 우리 미래가 역사교사 선생님들의 어깨 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박명림 교수의 One-Pick! : 역사교사들에게 추천한 논문/단행본/문헌
○ 박명림, 수록글 「인간비극과 인간화해-용서와 정의의 공존을 통한 통합치유를 위하여」, 『트라우마와 사회치유』, 역사비평사, 2019.
○ 박명림, 인터뷰 「잊지 않는다는 것은 함께 만든다는 것」, 『새로운 시대의 탄생』, 인디고 서원, 2014.
○ 박명림, 논문 「전쟁에서 평화로 다시 생명과 인간으로」, 『한국사 시민강좌』 38, 일조각, 2006.
○ 박명림, 단행본 『한국 1950:전쟁과 평화』, 나남,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