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BUILDER를 세우는 한국전쟁 수업안
/ 정희연(전 경기 송림중학교)
* 이 글은 2019년 7월 26일 역사교육연구소와 전국역사교사모임 주최로 열린 ‘역사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한국 근현대사 교육과정 대안 찾기 : 평화의 관점에서’에서 발표한 원고를 다듬은 것이다.
* 본 수업 자료 개발 사례는 2018년에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에서 주도한 평화통일교육 자료개발 연구사업의 결과물이며, 연구팀은 김선옥(서울시교육청), 윤세병(동북아역사재단), 조현서(휘봉고), 문순창(운산고), 맹수용(의정부고), 김형호(배재중), 정희연(전 송림중)이 역사교과 팀으로 참여하였다. 역사 교과 외 다른 교과의 사례도 찾아볼 수 있으며 해당 파일은 ‘통통평화학교(http://tongil.moe.go.kr/)’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본 수업 사례글에 주제가 된 수업 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akht21.org/archive/post/117/31996
전에 볼 수 없었던 세계대전을 겪은 후, 인류는 평화의 필요성과 평화교육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서양보다 다소 늦었지만 평화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왔다. 특히 역사교육에서 평화교육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학자, 교사들이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1)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국전쟁2)을 겪고, 전쟁 재발의 불안함 속에 70여년을 살아온 대한민국에서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으나, 남북이 화해와 종전을 논의하는 현 시점에서 역사교육에서의 평화교육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통일 후의 역사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평화(를 실천)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해 어떤 수업이 가능할지를 모색한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역사교육에서는 전쟁을 평화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제안들과 역사교과서의 전쟁사 서술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한종, 「평화의식과 전쟁사교육」, �민주사회와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7 ; 선혜란, 「평화감수성을 기르는 전쟁사 수업 -한국전쟁을 사례로-」,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2009. 등이 있다. 역사교사들의 평화교육 실천에 대해서는 전국역사교사모임 김남철, 「전쟁 이야기로 평화를 말할 수 있을까」, �역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휴머니스트, 2008이 있다.
2)연구에 참여한 집필진들은 논의 끝에 ‘한국전쟁’ 용어 사용에 합의하였으나 교육부와의 협의로 결과물에는 교과서 편수용어인 ‘6.25’와 ‘한국전쟁’을 병기하기로 하였다. 다만 본 글에서는 집필진의 견해에 따라 ‘한국전쟁’을 사용하고 각 장의 제목만 기존대로 병기하여 표기하였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가르치는 것은 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어 전쟁과 폭력에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끊어진 일이 없다고 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의 전쟁에 대한 서술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전근대사 특히 고대사회의 전쟁을 서술할 때에는 국가 발전의 근거로 서술하고 있어 전쟁이 미화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5) 그러나 김한종은 고대의 경우도 전쟁의 과정에서 민중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다룰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6) 인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근현대의 전쟁에 대해서는 폭력성에 대한 서술이 전근대사에 비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전쟁 관련 사진이 교과서에 포함되고 전쟁의 피해를 별도의 페이지에 싣기도 한다. 생생하게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영상자료 등이 수업에서 활용되면서 전쟁의 참담함을 텍스트만이 아닌 시청각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런데 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화감수성의 함양과 평화를 실천하는 ‘평화능력’으로 이어지는지 의문이다. 이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사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참전한 군인들이 가장 잘 안다고 하겠다. 그러나 참전용사들이 누구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가 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참여했던 전쟁에 대해 정당화하는 것은 본인의 인생에 대한 방어기제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인정하거나 자신이 겪은 ‘폭력’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의 실행을 주장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는 수업시간에 다루어진 전쟁 피해자들의 이야기, 사진, 영상 등을 접한 후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느끼거나 심지어는 자료를 보며 낄낄대는 아이들도 접하게 된다. ‘폭력성에 대한 교육’이 곧 ‘평화능력’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고, 전쟁을 어떻게 가르쳐야 평화로 연결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에 대한 수업은 학계의 연구경향이 반영된 교육과정과 역사교과서 서술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연구 경향을 살펴보면 1980년대까지는 소련과 북한의 공산화 전략 하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고 보았던 전통주의 학설이 연구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수정주의 학설이 등장해 유행하였다. 1990년대에는 두 학설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전쟁을 국제정치의 틀 속에서 조명하거나 한국전쟁의 기원과 배경을 소련과 중국의 혁명노선 및 세계혁명, 동북아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새롭게 파악하고자 하는 스툭, 박명림, 와다 하루키 등의 연구가 이어졌다. 이러한 경향의 반영과 함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국 역사교과서 상의 한국전쟁 서술도 변화해왔다. 1~4차 교육과정까지는 북한의 책임을 강조하며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교육 및 정권 정당화에 이용되어 왔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 5차와 6차 교육과정에서는 한국전쟁 전의 무력충돌 및 미국의 책임도 함께 서술해왔다. 1990년대에는 민간인학살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한국전쟁 서술에서도 민간인 학살, 전쟁 유족 등 민중의 피해사실이 역사교과서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대한 현재 교육과정을 분석해보면 그 특징은 첫째, 계열성의 문제다. 초등 교육과정부터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의 서술에 이르기까지 분량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발단-전개-결말이라는 사건사의 반복이다. 내러티브의 변화가 없어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거대 권력 간의 관계만이 부각된다. 교과서 속의 한국전쟁은 국가주의적 서사의 대표적 형태로 그 안의 다양한 개인이 소거된 채, 국가의 전쟁사 서술에 그치고 있다. 셋째, 평화적 감수성을 키우는데 역부족이다. 현재의 서술로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우리는 참혹한 경험을 해야 했으며 분단에 이르렀다.’ 혹은 ‘전쟁은 참으로 비극적이며 이런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나쁘다.’는 식의 인식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교육과정 아래 한국전쟁 수업은 평화를 가르치는 데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재정권 하에서는 반공 이념 강화와 체제 정당화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모두 전쟁의 원인에 대한 논의로서, 전통주의는 북한의 악마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했다. 수정주의가 도입된 이후에도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북한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도리어 우리 사회에서 냉전적 사고가 신전통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강화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최근 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면서도 보편적인 평화 인식을 환기하기보다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5) ‘삼국의 발전과 항쟁’ 단원 아래에 “4세기 말에 광개토 대왕은 소수림왕 때의 내정 개혁을 바탕으로 대외 팽창에 나섰다.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고, 왕위 다툼으로 후연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또한 5만의 군대를 보내 신라를 침략한 왜군을 물리쳤고, 거란과 숙신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고 쓰는 식이다. 주진오 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천재교육, 2010, p.25.
6) 김한종, 위의 책, pp.157-163.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 하여 수업안을 준비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①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을 막을 수는 없는 걸까?
전쟁에 대한 세 가지의 관점 중 전쟁을 인간의 본능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아론 벡은 반대로 이야기한다.
인간이 지닌 적대적 공격성이 전쟁을 유발한다기보다는, 전쟁이 살인, 고문, 가정, 공장, 농장의 파괴와 같은 적대적 공격성을 유발한다. … 전쟁 선동의 현대적 관점은 전쟁에 대한 타고난 본능 개념을 배제한다.
아론 벡에 의하면 전쟁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그와 함께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유네스코 헌장)
라는 문구는 인간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인간성에 대한 이 믿음에 기반 하지 않으면 우리의 수업은, 교육은 아무데도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다. 한편에서는 전쟁이 발발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두고 개인의 심성과 선택에 책임을 지우는 시도로 인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구조를 만들고 전쟁의 시작을 결정하는 것 역시 인간임에 틀림없으므로, 결국은 인간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수업안을 구성하였다.
② 어떻게 전쟁으로 평화를 이야기할까?
- 수업 내러티브의 중심은 무엇이어야 할까?
애초에 우리의 문제제기의 출발은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학살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전쟁에서 필연적인 군인들의 인명피해도 그렇지만 비전투원인 민간인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된 사건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민감한 소재중 하나다. 지금까지처럼 통계수치로 접근하면 자칫 ‘누가 더 많이 죽였나’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아이들은 희생자들을 수많은 희생자 중 한명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 잔인한 학살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학습하는 것도 평화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는 의문이 들었다. 일제의 고문을 체험하는 것이 일제에 대한 비분강개로 이어지듯 말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폭력적 상황을 가져온 전쟁의 원인과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기에 적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양한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킨, 전쟁을 살아낸, 혹은 죽음을 맞았던 이야기를 드러내자. 전쟁의 폭력이 개인의 삶을 파괴한 현실을 구체적인 서사로 들려주는 것이 학살된 인원의 그래프보다 아이들의 마음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국가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국제적 차원, 지역, 개인의 서사를 수업에 도입하였다.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아닌 다양한 차원의 전쟁 주체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지역과 개인에 전쟁이 남긴 결과를 살펴본다. 그러자 전쟁이 가져온 직접적 폭력 뿐 아니라 국가적 서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이 함께 모습을 나타내었다. 전쟁의 폭력성을 다층적으로 살펴보면서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직접적 폭력 못지않게 사람들의 삶을 왜곡시켰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 가져온 폭력의 온전한 실체가 드러나는 지점이 될 것이다. 넷째, 구체적인 인물들의 내러티브는 역사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내포하여 나와 내 이웃에 닿아있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느끼게 해준다. 현재를 살아가는 전쟁 이후의 세대들이 한국전쟁을 ‘조상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③ 우리는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 평화감수성과 평화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평화교육을 실천하였고 유네스코에서 상호문화이해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는 구조적 문제를 등한시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 낭만적인 시도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헌장에서도 언급했듯 전쟁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구조가 아니라 인간이다. 따라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역시 인간이다. 우리가 한국전쟁 수업, 역사교육을 실시하는 궁극적 목적이 평화를 ‘아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학생을 기르는 데에 있음도 명확하다. 수업을 통해 전쟁이 가져오는 폭력에 통감하고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도록 한다. 이것이 일상의 폭력과 평화를 인지하게 하는 평화감수성과 평화를 만들고 실천할 수 있는 평화 능력으로 이어지는 수업을 구상하였다. 그 결과로 진정한 ‘나’의 실천부터 시작하기 위해 멀리 있는 평화 이전에 교실 속 평화를 구축하는 것에서 출발하도록 학생활동을 설계하였다.
수업안은 여는 글과 교육과정 분석, 4개의 주제학습과 1개의 활동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의 수업은 맥락을 가지고 구성되었으면서도 독립된 수업의 형태를 띠고 있어 개별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개별 주제들마다 주제의 선정 의도, 교사용 읽기자료와 읽기자료에 해당하는 발문 및 활동, 학생용 학습지가 첨부되어 교사의 수업 디자인에 따라 가감하여 사용할 수 있다.
<주제 선택 의도>
그간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교과서 서술과 대중의 역사인식에서는 전쟁의 북한 책임론을 부각하면서 김일성의 야욕에 의한 동족상잔의 비극, 민족 내부의 불행으로 전쟁을 바라본 측면이 크다. 이러한 시각은 남북의 대립을 극대화하고 북한에 대한 남한의 적개심을 키우는 데 한 몫을 했다. 최근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배경을 함께 기술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냉전기’는 유럽에만 해당하는 단어로서, 동양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의 열전이 발발하여 극심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이 전쟁들은 해당국 뿐 아니라 냉전 양극의 국가들 및 세계 여러 국가들이 참전하였으며, 양극단의 대리전으로서의 성격을 짙게 가진다.
따라서 6.25(한국전쟁)을 냉전 속에서 바라보고 한반도에 오고 있는 평화를 냉전의 종식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였다.
<수업자료>
① 6.25전쟁(한국전쟁)의 명칭 : ‘한국전쟁’과 ‘6.25전쟁’ 등 명칭을 둘러싼 논의를 소개하여 각 명칭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이해하고 적합한 용어를 선택, 혹은 제안해보게 한다. ② 전쟁의 기원 : 전쟁의 기원에 대한 학계의 논의를 제시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넘어 한국전쟁의 세계사적 의미를 짚어보도록 유도한다. ③ 전쟁의 전개 : 전개과정을 다루되 군사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전개과정에 따른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살펴본다. ④ 전쟁은 왜 종전이 되지 않고 정전이 되었나? : 전쟁이 ‘정전협정’으로 끝났음을 환기시키고 ‘종전’과 ‘정전’의 차이를 생각함으로써 한반도의 현 상황을 분석한다. ⑤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본 전쟁 :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과 일본, 북한군의 인식을 소개하여 다각적인 인식과 함께 세계사적 의미를 깨닫도록 한다. (활동) 판문점 선언과 정전협정, 평양공동선언을 비교하여 최근 논의되는 평화협정에 들어갈 내용을 유추해보는 경험을 갖는다.
☞ 교과서 속 서술에서는 전쟁이 정전협정으로 귀결된 사실을 깊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이 체결된 배경을 살펴보고, 그 차이가 한국사회에 가져온 결과를 생각해본다. 더불어 최근 논의되는 종전선언의 내용을 추론해봄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지향을 논의하는 기회를 갖는다.
Q. 냉전 시기 왜 동아시아에서는 열전이 벌어졌을까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자료 6.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본 전쟁
<중국인이 본 한국전쟁>
“출병하지 않으면 안 돼. 조선(북한)은 중국의 이웃이야. 미국이 조선(북한)을 침략하여 점령하면 중국의 안전도 위협을 받게 되어있어. 미국의 제7함대는 타이완해협에 침입하여 중국 인민이 타이완을 해방하는 것을 저지하였어, 중국 인민은 반드시 미국의 침략을 저지해야 했어.” “조선(북한)정부가 중국에 출병하여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니 응당 출병하여 도와주어야 했어. 조선(북한)을 원조한 것은 조국과 고향을 지킨 것이기도 해.”
<일본인이 본 한국전쟁>
나는 전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과거 조선에 무슨 짓을 저질러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탓이 아니지만 내가 일본인으로서 조선에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를 생각하며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패전 후 불과 5년 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그 덕택에 일본 자본주의가 되살아나 재편・강화되기 시작 하는 모습을 떨리는 심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과거는 과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일본 자본주의 경제는 또다시 조선의 피에 의해 소생된 것입니다 … 나는 분노로 치를 떨었습니다. 내 나라의 추악함에 대해서 착실히 강대해져가는 권력과 군사력에 대해서 그리고 조선인에 대한 감도感度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과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무지했던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해서 죽음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에게 어떠한 구원의 손길도 내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연대를 외치면서도 진정한 연대의 내용을 끝까지 추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퇴폐에 대해서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문학이 출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고바야시 마사루, 「나의 조선」 중에서
<북한군이 본 한국전쟁>.
더욱이 �제국주의론�의 저자 레닌의 분석에 따르면, 다음 전쟁은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간 전쟁으로서 그들 자신의 몰락을 재촉할 뿐이라 하지 않았던가? 양대 진영론에 근거한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반민주주의 대 민주주의” 국가들 간 전쟁을 예측한 코민포름과 당중앙의 분석은 오히려 레닌의 전망에 어긋나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쟁은 필연적이며 어쩌면 그것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당 중앙의 분석을 받아들임과 아울러, 예고 없이 닥칠지 모를 어떠한 사태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다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 김재웅, 「한 공산주의자의 기록을 통해 본 한국전쟁 발발 전후의 북한」 중에서
☞ 유럽 중심의 냉전적 시각과 냉전의 대리전으로서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인지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 일본인, 북한군의 내러티브를 통해 전쟁에 참여한 각국 개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한국전쟁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터키, 네덜란드 등 국가들의 참전 배경에 대한 글도 찾아볼 수 있다.
<주제 선택 의도>
지역 사람들이 경험한 구체적 폭력이 드러날 때 우리는 비로소 전쟁이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직면하고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나 철원은 38도선 이북에 위치하여 북한에 속했다가 휴전협정으로 남한에 편입된 수복지역이며, ‘톱질’이라 불리는 전쟁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경계’지역이다. 이 경계를 살아간 주민들의 삶은 남과 북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과 적대를 넘어 한국전쟁에 대해 성찰해 볼 지점들을 짚어준다. 전쟁을 경험한 개인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개인으로 교차하는 관점을 접하며 국가단위에서 대립적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에 거리두기를 시도해볼 수 있다.
<수업자료>
① 분단선 위를 살아가는 지역들 : 1945년 8월 만들어진 38선과 한국전쟁 후의 휴전선,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등을 소개하고, 한국전쟁의 전개와 관련해 해당 지역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했을지 상상해보도록 한다. ② 철원 사람들이 기억하는 6.25(한국전쟁) 이전의 철원 : 일제강점기와 북한 통치기, 즉 전쟁 발발 이전에 발전했던 철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한반도에서 철원이 가졌던 지정학적 의미를 살펴본다. ③ 철원 사람들은 전쟁으로 어떤 경험을 하였을까?(1) : 교통의 중심지였던 철원이 전쟁 발발 후 미군의 집중 폭격 대상이 되면서 지역이 파괴되고, 마을과 함께 인명피해를 겪었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④ 철원 사람들은 전쟁으로 어떤 경험을 하였을까?(2) : 해방 후 마을이 남과 북으로 나뉘고 전쟁 중에 점령군이 바뀌면서 겪게 된 주민들의 피해와, 전쟁에의 직접 동원을 비롯한 강제 이주 등을 주민들의 사례로서 제시한다. ⑤ 한국전쟁 이후 철원지역에 생긴 변화 : 정전 이후 사회적 관계의 변화와 교통 중심지로서의 지위의 약화, 이산가족의 발생, 거주와 이동의 자유 제한, 인구의 피해 등을 서술한다. ⑥ 6.25(한국전쟁) 이후 철원 사람들의 삶 : 전쟁 이후 개인들의 삶을 구술사로 들려줌으로써 파괴된 지역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평화가 이들의 삶에 가져올 변화를 상상하도록 한다. (활동) 해방 이후 현재까지 특정 시점을 선택해 역사일기를 작성함으로써 철원 지역민들의 전쟁 경험에 감정이입을 시도한다. 이로써 ‘사람’들이 경험한 폭력을 구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자료 맛보기>
Q. 38선・군사분계선 주변 지역은 6.25전쟁(한국전쟁) 동안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요?
Q. 38선・군사분계선 주변 지역 사람들은 6.25전쟁(한국전쟁)이 (가)~(라) 시기에 어떤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요?
☞ 전쟁과정을 나타내는 지도로 흔히 접할 수 있는 자료이지만, 군사학적인 전술의 열거를 넘어서 전술 변화에 따라 해당 지역의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
<김명식의 증언>
“당신은 지리를 잘 아니까 인민군 패잔병이나 빨갱이들이 오면 수색을 해라.” 그래서 10명 깜둥이하고 통역하고 내가 군복을 준 거 입었으니까 토성리 부락에 들어가래. 산을 넘어오래. 내가 세파트(정찰하는 개)야. 패잔병이 나를 갔다 쏘면 총쏘리가 나면 그놈들은 무전으로 연락하잖아. 그러니까 낙엽 속에 보니까 한 300명 인민군(북한군)들이 숨어 있더라고. 따발총으로 드르르륵 갈겨, 날 보고. 갈기니까 벌써 무전이 어떻게 됐는지 거기에 포가 떨어 지더라고. 포가 떨어지면서 그거 올라가보니까 그 밑에 계곡에 가 있고, 내가 세파트야. 세파트가 죽으면은 그거 확인하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여기 휴전선 할 때까지에 일주일 동안을 그거 했어요. 한 후에 내가 우리 가족이 갈구리에 피난 가 있는 걸 알고, 레이션(군용음식 통조림)을 줘. 토성리에 가서 우리 가족이 거기서 나오더라고. 동네 사람이 한 트럭 타가지고 삼팔선을 넘었대. 거기 딱 가니까 감시원들이 이놈이 빨갱이냐 인민군이냐 해가지고 철망을 해놓고 가르고, 나는 미군에서 싸인을 해주더라고. 난 모르지. 우리 가족은 개울 거기에 이상 없이 문하리 갔다 이거야. 문하리에 가니까……. 결국 일주일간 척후 활동 했던 것을 인정을 받은 거지. 그러니까 담요를 한 장을 주면서 문하리까지 갔어. 문하리에 가니까 거기에 또 감시위원들이 있어. 거기서 빨갱이 가족이 섞어 나왔나 심사하는 경찰인데 우리 가족은 ‘고생했다’고 하면서 했어. 레이션 주는 걸 갔다가 우리 가족을 주니까 나눠 먹었어. 그 다음 우리 가족 7, 8명이 수원 쪽으로 간다 하는 거를 보내면서……
Q. 김명식(가명)은 전쟁 전 인민학교 교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전쟁으로 철원이 UN군에게 점령되자 삶이 어떻게 변하였나요?
Q. 김명식은 전쟁 보조역으로 동원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군대 징집을 기피했다며 입대를 해야 했습니다. 그가 8년간 가정을 떠나 군 생활을 하는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에 불평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전쟁을 살아낸 개인의 증언을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직접적 폭력의 피해 뿐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으로 개인의 삶이 파괴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Q.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의 존재는 현재 철원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Q. 남과 북 간에 평화적 대화가 진전되면 김명식, 임길태, 김민경(가명)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 정전이 되었지만 지역민들에게 여전히 가해지고 있는 폭력적 현실과 평화적이지 못한 삶을 조명하여 전쟁의 피해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또한 평화협정이 이들의 삶에 가져올 변화를 상상함으로써 평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킨다.
<주제 선택 의도>
그동안 전쟁포로는 한국전쟁 수업에서 여러 이유로 외면되어 왔다. 그러나 포로수용소는 평범한 개인의 삶이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굴절되고 뒤틀렸는지를 불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이 된다. 이를 위해 최근의 연구 성과와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적절히 활용하고자 하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전쟁과 갖가지 폭력사태를 다룬다. 교과서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이야기들은 전쟁 과정에서 생긴 폭력 중에서도 매우 극적이고 기상천외한 상황의 폭력을 보여준다. 전쟁이란 이렇듯 언제 어디에서, 어떤 폭력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장에서는 구조적・문화적 폭력으로서 포로수용소에서 행해진 ‘자발적이지만 강요된 선택’들을 이해하고, 일상 속에 마주하는 폭력을 분별, 예방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폭력을 기억하는 방식을 고민함으로써 우리도 언제든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하도록 한다.
<수업자료>
①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전쟁 중 발생한 포로와 포로수용소의 건설을 설명하고, 특히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세워진 배경을 제시한다. ② 누가, 왜, ‘전쟁 포로’가 되었을까? : ‘포로’의 의미와 포로의 대우에 대한 제네바협약을 설명한 후, 실제 포로가 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왜곡된 ‘포로’의 의미와 정치적으로 이용된 행태를 확인한다. ③ ‘자원송환원칙’ : 휴전회담 과정에서 제기된 포로송환원칙 논쟁을 소개하고, 자원송환원칙이 관철됨으로써 포로수용소 내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를 보여준다. 이는 국가 중심의 서사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철저히 전쟁으로 인해 생긴 극단적 폭력의 양상이다. ④ 분단폭력이란? : 분단폭력의 의미를 소개하고 현재 자신의 삶과의 연관성을 찾아본다. ⑤ 포로수용소와 문화적 폭력 : 1951년부터 실시된 민간정보교육 프로그램으로 인해 포로들이 겪게 되는 강제적 선택, 문화적 폭력을 보여준다. (활동 1) 전쟁포로의 구술영상과 뮤지컬 <로기수>를 통해 전쟁이 전쟁 포로에게 남긴 상흔의 깊이를 가늠하고 공감한다. 해당 폭력에 국가 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대상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석하고 폭력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활동 2) 홀로코스트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조형물을 통해 기억과 기념의 의미를 살펴본 후, 전쟁포로를 기억하는 조형물의 제작을 기획해본다. 이 과정에서 기념의 대상, 기념물의 설치 장소, 재료, 명명 등을 고려하도록 함으로써 폭력과 죽음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Q. ‘억류된 사람들’은 왜 전쟁 포로가 되었을까요?
Q. 북한과 중국, 남한과 유엔군은 전쟁포로를 어떻게 이용했을까요?
☞ 위의 사례는 포로수용소가 전범수용소 뿐 아니라 ‘난민수용소’이자 ‘강제수용소’로서, 수용소에 들어온 민간인까지도 포로로 대우하였음을 보여준다. 포로를 체제 선전과 전쟁 명분을 위해 이용하면서 수용소 내에서 대규모의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도 파악할 수 있다.
☞ 자원송환원칙이 적용되면서 각종 선전과 사상교육, 포로 심사가 이루어졌다. 그 사이 중공군과 북한군, 남한 측 민간인 억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포로수용소에서 예상치 못한 폭력이 대규모로 자행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을 멈추는 과정에서, 안전을 보장받았어야 할 포로수용소에서 숱한 폭력과 죽음을 맞닥뜨려야 했다.
Q. 분단은 나와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요? 나의 일상에서도 분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나요?
Q. ‘반공 교육’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분단이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서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고 우리 삶에 존속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한다. 이로써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 볼 문제>
1. 한 사람을 위한 기념물입니까? 여러 사람을 위한 기념물입니까?
2. 위대한 인물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물입니까?
3. 기념물은 어디에 세워져 있나요?
4.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나요?
5. 여러분이 기념하려는 사건은 언제 일어났습니까?
6. 여러분이 기념하려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 살았습니까?
☞ 기념물을 제작하는 활동을 기획하였다. 파악한 폭력의 원인, 가해자와 피해자, 폭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등을 분석하고 담고자하는 메시지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기념물을 제작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섬세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위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여 역사적 사건의 기억과 기념의 의미와 방법을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주제 선택 의도>
문화 컨텐츠는 해당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논점의 변화와 더불어 당대의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국가 권력이 대중들에게 한국전쟁의 어떤 측면을 주로 보여주고자 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역사교육 측면에서도 영화는 역사교육의 훌륭한 자료이나 본 장에서는 평화의 렌즈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을 들여다보고, 역사 수업을 위한 텍스트로서 바라보고자 하였다..
<수업자료>
① 6.25(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과 스펙트럼 : 한국전쟁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각각 가지는 관점과 주제, 특징, 기억하는 대상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반공 영화와 민주화 이후의 영화들의 차이와 특징을 파악하도록 한다.② 영화 속 한국전쟁(6.25 전쟁)을 보는 세 가지 관점 : 한국전쟁을 보는 관점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영화가 가지는 관점에 따라 관객들의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한다. 또한 관점 변화의 추이를 역사적 흐름과 연관 지어 역사화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③ 평화 명대사/명장면 : 영화 속에서 전쟁의 비극을 드러내고 전쟁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나 장면,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대사와 장면을 정리한다. 이로써 영화 제작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평화의 관점에서 영화를 재해석하도록 유도한다. ④ 권력, 반공 이데올로기를 스크린에 내걸다 : 한국 현대사에서 반공영화의 역사를 살피고 반공영화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끼친 영향을 추론해본다. 이를 통해 문화 컨텐츠를 분석적으로 읽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 ⑤ 영화평론가들이 붙인 사론(史論) : 평론에 담겨 있는 당대의 역사인식과 쟁점을 살펴보고, 평화의 관점에서 재평가해보는 기회를 갖는다. (활동) 영화 속에 나타난 학도병의 사례와 그에 대한 평가를 제시하고,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학도병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판단하도록 하는 글쓰기를 제안한다.
☞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해당 영화들이 제작된 시대적 배경을 확인하여 영화에 담긴 메시지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Q. 영화감독들이 위와 같은 장면이나 대사를 담은 의도가 무엇일지 평화의 관점에서 추론해봅시다.
Q. ‘반공영화’가 다음의 요소에 주는 영향은 어떠할지 모둠별로 이야기해보세요. 반공영화가 (민주주의/평화통일/표현의 자유/영화예술의 발전)에 끼치는 영향은?
☞ 영화들을 평화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영화라는 문화적 기제가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작품을 보는 비판적 안목을 기른다.
<주제 선택 의도>
1953년 우리는 정전협정을 맺었다. ‘정전’협정으로 우리는 70여 년 간 지속적으로 전쟁 재개의 불안 속에 살아왔다. 최근에야 드디어 ‘종전’을 이야기하며 평화의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종전협정’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선사해 줄 수 있을까. 전쟁의 포격은 없는데 우리 삶은 왜 ‘전쟁’같은 나날들을 살아내고 있었을까. 그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 현실의 평화 역시 뚜렷한 한계가 생기지 않을까.
본래의 기획은 남북 간에 곧 맺어질(맺어지길 기원하는) 평화협정의 내용을 만들어보는 수업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너무 큰 이야기보다 주변의 평화부터 둘러보는 경험을 먼저 갖기로 하고 ‘우리 교실 평화협정’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교실 안 친구들이 평등하게 둘러앉는 것, 일상의 평화를 지키는 연습이 평화 능력의 시작이 될 것이며, 이것이 세계의 평화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수업자료>
① 과연 평화란 무엇일까? : ‘평화’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여 막연하게 생각했던 평화를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일구어야할 ‘평화’의 상을 그린다. ② 적극적 평화는 가능한가? : 앞서 살펴본 요한 갈퉁의 평화에 대한 구분 중, 우리가 지향할 평화는 소극적 평화를 넘어 ‘적극적 평화’가 되어야함을 확인한다. ③ 평화감수성이 필요하다 :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폭력을 인지하고 없애고자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인간이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평화감수성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평화감수성은 어느 정도인지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④ 그뢰닝과 문형순 : 공무원으로서 폭력적 사태 앞에서 순응과 거부라는 상반된 선택을 한 두 인물을 살펴봄으로써 폭력과 평화가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상기한다. ⑤ 집단 뒤에 숨은 개인들 :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이름을 가졌을 때 폭력이 증대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경계하도록 한다. ⑥ ‘차별’도 폭력입니다 : 직접적 폭력 뿐 아니라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현실에서 더욱 큰 비평화적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이 그러한 차별에 관여되어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활동) 교실 속의 폭력적 상황을 요한 갈퉁의 폭력 구분법에 따라 분석한다. 각각의 사례를 평화적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토의하여 평화협정으로 정리한다. 협정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개인별로 구체적 약속을 정하여 기록한다.
<자료 맛보기>
Q. 우리 교실의 평화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Q. 위의 질문에 모든 구성원의 답이 같은지 확인해보고, 다르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 주변의 평화와 폭력을 인지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평화적 수준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는데, 구성원 간 평화감수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같은 상황에서도 타인이 폭력으로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하도록 한다.
(1) ‘나는 그저 보기만 했다’ - 그뢰닝
2015년 7월 15일 독일 중부 니더작센주 뤼네부르크 지방법원의 재판장 프란츠 콤피슈(Franz Kompisch)가 피고 오스카어 그뢰닝(Oskar Gröning)에게 징역형 4년을 선고했다. 95세 노인의 죄목은 살인방조죄였다.
그뢰닝은 1944년 5월부터 7월까지 30만 명 이상의 헝가리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행위는 살해와 직접 관련이 없고 자신은 그저 ‘장부 관리인’으로서 수인들의 돈을 세고 정리해 상부에 보내는 작은 역할만을 수행했다고 변호했다. 친위대 하사였던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살해에 협력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그저 보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번이나 전출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콤피슈 판사는 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는 인간을 살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제였습니다. 그것에 협력한 사람은 누구나 살인방조의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겁쟁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 탁상에서의 일을 결정했습니다. 아우슈비츠 근무는 당신의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당신의 상황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강제적인 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판사가 그렇게 단호하게 응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역사 연구를 통해 나치와 학살기구의 하급 군인과 직원들이 도처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일정한 선택권을 갖고 있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뢰닝이 전출을 요청한 증거는 없었으며 심지어 그런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1944년 여름의 그 ‘헝가리 작전’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해 학살에 가담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장부 관리인으로서 수용소가 순조롭게 운영되고 학살이 진행되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권총을 차고 있었으며 도주한 수인을 추적하는 데 참여한 적이 있었다. 법원은 그런 정황을 죄의 근거로 삼았다.
(2) ‘부당함으로 불이행’ - 문형순
2018년 11월 1일. 제주지방경찰청에서는 고(故) 문형순 경찰서장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문형순 경찰서장은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는 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광복 후 경찰이 되어 1949년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좌익 혐의를 받던 주민 백여명을 자수시켜 훈방했다. 6.25(한국전쟁) 중이었던 1950년에는 성장포 경찰서장으로 재임하면서 군 당국이 예비 검속자를 총살하라고 명령하자,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 한다며 단호히 거부해 주민 2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상부의 지시와 명령임에도 명확한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정당한 절차도 없이 해치라는 부당한 지시였으므로 거부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문 서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고춘언 옹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축을 받으며 참석하기도 했다. 고춘언 옹은 “내 살아생전에 내 몸이 아무리 불편해도 이번 제막행사만큼은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생각했다”며 흐느꼈다. 문형순 경찰서장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찰서에서는 흉상을 만들어 추모했고,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평화를 향한 그의 결단을 칭송하고 있다.
Q. 문형순 경찰서장의 입장이 되어서 그뢰닝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 폭력을 가함에 있어서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폭력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데에는 개인의 결단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이로써 자신 역시 평화를 지키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 함을 인식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교실 속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각 개인들이 지킬 약속을 다짐하는 것으로 학습을 마무리한다.
우리 역사교육에서는 그동안에도 한국전쟁을 매우 비중 있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평화’보다는 ‘증오’였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용맹함으로 남았다. 이제는 적대적 증오를 끝내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전쟁 수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작한 한국전쟁 수업안은 다음의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다양한 층위에서 전쟁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거대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 국가, 지역, 개인의 차원에서 겪은 전쟁의 모습을 드러내 보다 입체적인 역사상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둘째, 구체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리고자 하였다. 고통과 폭력에 주목하되, 통계상의 숫자가 아닌 개개인의 내러티브를 통해, 전쟁이 가져온 구체적 삶의 파괴 양상과 고통의 진상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셋째, 폭력의 여러 측면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전쟁은 ‘전쟁’ 하면 흔히 떠오르는 직접적 폭력 외에도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을 동반하였다. 그동안 국가 중심의 서술에서 파악하기 어려웠던 폭력을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사람’들이 겪은 전쟁의 진면목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넷째, 전쟁 이후 장기적인 결과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현재도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인식하도록 설계하였다. 그를 통하여 전쟁이 실제 나의 삶과 연관되어 있고 직접적이지 않지만 다양한 형태의 폭력의 원인(遠人)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유도하였다.
다섯째, 전쟁 폭력의 참화를 알고 느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평화를 실천하는 능력을 함양하도록 하였다. 무엇보다 전쟁의 폭력성을 통감하는 것이 지금까지와 같이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만 귀결되지 않도록, 폭력 앞에 동일한 본성을 지니는 인간성을 확인하고 평화를 만드는 데에 숱한 노력이 필요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또한 평화를 만드는 주체로서의 노력을 적극 기울이는 태도를 갖고 작게나마 그에 대한 실천까지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이번 작업이 완벽하거나 평화를 위한 한국전쟁 수업의 유일한 대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선생님들이 고민해 오신 내용과 중복될 수도 있겠다. 의미를 찾는다면 한국전쟁을 평화적 관점에서 가르치기 위한 다양한 접근을 구상하고 수업계획으로 구체화 하였고 나름대로 최근의 연구 성과와 자료들을 반영하려고 노력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이 연구가 한국전쟁 뿐 아니라 현대사 수업을 통해 평화를 가르치는 일에 하나의 주춧돌이 되기를 소망하며, 현장에서 누구보다 고민하시는 많은 선생님들의 혜안이 이어져 평화로운 한반도와 세계를 만드는 Peace Builder들이 매일매일 세워져가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마음을 담아 자료에 실린 짧은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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