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업이야기 - 고민보다Go! : 성찰과 좌절의 역사 수업 에세이
수업이야기 >> 고민보다Go! : 성찰과 좌절의 역사 수업 에세이
≫ 이융(부산 부경고)
잘하고 싶다. 그런데 왜 잘하고 싶은지도 헷갈린다. 학생들의 칭찬, 동료들의 칭찬. 수업 한가락 하는 사람이라는 주위의 인정을 바람인가. 아니면 정말 수업이란 것을 통해 아이들이 협력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성장하고 변화하길 간절히 원해서인가. 아들러에게 들켜 버린 내 우월감 추구 욕구에 얼굴을 붉히고 만다. 수업을 잘하고 싶은 마음마저 아이들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간혹 그 와중에 ‘메시’들을 본다. 천재 같은 사람들. 심심할 때 경국대전을 읽더라는 전설이 스며들어 있고, 초임 시절 1년 치 한국사 과목을 재구성 해버리는 신인왕 급 수업을 하며 1년 치 수업을 온통 토론으로 진행하는 데다 그 와중에 멋진 책들까지 써내는 메시들. 난 재능이 없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역사교육’지를 들춰 보지만 또 다른 천재들의 화려한 발기술은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축구 그만 둬야 하는 건가.
전화가 왔다. 내가 생각하는 메시 중의 한명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역사교육지를 보며 내가 느꼈던 지점을 메시가 먼저 말했다. ‘아…, 이 천재는 평범한 사람의 박탈감까지 헤아리는 구나, 인성까지 갖춘 메시라니!’ 잘 된 수업을 자꾸 싣기보다는 실패한 수업에 대한 고민을 좀 써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는 부탁에 뒤이어 ‘수업 못하는 사람’이라서 나를 선택한건 아니라는 친절한 부연까지 덧붙였다. 그 조심스러움이 미안해서 얼른 기획 의도를 알겠다고 하였다. 승낙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메시가 감기에 걸려 있었다. 내가 거절하면 또 걸걸한 목소리의 메시는 한숨을 쉬며 누구에게 또 오해를 사지 않고 ‘수업 못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수업에 대한 고민을 써주세요’라고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니깐. 메시의 축구화라도 들어주는 심정으로 ‘제가 고민은 전국에서 탑 클래스입니다’라며 선뜻 승낙했다. 그래서 고민이 더 늘었다. ‘뭘 써야 하나…….’ 메시 팬클럽은 공짜로 하는 게 아니구나. ‘우리 오빠’들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학생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역사과 신규 선생님들, 그리고 5년차 미만의 저경력 선생님들과 함께 ‘수업 미로 탐험대’라는 다소 소년물 같은 연구회를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수업이란 미로를 탐험하자는 취지인데 연구회의 목적을 200% 달성하고 있다. 정말 잘 헤매고 있다. 메이즈 러너 차기작을 찍을 기세다. 기라성(?) 같은 6년차인 내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고 있으니 조만간에 ‘수업 늪 탐험대’로 버전 업을 할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더냐’라며 위로를 건네지만, 바람 세차게 불어 줄기가 탁탁 꺾인 꽃들을 보고 있자면…, ‘저 시구절도 다 꽃피운 자들의 여유구나’라는 삐뚤은 마음까지 들게 된다.. 영화 기생충 대사였나? 잘 사는 사람이 인성도 바르다고. 수업 잘 하는 사람이 마음도 고운 법인가 보다.
눈앞의 책꽂이에 ‘역사수업의 길을 묻다’와 ‘역사교실’이 꽂혀있다. 그 옆으로 즐비한 수업을 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책들. 물론 다 못 읽었다. 살이 쪄서 고민이 많아 운동기구를 잔뜩 샀지만 한번을 들어 보지 않는다. (아! 저 책들과 집에 있는 운동기구들의 공통점을 찾게 되다니! 더 슬프다.) 핑계는 많다. 학교는 너무 바쁘고, 가정사는 너무 많고, 친구들도 만나야 한다. 사실 내 고민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놀고 싶지만, 수업은 잘하고 싶어’이다. 그러니 고민이 해결 안 될 수 밖에.
아이들을 보며 플라스틱 김치통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김치를 정말 오래 담아둬야 물드는 플라스틱 김치통처럼 아이들도 정말 천천히 스며들어 변하는구나.’ ‘나의 짧은 노력과 애씀으로 변화와 성장이 없다고 좌절하지 말자’라며, ‘같은 걸 오래 담아 두면 그래 물들더라.’
근데 나도 김치통 같다. 수업을 고민한다는 것은 비로소 조금 물든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자린고비 운동처럼(운동기구 한번 쳐다보고 ‘아이고 오늘 운동 다 했네’ 라고 하는 운동) 수업 관련 책들의 제목만 보면서 잠깐 자린고비 수업고민을 하고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내 고민 코스프레를 진정성 있다 추켜세워 주고 우쭈쭈 해주는 부산역사 교사 모임의 여러 선배님들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연구회 이름을 ‘수업 미로 탐험대’ 따위로 지어도 기꺼이 함께 해주는 소중한 선생님들, 그리고 6년째 함께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 ‘생중모’ 선생님들.(저는 발령 동기 선생님들과 ‘생중모’란 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생계형 중학역사 모임’ 줄임말 입니다. 이름들이 다 처절하군요.) 그러한 훌륭한 맛집 김치와도 같은 분들 덕에 그래도 뻣뻣하게 튕겨 내기만 하던 김치통은 조금씩 물들고 있다.
한 차시를 고민한다. 이 내용에서 어떤 생각거리를 함께 만들어 볼까? 그걸 어떻게 제시 할까? 좋은 영상은 없나? 어떻게 하면 서로 이야기 하고 협력하면서 이 내용을 서로 나눌 수 있을까? 힘겨운 시간을 겪는 아이에게 잔소리 없이 한 시간 푹 자게 해 주는 것도 좋은 수업이 아닐까? 나는 달콤한 숙면보다 가치 있는 수업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숙면을 불러온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학생이 되어 저기 앉아 있다면 나는 내 수업을 즐겁게 듣고 있을까?
한 차시 너머를 고민한다. 좋은 수업은 무엇인가? 학력은 무엇이고 배움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역사는 왜 가르치는 걸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내 수업은 시험에 나온다는 협박과 입시라는 겁박을 빼고도 들을 필요가 있는가? 나는 왜 잘하고 싶은 걸까? 다양한 수업 국면에서 때론 딜레마처럼 때론 선승의 화두처럼 나를 붙잡는 고민들. 나 때문에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학생이 있는 반면(이렇게라도 자랑 한번은 좀 합시다!) 뻐꾸기 시계마냥 내 시간만 되면 책상 위로 긴 목을 뻐꾹 하며 내밀고 자는 학생들(이 더 많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 극과극의 리액션 사이에서 여전히 헷갈리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교사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길을 응원해 주고 함께 해주는 동료 선후배들로 인해 ‘진정성 있게 잘하고 싶음’이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 난 잘 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내 우월 욕구 때문이 아니라 내 존재의 행복과 함께 그 시간을 함께하는 학생들의 행복을 위함이고 싶다. 메시랑 손흥민이 축구 잘하는 것이 그보다 못한 수많은 축구 선수들이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아니듯 천재들을 여전히 동경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축구를 해보려 한다. 여전히 내 마음은 ‘놀고 먹고 자고 쉬고 싶지만, 수업은 잘하고 싶어’라서 앞의 단어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하지만, 김치통에 김치물 들 듯 점점 더 나아가려 한다.
이런 나의 고해성사가 ‘아! 나만 놀고 싶지만 수업은 잘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어’라는 작은 안도를 전국의 수 많은 도둑놈 심보 선생님들에게 드릴 수 있길 바란다.(나만 나쁜 사람이에요? 그런 거에요?) 물론 이 글을 부탁한 메시는 ‘이런 것을 써 달라고 한 게 아닌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겠지만, 메시의 실축 같은 원고청탁이라고 생각하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 엉망진창이었던 선생님들께 위로를 전한다. ‘선생님, 오늘 하루 엉망이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오늘만 엉망이었던 거 아니잖아요! ^^;’
편집자주] ‘고민보다Go!’는 ‘역사교육’ 2019 여름호(125호)부터 신설된 코너입니다. 그간 회보에 많은 수업 사례가 실렸었는데요, 많은 선생님들께서 ‘회보에는 화려하게 성공한 수업 사례 위주로 실리는 것 아닌가’라는 뼈아픈 의견을 주셨습니다. 사실 성공한 수업 이면에는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는 것. 우리 다 알고 있지 않나요? 보기만 해도 아프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하고 위로를 받고 싶으신 분들, 추후 수업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신 분들 모두 모두 두 팔 벌려 격하게 환영합니다.*_* ‘고민보다Go‘에 참여하신 분들에게는 소정의 원고료와 함께 다음에 기고하시는 선생님께 받으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라는 작은 선물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수업, 업무, 담임에 지쳤을 때 동료들의 단단한 지지로 에너지를 회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