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100돌 맞은 3.1 운동, 어떻게 가르칠까

3.1 운동 100주년 기획 1-1 : 역사교사 리서치

3.1 운동 100주년 기획 1-1 : 역사교사 리서치


100돌 맞은 3・1운동,

어떻게 가르칠까



>>편집부 정리





3・1운동 100돌을 맞은 2019년. 교사 30여 인에게 3・1운동 수업 기획 의도와 고충을 물었다. 경기, 경북, 경남, 광주, 대구, 대전, 서울, 전남, 제주, 충남, 충북 등 다양한 지역에서 주로 5~15년 차 초・중등 교사들이 설문에 답변하였다.(초등교사 11인, 중등 역사교사 18인.) 데이터화 하여 일반화하기에는 표본이 작긴 하지만, 출연 빈도가 높은 답변을 중심으로 하여 3・1운동 수업 고민을 읽어 보았다. 답변에는 ▲그간 주목되지 못했던 지방, 젠더, 어린이 관점의 맥락 ▲‘민족적’ 3・1운동의 방향 ▲‘성공하지 못한’ 3・1운동의 지향 등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 묻어난다. ‘촛불 시대’ 이후 3.1 운동 수업에 대한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 그것이 선생님들의 고민을 정리해 본 편집부가 드리고 싶은 제안이다.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었던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나에게는 외눈박이 전문가가 필요합니다.”라고 외쳤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이 사건은 대체로 이렇지만, 이런 측면에서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런 측면에서 저렇게 볼 수 있다’는 보좌관과 같이 골치 아프게 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결론을 짓는 단 하나의 확실한 정보만을 제공해줬으면 하는 트루먼의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실은 우리의 삶은 여러 복합적인 정보가 섞여 있기에 외눈박이의 관점으로만 결정하기에는 어렵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역사 교사들은 학생들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존재다. 현생도 결정을 내리기 힘든데, 100년도 더 지난 ‘쿰쿰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다양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존재라니.

올해 100돌을 맞은 3・1운동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관점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특히 촛불 시대를 함께 겪어온 학생들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3・1운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교사들의 고민도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3・1운동 수업에 대한 고민은, 현재 시민 사회의 맥락을 따라가며 종횡무진 폭이 넓어졌다.



◇ 내 곁의 평범한 영웅을 발견하다

‘유관순’ 그리고 ‘김구’. 3・1운동 그리고 항상 뒤따라 나오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가르칠 때에 등장하는 대표 ‘위인’들이다. 특히 유관순은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논란이 될 정도로 3・1운동을 상징 하다시피 하는 인물이다. 사진 속 유관순의 부은 얼굴은 모진 고문을 한 일본의 잔혹함과 그의 숭고한 항거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은 이런 ‘열사님의 희생정신’에 감탄하며 존경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영웅의 특별함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역사 교사들은 3・1운동이 유관순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들이 참여한 것이며 이들 대중의 힘에 대한 자각이 이후 독립운동과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간 힘이 되었음을 소개하려 노력하였다. 특히 학생들의 지역적, 경제적, 젠더적 요건 등을 고려하여 대중을 ‘덩어리’로 소개하기보다 그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었던 선택을 한 사람들로 조명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3・1운동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월 1일에만 있었던 운동이 아니며 어떤 계층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에 참여했는지, 또 시간이 흐르면서 운동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설명하려고 했어요.”

“(만세운동을 직접 재현해 봄으로써), 3・1운동은 소수의 영웅적인 독립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모아져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수업 후 학생들이 ‘이름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여주어 의미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근무하다보니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소개하며,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항쟁이었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교과서가 주로 왕조, 수도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지방 학생들은 ‘우리와 거리가 먼 역사’라고 느낀 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지역 3・1운동을 소개하니 학생들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고 그 지역에 답사를 가자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3・1운동을 계기로 정치・사회적으로 의식이 깨어난 대중이 사회 변혁의 근간으로 등장하였음을 알리려 했습니다. 특히 농민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수업 고민에 근거하여 역사교사들이 원하는 수업 자료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연령, 지역, 젠더, 계층 성향 등이 고려된 보통 사람들이 참여한 궤적을 발견하는 수업 자료에 대한 갈망이 이어졌다.



“초등학생들은 지역사와 관련하여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역에서의 3・1운동 자료가 개발되면 좋을 것 같고, 성인이 아닌 비슷한 또래들의 이야기나 고른 성별의 독립 운동가를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기미 독립선언서가 조금 어렵더라고요. 현대식 버전의 독립선언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독립선언서 외에도 학생의 수준에 맞게 편집되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험형 자료가 개발되면 좋겠습니다.”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계획한 사람들이 어떻게 실행할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면 더욱 실감날 것 같아요. 중학생들은 그런 구체적인 과정을 궁금해 하기도 하더라고요. 또 지도상에 3・1운동이 발생한 순서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학생들이 지역에 전파된 과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우리 지역 주민들의 경험담을 담은 기록이 유용할 것 같아요. 지역 단위의 참여 인물들에 대한 양적, 질적 자료들 모두 효과적인 수업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3・1운동과 관련된 공신력 있는 각종 통계자료 외에 당시 구호와 주장을 보여주는 실제 격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의 생생한 요구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배포된 자료들을 수업 자료로써 확보하고 싶다는 요구와 활용법에 대한 문의도 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수업에 활용하려니 자료를 찾기에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3・1운동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영상 등이 함께 제공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이 있기까지의 움직임을 표현한 동영상 자료와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동영상 자료가 참 좋더군요. 수업용으로 배포된다면 수업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여전히 뜨거운 ‘민족주의’들

3・1운동 주체에 대한 다원적 관심에 대한 요구와는 조금은 다른 맥락에서 여전히 뜨거운 ‘민족주의’들에 대한 고민도 여전하였다. 3・1운동 자체가 조선민족 대 일본민족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3・1운동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학생들이 반일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제일 곤란해요. 당시의 일제와 지금의 일본을 동일시하여 발언할 때요. 특히 일본을 욕하거나, 똑같이 당해야 한다거나 저주를 내리는 듯한 발언을 할 때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분노할 때가 3・1운동에서 평화 시위가 무력시위로 나아가는 데에는 일제의 잔인한 보복이 개입되었다는 점을 설명할 때에요. 그러면서 ‘우리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듯이 그들의 인권도 같은 맥락에서 취급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을 때에는 정말 뜨악하였습니다.”

“3・1운동 수업 중 유관순을 가르칠 때에는 그가 지향했던 바보다는 일본의 잔혹한 고문에만 초점을 맞추는 학생들도 많아 일본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소재가 될 때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현대사 수업 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학생들이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학급에 다문화 학생들도 어느 정도 혼재돼 있어 이러한 적대적 반응은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 교과서의 서술이나 교사들의 설명 방식, 기존 교수 학습 자료들에 그런 의식들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와 피아의 대결’ 구도가 국가주의를 고착시킨다는 수업 관찰도 있었다. 3・1운동 당시에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중들이 각자의 열망을 담아 참여하였으나 현재의 맥락에서는 자칫 비뚤어진 애국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너무 숭고한 희생으로 인식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며 (수업 중에) 민족주의, 국가주의 경향이 강화되는 분위기가 나타날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유관순’에서는 일본군이 잔학무도하게 표현되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오히려 더 키우는 수업이 될 때도 있었다.”


전통적인 대결 구도 및 애국주의에 대한 고민은 제시된 답변 외에도 여러 답변에서 관찰되었다. 그럼에도 애국주의를 넘어선 교육은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에 따른 적개심은 아주 심플하게 설명력을 가진다. 그렇지만 ‘약자이기까지 한 우리가 우리의 이익만이 아닌 다른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논리는 한 번 더 비틀어 생각해야 하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다. 그렇기에 어렵다. 역사교사들은 애국주의를 넘어서서 어떻게 교육하고 있을까.



“저는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편지와 같이 ‘외부에서 보는 3・1운동’을 보여주는 자료를 수업에 소개하였어요. 외부의 시선을 통해 보다보면 자유, 평화 등의 가치가 더욱 객관화되어 3・1운동의 의미를 자리매김하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제로 하생들도 3・1운동이 아주 옛날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가치를 중시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3・1운동을 민족운동의 차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관점에서 3・1혁명을 재평가를 해보도록 합니다. 그리고 3・1운동을 단절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구한말부터 이어진 민족운동의 한 흐름으로 맥락화 시킵니다. 학생활동 과제에 ‘3・1운동인가, 3・1혁명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대답한 학생들이 60%이상이었습니다. 3・1운동에 대한 확장된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는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평화, 자유, 인권 등.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사뭇 익숙한 개념으로 3・1운동을 맥락화 하자는 요구는 계속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 그렇지만 익숙한 교과서의 구도를 깨고 새로운 맥락을 발견하는 역할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개별 교사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3・1운동을 외부의 시선으로 객관화 하는 것, 민주주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 등이 수업 아이디어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나 촛불 시대를 지나온 학생들에게는 3・1운동에 대한 사고를 확장할 조건이 마련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국가 없이 민족만이 존재하였던 1919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구한말 민족운동의 맥락 역시 놓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기존 민족운동의 맥락과 새로운 민주주의 관점을 적절히 안배하면서도 사실과 가치, 그리고 인간과 구조를 함께 가르칠 수 있는 역사교육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



◇ ‘실패’를 기억하는 방법

3・1운동을 가르칠 때에 교사들이 ‘힘 빠지는 순간’은 학생들이 ‘평화와 폭력’, ‘성공과 실패’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을 드러냈을 때이다. ‘폭력은 어느 순간에도 나쁜 것이다’라거나 ‘3・1운동은 결국 실패한 것 아니냐’에 대한 인식이다.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일본의 무력에 의해 제압되면서 실패한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평화적이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3・1운동 과정에서 폭력적인 시위도 있었음을 소개했는데 학생들이 폭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화, 폭력, 성공, 실패 등 여러 개념들이 혼재되어 나타난 역사 인식은 3・1운동에만 집중된 것만은 아니다. 4・19 혁명을 ‘미완의 혁명’으로 부르며 ‘5・16 군사 쿠데타(차마 혁명으로는 부르지 못 하겠다.)’가 이를 성공(완성)시켰다는 주장에서부터, ‘5・18 민주화운동’에서 시민군 측이 계엄군에 행한 ‘폭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조명하는 시각까지. 폭력과 성공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변주하여 들어오는 과제들이며 교사들이 수업 중에 계속하여 마주하게 되는 시각들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교사들은 여러 과제에 마주하게 된다. 어느 때에는 수업 속 학생들의 직접적인 반응 뿐 아니라 사회 분위기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에 적극 반응하며 움직여야 하다보면 어느 때에는 힘을 받기도 하지만 어느 때에는 풀썩 꺾이고 만다. 1920년대의 어느 소학교의 교사는 ‘교사를 할 바에야 구루마를 끌고 말 일이다’라고까지 발언했을까. 그럼에도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가며 역사적 사건 속에서 다원적 주체를 발견해내는 한편, 민주주의, 평화, 인권 등의 맥락을 찾아내고, 민족주의를 어떻게 맥락화 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 지금의 수업 흐름이 조성 되었다.

그럼에도 그 흐름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폭력인지 세밀하게 주목해야 하며, 또 그에 따라 폭력을 볼 것인지 목적을 볼 것인지가 달라진다. 그리고 사건을 전체의 흐름에서 맥락화 시키며 실패로 자리매김 할 것인지 구성원이 주는 의미로 자리매김할 것인지가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오늘 논한 3・1운동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3・1운동을 본 사람들 중에는 이광수도 있었지만 다른 의미를 발견해 낸 신채호, 박헌영, 가네코 후미코 등도 존재했다. 무엇을 보고 수업 계획을 할 것인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역사교사들의 고민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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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에디터 : 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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