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업이야기 - 수업사례
/ 문순창(경기 운산고)
- 문순창 선생님께서 수업 사례 속에 등장하는 수업 자료를 제공하셨습니다. 클릭하여 다운로드 받으세요
가. 페미니즘은 어떻게 수업의 소재가 되었나
◻ “선생님, 남자 애들이 ‘김치녀’니 ‘메갈X’니 하는 말 너무 해서 듣기가 마음이 힘들어요. ‘기 센’ 여자샘 수업 끝나고 나면 ‘저 샘 메갈이냐?’라고 까지 해요. 좀 어떻게 해주세요!”
/ 2학년 여자 사람 학생의 하소연
◻ “선생님! <82년생 김지영> 이거 읽어봤어요? 이거 너무 지나친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한 사람 인생에 이런 고통이 다 나타날 수 있어요. 제가 비록 남자지만 이 정도 차별 있다고 생각 안 해요. 예전 엄마일 때면 모를까. 유튜브 보니까 <82KG 김지영>이라고 부르면서 이 책을 얼마나 통쾌하게 비판하던지…. 속이 시원하던데요.”
/ 2학년 ‘남자 사람’ 학생의 의분에 찬 항변
이토록 뜨거운 말할 거리가 있었던가. ‘페미니즘 이슈’, ‘젠더 문제’, ‘20대 남자 현상’ 2) 등으로 불리는 이 말할 거리 말이다. 젠더 갈등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마주한 주요한 갈등 과제 중 하나이다.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부터 작년 내내 뜨거웠던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론장 속에서 높아졌고 이에 반발한 대응도 이어졌다. 특히 혜화역 시위나 각종 미투 사안 등이 나타났던 작년 2018년은 이 갈등 과제(혹은 논쟁)이 전면화된 한 해였기도 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필자의 생각과 경험담 역시 이러한 시대 속에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내야 한 조건 속에서 구성되었다.
위에 제시된 표에서 나타난 말들은 이 수업 사례를 정리한 본 교사가 실제로 들은 이야기들이다. 사회 속에서 나타난 젠더 갈등은 교실 속에서도 오롯이 재현되고 있었다. 단순 재현이기보다는 더욱 압축되고 농도 깊게 진행되었다고 보는 게 더 적확할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들을 힘들게 한 것은 ‘증오’의 언설(言說)이 그저 어지럽게 나돌았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사안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마다 정체 모를 미움이 넘쳐난다는 생각에 어쩔 줄을 몰랐던 적이 여러 번이다. “어쩌다 이 문제가 이 지경까지 흘러왔지?”라는 생각을 해보다가도 뭔가 의견 한 마디 보태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말을 거두곤 했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선명하게 머리에 맴돌았다. "왜 그렇게 아이들은(그리고 사람들은) 이토록 화가 나 있을까?",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성마른 상태가 되어버린 걸까?".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넘어갈 현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상황이야말로 삶의 문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필자와 동료교사들이 젠더 이야기를 교실로 초대한 이유다.
‘시사IN'은 빅데이터 분석 및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최근의 갈등 현상에 대해 분석한 ’20대 남자‘이라는 기획기사를 총 3부로 나누어 게재했다. 여기에서 천관율은 최근의 현상에 대해 ’20대 남자 현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젠더 이슈가 단순히 ’남자-여자‘간의 갈등이 아닌 세대 갈등적 요소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젠더 이슈에 대한 다층적인 분석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나.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을 구상하기까지
본 교사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온지 며칠 안 되었던 3월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고기를 굽다가 선생님들께 페미니즘 공동수업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보통 학교에서 교사와 교사 간에 수업 이야기를 정색하고 나누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상당히 어색하고도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하지만 혁신학교인 운산고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한 일이다) 국어과인 ‘고전’ 담당 선생님들과 사회과인 ‘법과 정치’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린 이미 하기로 했는데? 샘도 끼워줄까?". 나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헐”. 이른바,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나조차도 페미니즘 자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페미니즘은 대중적인 사상적 사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낯설었다. 조금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너무 지당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인종 간 차별이 부당하고 지역 차별이 불공정하듯 남과 여의 문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페미니즘이 화두에 떠올랐을 때도 그랬다. 그저 ‘아 사회가 발전하면서 으레 나타나는 그런 과도기적 갈등 현상이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정신을 번뜩이던 계기가 찾아왔다, 2016년이었다. 흔히 진보정당이라고 불리우는 '정의당' 내에서 페미니즘이 논란이 되어 다수의 당원들이 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3)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인(혹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조차도 페미니즘에 이토록 반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3)정의당 문예위 논평 철회 사건(2016)이었다. 게임 개발 회사 ‘넥슨’이 성우 한 명을 해고하면서 논쟁이 촉발되었다. 해당 성우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문구(Girls do not need a prince)가 적힌 티셔츠릂 SNS에 올렸는데 이에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게임 유저들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논란이 커졌던 것이다. 넥슨이 그를 해고하자 이에 대해 비판논평을 낸 정의당 문예위원회의 논평이 다시 논란이 되었고 이에 반발한 당원 다수가 탈당했다.
그것이 필자가 ‘요즘 페미니즘’에 대해서 찾아보게 된 계기였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도 들어가 보았고, 다소 거친 근본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들도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이후에는 혜화역 시위까지 가보게 되었는데 남성이라는 이유로 참석은 하지 못했다. 그들의 다소 과격한 목소리에 당황도 했고 걱정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기에 복잡한 마음이었다. ‘이 갈등이 생각보다 단순한 상황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페미니즘이 사회 전면에 이슈로 나타나면서 반발하며 나타난 움직임이었다. ‘아프리카 TV’에서, ‘페북’에 떠도는 ‘짤’ 한 토막에서, ‘남초 사이트’의 게시물 어귀에서 드러난 그 언어들을 읽었다. 심히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반발 작용이라거나 논쟁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는 일부 ‘쿵쾅녀(페메니스트의 일부 극단적 언사 비판하는 혐오 용어. 외모가 부족한 여성들의 열등감을 비판하는 말이다)’들의 ‘82kg 김지영’이라는 이야기로 매도되어 있었다. 편견에 가득한 정도가 아니라 어딘가 모를 자신의 분노를 힘껏 쏟아 붙는 느낌이 들었다.
논리학에서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상대의 논리를 일부로 혹은 오해로 허접하게 만들어놓고(일종의 허수아비 세우듯) 비판을 열심히 하는 것을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라고 부른다고 한다. 속칭 ‘여혐’ 혹은 ‘안티-페미니즘’의 목소리들을 들여다보면서 필자는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를 떠올린다. 그것이 너무나 취약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라기보다는 증오의 분출 그 자체였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하는 학교와 교실에서 그러한 분출이 오롯이 나타나고 있었다.
교사로서 스스로 걱정하고 우려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페미니스트가 안 되면 어떡하지?”가 아니었다. 이견(異見)을 민주적인 태도로 다루지 못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두려웠다. 반지성과 편견으로 점철된 편협한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더라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은 충분히 가능하다. 토론은 민주시민의 가장 기본 자질이 아니던가. 게다가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볼 때 젠더 이슈에 임할 때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온기는 반드시 갖추어야할 태도라고 생각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혁신학교 운산고 특유의 동료성에 기반 하여 시작되었다. 도표로 그 대강을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1) 역사과(2학년 세계사) - “페미니즘의 역사 그리고 여성사 쓰기”
가) 수업의 취지
‘사실(事實)’이 가지는 힘과 무게는 놀랍다. 페미니즘 같이 논쟁적인 주제를 수업으로 다룰 때 역사는 그 자체로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근대여성인권사라고 할 수도 있을 ‘페미니즘사’는 여성학에서도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수업의 소재로서가 아니라 젠더적 접근 자체가 세계사를 바라보는 눈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각 교과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것이 즉흥적인 시도는 아니었을까? 최근 현장에서는 학생 중심 수업이라는 차원에서 단위 수업을 내밀하게 디자인하는 한편, 적극적인 접근을 통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이른바 교사 별 교육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도들이다. 본 교사의 경우,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과정을 나름의 관점과 접근을 통해 주제식 세계사 교육과정의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었던 터였다.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에 참여하면서 역사과 수업을 보탠 것은 그러한 과정 위에서 이루어졌다. ‘테마-여성’이라는 제목으로 디자인된 14차시 분의 수업들은 계기 수업이나 특별 수업의 형태가 아닌 세계사를 선택한 운산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5)
5) 2018학년도에 고등 세계사 과목을 담당하게 되면서 가진 큰 고민이 있었다. ‘서양 중심/중국 부중심의 구성’, ‘단순한 각국사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나열 중심 구성’이라는 건 세계사 교육을 고민하는 역사교사들의 복잡한 숙제다. 세계사를 좀더 유의미하게 아이들과 나눌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세계사 교육과정을 몇 개의 테마로 재구성하여 수업을 진행한 이유다. 이 결과는 나중에 별도의 글로 정리하여 수업사례를 나누고 싶다. 학기 별 재구성 주제는 아래와 같다.
- 1학기(전근대사) : 테마-제국, 테마-세계종교, 테마-위기와 개혁, 테마-융합과 공존
- 2학기(근현대사) : 테마-동서교류, 테마-혁명, 테마-여성, 테마-전쟁과 평화
19세기에 일어난 여성‘권리’운동인 ‘제1의 물결(The First Wave)’, 20세기의 여성‘해방’운동인 ‘제2의 물결(The second Wave)’,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나 페미니즘의 저변을 넓힌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절반’이 역사 속에서 그만한 몫을 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의 역사가 있었다. 2학년 세계사 수업 ‘테마-여성’에서도 그 역사를 수업으로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구체적인 차시 구성은 아래 표와 같다.
나) 차시 별 세부 구성
① 첫 차시 - ‘테마-여성 오리엔테이션’
: 우리가 학급 친구들이 알고 있는 여성 역사 인물의 수를 나누어보고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면 왜 적은지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젠더’와 ‘섹스’ 개념적 차이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배울 주제들에게 대해서도 나누고 교사와 학생 각각의 입장에서 본 주제의 학습에 대해 기대한 바도 나누어본다.
② 두 번째 차시 - ‘여성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혁명‘이었나?’(올랭프 드 구즈)
: 프랑스 혁명 당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다 희생된 페미니스트 올랭프 드 구즈의 삶을 공부하고, 자유-평등-형제애를 추구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여성의 입장에서 그 이면을 성찰해본다.
(활동) 1.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비교
2. 올랭프 드 구즈의 명언 오늘날 관점으로 바꾸어 보기
3. 교과서 속 ‘프랑스 혁명의 의의’ 서술 비판적으로 평가해보기
③ 세 번째 차시 – ‘여성 참정권을 위한 그녀들의 싸움’(서프러제트)
: 영국의 여성으로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온 몸으로 펼친 ‘서프러제트(Suffragette)’들의 삶과 ‘메리 울프턴크래프트’의 주장을 공부하고 여성권리운동으로서의 제1의 물결 운동의 의미를 성찰해본다.(영화 서프러제트 일부 활용)
(활동) 1. 메리 울프턴크래프트의 주장과 ‘위스퍼’ 생리대 광고의 연계
바로 이 광고! <여자답게(위스퍼) https://www.youtube.com/watch?v=kYoZcGQaEVA
2. 에밀리 데이비슨의 죽음에 관한 글쓰기
3. 여성이 참정권을 가진다는 것에 대한 의미 나누기
④ 네 번째 차시 – ‘성의 해방과 자기 결정권을 외치다(68혁명)’
: 68혁명의 흐름에 나타난 여성해방운동(제2의 물결)의 주장과 그에 따라 일어난 임신중단 요구를 위한 사회운동, ‘보비니 사건’ 등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쟁점에 대한 글쓰기와 토론을 진행한다.
(활동) 1.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과 그 실천 탐구
2.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대한 비교
3. 68혁명 당시 임신중단 요구와 우리나라 모자보건법(+토론)
⑤ 다섯 번째 차시 – ‘차별 없에 선 그녀들의 이름, 한국의 여성운동(한국근대여성운동사)’
: 한국 근현대에 여성운동의 동향과 관련된 인물들의 삶을 텍스트로 읽어보고 직소활동을 통해 서로 나누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활동) 한국 근대여성운동가 4명(나혜석, 이태영, 동일방직 여공, 권인숙)에 대한 텍스트를 읽고 모둠 단위로 직소활동을 통해 서로 내용을 나누고 협동적 배움을 체험하는 활동.
⑥ 여섯 번째 차시 – ‘어제의 역사, 오늘의 논쟁, 미래의 인식’
: 2018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가수 산이의 노래(곡명 : Feminist)의 가사를 분석하고, 이에 관한 논란과 논쟁을 매개로 서로 토론하는 시간.(이슈가 된 후 실시간으로 제작된 자료다)
(활동)
1. 산이의 곡, ‘페미니스트(Feminist)’의 가사를 모둠활동을 통해 분석하고 가사 별로 교사가 던진 발문과 질문을 중심으로 펙트체크 및 쟁점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 활동 진행
2. 산이의 곡과 관련된 논란을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현상과 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3. 뮤직비디오 <I'm not racist> 1)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1) 미국의 힙합가수 조이너 루카스(Joyner Lucars)의 곡.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쓴 곡으로 1절은 백인의 시점에서, 2절은 미국 내 유색인종(‘흑인’) 시점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백인’과 ‘흑인’ 간에 논쟁적/대립적 구조로 연출된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었다. 산이의 노래가 논란이 된 직후, 산이는 이 노래를 간접적으로 거명하며 자신의 노래가 ‘여혐’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혐주의자’들을 화자로 삼은 노래였다고 해명하였는데, 많은 이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갈등의 본질을 다루는 방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조이너 루카스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다음과 같은 멘트로 끝을 맺는다. “우린 인종으로 구별되고 종교로 나뉘고 정치계에 의해 분열되고 소득계층으로 나뉘기 이전에 모두 인간이었다.”
⑦~⑩ 일곱 번째 차시(4차시 분) – 여성삶 인터뷰X여성사 쓰기
: 우리 주변의 여성들(어머니, 누나, 학원 선생님, 할머니 등 여성 지인)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나눈 후, 이를 각각 역사적 서술로 정돈하여 여성사 쓰기를 하는 활동. 앞에서 배운 여성인권사를 각자의 삶 속에서 녹여 해석하고 나누는 활동이며, 수행평가에 해당하는 프로젝트 활동이기도 하다. 4차시 분을 거쳐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아래는 ‘여성삶 인터뷰X여성사 쓰기’ 활동의 진행 과정과 해당 과정에 따른 평가(수행평가) 항목이다
⑪ 여덟 번째 차시 – ‘테마-여성’을 마무리 하며
: ‘테마-여성’의 공부를 모두 마치고 서로의 소감과 느낀 바를 신뢰서클 대화의 형식으로 나누는 시간. 수업에 대한 평, 공부하다 인상 깊거나 불편했던 바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워낙 논란이 많았던 주제이고 서로 가졌던 감정적 불편함도 해소할 필요가 있었기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활동)
1. 해당 차시 배움책 텍스트(교사가 쓴 페미니즘 수업 후기)를 읽고 해당 글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뢰서클 시작
2. 페미니즘 탐구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모두 각자 발언하며 신뢰 서클 대화로 이야기를 나누기
3. 대화를 들으며 친구들의 내용을 기록하고 마무리에 관한 구체적 소감을 글쓰기
2) 국어과(2학년 고전) - “읽고 토론하는 페미니즘 수업”
가) 수업의 취지
수업을 진행한 교사들(국어교사 박경주, 이정우, 전수경)은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논쟁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여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교실에서 표현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읽고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우리들의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하여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응할 줄 아는 괜찮은 사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고민하고 논쟁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기를 바라며 수업을 준비하였다는 것이다.
나) 수업의 흐름과 구성
1) 단위 차시 별 흐름
읽기 → 쓰기 → 말하기 → 읽기 → 쓰기 → 토론 준비하기 → 토론하기 / 청중 기록하기 → 인터뷰 후 보고서 제출
2) 수업 과정에 따른 텍스트 목록
가) 경험 말하기 : 여자로 또는 남자로 18년을 살아오면서 ‘평등하지 못하다, 불편하다’라고 느낄 때가 언제였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말하는 시간. 한 반에서 1명의 여학생이, 3~5명의 남학생이 그런 경험이 없다고 했다.
나) 읽으며 내용 이해하기 : 고전 교과서에 실려 있는 『제2의 성』제2부 제1장 유년기의 첫 문장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짐.
다) 읽고 쓰고 말하기 : 여학생들은 여자의 입장에서 쓴 단편소설「현남오빠에게」를, 남학생들은 아들의 입장에서 쓴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1장 어머니와 아들을 읽고 스토리,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여 쓴 후 등장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시간을 가짐.
라) 읽으며 정리하기 : 여학생들은『소녀, 설치고 말하고 행동하라』(6장 제외)를, 남학생들은『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4장 제외)를 읽으며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짐. 읽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는 부분과 이유,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과 이유, 토론거리 등을 적도록 했다.
마) 토론 준비하기 : 모든 학생들은 토론주제를 1개 만든다. 그 중에서 반별 주제 2개를 정한다. 주제마다 토론자 희망 학생을 받는다. 주제별로 모인 학생들끼리 찬성팀과 반대팀을 정하고 각 팀 별로 단톡을 만들어 토론 준비함. 토론주제를 정한 후, 토론 준비를 해 오도록 ‘토론계획서’를 나눠준다. (토론 준비 기간은 주말 포함 7일 정도 소요)
* 학생들이 정한 각 반 별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반
①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한 평등이 가능할까?
②외모가꾸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자기 만족인가 사회 시선인가?
▢반
①구조적으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것과 늦은 밤 여자와 가는 동선이 같은 것은 배려가 부족한 남성의 잘못인가?
②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반
①여성의 몸과 권리를 위해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②현재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고민하고 논쟁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수업을 준비했다’. 운산고 국어교사 3명과 역사교사 1명의 동료성이 향한 이상은 이러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상이 마냥 그대로일 수는 없다. 본고의 ‘3장-성찰’에서 후술하겠지만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은 다양한 형태의 저항과 마주해야 했다. 저항의 과정을 겪어내는 교사와 학생은 그 이유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괴로워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수시로 만나며 서로의 상처를 돌보고 성찰의 자리를 이어갔다. 그 결과 수업의 장치로 구안한 것이 ’내 곁의 여성 인터뷰 활동‘과 ’페미니즘 수다회‘였다.
“너희들, 그렇게 답답하고 반발심이 크면 ‘매갈’ 만나보지 않을래?” 아이들에게 교사들은 당돌한 제안을 했다. 페미니스트를 학교로 초대해 한번 대화해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페미니즘 수다회’였다. ‘수다회’라고 이름 붙인 것은 서로 평등하게 대화해보자는 취지를 담은 것이었다. 페미니즘 탐구 수업의 대미를 장식한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은 논쟁적 주제를 교실 안에만 가두지 않고 직접 마주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였고 학교와 시민사회&학계가 만나 수업을 더욱 풍성하게 이어가보고자 한 아이디어였다. 구체적인 개요는 아래와 같다.
가) 페미니즘 수다회 개요
- 행사명 :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페미니즘 수다회
- 일시/장소 : 2018년 12월 26일 / 운산고등학교 시청각실
- 참가자 : 운산고 학생 및 교사 160여명
나) 강사(대담 패널) 및 섭외
2) 페미니즘 수다회의 지향점
가) 아이들의 질문과 문제제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수다 : 아이들의 질문과 문제제기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야기 주제를 잡을 것. 아이들이 느끼기에 올바름의 강요나 당위적인 훈육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사전에 받은 120여개의 질문을 유목화하여 분류한 후 패널들에게 보냈고 수다회 행사 당일에는 이 질문들을 나누며 질의 응답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진행했다(아래 그림 참고).
나) 계몽이 아니라 설득으로 : 일방적인 강연이 아니라 토크콘서트 및 열린 토론회의 형식으로 진행할 것(강연 패널 분들께도 계몽적인 말보다는 설득의 어조로 다가가 주기를 부탁하였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임)
다) 각자의 커뮤니티와 푸념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자를 상대로 설득하고 합의하는 민주적인 대화를 지향한다. 이를테면 아래의 경우가 그렇다. 학생들은 한국 페미니즘의 ‘변질’(‘워마드’와 같은 극단적 언사를 나타내는 페미니스트들의 등장을 아이들은 변질이라고 표현했다)에 대해 많은 질의를 했는데, 아래와 같은 대화를 통해 이러한 측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상호의 입장을 확인한 후 대안적인 모색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의 입장만을 쏟아 붓기 바쁜 인터넷 커뮤니티의 ‘소통’보다 실제적인 토론이 더 민주적인 대화에 가깝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J학생(남)| 지금 질문의 취지가 ‘페미니즘의 변질’ 문제였잖아요. 그런데 선생님들께서 극단적인 페미니즘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똑같이 여자와 남자가 피해를 받았을 때 어느 한쪽에 조금 더 관심이 가냐? 발 빠른 대처가 있었냐” 이런 이야기를 하셔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친구들이 한 질문의 의미는 ‘우리나라 페미니즘이 예전 같지 않잖아. 본질에서 벗어났잖아’라는 것이었잖아요.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권김현영| 그럼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변질됐다고 한다면 ‘무엇이 변질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줘야 그것이 변질인지 아니면 어떤 식의 필연인지 하는 설명이 될 것 같은데요. 어떤 걸 변질이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질문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안 해줘서 혹시 해줄 수 있다면 좀 본격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더 될 수 있지 않을 까요? 앞서 질문을 던져주신 분들에 어떤 걸 변질이라고 생각했는지?
라) 페미니즘 수다회에서 다룬 구체적 쟁점들(대표적인 몇가지만 제시)
○ 한국 페미니즘의 ‘변질’(워마드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 한남 등 혐오 표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입장은 무엇인가
○ 여성은 왜 주체적임을 자임하면서도 약자로서 보호받으려고 하나
○ 군대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총제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 페미니즘이냐 이퀄리즘이냐
○ 페미니즘은 대안적 운동인가 혐오인가 : 강남역 살인 사건의 경우
3) 페미니즘 수다회의 의의
수다회는 매우 열정적인 토론장이었다. 민주적 공론장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행사 중 주된 문제제기의 주체는 남학생들이 위주였다. 여학생들은 그러한 갈등적 대화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빛이 빛나고 적극적으로 호응해 가던 여학생들의 모습을 필자는 기억한다.
패널들은 학생들이 젠더 이슈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숨결이 살아있는 토론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논쟁적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는 학자 권김현영은 논의의 맥락을 잡아주고 깊이있는 화두로 대화를 이끌었다. 대학생이자 페미니즘 교지를 제작하는 ‘석순’의 편집위원들은 ‘여대생’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의 현재와 실천에 대한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래는 권김현영의 소감 중 일부이다.
(앞 부분 생략) 남학생들의 뜨거운 질문 열기 속에서, 몇번 갈등한 순간이 있었다. "어떤 얘기"를 하면 아마 논쟁을 정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스카이캐슬의 이태란이 염정아에게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어? 선지팔던.."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이태란의 정의로움은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말을 하면, 아마 이 공간에서 교육은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리겠지.
그럼에도 여학생들이 질문하지 않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 상황을 확실히 마무리짓고 넘어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끝까지 망설였다. 그게 맞는 일이었을까는, 아직도 모르겠네. 페미니즘 교육 방법론에 대해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 2019년 내내 하게 될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이건 내 고민이고, 행사 자체는 문순창 선생님의 훌륭한 기획과 진행,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적절한 사례와 고민을 나눠준 석순분들, 그리고 끝까지 집중하고 활발하게 참여해준 학생들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행사가 끝나고 찾아온 페미니즘에 동의하는데 무섭기도 하다는 남학생 한 명과, 아까 내가 참았던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던 여학생 한 명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
4) 교과 문집 제작 < 그 여자 이야기>
○ 왜 문집인가 : 수업에서 아이들이 쓰고 나눈 말과 글은 이 시대를 또렷이 드러내는 기록이자 자료라고 할만 했다. 학생들의 생각과 주장, 그리고 인터뷰의 기록 등은 젠더적 쟁점에 대한 그들의 의식과 우리사회의 인식을 또렷이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혼자만 보기 아까워서, 활자로 남겨주면 좋을 것 같아 문집제작을 했다,
○ 문집의 구성
1장 – 교실로 젠더수업을 초대하기까지 : 수업의 취지, 구성안 등 페미니즘 교과 통합수업의 소개글
2장 – 여성삶 인터뷰x여성사 인터뷰 : 수업 시간에 남긴 인터뷰와 여성사 서술 중 일부를 묶어 수록
3장 – 페미니즘 수다회 : 페미니즘 수다회의 내용을 정리하여 수록
4장 – 에필로그 : 문집 맺는 글, 학생들 소감, 교사들 후기 수록
가. 올바름을 강요하지 않기 위하여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과 교사들은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다. 우선 불편함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주제 자체를 다루는 것이 불만이었다. 고전 시간에 선택하여 읽은 텍스트들에 대해 “우리가 왜 이것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식의 항변을 했다. 세계사의 경우는 조금은 나았는데, 역사의 경우 당시의 상황이 있고 하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이럴 때는 역사교육의 가치, 즉 사실 그 자체가 가진 힘을 느낀다) 다만 이 경우에도 페미니즘의 역사를 공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전에야 그랬지 요즘 시대에 무슨 남녀차별이냐”는 식의 우회적 반감에 가까웠다. 이들은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주제를 일방적으로 노출되고 싶지 않다고 시종일관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갈등에 직면해야 했던 학생도 교사도 모두 힘들었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며 이런 억압적인(?) 교육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항변한 학생도 있었다. 남학생에 많은 학급에서 수업을 이어가던 국어 교사(여교사)는 학생들과 언쟁을 벌이다 목소리 높은 남학생들의 비아냥과 공격어린 말에 상처를 받아 힘들어 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힘든 수업을 꼭 해야할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기도 했다.
마냥 아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 현실을 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완벽하게 상황을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 결과 필자와 동료 교사들이 성찰한 것이 바로 ‘올바름에 대한 강요’다. “우리도 모르게 페미니즘의 논리를 가르려고만 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다. 논쟁성을 띤 교육과 관련하여 많이 인용되는 ‘보이텔스바흐 협약 시민교육 3대원칙’에 보면 그 첫 번쨰로 “강압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한다”고 되어 있다. 교사의 교육적 당위가 교육적 효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는 효과를 논하기 전에 시민교육의 정당성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테마-여성’ 세계사 수업을 마치는 서클 대화에서 학생들이 이야기한 것은 매우 인상 깊다. 한 학생은 “페미니즘은 논쟁과 토론 그 자체여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페미니즘을 가르치려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생은 “선생님들이 페미니즘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찌 쉽게 반론을 펼수 있겠나”고 되묻기도 했다.
물론 수업을 준비한 교사들이 과연 정말로 ‘올바름을 강요’했는가는 또다른 문제다. 솔직히 이렇게 성찰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귀여운 ‘억울함’(?)이 자리하고 있다. “아니, 우리는 페미니즘 문학 텍스트를 주고 자유롭게 토론하게 했고(심지어 토론 주제도 아이들이 잡아보게 했고), 오늘날의 맥락과 세계사적 사건을 연결하여 제공하고 판단은 아이들에게 맡기는 글쓰기를 했는데, 강요라니!”라는 토로다. 아지만 ‘강요’란 인지적인 부분만 자리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감정의 측면도 자리한다. 교육철학자인 넬 나딩스는 논쟁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논쟁성은) 학생들이 사고를 시작하는 계기로서 ‘어떤 감정’을 갖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 인간의 행동은 인성과 인격보다 어떤 감정 혹은 마음에 의해 먼저 움직이게 되는 까닭에 ‘공감’을 통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 삶으로서 이야기하고 자신의 언어로 나누게 하자
교사들은 앞서 말한 성찰들을 바탕으로 다음 지점을 모색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의 경험과 맥락 위에서 출발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페미니즘 탐구 교과 통합 수업의 주요한 ‘턴-포인트’가 되었다. 그래서 수업 진행 중 두 가지 요소를 추가하게 되었는데, 이 두 요소가 수업의 절정이자 페미니즘 교육의 본질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첫째는 페미니즘 수다회의 개최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2장에서 언급한 바 있다. 아이들에게 논쟁의 주체와 만나게 하여 평등하게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평등한 대화’라는 지점이 중요했다. 만약 ‘강연회’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아마도 그것조차 주입의 한 장면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질문과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하게 구안한 점, 그리고 패널들에게 설득적 어조를 내밀하게 부탁한 것이 평등한 대화의 바탕이 되었다. 시민사회나 학계와 중·고등학교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시도 자체가 가진 장점도 물론 있었다. 아이들은 페미니즘을 지식 파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논쟁 그 자체로 이어갈 수 있었고 그것이 도약적인 배움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 곁의 여성 인터뷰’ 활동이다. 이는 ‘고전(국어과)’, ‘세계사(역사과)’ 두 수업 모두 마지막 단계로 추진했던 학습활동이다. 페미니즘 문학/비문학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거나 페미니즘의 역사를 배우는 것을 같은 기간에 어우러진 것은 분명 학습적 효과를 높이는 융합수업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일부 학생들에게 ‘교사의 의도성/정파성을 주입하려고 하는 시도’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내 곁의 여성 인터뷰’는 배움의 구조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심화시키는 활동이었다는 것에서 의미가 깊었다.
아이들은 이 활동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 배움의 주인이 되었다. 스스로 인터뷰할 사람을 고르고 인터뷰 활동을 했고 이를 나누었다. 대표적인 이야기들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박사과정 경험을 했던 딩크족 과외 교사 선생님”(학생 A, 女)
“학습지 교사로 일했던 비정규직 여성, 어머니의 삶“(학생 B, 男)
“포레스트 검프라 할 만한 억척스런 할머니의 인생”(학생 C, 男)
“혜화역 시위를 전부 출석한 20대 페미니스트 교회 언니” (학생 D, 女)
“태권도장 여사범님에게 듣는 여성 체육인의 삶” (학생 E, 女)
“아이 다섯을 낳아 키운 전업주부 어머니” (학생 F, 女)
다양한 삶의 사례를 나누는 과정은 다양한 시대와 인식들이 동시에 교차하는 과정에 놓이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사례는 처한 처지가 달랐고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입장도 조금씩 달랐다(심지어 인터뷰 속 한 할머니는 “(예전보다 편해졌는데) 요즘 여자들이 뭐가 힘들다고 거리에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각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오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함께 나눔으로서(그것도 일방적 발표가 아니라 모둠 단위로 순환하며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구조이기에)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자신만의 입장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다. 아이들의 언어가 곧 최고의 교재다
‘테마-여성’으로 진행한 세계사 수업에 마지막 차시는 ‘신뢰 서클’ 대화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워낙 갈등이 심했고 상처가 깊었던 과정이라 일종의 ‘속풀이’를 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였다. 본격적인 수업 소감을 나누기 전에 아이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텍스트(본래 수업 자체가 배움책 텍스트를 읽고 글쓰기 하는 형식이다)를 제공했다. 어찌보면 넋두리이고 해명에 가까운 글이었다. ‘선생님들이 왜 페미니즘 수업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점에서 보람되었고 힘들었는지’, ‘갈등이 깊었던 순간들에 대한 진솔한 마음들’에 이르기까지를 담은 글이었다.
그 글에서 아이들이 인상깊게 읽었다는 부분은 다음 부분이었다. 해당 배움책 학습지의 일부를 인용한다.
❙'인권은 피자 조각이 아니에요❙ 소감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인권은 피자조각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인권은 한 조각을 먹으면 내가 먹을 조각이 사라지는 피자 같은 것이 아니다. 장애인 차별 철폐를 주장한다는 것이 비장애인들의 권리를 뺏어서 장애인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며, 학생인권을 존중하자는 것이 교권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의 중간 중간에서 '여자가 우월하고 남자가 열등하며, 여자가 옳고 남자가 그르다는 식의 구도로 이 문제를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사실 이건 모든 인권 관련 이슈에서 되풀이해 온 논란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열병의 순간들도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다.
그럼 이렇게 되물을 친구들도 있을 것 같다. “일부 페미니스트(워마드 등)이 내뱉는 증오의 언어들과 황당한 논리를 어떡하고 페미니즘을 옹호하나요?"라고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다양하게 분화되는 중이다. 이제야 여성들이 자신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중이고 그것 은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는 중이란 뜻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층위와 수준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역사 속에서 확인하고 ’인정‘해야할 것이다. 흑백차별 운동의 초기에 얼마나 극단적인 흑인 차별 철폐 운동가들이었었던가? 말콤 엑스(Malcolm X, 1925~1965)라는 운동가는 백인들을 몰아내고 미국에 흑인 공화국을 세우자는 어마 무시한 계획을 세웠고 또 각지에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흑인 차별 철폐 운동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 목사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킹 목사의 논리와 실천이 말콤 엑스의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권운동사에서 말콤 엑스의 실천이 모두 다 폄훼되지도 않는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를 말하는 것일 테다. 4)
지금은 입보다는 귀가 우선해야할 시기 같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논쟁도 해야 한다. 논쟁을 하려거든 ‘메갈년’, ‘페미년’이라는 말 대신에 차라리 ‘너희의 주장은 페미니즘이 아니야’라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증오 대신 토론을 해야 하고, 욕설 대신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억압받는 당사자들 입장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친구들도 그런 멋진 민주시민이 도리 수 있기를, 그리고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친/여친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면 된다. 그게 페미니즘 수업을 준비한 교사로서의 가장 큰 보람일 테니까
4) 실제로도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인권 운동가들인 두 사람은 정 반대의 노선을 걸었다. 그 둘의 갈등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가 바로 <엑스맨(X-men)> 시리즈다. 1963년에 처음 발표된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에 해당하는 돌연변이들에 대한 입장과 관련하여 ‘재비어 교수’와 ‘매그니토 교수’의 대립이 주된 갈등 구도를 이룬다. 이는 앞서 두 흑인 인권 운동가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 글을 읽은 후 그것과 관련하여 수업 소감을 나누는데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진지하고 속 깊은 이야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두 학생의 이야기인데 다음과 같다.
○ “페미니스트 되는 건 도저히 싫지만, ‘개저씨(마초적인 남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는 안 될게요” : 학급에서 굉장히 마초적이고 ‘여혐’에 가까운 말을 자주 내뱉어 여학생들과 갈등이 깊었던 한 남학생의 말. 솔직한 마음이 느껴져 고마움이 큰 표현이었다.
○ “혜화역 시위? 그게 뭐가 그렇게 두려워? 난 이 사회가 더 두려워” : 평소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깊고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인 정체성이 강한 여학생이 남학생들에게 한 반문. 이 말을 꺼내면서 이 학생은 ‘리벤지 포르노로 목숨을 끊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남학생들에게 질문했다. 그 이후로 대화가 더욱 숙연해지고 서로의 감정을 살피는 대화가 이어졌다.
강화정(2019)은 본 수업사례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교사와 학습자 개개인이 수업 과정에서 인식하고 느꼈던 바를 나누면서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이를 인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동그렇게 둘러앉은 학습자들은 충분히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발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은 여성혐오와 관련한 자기 인식을 분명히 하고 다양한 생각의 차이를 마주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일련의 교수학습 과정은 호불호가 갈렸을지라도 여성문제가 학습자 자신의 문제로 훨씬 가까워졌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 강화정,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한국현대사 교육의 방안」, 부산대학교, 2019.
현장에서는 바야흐로 민주시민교육이 화두이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생태, 젠더 등의 주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 현장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민주적 제도나 관련 이슈를 학습해야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특정 이념이나 당위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동기(2018)에 의하면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자를 만드는 교육’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나 규범을 넘어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민주주의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자의 자유와 권리를 살펴보고 높이는 정치 주체를 형성해야 하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교육은 민주시민교육 그 자체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밖에 없다. 이번 수업 실천을 통해 새삼 다시 느끼게 된 점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교과 통합 수업을 함께 만들어 간 동료였던 한 문학 교사는 “세계사 선택 학급과 다른 학급은 뭔가 분위기가 달라요. 배움의 깊이도 차이를 크게 느껴요”라고 귀띔해주었다. 문학 수업에서 “왜 이런 페미니즘 텍스트를 우리에게 읽게 하느냐?”고 반발하던 학생들도 세계사 수업에서만큼은 “이건 역사고 실제 일어났던 일이잖아요”라며 자못 ‘쿨하게’ 응답해주기도 했다. 13) 세계사 시간에 페미니즘의 역사를 공부한 ‘세계사 반 친구들’은 문학 수업 시간에 더욱 풍성한 논거를 들어 글을 쓰고 토론했으며, 이후 마주했던 여러 관련 배움 프로그램(여성사 인터뷰, 페미니즘 수다회)에서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민주시민교육의 주제와 내용을 고민한다면, 젠더 이슈를 매우 매력적인 소재로 여길 수 밖에 없다. 성평등의 문제는 그 자체로도 교육적 의미를 가지지는 것이지만, 항상 삶의 현장 속에서 밀착되어 해석하고 공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큰 생명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학교 현장과 교육과정에서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현장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우리 역사교사들은 아마도 이에 대해 확답하기 어려울 듯하다. 서둘러 교육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도 많은 교사들이 이러한 시급함을 느끼고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다. 14) 이들은 각종 어려움과 번뇌를 피하지 않는 실천가들이다.
그런 점에서 본고의 사례가 읽는 이로 하여금 작은 영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분명한 것은 젠더 교육은 학생들과 교사들로 하여금 삶을 돌아보게 하고 서로 대화하게끔 인도한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학생의 소감은 이와 관련한 희망의 증거이기도 하다. 15)
13) 물론 이러한 반응은 보다 입체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해당 반응을 보여준 학생이 “그런데 이건 ‘옛날’ 일이고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남녀 차별은 없잖아요?”라고 되물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현재와 연계하여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을 인식하거나 단순 비교하는 것이 아닌 성찰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내면화하는 것임을 다시 생각했다.
14)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경기 고양시 소재 초등학교 교사들의 젠더교육 연구모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15)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실 저는 처음에 선생님이 되게 잘못 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사상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들었고 불함리 하다고 생각도 했고. 문학 시간(고전 시간)에 책읽을때만 해도 애들끼리 낄낄 거림녀서 이것에 대해 ‘드립치기’나 했었는데 수업을 계속 들으면서 쌤이 알려주고자 했던 본질을 어느 정도 알게된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페미니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언젠가 국민들 모두가 고정관념을 깨고 평등한 사회가 오는 날이 빠리 왔으면 좋겠다.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저희 애들끼리 욕하고 놀리기 바빴는데, 수행평가 저희가 쓰신 것만 봐도 쌤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알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이런 수업 광명에서 저희 밖에 못하는 거 잖아요. 수고하셨어요.”
첨부자료 알림 : 고등학교 세계사 주제별 재구성 텍스트 중 '테마-여성' 차시 별 배움책(국어 교과 자료 포함) + 교과 문집 '그 여자 이야기' 파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