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링컨>(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13)은 긴 영화입니다. 러닝 타임만큼이나 여운이 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미국 대통령 링컨이 ‘수정헌법 13조’의 통과를 위해 고뇌하고 분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는 링컨의 업적을 고결하게 그려내기보다 치열한 정치의 현장을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습니다. 링컨은 고심 끝에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킵니다. 노예제도 폐지를 명문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폭력과 돈이 동원되는 모습도 그려지죠. 노예해방에 찬성한 급진파 리더 스티븐스 의원(토미 리 존스 분)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한 마디를 합니다.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치가 통과됐소. 미국에서 가장 고결한 남자의 지원과 사주를 받은 부패에 힘입은 거요.”
그는 이 말과 함께 수정헌법 13조가 담긴 법안을 아내에게 선물합니다. 흑인 가정부 출신이었던 그의 아내에게 말이지요. 감독이 링컨에게 보내는 헌사이기도 한 이 장면은 정치의 본질과 속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회자되곤 하였습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라는 지점에서도 고민해볼 수 있겠네요.
여름호를 내고 가을호 발간을 앞둔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되짚어봅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및 경제 보복, 신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문제와 그로 인해 떠오른 검찰개혁 이슈까지…. 마냥 편히 지켜보기 어려웠던 건 우리가 역사교사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늘 그랬지만 세상의 변화와 혁신은 당위와 현실 사이를 오가는 치열한 과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의’가 보편적 원칙이자 규범인 것인지 현실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결과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더해지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 이슈들은 우리에게 깊은 지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권이나 국가권력뿐만 아닌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고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시민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역사교육 <가을호>는 그런 시민들, 역사교사들의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일본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이 고조된 오늘, 역사교육은 어떤 고민과 실천을 이어가야 할까요?은 ‘역사교육의 눈으로 본 한일갈등’이라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역사교사-고등학생이 마주하여 이번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특별 대담이 마련되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편집부의 고민이 깊었습니다. 부디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부산역사교사모임의 구준모 선생님은 이와 관련된 실천사례를 원고로 전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교사와 학생들이 평화를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한일 갈등 ‘기획’이 고민했던 평화와 공존이란 가치는 이번 여름 자주연수가 내면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의정부역사교사모임이 준비한 2019 여름 자주연수(의정부-동두천)는 참가한 선생님들의 큰 호평을 받았었지요. 이동수 선생님이 쓴 후기에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특히, 연수 기간 내에 많은 샘들께 큰 감동을 주었던, ‘두레방 토크’ 장면에 대한 기록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의역모 맹수용 선생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제19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 캠프를 다녀온 고등학생 권유환 친구의 글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
이번 호 ‘수업 이야기’, 참 풍성합니다. 정희연 선생님은 평화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만든 한국전쟁 수업안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모임과 역사교육연구소가 공동주관하는 대안교육과정프로젝트 -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8차) 세미나에서 발표된 사례입니다. 맹수용 선생님은 지역 사회가 당면한 미군 기지 관련 문제를 세계사 수업과 연결한 수업 사례를 소개합니다. 자주연수 당시 발표된 이 사례는 많은 선생님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장면을 지면을 통해서도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새로 신설된 ‘수업이야기’ 코너도 있습니다. 바로 ‘마중물 프로젝트 지상 중계’ 연재입니다. 역사수업의 네비게이터 윤종배 선생님과 전국 각지의 역사교사들이 함께한 연수 프로젝트입니다. 앞으로 총 5차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수, 궁금하지 않으시나요? 그 첫 번째 시간이 <역사교육>의 지면을 통해 지상 중계됩니다.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젊은 역사교사의 고민을 담은 수업 에세이 ‘고민보다GO’에 담긴 김태정 선생님의 이야기도 일독을 권합니다.
우린 ‘내 곁이 다른 이’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큰 용기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 내 자신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이번 가을호에서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장콩샘’의 인터뷰 마이크는 김선옥 장학사(現 호치민한국국제학교 교감)에게 향했습니다.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이번 인터뷰에 대한 일독을 권합니다.
‘1정연수’에 대해 문제제기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낸 부산역사교사모임의 실천기는 여러분들에게 일상의 희망과 용기를 선사할 것 같네요. 늘 성찰어린 만화를 그려주시는 ‘뚱굴레 교사의 이야기’도 즐겁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책이야기’ 인터뷰 코너인 ‘만나書’는 팟캐스트 역사유랑단팀과 협력하여 박시백 화백과 만났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만화 <35년>과 독립운동사에 대한 박 화백의 이야기입니다.
#4.
<역사교육>을 읽으면서 역사 공부도 함께 하신다는 독자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역사이야기’에서 이번 호부터 선보이는 두 개의 연재를 읽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평화네트워크 대표인 정욱식 선생님의 ‘피스메이커’와 이용기 교수(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의 ‘한국근현대사 다시보기’가 그것입니다. 각각 한반도평화사와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글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역사학 및 역사교육에 관한 책 두 권에 대한 서평도 함께합니다. 예영주 선생님과 신세영 선생님이 서평을 통해 소개해주실 두 권의 책도 확인해보십시오.
가을호 편집자의 글은 앞서 언급한 영화 <링컨>의 또 다른 대사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혜를 요구받는 시대, 우리의 역사수업이 아이들에게 나침반의 바늘은 물론, 늪과 사막, 협곡을 극복하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가을호가 그 실마리가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나침반은 정북(正北)을 가르쳐 줄 겁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만나는 늪과 사막과 협곡을 알려주지는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