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수업 고민러, ‘함께’를 배우다

고민보다Go! : 걱정만 하긴 꽤 젊은 교사들의 수업 에세이

/ 김태정(경기 한수중학교)


△ 김태정 선생님이 글을 준비하며 고민을 직접 풀어낸 마인드맵. 역사수업과 교사의 성장에 관한 깊은 고민이 엿보인다.



#1

수업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좋은 수업은 무엇일까? 배움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역사는 왜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여름 호에서 이융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그가 언급했던 수업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에 대한 고뇌들은 역사 교사라면 한 번쯤은 고민했을, 또는 마음 한편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자연스레 수업 고민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오히려 초기에는 고민이 간단했다. ‘역사를 왜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고민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2

사실 1년 차는 고민다운 고민도 하지 못했던 시기였고, ‘신규 버프’로 인해서 진짜 나의 수업을 보지 못했었다. 1년 차 나의 수업은 교과서를 나름 구조화해서 만든 학습지를 들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수업이었다. (물론 나만 즐거웠던 것이 문제였지만;) 학생들이 워낙 괜찮은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내 수업에 대한 의심이 없었을 시기였다.


하지만 같은 학교를 다니던 경력이 많았던 선배 교사의 한마디로 나의 환상은 금방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 “나는 교실 문을 열기가 무서워.” 선배 교사가 내뱉은 이 말은 나에게 아주 큰 울림을 준 것 같다. 사실 말이 좋아 울림이지 사실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고 나의 실존과도 관련도 일임을 깨달았다. ‘수업을 잘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표를 가지게 된 나는 수업과 관련된 연수에 관심을 가지고 발품을 팔며 연수나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3

Z세대, 다문화 사회, 교실 붕괴, 잠자는 학교 등등 현재 학교 현장의 현실과 나타나는 문제점들.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내적 욕구도 욕구지만,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수업을 잘해야만 교사로서 롱런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감도 커지게 되었다. 현장에서 교사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이미 현장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학교 현장 어디에서도 ‘수업을 바꾸면 아이들이 살아납니다.’, ‘학생 중심 수업’, ‘배움 중심 수업’, ‘전문적 학습 공동체.’ 이런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덕분에 수업 관련 연수를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거꾸로 수업, 교육과정 재구성, 융합 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 가리지 않고 내가 가능한 선에선 정말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연수에서는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찾은 방법들, 그들의 철학이 담긴 수업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전담으로 가르치고 있었기에 연수에서 소개해준 수업 방식을 조금씩이라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수업을 다 바꾸지 못했지만 조금씩 바꾸다 보면, 어쩌면 고민의 답을 찾거나 조금 간결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다르게 고민은 더욱 복잡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수업 방법들은 수업에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었지만 일회성이거나 이벤트성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빌려올 수는 있었지만 진정한 나의 수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들 나름의 경험과 철학으로 다져진 수업을 나는 스킬만 적용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한 때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수업이 되고 말았다. 어떤 배움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즐거운 ‘활동’으로 끝나 버린 이유는 그들의 철학이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후에 수업 활동에 대한 검열도 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결국 자신만의 수업 철학이 없는 수업은 방법을 바꾼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구나. 문득 ‘내 수업으로 어떤 배움이 일어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주변 또는 사회에 관심이 많은 어른으로,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가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였을까?



#4

나의 수업을 돌이켜 보면,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내용을 가르쳐도 강의식보다는 활동으로 구성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의미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매 시간 수업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심할 때는 ‘활동’이라는 늪에 빠져 마치 활동을 해야만 수업이라고 느끼기도 하였다.


활동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맛보았지만,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업이 되었다. 머릿속으로는 내용 지식에 벗어나고 싶었지만, 때로는 의미 없는 활동을 나열하기도 하였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게 하려고 현재와 억지로 연결하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이것조차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발품을 팔아 모은 자료를 발췌에 발췌를 거듭하며 학습지를 만들어 겨우 수업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내가 원하는 수업의 방향은 무엇일까? 학생들의 배움은 어떤 것이지? 다시 고민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 수업은 어떤 수업이어야 하는가? 왜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 질문들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 줄이야…….



#5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욕구는 교사라면 대다수가 가지는 감정이자 욕구일 것이다. 나 역시도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이융 선생님의 말처럼 ‘메시’와 같은 수업의 능력자들을 보면서 자괴감을 가지기도 한다. 전역모 홈페이지나 페북에 올라오는 글이나 수업을 보면서 다들 어쩜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지?’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헌데, 하루아침에 철학이라는 것이 생길 리가 없고, 내가 생각한 수업이 짠하고 바로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능력자’가 아닌 일반 보통 사람인 나에겐 당장 내일 한 차시 수업을 구상하고 시간 내에 진도를 나간다는 것조차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나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수업을 잘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함께하는 것’ 이었다. 비록 시간을 쪼개가며, 저질 체력을 끌어가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수업 고민을 나누고 수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혼자서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으며,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아! 한 사람인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한계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느 날에는 내가 생각한 수업을 짠하고 탄생시킨 내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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