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Project]
역사수업의 길을 묻다

마중물 프로젝트 연수 지상중계(1차)

/ 편집부 정리(담당에디터 이재호)




1. 수업이란 무엇인가?


(1) 이쯤이면 알 것도 같은데, 더 멀어져만 가는 이야기 ‘수업’.....


이야기는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마중물 배움터는 소위 숨어있는 강호의 고수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강호의 고수 그들은 왜 공론의 장으로 나오길 망설였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쯤이면 알 것도 같았던 그것(수업)이 다시 무엇인지 더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윤종배 선생님의 이끔은 참여자(무림의 고수)들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수업, 그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근원 그것은 초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의는 수업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너무 무거울 것만 같은 주제는 새로운 대화의 방식을 통해서 누구나 공감하고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삶의 문제로 이전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인터뷰 게임’을 통해 학생들과 진행했던 소통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소통은 타인에 대한 경청으로부터 완성된다는 메시지의 함의는 참여자들의 활동 속에서 어려운 개념이 아닌 몸의 언어로 삶에 깃들어 갑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는 것과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수업을 임하는 우리의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상처받은 치유자... 교사란 무엇인가?


수업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교사라는 현실로 접어듭니다.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영겁처럼 맴도는 이카루스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상을 꿈꾸나 이상은 현실과 너무 멀리 있고, 현실에 머물고 싶으나 꿈을 버릴 수 없는 그 혼란스런 지경, 마중물 배움터는 이러한 이카루스의 운명에 처한 우리들의 자기고백에서 발돋움합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역할과 교사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수업도 해야 하고, 업무도 해야 하고, 생활지도도 해야 하고, 상담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하나라도 소홀하면, 예측할 수 없는 비난과 책임을 져야만 하는 우리의 일상을 허심탄회하게 전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기도 합니다. 교사는 가장 던지기 쉬운 감정의 쓰레기통이다. 그러나 교사는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합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교사 또한 상처받는 존재라는 사실, 우리만 아는 진실일까요?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기엔 세상은 너무 무신경한 것만 같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시지프스의 신화를 이야기합니다. 교사로서의 생애주기 어쩌면 그 긴 삶의 궤적은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돌진 해야만 하는,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업보를 짊어진 고통스런 실존의 연속은 아닌가? 학생들은 젊음 그대로 그 자리에서 자신들을 드러내는데, 교사는 나이가 들며 매번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 형, 아저씨, 부모, 큰아버지, 할아버지 - 가시밭길 같은 연속이 시지프스와 닮은 교사의 삶이 아닌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교사들 삶의 압도적인 시간을 차지하는 수업이 그러하기에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수업이 시지프스의 바위가 아닌 즐거움과 보람이 될 수 있어야 교사의 생애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강의는 하나의 물음을 던집니다. 수업이란 ○○○ 이다? 이 간단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모두가 진지해집니다.


(3) 뽑으려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하니 모두 꽃이었다.


교사가 행복하기 위해 수업이 행복해야 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리 같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행복한 수업을 위한 다음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 이야기합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소통의 주체들 그리고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한 이해로 이야기를 이끕니다. 시작은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사춘기라는 생애 주기적 특징, 사교육, 학원중독, 미디어중독 등 우리 체제가 주는 특징, 지식을 접하는 방식과 진리를 재구성하는 방식의 변화로 인한 간극, ADHD적 성향이 증가하는 상황 등 다양한 예시를 통해 소통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학생들과 점점 더 소통하기 힘들어지는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학생들을 더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를 마련해줍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좋은’ 수업은 학생을 이해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선생님의 제안은 학생을 대상이 아닌 상대로 인정하고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박제가 된 건조한 사물체이 아닌 생동하는 생명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상기해야합니다. 생명체의 다음은 기계의 움직임처럼 예측하기 힘들지만, 교감을 통해 함께 방향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함께 하는 주체간의 교감과 소통은 배움 과정의 핵심이 됩니다. 선생님은 이야기합니다. ‘순간의 교감이 우호적 수업분위기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작은 성취들이 쌓여 배움이 의미있게 축적되어간다.’라고.


이야기는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학교와 교실, 그것은 제도화된 질서와도 관련됩니다. 현실에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공모된 수업붕괴’ 많은 것을 함의하는 이 짧은 문장을 통해서 우리교육의 자화상과 직면합니다. 상위권은 상위권대로, 중위권은 중위권대로, 하위권은 하위권대로 불안을 느껴야만 하는 공간 학교, 그리고 그 학교를 불안의 공간으로 만드는 제도, 모두가 이 현실을 회피하며 공모된 붕괴로 전락한 수업.


해답은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수업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





2. 좋은 역사 수업이란?


(1) 떨림과 울림이 공명하는 수업


존 롤즈는 ‘좋음’은 ‘옳음’에 의해서 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이와는 무관한 옳음보다 더 근본적인 개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좋은 수업이란 옳은 수업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며 더 많은 고려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옳음을 위한 객관적 지식의 전달 뿐 아니라 학생들이 재미있어 해야 하고, 그 재미를 통해서 의미를 구성할 수 있게 배려해야만 가능한 것이 좋은 수업일 것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좋은’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학생들이 ‘재미’라는 상황에 대한 접촉에서 멈추지 않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교사의 역할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흥미’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재미’는 가볍고, ‘의미’는 무겁다면, ‘흥미’는 그 가벼움과 무거움의 사이이며 교사는 흥미를 촉발할 수 있는 수업을 설계해야만이 ‘좋은’ 수업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합니다. 이야기는 또 다른 예시로 이어집니다. The story와 A story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설명합니다. The story는 배움에 참여하는 사람의 시선이 개입하기 힘든 사실이라면 A story는 개인의 시선인 이야기입니다. ‘좋음’은 The story와 같은 ‘옳음’에 토대해야 하지만 그 옳음을 접하는 개인의 삶인 A story와 소통해야만 완성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The story와 A story의 만남을 촉진하고, 중재하며 의미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 윤종배 선생님은 공명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공명이란 함께하는 이의 교감으로부터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함께 일어나는 배움 속에서 배움의 희열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좋은 수업의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훌륭한 선원은 바다를 꿈꾸게 해야 한다.


좋은 수업은 좋은 배움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배움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학생이 주체가 되어 교사와 공명할 때 옳음을 넘어 좋음의 단계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중심의 수업, 배움 중심의 수업, 활동중심의 수업이라는 최근의 화두는 모두 이러한 치열한 현실과의 대응 속에서 만들어진 대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좋은 역사수업으로 넘어갑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일화와 스토리텔링, 내러티브의 예시를 통해서 좋은 수업의 조건으로 균형감과 조정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수업을 설계할 때 사료를 배치할 경우 수업의 맥락을 고려해서 일화(깨알재미), 스토리텔링(1,2차 제시 설명), 내러티브(단원을 관통하는 주제의식)를 선택하는데 이것은 교사의 문제의식과 학생의 흥미를 균형감 있게 조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균형감과 조정능력은 사료의 배치문제를 넘어서서, 역사교육의 목표와도 연관됩니다. 선생님은 역사교육의 다양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기능적 측면의 역사적 사고력과 정의적 측면의 역사적 통찰력, 역사적 지식과 비판적 해석이라는 양립적 가치들을 균형감 있게 조정하여 의미 있는 배움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선생님은 The history와 A history의 통해 균형감과 조정능력을 강화하여 예시합니다. The history인 교과서와 교사의 이야기, A history인 학생 저마다의 이야기가 균형감 있게 만나 상호가 대립성을 벗어나 서로 대화를 통해 조정하며 의미를 구성해갈 때 창의적 지식이 촉발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좋은 역사수업 또한 이러한 배움의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역사수업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다양한 목표가 제시될 수 있지만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시간은 흘러갑니다. 스스로 건강한 역사의식을 형성하는 것, 역사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 삶을 공유하는 것, 배움의 즐거움을 얻는 것 많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선생님은 배움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에 따르면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 그것은 배운 것을 자기언어로 표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언어란 자기라는 독존적인 세계에 가두어진 배타적 언어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자기언어란 세계에 참여하여 타자와 만나 교류하고 소통하여 만들어진 공명의 언어입니다. 선생님은 배움이란 질서를 이해하는 동시에 질서에 참여하여 타인과 소통하는 과정이며, 그 질서를 함께 변화시켜가는 삶 그 자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역사로 치환하여 이야기 한다면, 배움의 참여자는 역사에 대한 기본 개념(질서)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질문하고 고민하며, 비판적 시각으로 자기의 이해방식을 구축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멈추진 않습니다. 자기 이해를 넘어 끊임없는 교류와 소통으로 공유 가능한 배움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역사는 각자가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지만, 고독한 메아리가 아닌 함께 공명함으로써 공통의 것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체현하는 것,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배움의 참여자들에게 즐거움과 좋음을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역사수업을 ‘살아있는’ 역사수업이라 표현합니다. 살아있는 수업은 수업의 참여자들이 즐거움과 좋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는 이러한 즐거움과 좋음을 매개할 수 있는 이끔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수업은 참여자의 다양한 고민과 표현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교류하고 소통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사는 수업의 장을 의미 있게 설계해야 합니다. 또한 교류와 소통을 통해 얻는 의미가 공통의 것으로 상승하기 위해서 교사의 문제의식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배움의 장에서 살아 생동할 수 있고, 그 생동함을 공통의 삶의 문제로 상승시키기 위해 교사 역시 생동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수업이란 참여자 모두의 생동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우리 시대의 교사의 사명은 훌륭한 선원은 바다를 꿈꾸게 해야 한다.’는 어린왕자의 말로 이야기를 매조지합니다. 학생들이 생동할 수 있는 바다(배움의 공간), 물을 만난 고기에게 생동성을 체험하게 하고 그 체험을 토대로 또 다른 생동을 희구하게 하는 매개자로서 역사교사, 그 책무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3. 교사는 전문가인가?


이야기의 대미는 우리에게 던져진 매우 곤혹스러운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교사는 과연 전문가인가? 이 질문은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고백을 종용하기 위한, 혹은 우리는 분명히 전문가라는 자존감을 앙양하기 위한 의도가 아닙니다. 교사가 처한 그 묘한 위치와 곤혹감 속에서 교사로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공통의 의제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교사로서의 삶, 그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수업에 대한 공유를 통해서 교사로서의 길을 찾고자 합니다. 자신만의 교수내용지식에 대한 공유는 교사로서의 공통적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첩경일 수 있습니다. 마중물 프로젝트는 교사로서의 삶을 공유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윤종배 선생님은 교사는 세르파와 같아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함께 배우는 학생들을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 그 과정 속에서 교사는 자신의 길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배움이란 삶을 함께함을 전제로 합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삶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 각자의 배움을 공통의 배움으로 상승시킬 수 있도록 과정을 설계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즐겁고 좋을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 만남은 무겁지만 적확한 우리 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던진 교사란 무엇인가? 수업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은 우리가 유보해왔던 곤혹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고요한 강가에 던진 조약돌의 파문처럼 함께한 참여자들은 많은 고민을 일파만파의 흐름으로 자기 가슴 속에 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수업 후 질의의 시간 속에 그 파문의 흔적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부터는 무던히 던져진 파문으로 발생한 자신의 곤혹감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4. 질문 : 가슴 속 파문을 공유하며


질문 : 수업을 다양하게 진행하며 많은 결과물들의 축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따라 나의 수업이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나의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이것이 형식이 아닌 실재적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 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경험이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대답 :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 해 볼 수 있는데요. 개인적인 경험과 교육과정 개발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한다면 저는 학기말에 설문지를 학생들에게 줍니다. 1학기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가 2학기 수업에 반영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간고사 직후 소소한 질문들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참고 할 수 있는 내용들도 수집하는 편입니다. 다음으로는 설문의 방법일 텐데요. 교육과정평가 관련 연구 통계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육연구소 함께 시행한 학생 역사의식조사의 질문들도 있구요. 학생들의 역사의식 조사의 통계가 어느 정도 표준화 되어 있어, 부분적인 활용이 가능해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야 할 궁극적인 지점은 교육과정 설계 시 유의미한 학생들의 선호도 표준조사 후 계열성과 논리구성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질문: 교사는 전문가인가라는 고민을 해보았는데, 우리들이 느끼는 곤혹감만큼이나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서도 교사를 전문가로 보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반추해 보았을 때도 자신감 있게 전문가라고 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기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선생님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 부탁드립니다.


대답: 저도 비슷한 고민 속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전기가 마련되었던 것은 우연히 수업공개를 해야 했던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많은 실패와 약간의 성공을 경험했었는데, 까닭에 수업을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모의재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했었는데, 예상보다 괜찮은 평가와 칭찬이 있었습니다. 칭찬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다양한 형식의 변화를 시도했었는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 후 내용에 천착해 그 한계에 도전해 보았는데 그때까지는 학생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의 도전과 그로 인한 변화가 지금까지 오는 동력인 것 같습니다. 교사 중심으로 천착했던 수업이 학생 중심으로 전환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토론수업을 진행해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공개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공유하면서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업의 상황을 함께 고민하며, 성공적인 부분, 미진한 부분, 예상과 다르게 미끄러진 부분들을 체크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해법을 모색해 갔던 것 같습니다. 함께 공유하며 나누었던 수업이 집단의 역량 향상으로 나타나는 부분들을 체험하며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함께 수업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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