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6차 세미나)
>>남한호(경북 의흥중학교)
지난 수년간 이어진 학교 교육과정의 혼란상은 점입가경이다. 2011년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은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교과서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맞추어 수업을 하였다. 1)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3학년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수학과 과학과목은 2006년 부분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이 이루어졌으며, 그 외 교과목은 1997년 개정된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이 이루어졌다. 결국 세 종류의 교육과정이 한 학교에 섞여 있는 셈이었다.
이 혼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의 전면적인 교육과정 개정과 역사과의 국정화에 따른 학교의 혼란은 2011년의 혼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결국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였다. 총론과 역사과를 제외한 교과 교육과정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18년부터 각급 학교에 적용되었다. 역사과는 교육과정의 과거회귀적 내용과 국정화 폐기의 후속 조치로 ‘역사과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개정에 따른 검정 역사교과서 개발·적용 일정’을 발표하여 2020년으로 교육과정과 검정 역사교과서 적용시기를 연기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학교 현장에서는 2015 교육과정 총론과 교과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과만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 논의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2015 역사과 교육과정이 개정고시되고 난 뒤의 교육과정에 대한 논점은 ‘한국사’에 집중되어 왔다. 과도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역사’=‘한국사’의 관점에서 역사과 교육과정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이러한 관점은 2015 역사과 교육과정 논의 과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사 교육의 위기’는 늘 거론되어 왔던 문제였다. 지금까지 다수의 연구자들이 세계사 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고 제시해왔다. 문제는 기존의 교육과정 개발 원리의 틀을 바탕으로 수능을 중심으로 한 현실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사 교육의 위기를 파악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 글은 역사과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을 논의하는 출발점을 찾는 데 목적을 두었다. 특히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과도기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이루어질 교육과정의 개정에 대비해야 하며, 역사과 교육과정의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에서 다룰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모든 논점을 다 거론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교육과정 개정에서 역사교사의 역할을 재고할 수 있는 논점으로 한정하여 제안의 형식을 빌려 제시하고자 한다.
1)수학과 영어교과서는 2006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되었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교육과정을 관리하기 위한 정당성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첫째, 국가교육과정은 대의적 관리체제의 필요성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이는 국가교육과정이 법률에 따라 주어지는 국가의 교육과정 결정 권한과 관련이 있다. 즉, 국가교육과정이란 ‘국가가 정하는 교육과정’의 압축적인 표현이다. 국가가 정하는 대상은 교육과정의 편제와 교과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의 총론과 각론은 국가가 법률에 의해 국민의 의견을 대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결정하는 것은 단위 학교에서 어떤 교과를 배워야 하며, 그 특정 교과를 몇 단위에 걸쳐 가르쳐야 하는가와 그 특정 교과의 내용은 무엇으로 삼는가에 대한 것이다.
둘째, 국가는 교육의 공공성을 위해서 국가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권한을 가진다. 국가는 공교육이 적용되는 모든 학교에 공통의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셋째, 기회의 균등이라는 면에서 국가는 국가교육과정의 편성ㆍ운영권을 가진다. 국가는 애국심의 고취와 같은 국민교육의 목적에서 국가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모든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의 평등성을 위해서이다. 좋은 교육과정은 국가가 충분한 인력과 재원을 투입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문제는 국민이 국가교육과정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2)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가교육과정은 좋은 교육과정인가? 국가교육과정의 연구·개발 체제를 검토한 연구에서는 국가교육과정의 개정이 설계 중심의 연구 개발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3)
현재 교육과정은 교육부장관이 개정 발의의 주체이다. 교육과정 개정에 필요한 인적자원이나 예산, 기간 등의 결정권은 교육부에서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교육과정 개발은 총론 시안 연구, 총론 후속 연구, 교과 교육과정의 개발, 교과서 개발 등으로 이어진다.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적용시기를 염두에 두고 개정이 발의되기 때문에 각론과 교과서의 개발은 매우 제한된 기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 때문에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각론, 즉 교과교육과정을 개발할 때에는 대체로 정해진 개정 방향에 따라갈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누가 교육과정의 방향을 결정해 왔을까? 제1차 교육과정에서 제3차 교육과정까지는 문교부 편수관이 개정 작업을 이끌어 왔다. 4) 문교부 편수국의 편수관들이 교육과정개정을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기초 연구와 초안 작성을 직접 담당했으며, ‘교수요목제정심의회’ 등의 기구를 활용하여 교육과정을 마련하였다.
1960년부터 ‘교육과정심의회’가 교육과정 제정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고 이에 관한 조사 연구를 하는 기구가 되면서 제3차 교육과정에서는 교육학자들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교육과정심의회의 위원은 법적으로는 문교부 장관이 위촉하여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수국의 담당 편수관들이 각 교과별로 교육과정 개정 연구위원을 위촉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편수관들은 여전히 교육과정 개발에서 핵심적이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2) 서열관, 「국가교육과정은 여전히 유의미한다-국가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것의 의미와 한계」, �우리교육�, 2008, pp.45~46.
3) 김재춘, 「국가 교육과정 연구·개발 체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제7차 교육과정 연구·개발 체제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연구�20-3, 2002.; 김성자, 「역사 교육과정 개정 절차와 내용구성에 대한 연구」, 서울대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3.
4) 교수요목 시기는 미군정청 산하 ‘교수요목제정위원회’을 구성하여 교수요목을 제정하였다.
1977년 교과서 검정 관련 편수관들과 교과서 출판사 사이에 비리 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편수국을 해체하였다. 대신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업무를 전문 연구기관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교육과정 연구 개발을 한국교육개발원이 위탁ㆍ수행하게 되었다. 5) 이후 교육과정 개발 업무는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업무, 교육내용의 선정과 조직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교육과정 개정 시안의 연구 개발을 별도의 연구 기관 또는 연구위원회에 위탁하는 정책은 제4차 교육과정 개정부터 시작되었다. 교육과정 연구와 개발을 위한 위탁 기구는 1998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교육과정 연구·개발 기능이 이관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교육과정의 개정이 사회와 학문의 변화에 따른 개정의 필요성에서 전적으로 비롯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교육과정의 개정 주기는 제5차 교육과정 개정부터 점점 빨라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과정의 개정은 제4차 교육과정 개정까지 약 10년을 주기로 진행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2007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기간을 제외하면 짧게는 교육과정 개정이 같은 해에 이루어지는 때도 있었고, 길게는 6년 주기로 개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2009 개정 교육과정은 2007 개정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에 고시됨으로써 서로 다른 교육과정이 혼재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정치적 목적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6) 1980년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는 김대중 정부가 유일하다. 7) 그중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역사과 교육과정 제외)은 정부의 개입이 두드러진다.
5)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체제 개선을 위한 연구 개발 기관으로 1972년 설립되었으나 개발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한국교육개발원은 자신들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지속적인 사업이 필요했다.(한국교육개발원, 위의 책, 1983.) 이 때문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6년 주기의 교육과정 개발을 주장하였으며, 결국 교육과정의 개정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김성자, 앞의 논문, p.14)
6) 김성자, 앞의 논문.
7)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1998년 2월로, 제7차 교육과정이 1997년 12월 30일에 고시되었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교육이 정권에 따라 좌우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 속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과정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또한 교육과정의 개정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까지 교육과정 개정 방식은 전면 개정 방식이었다. 교육과정을 총론부터 각론까지 일시에 개정하는 체제에서는 학교와 교과의 특수성을 고려하기 어렵고, 짧은 기간에 개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충분하게 연구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수시개정, 부분개정 방식이었다. 교육과정의 수시개정, 상시개편 체제로 전환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 때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 보다는 개정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수시로 개정하는 체제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도입취지와 달리 수시개정 체제에서도 교육과정의 잦은 개정으로 교육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무너졌다. 2009 교육과정의 개정 과정을 보면 2009년 9월에 개정 시안을 위탁하였고, 같은 해 12월에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다. 시안 개발에서 고시까지 걸린 기간이 3개월이라는 것은 전 정권의 정책이 적용되기도 전에 그 성과를 형해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교육과정 개정에 반영되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교육과정의 잦은 개정 요인으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 이외에 교육과정의 개정과 관련된 기관, 즉 교육정책 당국자나 교육연구기관, 교육관련 연구자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8) 즉 교육부 담당자나 교육과정 평가원, 그리고 교육학자들이 교육과정 개정을 주도하면서 수시로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전면개정 시기에는 개정 주기를 단축시키는 방법으로, 수시개정 시기에는 개정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방법으로 개정을 이끌어왔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문제를 정리해보면 교육과정의 개정이 정부의 정치적 목적 아래 이루어져 왔으며, 담당 기관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측면 또한 나타난다. 더욱이 충분한 연구와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꾀할 수 있는 상시적이며 독립적인 교육과정 연구와 심의 기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정작 교육과정을 학교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사는 소외된다. 우리나라의 국가교육과정은 전국적인 범위에서 규정력을 가지며, 의사결정 주체는 학자와 연구자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반면 국가교육과정이 학교현장에서 활용되는 수준에서 교사의 자율성은 극히 제한된다. 9)
8) 이경식, 「韓國에서 歷史學과 歷史敎育의 隔遠問題」, �역사교육의 방향과 국사교육�, 솔, 2001.
9) 이문기·남한호, 「2009년 개정 교육과정과 역사교육, 그리고 이후의 변화」, �역사교육논집�47, 2011, p.9.
전통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의 개발에서 교사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육과정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 교사들은 주어진 교육과정을 수동적으로 실천하는 역할에 머물 뿐이었다. 7차 교육과정 이후 교사들의 참여는 개정 연구 위원회의 구성 비율에서나 실질적인 참여 정도에서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현장의 역사교사를 선정하여 역사교육과정의 현장 적합성 검토를 의뢰하거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사의 요구를 수렴하고 반영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교사들이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타당하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과정 개발에서 교사의 위치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은 교사들이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하기에는 시간적으로나 능력면에서 부족하며, 교육과정 개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의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1) 이러한 관점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도 나타난다. 대체로 7차 교육과정의 개정까지 교육과정의 계획과 실천은 수직적으로 나뉘어져 진행되어 왔다. 국가 교육과정은 교과 및 교육과정 전문가가 개발하며, 교사들은 개정된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 연수과정을 거쳐, 교사용 지도서 등 주어진 기준과 자료로 교육을 받고 표준화된 방법으로 가르치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교육과정이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되고 개발되며, 전문적인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12)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과정이 고시된 뒤 교육과정과 현장의 괴리가 나타날 때마다 교사들이 새로운 교육과정의 정신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교육과정의 개발과 실천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으로 간주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교사들은 교수·학습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교사’ 혹은 ‘실행 연구’의 당사자이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관점과 지식으로 교육과정을 현장에 맞게 적용시키고 보완한다. 13) 더 나아가 교사가 실제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원으로 보는 주장도 있다. 왜냐하면, 교사는 교육과정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학습자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며, 교육과정 개발에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14)
10) 2015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은 2015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대체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연구 개발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개정뿐만 아니라 집필기준 시안 개발 연구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연구자의 숫자는 집필기준 시안 개발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를 포함한 것이다.
11)R.S.Zais, Curriculum: Principles and Foundations(NewYork: Thomas Y. Crowell, 1976.)
12)김기석, 「교육과정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한국의 교육과정 개발의 문제점�, 한국교육개발원, 1988.
13)H.Taba, Curriculum Development: Theory and Practice(Newyork: Hartcourt, 1962.); C.J.Marsh, Key Concept for Understanding Curriculum(London: The Falmer Press, 1996.), p.116.
역사수업에서 교사가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역사교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지식, 교수와 학습, 학교, 교육과정, 교육목표와 같은 많은 다른 이해를 포함한다. 15) 학교교육을 규정하는 교육과정은 실제 수업 과정에서 교사의 행위를 통해 교육내용으로 구체화된다. 교사는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한 판단에 따라 가르칠 내용을 선택하고 재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사는 교육과정 시행의 출구로서 역할을 한다. 16) 이러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 2015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보여준 역사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 개진은 교육과정 실천의 담당자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개발의 주체임을 증명해 보인 사례로 판단한다.
2015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 방향은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교과서 후속 조치’(2017.7.27.)를 기반으로 한다. 검정 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의 개발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질이 높은 검정 역사교과서를 학교에 보급하여 교육의 민주주의를 회복한다는 목표아래 교육과정 개발에서 현행 역사과 교육과정 체제 하에 제기된 문제 가운데 중장기적 관점의 해결 방안이 필요한 경우와,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경우를 구분하여 함께 다루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초·중·고 계열화 등 역사과 교육과정의 전면 개정은 기초 연구를 거쳐 차기 교육과정 개발 시 적극 반영’한다고 하여 2015 개정 시안이 역사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개정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개정 범위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에 국한되었고, 2015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17)에서 제기된 기존의 역사과 교육과정의 문제점 가운데 개정 가능한 영역을 대상으로 삼아 개정 시안에 반영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전국역사교사모임을 중심으로 한 현장 역사교사의 의견은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의 범위와 내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
현장 역사교사의 의견 개진과 의견의 반영은 앞선 교육과정 개발과 비교하면 형식면과 내용면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전문성을 갖춘 교사의 존재가 역사교육의 방향을 잡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교훈을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경험했다. 이는 교육과정의 개발과 실천의 주체로서 교사의 역할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 판단한다. 그렇지만, 정리된 이론을 기반으로 한 일관된 논리가 부족한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촉박한 개발 시한에 맞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설문과 토론의 과정은 역사 교사의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현장 교사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담아야 할 필요가 더욱 두드러진다.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단골로 제시되는 개정의 방향은 ‘교육내용의 적정화’이다. 교육내용의 적정화는 학생의 학습 부담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 진단에서 비롯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되어 왔던 것이 교과목 수의 축소와 교과내용의 감축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중·고등학교 교과를 8개의 교과군으로 편성하고 학기당 이수 교과목 수를 8개 이내로 편성하거나, 교과 집중 이수제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조치였다. 과목수의 조정은 과목간 통폐합과 필수과목을 줄이고 선택과목을 늘이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부담의 주요인이 학교에서 이수해야 할 과목이 많은 것 때문이 아니라 입시체제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선택과목의 확대는 제6차 교육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인문·사회과정과 자연과정 필수였던 세계사 과목이 이때부터 인문·사회과정의 사회과 6과목 중 ‘선택’하는 과목으로 바뀌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11·12학년을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편성하면서 세계사는 심화선택과목이 되었으며, 2009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전학년이 선택 교육과정으로 편성되면서 원칙적으로 모든 과목이 선택과목이 되었다. 그 결과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비롯한 일부 과목은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과목이 되었다. 학생의 다양한 흥미와 진로를 반영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선택 교육과정의 운영은 내신과 수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세계사 교육의 고사라는 위기진단으로 이어졌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2007 역사과 교육과정의 복원 논리이다. 2007 역사 교육과정 개정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역사’ 과목의 독립이다. 한국사와 세계사의 통합구성은 기왕의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었던 방안이었다. 23) 자국사 중심 역사인식의 심화와 세계사 교육 위기의 원인이 한국사와 세계사의 분리, 특히 중학교 세계사 영역이 사회과목에 편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역사교육이 불완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진단에서 나온 요구였다. 따라서 한국사와 세계사 교육의 통합적 구성으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상호 관련지어 파악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하는 역사’로, 인류의 과거 경험 속에서 학생들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을 생각해 보는 역사학습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있었다. 24) 2015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 논의 과정에서 가운데 중학교 “역사” 과목을 2007 교육과정과 같이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25)
2007 역사과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역사” 과목의 성격을 먼저 살펴보자.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다양한 인류의 삶을 이해하고 현재 우리의 모습을 과거와 연관 지어 살펴봄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삶에 관하여 폭넓은 이해와 안목을 키우는 과목이다.
이 과목은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와 세계를 연관시켜 체계적이고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우리나라와 세계를 서로 고립된 별개의 주체로 파악하는 시각을 지양하고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역사 이해를 촉진한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초등학교에서 학습한 한국사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와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서로 관련지어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 위에서 한국사를 주체적으로 파악하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습자로 하여금 인간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한다.(밑줄은 필자의 강조)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과목의 성격에 따르면 “역사”는 세계사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사를 주체적으로 파악하는 과목이다. “역사” 과목의 개발 과정에서 오고간 논의는 역사 과목에서 세계사 영역의 위치를 보다 잘 보여준다.
이번 시안 작업에서 가장 의견이 많고 영향력이 큰 부분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이다. 과목 명칭은 역사로 하고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하되 한국사에 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근대에 대한 이해를 개괄 형식으로 두 단원 정도로 마련하였다. 과목명을 ‘역사’로 하는 취지에 따라 어떻게 하면 세계사적인 관련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의 문제를 달성하기 위해 관련 단원마다 세계사적인 학습 요소를 명기하여 향후 교과서 서술이나 학습 현장의 수업 방향에서 세계사적인 사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술되고 학습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전반적인 역사 영역 내의 구성 속에서 학생들이 한국사에 대한 흐름,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배우도록 하고, 그것을 고등학교 1학년 단계에서 더 심화해서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채택하였다. 27) (밑줄 필자 강조)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나온 논의를 바탕으로 하면 “역사”는 한국사를 세계사와 관련지어 주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영역으로서 세계사의 성격이 뚜렷해진다. 중학교 역사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세계사 영역의 인식을 분석한 연구는 세계사 과목의 성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28) 중학교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 가운데 세계사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들이 있고, 혹은 세계사를 다루더라도 세계사를 한국사를 위한 도구적 지식으로 인식하고 세계사를 그 자체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지적은 과도할 수도 있지만 세계사 영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점검을 요구한다.
<표4>의 역사과목의 내용 배열은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누어 한국사-세계사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체계가 한국사와 세계사를 관련지어 체계적이고 전반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또 세계사를 배경으로 한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에도 쉽지 않다. 역사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역사과목의 성격에 맞추어 내용을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세계사와 관련성 속에서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파악한다는 목적으로만 보면 2015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이 더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수년 사이에 사회 환경은 눈에 띠게 달라졌다. 세계 각 지역의 상황이 더욱 빠른 속도로 전해지고,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지역과 사람들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왔다. 다문화 사회는 우리의 현실이 된지도 오래이다. 세계 각 지역과 상호관련성 속에서 복합적인 시각으로 우리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과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계열화’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계열화는 무엇을 어떤 순서로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학습내용과 경험을 질서에 따라 체계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차 역사과 교육과정에서부터 학교 급별 내용 조직에서 초등 생활사 중심, 중학교 정치사 중심, 고등학교 문화사를 중심으로 하는 계열성이 적용되어 제6차 교육과정까지 역사과 내용 구성 원리로 적용되었다. 그 뒤 국사 내용이 초·중·고에서 반복된다는 비판에 따라 역사교육의 계열성은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이 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학교급별 내용의 차별화를 위해 내용의 구성에 더하여 단원 조직을 달리함으로써 차별화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초등학교는 인물사와 생활사 중심, 중학교는 정치사, 고등학교는 분류사 체제의 종합사로 국사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제7차 교육과정의 계열화는 중학교 국사의 파행과 고등학교 한국사를 맥락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이 학교급별로 시기를 달리하여 내용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중·고를 연계하는 “역사”과목이 해체되면서 다시금 내용의 반복학습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문제는 역사교육의 내용이 학교급별로 명확하게 차별화된 적이 없었다는 점과, 계열화 논의는 (한)국사에만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세계사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원리로 계열화를 제시하였지만, 중·고의 차별성 보다는 반복의 성격이 강했으며, 고등학교 세계사를 문화사에 중점을 두거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차별화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계열화가 중·고 역사의 차별성에 적합한지, 그리고 교육과정의 목표와 내용구성을 체계화한다는 명분으로 교사의 주체성을 사전에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곧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 논의가 시작된다. 2015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확인했듯 새로운 역사과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서 역사교사의 관점과 그에 따른 의견개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