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가 왜 평화·통일교육을 주도해야 하는가?

기획-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는 역사교육 4

기획 –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는 역사교육 4


역사교사가

왜 평화·통일교육을 주도해야 하는가?


>>정경호(전남 복성고등학교)




1. 왜 우리가 평화·통일교육을?


역사교사라면 모름지기 역사지식 그 자체만으로 완결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역사교육은 과거의 사실에 대한 이해를 너머 인류가 진보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 자체도 너무 막연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된 공허한 담론일 수 있다.


가장 쉽게 얘기해보자.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인가? 자주적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해 식민과 분단으로 연결된 역사가 아니던가. 그럼 이러한 역사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진보와 행복을 가로막는 원죄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교사로서의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통일과 평화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솔직히 말해서 그 후로 존재감이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내가 79년에 대학에 입학한 후 5·18 광주 항쟁은 내 의식을 온통 쥐고 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그래서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게 하는데 일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름 노력하고 살았다. 그러한 노력으로 쓴 것이 졸저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이다. 특히 남북분단의 모든 질곡이 뭉뚱그려진 채 민주화를 열망한 광주를 덮쳐눌렀고, 이러한 짓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통일과 평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통일과 평화에 관심을 가지니까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근현대사의 본령을 놓치지 않아,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을 쉽게 이해시킬 수가 있었다. 우리 근현대사의 모든 모순과 민초들이 겪은 질곡의 깊은 뿌리는 남북분단과 이를 빙자한 독재, 이를 숙주로 자라온 폭력적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큰 눈을 뜨고 분단이 자행한 각종 사건과 왜곡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교육해야 할 책무가 우리 역사교사에게는 있다고 자각하게 되었다.


둘째, 미래지향적인 역사교육이 가능해졌다. 역사학은 과거에 머무르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미래를 위한 준비로서 효용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단연코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견인해내는 데 있어서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적 개념 속에서 인간과 사회를 관조하는 역사학이야말로 인간들의 속성과 염원을 다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회나 도덕 교과 등에서 관련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은 긴 호흡으로 즉, 역사적 맥락에서 이를 설명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셋째, 무심코 보아온 인간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에 공감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복잡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통일 희구세력과 분단 조장세력으로 나누어 이해하면 훨씬 생동감 있는 역사를 재구성해낼 수가 있다. 이를 테면 여운형이나 김규식 등이 좌우 합작 위원회의 성공을 위해 활약하는 과정을 파악하고, 친일파를 포함한 분단 조장세력들의 농간을 막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해방정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 현대사는 훨씬 역동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과정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통일과정도 해방정국처럼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와 견해차를 조정해나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므로 이러한 역사지식이 활용될 가능성은 아주 많다고 볼 수 있다. 즉 해방정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과 대립, 위선적인 구호와 모략 등을 이해하는 것은 통일과정에서도 되풀이 될 분단 기득권 세력의 작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듯이 분단과정을 제대로 탐구하지 않고 어떻게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가? 즉, 역사 속에서 배태된 분단과 역사 속에서 깊어진 질곡을 역사교사가 제대로 맥락을 짚어서 가르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예지를 가르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더 적임자란 말인가?


또한 수많은 갈등과 전쟁, 학살 등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르치며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인류평화를 위한 숭고한 노력들을 소개하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니면 그 누구의 사명이어야 하는가?



2. 평화·통일교육은 어떻게?


그렇다면 역사교사는 통일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삼국통일과 고려 통일과정의 역사적 조명,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를 학생들과 함께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교육이 자신들이 찾아보고 발표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지만 가치판단이 중요한 주제이므로 이를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린 해방정국에서 분단을 피할 수 없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해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오스트리아가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로서 연합국 4개국에 의한 통치를 받으면서 분단될 상황이었는데 국론을 통합하고 좌우연립정권을 통해 결국 분단을 막아낸 역사적 사례는 우리나라 해방정국에 적용 가능한 좋은 모델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서를 근거로 이에 대한 좌·우익 뿐만 아니라 중도파들의 주장을 요약해보고, 우리는 오스트리아처럼 분단을 막아낼 가능성은 없었는지 토론해보는 것도 좋은 통일교육이 될 것이다. 이러한 다른 사례를 통해 비교하고 검증하면서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확산적 사고라고 해서 요즘 권장하고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 통일과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남북 정부가 합의한 내용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북한에 얼마만큼 퍼주어서 했다’느니 ‘정상회담 이후에 얼마나 퍼주었다’는 식의 근거 없는 말들을 퍼트려 남북화해와 협력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이 온존하고 있다. 이러한 가짜 뉴스들이 SNS를 통해 퍼지고 있고 이걸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도록 교사들이 특히 역사교사들이 근거 있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투자하거나 인도적 지원을 한 액수는 줄잡아 3조원인데, 이것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조성을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관광과 중소기업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코 북한에 퍼준 것이 아니다.


독일은 통일 전에 20년간 60조원을 지원했다. 심지어는 동독에서 물러가는 소련군의 철수 비용까지 지급했다. 그래도 퍼준다고 하지 않았다. 통일 당시의 독일 대통령 바이체커는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난 후에 청구된 전쟁피해 보상금이었다’고. 또 ‘이 돈은 승전국으로 가지 않고 독일 내에 머무르는 것이었다’고.


얼마 전까지 비민주적 정권이 들어섰을 때 언론들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우리 국민들, 특히 비판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아직 안된 청소년들을 반통일세력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 큰 과제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에 저항하여 일어난 것으로 완결적이지 않았고 이 정신을 계승하여 수많은 반동세력을 이겨낸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시민혁명의 역사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통일이나 한반도 평화도 정치적 노력 뿐만 아니라 이끌고 나갈 세력들을 교육으로 키워내지 않으면 제대로 정착시킬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평화와 통일교육은 가장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연대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여 질 높은 교육적 내용을 개발해나가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위한 남북 간의 합의를 가르칠 때 7·4남북공동성명은 데탕트라는 세계적 추세에서 나온 것이고, 이를 이용하여 유신체제를 만들었다는 측면과 이런 식으로 그동안 독재 권력이 분단을 이용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을 위한 3대원칙은 그 후로도 유효했고 앞으로도 중요한 원칙임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 남북기본합의서를 가르칠 때는 유엔동시가입으로 국제사회가 남북을 국가로 공인하였지만,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하여 같은 민족으로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합의한 점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를 그 후에 일어난 개성공단 건설 등 남북협력사업 등을 통해서 조명해보게 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북핵과 미사일을 북측이 왜 개발했는지 역사적 유래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 즉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하고, 이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맞바꾸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누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여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현 정부의 노력도 평가해보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교육은 평화교육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교육에 평화교육이 포함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교육과 평화교육은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통일교육이 통일에 필요하고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교육이라면 평화교육은 한반도 평화공존과 우리 삶의 평화를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둘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는 아니고 상호 보완적이다. 왜냐하면 평화감수성이나 평화의 소중함을 충분히 이해함이 없이 통일과정이 무난할 수 없고, 통일이 없이 우리 한반도에서 평화가 자리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평화감수성과 다원적 가치관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체제 우월성에 대한 신념으로 북한을 무조건 흡수하여 통일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가치관을 길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어떤 통일이냐가 아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합의통일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성이 있다. 합의통일과 흡수통일에 있어서 통일비용의 차이에 대해서 발표한 자료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용역을 주어 연구한 결과를 대통령 직속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에서 2008년 발표한 내용이 있다. 즉 통일비용을 남북 상호간에 합의에 의한 점진적인 통일을 이룰 경우 연간 100만 달러가 드는데 비해 흡수통일을 하면 720만 달러가 든다고 되어있다. 즉, 흡수통일은 합의통일보다 7.2배의 통일비용이 든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통일비용을 겁내는 국민들이 많은데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그 비용이나 어려운 도전을 감당할 생각이 없는 국민들을 통일하자고 설득해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합의통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6·15남북공동선언도 이렇게 점진적인 교류와 협력을 하고 통일까지 해나가자고 합의한 것이다. 즉, 이 공동선언의 핵심내용인 2조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통일방안을 서로 존중하자는 것이면서도 서로간의 차이점이 많으므로 급속한 통일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으니 점진적으로 통일을 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3. 평화와 통일교육의 견인차로


우리가 통일교육을 할 때 미래지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가르치는 우리의 소명에 충실하느라 과거의 통일 노력을 가르치는데 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통일은 현실을 개선하여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나가는 단초가 된다는 신념을 갖고 가르쳤으면 한다. 즉, 통일비용 보다 분단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통일비용이 든다 한들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남는 재산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분단 비용은 무기 구입비 등으로 다른 강대국들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각종 자료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토론 등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면 더욱 바람직 할 것이다. 또한 남북교류와 협력 이외에 우리의 미래 동력을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통일은 더 먼 미래로 상정해두고 남북이 서로 경제교류와 협력을 해도 취업난과 분단으로 인한 민족 역량 소모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총론수준의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18년의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 남북교류와 협력 방안을 구체화한 ‘9월 평양공동선언’까지 나왔다. 이제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는 평화와 통일의 길로 들어섰다고 믿고 우리 역사교사들은 평화와 통일교육에 앞장서야겠다. 특히 그동안 축적된 역사관과 역사의식으로 가장 정확한 통일교육을 할 수 있는 집단이 바로 전국역사교사모임이라고 생각한다. 현상적인 이해를 너머 깊은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여 미래에 연결시켜 말할 수 있는 안목과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역사교사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역사교사들이 평화와 통일교육에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동북아의 불안정한 정세와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볼 때 적절한 시기이다.


하지만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는 거대한 담론이라서 혼자서 감당해나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좋은 자료와 교수학습법을 공유하면서 같이 성장해가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전국역사교사 모임 안에서 평화와 통일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고 예지가 넘치는 평화와 통일교육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고대해본다. 나는 감히 천명해본다. 이 평화와 통일교육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교육이며, 우리 역사교사가 할 때 이 교육이 가장 정확한 길을 갈 것이라고.



'기획-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는 역사교육'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