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청소년, 평화와 만나다

제 18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 캠프에 참가한 고등학생, 후기를 쓰다

권유환(학생, 서울 경동고)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최근 한일 간의 대립과 갈등도 이들의 만남을 막아내지 못했다. 험란한 시국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 캠프>는 올해로 19회를 맞으며 평화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캠프에 참가해 동아시아 평화를 체험한 고등학생의 후기를 싣는다. / 편집부

글쓴이주)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고조되어 가던 8월 초. 최악의 한일관계의 분위기라는 걱정과 우려를 뒤로하고 일본 도쿄에서 8월 7일부터 12일까지 5박 6일간 열리는 제19회 동아시아청소년역사체험캠프(‘동아시아의 지금과 미래를 이야기하자-동아시아의 화해와 핵 없는 세상으로의 길)’에 한국의 중고등학생 36명이 ‘동아시아 청소년 평화사절단’이란 이름으로 참가하였다. 동아시아청소년역사체험캠프는 일본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되고 2001년 후쇼사 중학교 역사 교과서 출간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한중일 연구자와 시민단체가 연대하는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공동의 역사인식 형성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올해 19회를 맞은 동아시아청소년역사체험캠프는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일본의 ‘어린이와교과서네트21’, 중국의 사회과학문헌출판사가 주최하며 매년 한중일을 돌아가며 진행하고 있다.


동아2.JPG ▲ 폐회식 후 19회 동아시아역사체험캠프 참가자들과 단체사진

물 흐르듯 순식간에 지나간 도쿄에서의 5박 6일은 그 무엇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귀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역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역사 캠프를 신청하고 공항에서 출국 할 때까지도 저에게 의미 있는 체험이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저의 그러한 생각은 첫날 교류회로 겪으면서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대충 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정말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게 한 일본 학생들의 ‘전전전세’ 공연을 보니 앞으로 5일간의 캠프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대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의견을 나누며 토론을 하고, 서로의 발표를 들으며 새로운 세계를 깨닫고, 마주보며 웃었던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캠프였습니다.


동아3.JPG ▲캠프 개회식에 참여한 한국 참가 학생들(좌) / ▲개회식 공연을 하고 있는 일본 참가 학생들(우)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활동을 꼽아보니 강연 및 토론, 장기자랑, 오픈 카페였던 것 같습니다. 강연과 토론이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한국에서라면 평범한 고등학생이 경험해보기 힘든 특별한 체험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한중일 학생이 다같이 삼국의 언어로 통역을 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신선하기도 했지만, 삼국이 앞으로 화합하고 공존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내용에 관한 강연이었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연 및 토론의 주제는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 피해의 실상을 배운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생각한다.’ ‘한국 전쟁과 전후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이렇게 3가지였습니다.


먼저 아서 버나드 씨의 핵 없는 세상에 대한 강연은 저에게 사고의 폭을 넓혀 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나 학원에서 핵에 관한 수업을 듣는다면 핵이란 그저 물리학적 개념으로 풀어내어 시험의 고득점을 준비하는 소재로서만 다가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서 씨의 강연을 듣자 단순히 핵의 구조만을 보던 저의 좁은 시야가 핵에 의한 사회적 피해까지 볼 수 있게끔 넓혀졌습니다. 그러자 무차별적인 큰 인명 피해를 입힌 나가사키,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을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낸 효과적인 무기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고맙다는 생각까지 했던 제가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그 당시 일본인과 함께 희생되었던 조선인 피해자의 사례를 그동안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한국에서 기억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조별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중국은 핵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하나를 놓고도 무수히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주요 관심사는 역시 “핵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였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중국이 핵을 ‘무기’로서 소유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국 친구들은 무기가 아닌 ‘방호의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이 핵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다른 방식의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놀랐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도 우리와 북한의 생각이 다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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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타카하시 테츠야 교수님이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서 강연을 해주셨는데 여러 의미로 놀라웠습니다. 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서 강연을 하셨는데 한국인보다 더 체계적이며 더 신랄하게 전쟁 책임을 방치하는 일본의 정치 세력들을 비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양심을 따라 행동하며 외국에 해당하는 한국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국 정권에 저항하는 양심적인 일본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보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노 재팬’이라는 구호는 ‘모든’ 일본인을 거부하는 의미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우리나라를 압박하는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일본 내의 시민들과 손잡고 ‘노 아베’를 외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한 강연이 끝나고 ‘와다츠미노코에 기념관’과 ‘wam(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을 들린 후 조별 토론을 하였습니다. 주제가 민감했기 때문인지 전날 토론에 비해 분위기가 엄숙하였고 차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wam'에서 보고 온 ’위안부‘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저는 ’위안부‘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늘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이 교과서에서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배운 적이 없으며 그날 강연과 기념관에서 처음 배웠다고 말할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에 대해 배운 적도 있지만, 일본인 학생들이 이 정도로 백지 상태일 줄은 생각도 못했었고 직접 겪어보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날 처음 알게 된 사실임에 불구하고 일본 친구들도 한국이 일본에게 항상 요구하던 ’충분한 배상‘과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일본인 전체가 일본 정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섣불리 선입견과 편견으로 상대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동아5.JPG ▲ 다이고후쿠류마루 전시관에서(좌) / ▲‘wam’(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에서(우)


세 번째로 한국 전쟁과 전후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 전쟁을 한반도 내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강연을 통해 국제 정세 속의 한국 전쟁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전 후 유럽에서 소련과 미국이 바르샤바 조약기구(WTO)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세우며 냉전을 벌일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미소의 배후 지원 하에 국공 내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열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참담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한국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열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진정한 피해국인 한국과 북한은 제외되었음을 배우면서 국력의 차이가 초래한 부조리를 보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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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후에 토론을 진행했는데 한중일 선생님들의 수업마다 다루는 내용도, 관점도 달라서 같은 주제임에도 흐름이 전부 신선해 토론을 할 때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였습니다. 일본 학생들과 토론을 할 때에는 주로 미군 기지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졌는데 일본 학생들과 우리의 관점이 달랐습니다. 우리 한국 학생들에게는 주한 미군이 한국 전쟁 당시에 거의 망해가던 한국을 되살려준 고마운 존재로 인식이 되어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뉴스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주장을 보며 긍정하기도 했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 친구들은 오키나와에서 주일 미군이 다양한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오키나와에 살지 않아 이러한 범죄를 경험한 적이 없더라도 미군 기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일본 친구들은 우리에게 자국의 안보를 외국 군대에 맡기는 행위 그 자체가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했을 때 충격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했던 주한미군과 미군 기지에 어떠한 의문도 품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론 이후 역사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돌이켜보며 외국의 힘에 우리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 당연하게 믿어왔던 내용도 새로운 시각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준 토론이어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별 토론들을 총 정리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국에서 하던 모둠수행평가 같아서 가장 손쉽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중일 모두 각각 토론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같은 조에서 한 토론인데 굳이 힘들게 통역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간도 길게 끌며 발표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역해주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과 중국 학생들이 정리한 토론 결론들을 들으면서 제가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토론도 삼국마다 각기 다른 관점을 서로 알아가기 위한 활동이었고 여태까지 그렇게 해오다가 마지막에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삼국이 함께 한 토론이었는데도 각국 학생들마다 인상 깊게 생각한 부분과 결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같은 조의 일본, 중국 학생들의 의견을 들을 때도 새로웠는데 다른 조의 의견을 들을 때는 더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조는 핵에 대한 소유에 대해서 주로 논쟁을 했지만 다른 조는 핵을 없애는 해결 방안, 핵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같은 강연을 듣고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토론을 하고 결론을 내린 모습을 보고, 같은 역사적 사건도 정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 총 정리 발표는 토론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 준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즐거웠고 가장 열심히 했던 장기자랑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 조는 디즈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로 했는데 연습하는 내내 조원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며 친구들이 각자의 의견을 낼 때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고, 모든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구성을 결정하고 나니 하나의 장기자랑인데도 마치 여러 개의 장기자랑을 합쳐 발표하는 것과 같은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제가 제안한 것은 ‘렛잇고’였는데, 앞의 ‘엘사’역에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백댄서’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역할이기에 집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원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밤마다 맹연습을 하며 백댄서 역할을 멋지게 해줘서 ‘엘사’역을 맡은 조원을 돋보이게 해 주었습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손발이 잘 맞았고 실수를 하더라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연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한 뒤 발표를 할 때에도, 모든 조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는 것이 보였기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사는 곳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삼국의 청소년들이 합심해서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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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오픈카페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삼국의 친구들이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이벤트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사진을 찍느라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체험했던 각국의 간식거리들도 신기하고 맛있었고 여러 공연들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나가서 공연을 할까 생각해봤지만 춤 쪽으로는 재능이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픈 카페가 3국이 함께하는 일정 중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아쉬움과 즐거움이 같이 있던 오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사진 한 장이라도 더 남기고자 열심히 찍고 즐겼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처음부터 읽어보니, 5박6일 캠프 내내 강의와 토론을 통해 저의 고정 관념과 좁은 세계가 깨지면서 계속 놀랐고 삼국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줄곧 웃었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캠프는 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만을 바라보며 공부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원하는 성적을 얻기 위해 눈앞의 고비만 넘기고 살던 저의 앞에 넓은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세계에서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동아시아청소년역사캠프를 다녀온 후 저의 인생은 가지 않았을 때와는 질적으로 달라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저에게 이러한 추억을 쌓게 해준 일본, 중국 친구들과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관계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소개해주신 역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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